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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홍범도 논쟁을 선거패배의 원인으로만 볼 것인가

김석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3/11/16 [12:07]

[칼럼] 홍범도 논쟁을 선거패배의 원인으로만 볼 것인가

김석수 칼럼니스트 | 입력 : 2023/11/1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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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수 칼럼니스트.     ©

[동아경제신문] 국민의힘이 지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졌을 때 나온 패인 분석에  홍범도 논쟁이 있다. 대통령의 이념대결론과 맞물려 구냉전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냐는 국민이 많았다고 한다. 드러난 현상만 보면 이념대결론과 홍범도 논쟁이 많은 국민, 특히 중도국민 마음을 사지 못했다는 지적은 일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야할 것도 있다. 사실과 진실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국민이 대통령의 이념대결론과 신원식 장관의 홍범도 논쟁을 비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니다. 사실과 진실이 일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같은 시간불일치는 국민의 생각관성과 관계있다. 

 

우리는 구냉전과 탈냉전에 이어 나온 신냉전시대를 살고 있다. 이미 미·중 간 공급망 문제 등 경제문제와, 대만과 남중국해 영유권문제 등 안보문제로 신냉전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민은 비로소 신냉전을 실감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구냉전 대결구도인 이념뿐 아니라 종교역사와 얽힌 신냉전의 다양함도 느끼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응원하는 심리적 3차대전이 일어나고 있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신냉전을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국민은 탈냉전시절 관성에 젖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의 홍범도 유해모시기는 사실 구냉전식 정치공작 냄새가 진하게 난다. 당시에도 나는 홍범도장군 유해는 북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그의 고향이 북한이고 활동도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 더구나 연합국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독립군부대가 꺽여 뿔뿔이 흩어진 자유시참변에서 홍범도의 행적은 독립운동가로서도 평가하기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다.

 

드골의 자유프랑스군은 1만5000명에서 출발해 전쟁 전후 처리과정에서 연합국 대접을 받았다. 일제 항복 당시 우리 광복군은 겨우 500여명 수준으로서 한 나라의 독자 무력이라고 보기에 민망했다. 그 결과 임시정부 김구 주석 등이 개인자격 귀국이란 치욕을 겪었다. 그리고 미소공동위원회 결렬과 분단과 전쟁은 우리가 아는 바다.

 

만일 1년간 이어진 3.1운동으로 독립운동 기운이 펄펄 넘쳐나던 1921년에 자유시 참변이 없었다면, 우리도 연합국 일원이었던 자유프랑스군처럼 규모있는 무력부대를 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시 참변으로 그 흐름이 꺽였고 이후 독립군은 러시아 적군과 중공군 등으로 편입되면서 사라졌다.

 

홍범도는 자유시 참변에서 진압당한 상해파 고려공산당 부대원을 재판하는 3인의 재판위원으로 활동했다. 일단의 독립군을 궤멸한 레닌의 적군편에 확실히 가담했다는 증표다.

 

일부에선 박정희 정권마저 독립훈장을 준 홍범도장군을 비하해도 되느냐고 하지만, 그건 구냉전이 해체되어 홍범도 행적이 드러나기 전 일이다. 봉오동 전투 영웅으로만 알려진 홍범도장군이었기에 당시 정부가 훈장을 준 것이지, 역사평가가 온전히 끝나서 준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흔하다. 정확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치러진 행사를 움직일 수 없는 사실과 진실이라고 보는 것은 역사를 모르는 소리다.     

 

문재인 정권은 일종의 역사알박기로 대한민국사회에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왔다. 홍범도 유해송환이란 공작을 통해 일부 좌파의 역사관을 전국민의 역사관으로 만들려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때마침 만들어진 영화 ‘봉오동’ ‘암살’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 등도 좌파 역사관이란 한쪽만의 사관을 전국민에게 주입하기 위한 밑재료로 쓰였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10대 경제강국으로서 세계화시대를 개척해가는 마당에 편협한 반일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일련의 문화공작(?)에 이은 정치공작냄새가 홍범도 유해송환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공산집단과 대적해 싸울 군간부 양성하는 육사교정에 ‘떠억’하니 홍범도 동상을 만드는 기정사실화전략도 이어갔다.  

 

말하자면 문재인 정권이 홍범도 유해송환도발이 문제의 출발이다. 북한 공산군 침략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지금도 핵무기로 협박당하는 대한민국에 문재인 정권이 공산주의자 홍범도 유해송환과 육사교정 흉상건립 등으로 먼저 도발했다.

 

신원식 국방장관 등은 그 도발에 자유주의 대한민국으로 정상회복을 위해 대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홍범도의 독립운동경력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레닌의 적군편에 가담한 이의 흉상을 공산집단으로부터 국민을 지켜낼 군간부 양성소인 육사교정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만 지적한 것이다. 

 

문제는 국민 상당수가 아직은 지나간 탈냉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은 이미 닥친 신냉전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체질이 미처 갖춰지지 못한 상태라는 시간차가 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너무 빨리 온 역사인을 보게 된다. 시류에 적당히 몸을 싣고 출세하며 안온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환경경보기 귀뚜라미처럼 새로운 시대 징후를 먼저 말했다가 여론의 도마위에 올라간 이들이다.

 

갈릴레이가 주장한 지동설은 당시 교회와 대중에게 부정당한 ‘사실’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 그의 ‘진실’은 증명되었다. 그 진실은 대중이 증명된 사실을 알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즉 사실과 진실사이에는 흔히 시간차가 나는 것이 역사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신냉전 이념대결론과, 문재인 정권이 육사교정에 홍범도 흉상설치라는 도발에 대한 신원식 장관의 대응은 대중이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진실 성격이 강하다.   

 

또 여기에는 눈치없이 선거공학과 전혀 관계없는 푯대세우기라는 점도 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눈치없는 말을 했다는 비평가들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갈릴레이가 눈치도 없이 중세교회 심기를 건드리는 진실을 말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신냉전이란 새 질서에서, 과거 탈냉전 체질이 남아있는 국민생각이 나가야 할 방향을 새로 제시하는 푯대세우는 일을 위해 정치 불이익도 감내하겠다는 것과, 당장의 정치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해 침묵을 택하는 것은 각자 선택할 일이다. 그러나 국민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정치인이라면 개인의 정치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부산포로 진격하기에는 군세가 약한 조선 수군이 궤멸당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왕의 명령도 거부하고 감옥살이를 택한 이순신의 결기를 우리는 비난하지 않는다. 부산포로 진격하려던 원균의 조선 수군이 칠전량에서 궤멸당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 지지자들이 거세게 반대한 제주해군기지건설과 한미FTA를 밀어부친 노무현을 국민은 정파를 초월한 전국민의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과거 이야기만 알고자 함이 아니다. 역사는 진실과 사실 사이에 시간 차가 있다는 점을 알기 위함이다. 그런 역사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와도 대화하며 살아있다는 에드워드 핼리트(E.H) 카의 말을 새겨봤으면 한다.

 

/김석수 칼럼니스트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본 기사 보기:동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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