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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고려 윤관 장군의 ‘척경입비(拓境立碑)’는 함흥이 아닌 두만강 북쪽 선춘령에 있었다.

“척경입비”는 함흥평야가 아닌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었음을...

플러스코리아 | 기사입력 2009/09/15 [16:25]

[단독]고려 윤관 장군의 ‘척경입비(拓境立碑)’는 함흥이 아닌 두만강 북쪽 선춘령에 있었다.

“척경입비”는 함흥평야가 아닌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었음을...

플러스코리아 | 입력 : 2009/09/15 [16:25]



▲ [지도] 북관유적도에 소개된 ‘척경입비도(拓境立碑圖)’'. 캡쳐사진   © 플러스코리아


 
[왜곡되어진 역사] 최근 KBS공영방송에서 고려 윤관 장군 관련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방영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북관유적도에 소개된 '척경입비도(拓境立碑圖)'를 소개한 것인데, 주요내용은 “고려 예종 2년(AD1107년) 평장사 윤관(尹瓘) 등이 17만 군사를 이끌고 여진을 물리친 뒤, 그곳에 6성을 쌓고 선춘령(先春嶺)에 '고려지경(高麗之境)' 네 글자가 새겨진 비를 세워 국계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북관유적도에 소개된 “척경입비도(拓境立碑圖)”를 보면 윤관장군이 공험진에 비를 세웠는데 종성에서 700리라 기록하고 있다.

 


▲ [지도] 현재 초등학교 사회과부도에 표시된 윤관 9성     © 플러스코리아

 
이와관련 현재 초등학교 사회과부도를 보면 함흥평야에 윤관 장군이 9성을 쌓았다고 표시하고 있어, 이제까지 함흥평야에 “척경입비”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국회도'라는 고지도를 보면 윤관 장군이 비를 세웠다는 공험진이 두만강 북쪽으로 나오는데, 종성에서 두만강 북쪽으로 가면 공험진이 있고 동쪽에 선춘령이 있는 것으로 표시하고 있다. 윤관 9성의 위치가 함흥평야가 아니라 두만강 북쪽에 있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 [지도] 조선국회도     © 플러스코리아

▲ 조선국회도에 나오는 종성, 공험진, 선춘령   ©플러스코리아



이뿐만이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 61-77(고지도) 및 규장각 소장 고 4709-89-2(고지도)에 의하면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선춘령의 위치가 흥개호 남단에 그려져 있다.

▲ [지도] 중앙도서관 소장 한 61-77(고지도)     © 플러스코리아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해 볼때, 윤관 장군이 세운 “척경입비”는 함흥평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굳이 지도를 정정한다면 아래지도와 같이 수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맞다면 자국의 영토내를 종단하는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도 허구가 될 수 밖에 없다.
 
▲ 동북 9성의 바른 위치 추정도     ©플러스코리아



올바른 “척경입비(拓境立)”의 현재 위치를 찾고 그 비석도 발견하여 증빙이 된다면, 교과서가 정정되어 올바른 역사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거짓된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

 
실제 역사 09/10/21 [01:41] 수정 삭제  
  여진족 = 금 = 청의 실제 영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일대입니다. 거란족 = 요의 실제 영역은 여진의 서쪽이며 독일이 그 중심강역입니다. 몽골족의 실제 분포도는 모스크바 북쪽에서 볼가강(살수)을 따라 코카사스 지방까지입니다. 나머지의 모두는 황제 고려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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