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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민족의 위대함 첫발 내디딘 ‘남북정상회담’

‘안녕소사이어티 대표’

안영노 | 기사입력 2018/04/29 [23:15]

[특별기고] 한민족의 위대함 첫발 내디딘 ‘남북정상회담’

‘안녕소사이어티 대표’

안영노 | 입력 : 2018/04/29 [23:15]

며칠이라도 감격하고 기뻐하며 지내는 여유

곡학아세와도 같은 정치논리 철저히 경계를

생명 귀하고 평화가 중하고 안녕이 요하다

 

 

마침내 만났다는 것이다.

 

안녕소사이어티 대표  

어떤 수많은 해석을 달아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번에 벌어진 남북정상회담에는 걷다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민족의 위대함이 배어 있다. 이번 일로 장미 빛 앞날을 낙관할 수는 없다. 앞길에 크고 작은 실망들이 또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 이후에 대해 냉철하게 바라보는 일을 며칠간이라도 미루자. 어제오늘만이라도 있는 그대로 민족의 화합에 대한 기대로 흥분해보자. 며칠이라도 냉철함을 잊고 감격하고 기뻐하면서 지내는 여유를 우리들에게 줄 만하다.

 

어떤 많은 칭송을 한다 해도 이번에 벌어진 남북정상회담은 만났다는 자체에 의의가 있다. 다른 여러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쪽은 마침내 만났다는 것이다. 서로 만났다는 데 대부분의 핏줄이 기뻐했으며, 어찌되었든 양쪽이라 부르는 것이 사실은 하나였다는 점을 상기했다.

 

국제정치가 계속 양쪽을 갈라놓을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우리가 이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을지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회담 이후를 분석을 하기 전에 우리가 걸어온 이전을 되돌아보자.

 

적어도 우리는 잔인한 정치사의 혼란 속에서도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열망하고 계속 노력해왔다. 그동안 분단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좌절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동안 우리 민족이 멈추지 않고 줄곧 시도해왔음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앞으로도 꾸준히 해낼 것이기 때문이 우리는 위대하다. 지금으로서는 될지 안 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열망하고 애쓸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가 위대하다. 결국 굴하지 않고 해낸 날, 물론 우리는 그날 조금 더 분명하게 위대해질 뿐이다. 정말 우리가 위대한 것은 지금도 끈기 있게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우리를 감동하게 만들고 이 며칠간을 기쁘고 들뜨게 만드는 것이다. 월드컵응원과 촛불집회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축제처럼 받아들인다. 그것은 굴하지 않고 꾸준히 해내고 있는 자신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남북정상회담이 아니라 우리의 끈기에 감동하고 있다. 의지를 갖고 실행한 대통령과 정부가 아니라 계속 넘어지고 또 일어나면서 마침내 또 한발을 나간 우리 역사의 위대함에 기쁜 것이다.

 

이 감동은 화해의 정치와 통일외교 때문이 아니다. 시민들 하나하나가 직접 모니터를 보면서 참여하는 일로 보기 때문에 축제처럼 여겨 들뜨는 것이다. 자신들 하나하나가 응원을 하고 촛불을 들었던 때처럼, 시민 스스로, 서로, 함께 만들어낸 일로 여겨서 박수치고 환호했다. 민족 모두가 해낸 일이라 잔치인 것이다.

 

회의와 냉소도 있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회의와 냉소도 있다. 이후의 진척에 대한 우려, 순항에 대한 염려도 있다. 하지만 뭣이 중헌디. 만났다는 것이 중하고, 다시 한발 나갔다는 것이 중하다. 뭣이 중헌디. 평화가 온다는 것이 중요하다. 통일이든 한발 다가가는 것이든, 평화의 마음이 깃든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조금 더 안녕을 찾을 것이다. 조금 더 다른 이에 대해 관용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조금 더 공존해야만 할 이유들에 대해 망각했었던 점을 떠올릴 것이다. 조금 더 상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직관적으로 깨달을 것이다. 그것이 중하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역사적인 잔치를 마음대로 이용하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시민들은 마음껏 기뻐하자.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하자. 정치인들을 배불리는 분석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을 조금 내려놓되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자. 우리가 분단의 문제에 있어 행복해질 권리가 있음을 상기하자.

 

하나의 민족이라고 정했던 사람들이 하나의 땅에서 사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갖자. 그리고 혹세무민의 히스테리를 믿지 말자. 사람들을 사로잡아온 레드 콤플렉스를 넘어서자. 북한의 백성들은 적이 아니다. 시민들은 분단을 공고히 하면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열강과 양쪽의 기득권 정치를 문제 삼아야 한다.

 

그 대신 백성과 시민이 만나는 것이 왜 나쁜지 똑바로 질문해야 한다. 그러니 곡학아세와도 같은 정치논리로 경계하자. 사람들을 사로잡는 신경증을 넘어 자연스럽게 나라가 합쳐지는 꿈을 말할 수 있도록 만들자. 겨레가 함께 사는 통일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하자.

 

스스로를 칭찬할 만하다.

 

우리가 큰 욕심을 내었던 적이 없다. 그러니 어떤 논리와 분석도 떼어내고, 오늘 이후를 불안해하지 말고, 앞날이 꽃길이 아닐 것임을 염려하지 말고, 그저 꿈을 마저 꾸고 회담의 기쁨을 누리고 감동을 더 즐기자.

 

우리가 욕심을 내었을까. 우리는 통일이 아니라 남북의 화해를 꿈꾸는 것이고, 남북의 화해 이전에 전쟁의 종식에 뜻을 둔 것이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관계의 회복을 꾀한 것이고, 관계의 회복을 위해 회담을 비롯한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욕심을 냈다한들 누가 우리에게 과했다 말할 것인가. 우리는 못 꾸었던 꿈을 꾸는 것일 따름이다. 우리 시민들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염원에 한발 다가간 성취감을 느끼고 만끽하려는 것이다. 욕심을 내고 꿈을 꿀 자격이 있다.

 

시민들은 어떤 정치인들이 어떤 곡해를 하더라도 남북이 서로 만나는 것이 옳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안다. 이 만남에 대해 지혜로운 시민들이 성숙한 지지를 했고, 그러한 지원 덕분에 성사된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이것을 놓고 시민들은 스스로를 칭찬할 만하다. 대통령과 정부가 해낸 업적이 아니라 우리들 전부가 해낸 실천에 대해, 서로를 쳐다보며 대견해하고 감격할 만하다. 우리는 감동을 즐길 자격이 있다.

 

우리 꿈이 아무리 커도 지구의 평화를 넘겠는가. 우리 꿈은 커봐야 세계 평화일 따름이다.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라도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을, 우리만 바라는 것이 아니다. 세계 시민은 누구라도 인륜에 따라 그리 기원할 것이다.

 

이러한 평화 대신 전쟁과 갈등, 혼란과 긴장을 유지하려는 그 누구라도 인류의 적이라는 분명하고도 간단한 사실로 돌아가볼 수 있었던 며칠이다. 우리가 해내는 이 한발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 지금의 DMZ가 그 상징이 되기를 꿈꾸는 것, 우리 꿈이 많아야 그 정도인데, 욕심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 꿈이 얼마나 작든 우리의 안녕에 머물까. 우리 꿈은 적어도 인류의 안녕 정도는 그릴 것이다. 우리의 안녕을 추구할 충분한 자격이, 우리에게는 있다. 우리는 열강의 이해 속에 이뤄진 분단의 아픔을 겪었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추구했다.

 

그러니 자격이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도전할 것은 인류를 위한 일이다. 원자폭탄이 터지고 원자력발전소가 터져 피폭된 나라 못지않게 어두운 교훈을 가진 우리 땅은 생명의 존엄함을 이야기해주는 땅이다. 지금의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는 그 정도에 두어야 한다. 모든 생명이 귀하고 평화가 중하고 안녕이 요하다는 것 말이다.

 

되뇌어라, 우리가 남이가!

 

하나의 민족 공동체라는 말이 맞지 않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념적 허구라 할지라도 이것만은 중요하다. 우리가 남이가. 한 가족이든 아니든 함께 살던 이들이 원치 않게 흩어졌고 삼대를 거쳐 그 기억과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말하라, 우리가 남이가.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들어 통일 대신 통합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온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를 너무 좁게 구분하는 그 누구라도 의심해봐야 할 며칠이었다. 우리를 아주 좁게 규정하면서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하는 그 누구라도 경계하면서 되돌아보라. 그리고 되뇌어라, 우리가 남이가.

 

어쩌면 우리가 순수혈통에 집착하는 이유는 원치 않는 분단으로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분단의 콤플렉스로 하나의 겨레에 집착하는 집단 무의식이 번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충족되지 못 한 염원이 결핍이 되었으니,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당성을 강조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밖에 없었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다른 민족에게 배타적인 경향이 순수혈통의 한민족 이데올로기를 가졌기 때문이라 한들 어떤가. 이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남이가.

 

만일 분단을 종식하고 남북이 서로 왕래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사랑할 것이다. 다문화가정을 다문화가 아니라 그냥 한국인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려인과 조선족도 정말 다 같은 우리라고 여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해주와 간도, 그리고 요동과 산동의 한인들을 우리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교라고 부르는 경제공동체, 한류라고 부르는 문화공동체를 만들게 되는 시야를 획득할 것이다.

 

그러니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이 며칠간, 우리가 남이가, 하고 외치는 것이 이롭지 않을 리 없다.

 

 

프로필

안녕소사이어티 대표

소셜벤처 인큐베이터, 문화기획자

서울대공원장 역임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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