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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이든ㆍ기시다 '사꾸라 밀약'은 제2 가쓰라ㆍ태프트 밀약?

정홍규 신부 | 기사입력 2024/04/21 [17:02]

[칼럼] 바이든ㆍ기시다 '사꾸라 밀약'은 제2 가쓰라ㆍ태프트 밀약?

정홍규 신부 | 입력 : 2024/04/21 [17:02]

▲ 정홍규 신부



 [원제: 사꾸라 밀약]

 

 

▲ 한국 고유종 왕벚나무꽃



작년 봄 벚꽃 엔딩 시기에 미대통령 바이든과 일수상 기시다는 백악관에서 왕벚나무를 심었다고 언론들이 보도하였다. 또 올해 4월 9일 왕벚나무가 필 무렵에서 이네들은 필리핀 독재가 가문의 아들 페르디난디스 대통령까지 하이트 하우스에 끌어들여 왕벚나무 그림을 질 바이든 부인이 유코 부인에게 선물하였다고 하는데 무슨 함의가 있지 않을까하는데, 과거 카쓰라 – 태프트 밀약(1905년 7월)같은 음모가 생각나게 하는 사꾸라 밀약이 떠올랐다. 2 중대가 된 그 자리에 한국 대통령은 왜 호출하지 않았을까? 반복되는 역사의 패턴은 무엇을 오늘날 의미하는가.

 

우선 들어가기전에 단언하지만 일본에는 왕벚나무 자체가 없다. 일본산 왕벚나무는 단 한 그루도 존재하지 않는다. 왕벚나무의 짝퉁인 소메이요시노사꾸라는 어디서 나왔을까? 오시마자쿠라와 에도히간의 잡종이라고 하지만 오리진은 그네들은 모른다. 혹은 수수께기라고 끝을 흐린다.

 

일본근성으로는 싸움은 그네들이 먼저 걸어놓고 아직도 목하 뿌리찾기중이라고 한다. 그러면 근본이나 족보가 애매모호한 그 나무는 왕벚나무가 아니라 소메이요시노사꾸라이다. 작년 이맘때 프랑스 르몽드 주간지에서 아사히 신문을 인용하여 소메이요시노사꾸라의 기원은 아직도 수수께기 베일이라고 하였다. 왕벚나무와 소메이요시노의 사꾸라 부모의 오리진이 근본적으로 호적상 다른데 지금까지 학명을 (Prunus Edoensis Matsmu.) 어느 것이나 한 세기 넘어 사용했으니 식물학자들이 입이 천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온리원이자 넘버원인 왕벚나무가 친일파로 몰린 적도 있었지만 이제 원산지 게임은 끝이 났지만 끝났다고 끝이 난 것이 아니고 문제는 한반도에 사꾸라 천국이라는 사실이다. 

 

“일본 왕벚나무 ”라는 말도 생까는 말이다. 제발 언론에서 무식하게 일본 왕벚나무 운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본 왕벚나무”는 근본 자체가 없다. 있다면 소메요시노사꾸라이다, 왕벚나무는 우리 한국에만 고유한 유전자가 온리원으로 넘버원으로 현존할 뿐 아니라 자생지도 있고 나무의 역사성이 있다.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최초를 발견한 사람도 있고 왕벚나무에 이름에 찾아 준 사람이 있다.

 

▲ 왕벚나무 짝퉁 소메이 요시노 사꾸라



일본은 왜 없는가?

 

모든 소메이요시노는 한 그루의 모수 즉 엄마나무에서 클론 즉 복제내지는 교배를 했기 때문이다. 어디 토종에서 교배를 했을까? 섬에서 현해탄을 건너 육지로 갔을까? 아니면 육지에서 섬으로 갔을까? 섬에서 육지로 간 소메이요시노사꾸라는 미국으로는 선물로 또는 한국으로는 식민주의의 장치로 이중잣대로  역사의 악연이 되었다. 일본의 근성은 강한 놈에게는 숙이고(우정의 선물) 약자에게는 고개를 처 든다(침략의 징표). 이번 정상회담에서 분명해진 것은 일본의 미국의 1중대라는 확인이다.

 

한반도의 유닉하고 넘버원인 왕벚나무 고유한 유전자가 육지에서 섬으로 건너가 다른 종으로 재배되고 원예되고 복제되고 클론으로 이데올로기 국수주의로 물들게 되었다. 경주도 그렇고 진해도 그렇고 여의도 국회 뒤길에서 전군대로도 그렇고 여의도도 사꾸라 세상이 되고 말았다. 왕벚나무의 짝퉁인 소메이요시노사꾸라가 주권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은 오로지 무궁화! 오로지 사꾸라 취향은 왜 정반대였나. 경주의 사꾸라도 박대통령이 보문단지를 개발하라고 지시한 198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면, 야마무로 신이치는 러일전쟁의 세기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라는 두 번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조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싸운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삼기 위한 두 전쟁이었다. 그 때문에 명분을 쌓아서 1905년 7월 일본 총리 가쓰라 수상은 미국특사 윌리엄 테프트를 동경에서 만나서 일본의 조선지배를, 미국은 필리핀 지배를 서로 장군멍군하면서 인정해준  장본인들이다. 밀약 100일 뒤에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한국사는 을사보호조양) 즉, 한국 사망 진단서에 날인하였다.

 

가쓰라ㆍ태프트 밀약에 이어서 8월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의 한국 지배권을 승인하였고 미국은 눈을 감아 주었다. 일본과 미국은 한 통속이었다. 미국 제 27대 대통령으로 윌리엄 테프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1909년 그 부인이 일본에 소메이요시노사꾸라를 요청하여 지금의 포토멕 강변에 심었다. 일본은 다시 1912년 소메이요시노 6천 그루를 다시 미국에 보냈다. 가쓰라 – 태프트 밀약은 여전히 사꾸라처럼 재생되고 다시 리필되어 백악관에서 피고 있다.이번에 일본은 자위대를 확대하고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여전히 우기고 교과서는 한일병합을 합법적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사꾸라의 이중적 비밀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이번 백악관에서 소메이요시노의 선물은 100년전의 우정의 선물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 그러면 우리의 왕벚나무 주권도 주권이지만 또 다시 밀약으로 이 날에 목놓아 크게 다시 울지 않기를 눈을 떠야 한다.

 

정홍규 신부 주요약력

ㆍ대구대교구 원로사제

ㆍ커뮤니티와 경제 이사장

ㆍ문학박사

ㅡ저서: 식물 십자군. 에밀 타게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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