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이하천 소설가] "동학만이 답이다!" -(2)

ㅡ학문과 난(동학난)에 갇혀 있는 동학을 천도의 영역으로 탈출시켜야 한다

이하천 소설가 | 기사입력 2020/11/18 [11:42]

[이하천 소설가] "동학만이 답이다!" -(2)

ㅡ학문과 난(동학난)에 갇혀 있는 동학을 천도의 영역으로 탈출시켜야 한다
이하천 소설가 | 입력 : 2020/11/18 [11:42]

 

▲ 이하천 소설가  © 플러스코리아

나의 모든 글의 초점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한국인만 가지고 있는 한이라는 심리적 병을 없애는데 있다. 또 하루 38명씩 자살하는 그 숫자를 낮추는데 있다. 30대 중반부터 나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걸었다. 그 결과 우리사회가 종교와 인문학을 잘못 다루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게 누구의 잘못인가? 그것은 이 땅의 기득권 즉 강자들의 잘못이다. 강자가 강자인 것은 강자답기 때문에 강자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강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강자들이 공적정신이 아닌 사적정신으로 움직였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 글의 모든 방향은 강자들에게 내미는 잣대다. 이걸 넘어라. 그래야 정신적인 사기꾼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일반인들에게는 당신들이 한국인으로 태어나 살아오면서 한스러운 고통을 느꼈다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동학의 심리적 무늬

동학연구가 윤석산에 기대면서 부분적으로 동학이해를 시도해 보기로 하자. (윤석산 주해, 동학경전. 동학사, 2009. 8, 10, 11)

 

수운 최제우는 경신년(1860) 4월 초 닷새 날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하게 된다. 그 종교체험을 통해 ‘나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吾心卽汝心)’이라는 심법을 하느님으로부터 대화를 통해 받게 되고, 하느님이라는 궁극적 존재가 결코 다른 초월된 공간에 계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모시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 내가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를 자신의 중심사상에 놓게 된다. 시천주를 근간으로 하는 수운 최제우의 가르침에는, 여타의 기성종교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천당이나 지옥이 다른 차원의 공간이나 세계에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하느님 모심’을 마음으로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에 따라 그 삶이 천당도 되고 지옥도 된다는 것이 그 요체다. 아울러 하느님이라는 신은 어디 먼 초월적인 공간에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 모셔져 있으며, 동시에 이 우주에 편만(遍滿)되어 있다는 것이 수운 최제우의 가르침이 된다.

 

수운 최제우는 당시 무너지고 있던 조선조의 전통질서와 동양을 침범하던 서양의 근대적 질서를 동시에 비판하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신념체계(信念體系)’로서의 동학이라는 가르침을 세상에 폈던 것이다. 동학이라는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안으로 붕괴되고 있는 질서와 밖으로부터 조여 오는 외세의 침략을 매우 주체적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체계를 이룩하려했던, 우리의 역사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자생적(自生的) 근대’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학은 안으로는 조선조의 봉건적인 질서와 충돌을 하게 되고, 밖으로는 서구의 침략과도 충돌을 하는, 매우 지난한 고통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가 하면, 마침내는 조선조 사회가 지니고 있던 봉건성과 서구열강의 침략이라는 탄압과 무력에 의하여 수많은 교도들이 순도(殉道)를 하게 되고, 그 붕괴의 위기까지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동학이 지닌 자생적 근대에의 열망을 받아들이지 못한 조선조 사회, 나아가 동양사회는 더욱 가중되는 혼란과 붕괴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서구열강에 의하여 오랜 동안 침탈을 당하는 뼈아픈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수운 최제우와 여러 제자들이 용담에서 체포된 것은 계해년 1210일이다. 동학이라는 가르침을 편 지 불과 3년이 되지 않아, 그 가르침은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마침내는 관아 지목과 함께 조정에 체포되는 사태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체포된 수운은 경주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가던 중, 과천에 이르러 당시 임금인 철종이 승하를 하게 되고, 국상(國喪)이 벌어졌으므로 모든 죄인은 본부 감영으로 다시 회송하라는 전갈과 함께 차가운 겨울 길을 되돌려 대구 감영에 갇히게 된다. 그 때 최시형이 수운에게 탈옥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말했으나 수운은 듣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이곳 대구 감영에서 두 달 여의 국문을 받고, 다음 해인 갑자년(1864) 310일 대구 장대인 관덕당(觀德堂)에서 좌도난정(左道)의 죄명을 쓰고 참형을 당하게 된다. 도를 지키기 위하여 순순히 체포의 오라를 받은 것이요, 천명(天命)을 지키기 위하여 참형의 현장으로 스스로 올라가 순도(殉道)의 길을 간 것이다. 수운  향년 41, 세상에 도를 편 지 불과 3년이 되지 못한 시점이다.

 

서양언어와 한국인의 혼(심리)과의 충돌

나는 독자 여러분이 동학경전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주해자 윤석산, 그의 깨끗하고 맑은 에너지에 탄복한다. 도올 김용옥이 우리 민족의 바이블이라고 말한 동학경전은 수운의 가르침의 본질이 수심정기(守心正氣)와 같은 인간내면의 문제를 말하는 것임을 드러내 보인다. 그것은 내가 수십 년 간 한국인의 헝크러진 마음의 무늬를 극복하기 위해 인문학을 도입해서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과 같은 결론이다. 나는 심리학적으로 추적했고 심리학이 없던 당시의 수운은 도의 세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 결론의 중심은 언제나 나였다. 나의 심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지금 수운 최제우는 그 말을 하고 있다. 나 자신의 깨어남만이 우주의 근간을 해석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좋은 도의 세계를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나라 역사를 가지고 우리의 혼을 달랬으니, 그렇게 극성스러운 언어와 한탄을 쏟아내며 결국 은혜 받았다고 천박하게 두 팔을 벌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또 창피하게 간증한다고 난리들을 한다.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그런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장된 자아의 극단적 불안심리를 보게 된다. 어쨌거나 그런 심리도 가부장적인 정신적 틀에서 EQ의 부재로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었는데, 그런 한국인들이 마음을 의탁할 민족종교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걸 해석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인문학이 없었다는 것, 겨우 한다는 게 실제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는 인습의 쓰레기더미는 무시하고 외면하고 깔고 앉기도 하고 거기에 더하여 비밀의 방에 땅땅 못질을 해서 열지 못 하도록 만들어 놓고, 서양사회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해 놓은 고매한 학문의 언어만 수입하여 풀어먹인 것, 그것은 분명 우리들의 실력이다. 

 

▲ 서구종교가 서로 나누어 가진 조선반도-한반도 영역

1. 호주 장로교(Canadian Presbyterian):함경도 지역, 원산 함흥,성진, 후에 간도

2. 미국 북장로교(Northern Preabyterian, U.S.A.):서울, 황해도, 평안도, 경북 일대, 초기에는 부산도 포함하였으나 후에 호주 장로교에 이양. 그들의 선교거점(Mission Station)은 남쪽으로부터 대구, 안동, 청주, 서울, 재령, 평양, 선천, 강계의 8지역.

3. 미국 북감리교(Meth. Epis. Church, U.S.A):서울, 충청, 강원 남부, 평안도의 평양, 영변

4. 미국 남감리교(Meth. Epis. Church South, U.S.A):개성, 강원 북부, 경기 북부, 황해도 남부

5. 미국 남장로교(Southern Presbyterian, U.S.A):처음 북장로교와의 협의를 통해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뒤에 이 지역이 너무 넓다고 하여 충청도 지역을 북감리교에 넘기고 호남지역만을 확보하였다. 선교 거점으로는 전주, 군산, 목포, 광주, 순천 등이었다. 이 지역에는 아직도 남장로교 계통 선교사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6. 호주 장로교(Austrailian Presbyterian):1889년 데이비스 선교사가 도착했는데, 그 후 그는 300 마일에 이르는 선교여행을 하였다. 1890년 데이비스 목사가 순교한 부산을 중심으로 호주 장로교는 마산, 진주, 거창, 통영 등의 경남 일원을 선교 지역으로 삼았다.   © 이하천 소설가



 종교와 인문학

이 두 분야에 대해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야할 게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설명을 해야겠다. , 서양사회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자. 서양사회는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선과 악에 대한 이해가 우리사회 보다 깊다. (긍정성)과 악(부정성)을 조절하고 화해하고 충돌하면서 어느 정도 적정선을 이루어냈고 그래서 결국 선진국이 된 것이다.

 

서양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을 때 종교와 더불어 인문학을 같은 크기로 발전시켜왔다. 그 과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종교의 힘을 조절해냈다. 말하자면 인문학과 종교라는 거대한 두 개의 산봉우리로 인간의 심리를 다루어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을 하느님께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사회는 서양은 이미 다 해결되고 없는 독특한 인습이 아직도 있고 그 인습은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에 잣대가 가 있지 않고 무엇이 이익이냐 아니냐에 잣대를 놓고 운영되었다. 그러나 그 인습은 하늘의 원리를 위배했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에 쓰레기더미를 쌓아놓는 역할을 했다. 극심한 가부장제의 폐단으로 나타난 강자의 논리, 내로남불, 진영논리, 왜곡된 모성성, 학연, 지연, 혈연...이런 게 다 그냥 한국인이 나빠서가 아니라 필연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심리적 적폐 그림자들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 쓰레기더미를 치우려고 학문을 했어야 하는데... 인문학을 수입해서 게으르게 어려운 말만 근사하게 하면서 그대로 사용했다. 학문을 먹고 사는 데에만 치중을 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텔레비젼 강연에 나와서 국민들 보고 마음을 바르게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들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들 바르게 살고 싶지 않나. 아닌데...억울한데...거기다 마음을 착하게 먹으라고 했다. 언어가 학문에만 머물고 실생활에서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수입학문은 한국인의 내면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수입을 하더라도 반드시 우리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해석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거다. 인습의 쓰레기더미는 깔고 앉아서 그 위에서 작동하는 수입학문은 자연히 한국인의 심리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허공에서 허공으로 떠돌아다니는 결과를 가지고 왔고. 이것은 한국인의 심리에 SUPER I REAL I를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피해는 언제나 약자들이 받게 되어 있다. 이 심각한 문제를 우리사회의 강자들은 왜 모른척 하나?

 

종교는 어떤가?  민족종교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외래종교를 접목시킨 결과 한국인의 정신은 시간이 지나도 인습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30년 전에 한국을 떠났는데 돌아와 봐도 의식은 거기 그 자리에 있더라는 표현을 쓰면서 놀랐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원인을 제공하는 틀이 변하지 않았는데 30년이 지나도 인식의 문제는 나아진 게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입된 언어를 달달달 외워서 시험이나 잘 치게 만들었으니 일류대를 나와도 거짓에 동참하는,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동참하는 가짜 인간이 될 뿐이다. 그 가짜 인간들이 화려한 외모와 화려한 학벌을 등에 업었으면서도 어떤 사건에 연루되면 마구마구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다. 우리는 최순실 사태에서 그 사례를 경악을 하며 지켜보았다. 심리적 배경은 이렇듯 엄청난 것이다. 정치권에 국민을 보고 정치하라고만 하지 말고 학계에도 국민 보고 학문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거짓으로 한국인의 심리를 다루니 약자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으며 세계 그 어디에도 없는 한이라는 심리적 병과 하루 38명씩 자살하는 나라가 되어 버린 것.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검찰개혁도 기본 심리적 틀이 바뀌지 않는 한 사람만 바뀌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공수처 설치에만 모든 총력을 기우려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제도를 조금씩 때론 획기적으로 바꾸면서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고 본다.(이공계통 학문은 다름.)

 
일본과 중국은 대부분 민족종교를 하고 아주 극소수만 외래종교를 한다. 기독교의 하느님이 특별히 한국인만 사랑해서 불 꺼진 도시의 밤하늘에 시뻘건 십자가로 뒤덮는 이런 일이 벌어졌겠나. 30대 초반, 여성들이 엉엉 울면서 교회에 엎드리다 결국 은혜 받았다고 외치는 장면을 보고 하느님이 특별히 한국여성들만 사랑할 리가 없다, 여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고 생각되었는데, 그 이유를 수십 년이 지난 이제야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이 부분도 다음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기도는 혼자 조용히 하는 것이다. 예배도 거룩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긴박한 성취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며 착취를 하려니 아주 엉뚱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부분을 도올 김용옥은  ‘신자 전체가 구원을 갈망한다(집단적), ‘구원이 지상에서 이루어진다(현세적), ‘그것이 곧 바로 실현된다(즉자적), ‘새롭게 도래되는 시대는 개선이 아니라 완벽 그 자체(전면적),  ‘초 자연적 힘에 의하여 구원은 이루어진다(기적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헝크러진 심리, 부당한 심리를 심어주려니 그렇게 주여, 주여, 할렐루야, 아멘 하며 호들갑을 떤다. 그 호들갑을 떠는 심리를 분석해 보면 서양언어와 한국인의 혼이 맞닿아 있지 않아서 뭔가 불안한데, 하느님을 믿으면 이익이 온다니까 억지로 주여, 주여를 외치니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건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김용옥은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가 초월적인 인격신에 대한 인간의 숭배와 복속을 포기 하지 않는 한, 기독교가 인간 문화 속에 전파될 때 태평천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요소가 필연적으로 도출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태평천국에서 발생한 모든 요소란 코로나19 , 그 즈음 드러난 사이비 종교들과 기독교 내부에서 일어나는 흔한 갈등구조를 말한다. 그게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적으로 봐도 그건 필연이다.

 

 동학으로 우리 젊은이들의 혼을 바로 세워야 한다. 지금 젊은이들이 돈에 집착하는 것도 자신들의 혼을 이 혼탁한 사회에서 어디에 기댈 데가 없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우리사회에 그 모습을 드러낸 사이비 종교에 엎드린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럴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기댈 곳이 있다면 저럴 수는 없는 것이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못 믿는 것이 육화되어 있다는 증거를 보는 것 같았다. 어른들이, 정치가 이렇게 공정과 정의를 깨고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라를 나라답게’ 하는 건 돈이 아니라 정신이다. 천박한 자본주의를 품위 있게 만드는 것도 정신이다.

 

▲ 경주 용담정 입구에 세워진 수운 최제우 동상  © 이하천 소설가



수운 최제우

도올 김용옥은 책에서 말한다. (김용옥, 도올심득 동경대전. 통나무, 2004)

 
수운 최제우는 모든 초자연적 힘을 전제로 하는 종교는 미신일 뿐이며, 그 미신은 결국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을 분열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병폐를 깊게 자각하고 있었다. 수운은 샤머니즘에서 신관을 빌려왔다. 수운은 그것을 ‘하느님’이라 표현했는데 그것은 조선의 민중에게 생활화 되어 있는 인격적 ‘님’이었다. 그러나 그 ‘님’은 철저히 수평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대자연의 생명이며, 음양의 조화였다. 모든 귀신도 이 음양의 조화이치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을 위압하는 존재일 수는 없다.

 

그리고 수운은 조선민중의 샤마니즘으로부터 ‘청수 한 그릇’의 제식을 빌려왔다. 최제우의 호도 수운(水雲)이라 한 것은 땅()과 하늘()을 순환하는 생명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한 생명의 보편적 흐름(周流)에 대한 경외심, 그것이 수운의 신관의 핵심이었다. 홍수전의 샤마니즘은 권위적이고 어둡고 칙칙하다. 그러나 수운의 샤마니즘은 맑고 깨끗하며 담담한 것이다.

 

20세기 조선의 역사에는 수없는 종교가 명멸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조선의 20세기 종교사의 주류는 동학이 아니면 서학이다. 이 양대 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서학을 극복한 동학의 본래 모습을 간직한 종교 운동은 거의 찾아 볼 길이 없다. 이것은 20세기 조선의 역사가 얼마나 사상적으로 공허한 시간의 흐름이었나 하는 것을 말해 주는 단적인 사례인 것이다. 일제(日帝)와 미제(美帝)라는 거대한 양대 제국주의의 마수가 조선역사의 국체와 주체를 상실케 했으며 역사의 비젼을 모두 외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사상과 종교 정치와 경제와 예술과 문화의 모든 모델이 나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뿐이었다. 이상(: 본명 金海卿, 1912-1939)은 말한다. 19세기일랑 봉쇄해 버리시오.’ 나 도올은 말한다. 20세기일랑 봉쇄해 버리시오’  주체를 상실한 자기 배반적 역사의 공백을 메운 잡다한 가치관이 21세기에 또 다시 연속되는 그러한 비극을 연출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

도올 김용옥은 동학에 대해 인문학적 관점에서 내가 추적한 것(EQ영역)을 정확히 학문적 언어(IQ영역)로 짚었다. 이제는 ‘자기 배반적 역사’의 비극을 바로 잡을 때다. 그동안 기독교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다. 생존의 차원에서 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여운 이 조선 땅을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고 하늘의 땅은 우리 것 스스로 찾아 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면 그들은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길을 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주인이 머슴에게 온갖 이익을 주고 영혼을 빼앗아 버리는 것과 같다. 이것은 한국전쟁 때 미국이 도와줬다고 우리의 땅을 차지한다면 그게 맞지 않는 것과도 같다. 땅에서 일어나는 것과 하늘의 땅에서 일어나는 것은 같은 이치다. ‘눈에 보이는 땅’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 땅’을 따로 처리한 것은 분명 우리의 실력이다. 그들의 도움이라도 받아 살아남아야 했다는 것이다.

 

이제 온통 피바다의 물결로 수놓아진 밤하늘의 시뻘건 십자가를 치워야 할 때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서양사회의 밤하늘에 우리 동학의 상징물이 저렇듯 휘황하게 번쩍이고 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기분이 어떨까를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종교는 문화이고 문화 권력에 해당되기도 한다. ‘주체를 상실한 20세기일랑 봉쇄해 버리라’는 김용옥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학자로서의 양심선언이다. 우리는 이 양심선언에 이제 귀를 기우려야 한다.

 

범부의 동학론

김범부는 창조적인 사상가였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했던 인물이었는데, 학자들은 그를 일컬어 서양의 루소나 중국의 양계초(啓超)와 같은 인물이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시인 서정주는 그를 하늘 아래 가장 밝은 머리라고 말했다. 그의 과제는 언제나 ‘한국인은 어떻게 살 때 가장 사람다운가’ 하는 것이었다. 범부는 동학의 연원이 저 고대의 풍류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풍류도가 오랜 잠복기를 거쳐 수운 최제우에 이르러 재생하게 되었다고 보았고 그것을 ‘역사의 기적적 약동’이라고 규정했다. 범부가 최대의 찬사를 사용하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경탄 속에서 우러러 보았던 역사의 사태를 그의 필치를 통해 확인해 본다.

 

국풍으로서 신도가 우리문화의 근원인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신라 건국 초기에 시조 혁거세가 신의 공덕을 입어 봉대왕국(奉戴王國)이 최초로 우리 땅에 세워졌다. 그래서 이 신도를 숭상하는 기풍이 세월을 따라 더욱 성해지고 세련되어 마침내 풍류도가 출현했다. 이것이 문화면이나 정치면에서 신라의 번영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 정신이 세운을 따라 점점 쇠미해지더니 마침내 마지막에는 ‘하느님’이란 말과 함께 낙오되어 흩어진 신앙 행태와 굿이니 도신(禱神)이니 별신(別神)이니 하는 무당패의 호구지책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수운 최제우가 나타나 ‘하느님’의 참 모습을 증언하고 강령(내림)의 위력을 새로이 천명하게 되니 실로 도를 잃은 지 천 년 만에 분명히 신도는 재생한 것이다. 이것은 정말 역사의 기적적 약동이었다. 이 역사적 대사건의 주인공인 수운 최제우는 실로 기적적 존재이며 세상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천재이다.(김범부 지음, 김정근 풀어씀, 김범부의 생각을 찾아서. 한울, 2013. 147)  

 

김범부는 다른 글에서 동학은 계시종교라는 것과 우리 무속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부분을 범부 자신의 표현에서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수운이 깨달은 진리는 일종의 계시종교(啓示宗敎)로서 유불선(儒佛仙)과는 거리가 있다. 천어(天語)를 듣는다, 강신(降神)을 한다고 하는 것이 모두 계시종교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또한 수운 자신의 표현대로 서학(西學)에서 온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우리의 신도(神道) 즉 무속(巫俗)에서 유래(由來)한 것이다.(김정근, 한 건국사상가의 초상. 선인, 2020. 185-186)

 

평사 김정근

 

김정근은 범부 연구가이다. 그는 본령인 범부연구의 일환으로 동학을 다루게 된다. 그의 글에 의존하면서 수운 최제우의 체포 모습을 보기로 하자.(김정근, 김범부의 삶을 찾아서. 선인, 2010. 116-117)

 

수운이 체포되기는 경주에서 동으로 약 20리 떨어진 형산강변이었다. 수운이 역모하다 잡혔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꾼이 장꾼처럼 모여들었다. 이때 체포된 수운은 높다란 사닥다리 한복판에 얽어 매여 두 다리는 사닥다리의 양편 큰 나무에 갈라서 묶이고 두 팔은 뒷짐을 지운 채 역시 사닥다리 중간에 꽁꽁 묶였다. 수운을 매단 사닥다리를 형상강변의 나무에 기대어 세워 두었는데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그 모양을 알 수 없었다. 철없는 아이들과 농사짓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놈 죽게 생겼네.’하며 놀리고 발길로 건드리기도 했다. 바로 직전까지 수운 최제우를 향해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말이다. (예수 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범부가 자신의 조부와 동네 노인들에게서 듣고 기억해 두었던 것이다. 범부가 구술로 전한 내용을 동학사가 김기전이 흥미 있게 들었다가 동학사료 채집 차원에서 잡지에 기사화를 해두었던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이 기사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기사는 조동일, 표영삼 등에 의해 일부가 가볍게 활용된 적이 있었을 뿐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나는 범부의 조부 동범과 수운 최제우와의 친구 관계는 후에 범부가 눈을 크게 뜨고 본격적으로 동학의 위대성을 발견해가는 과정에서 영감의 단초로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범부의 이 증언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짐작컨대 그동안에 그는 조금씩 동학의 깊은 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여겨진다. 내가 어려서 범부의 산책 길에 앞장서곤 했던 1950년대 중후반에 그가 말씀했고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이 나라 역사에서 수운 최제우가 큰 인물이다. ’한국역사에서 잘난 사람을 보려면 수운 최제우를 보라’와 같은 표현 또한 저간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시인 김지하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한울님 모시니 마음이 정해지고 영원토록 잊지 않으니 만사가 깨쳐지네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 사람이 한결같이 하늘을 모셨으니 사람 섬기기를 하늘 같이 하라. 이것은 현대 민주주의와도 그 숨결이 통한다. 사람을 중시하는 마음은 곧 국민을 중시하라는 말이다. 공무원들이 이 사실만 깨우쳐도 사실 많은 억울한 일이 줄어든다. 지금은 국민 중 강자에게 또 자신에게 더 편리하게 마음이 가 있기 때문에 한스러운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중요한 생명체라는 인식만 있어도 n번방이니, 영생과 구원으로 피범벅이 된 사이비 종교니, 교인을 훈련한다는 명목으로 인분을 먹이고 목사 자신을 60%-80% 예수를 닮았다고 하며 자신을 신으로 섬기라느니, 어린이 학대니, 가정폭력이니, 성인지감수성이니 판사와 검사가 짜고 문서를 조작해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그런 문제, 전관예우라는 관행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 주문이 한국인의 마음에 심리적 배경으로 깔려 있도록 작동만 한다면 말이다. 이것이 작동되어야 내로남불 진영논리를 훌쩍 뛰어넘어 무엇이 이익이냐 아니냐의 잣대가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의 잣대로 바뀌게 될 것이다.

 
 김지하는 민주화 투쟁 당시 감옥에 있을 때 좁은 공간에서 건강유지를 위해 제자리 뛰기 운동을 하면서 동학주문, 즉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을 외웠다고 한다. 이 시대가 낳은 민중의 소리꾼 김지하, 김삿갓을 능가하는 풍자 시인 김지하, 시인이며 사상가인 김지하. 80년 대 젊은이들이 그의 언어를 먹고 독재와의 싸움의 힘든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무조건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생명사상으로 넘어간 그에게 변절자니 그런 말은 적당하지가 않다. 그는 그의 몫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무()적인 기운으로 수운 최제우의 일생을 다룬 책 한권의 시(이 가문날에 비구름. 동광출판사,1988)에서 수운의 마지막 처형 모습을 이렇게 읊었다.

 

 아아 꽃 한 송이

 이슬처럼 지네

 매서운 눈보라 속

 철 이른 꽃 한 송이

 이슬처럼 지네

 비바람 눈보라 거듭 지나면

 영원한 봄 오리라 말씀하신 분

 오만년 후천개벽 때가 찼으니

 이 땅이 먼저리라 말씀하신 분

 사람이 한울이니 사람 섬기되

 한울같이 섬기라 말씀하신 분

 수운 수운

 우주의 꽃 한 송이

 지네 지네

 아득한 고향 돌아가네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음 없는 고향

 온 세상 꽃 피어날

 영원한 봄의 시작

 죽음이여

 수운의 죽음

 아아

 이슬처럼

 철 이른 꽃 한 송이 눈 속에 지네

 

 김지하는 민주주의 운동을 하면서 수세에 몰려 국가권력으로부터 쫓김을 당했다. 그때 위기를 느낀 그는 천주교 보호를 받았었다. 그러면서 천주교 신자가 되었지만, 그는 한 번도 동학을 놓지 않았다. 만약 그가 감옥에서 뛸 때 불교식이나 천주교식이나 기독교식 주문을 외웠다고 하면 나는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그는 왜 동학주문을 외웠을까? 그것도 역시 언어가 우리의 에너지와 맞기 때문이다. 김지하가 만약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혹은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웠다면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김지하는 동학에 미친 사람이야’ 이렇게 김정근(부산대 명예교수)은 말했다. 퍼즐이 쫙 맞는다. 김지하는 민족의 충신이고 민족의 에너지다. 이제 민족을 제 자리에 돌려놓을 때다.

▲ 1911년 日 시미즈 도운 작 <최제우 참형도>와 <최시형 참형도> . 사진=서울옥션   © 플러스코리아

결론

동학을 거국적인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부활시켜 앞으로 100년에 걸쳐서 빼앗긴 하늘땅을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하늘땅을 빼앗기고 제대로 민족이 설 수가 없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한 때는 동학을 비롯하여 민족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인구의 삼 분의 일이 되었었다. 그럼 이걸 누가 할 것인가? 이것은 국민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동안 명맥만 유지해 온 동학에서도 어디서나 접근이 쉽도록 틀을 짜야 하고, 주문도 될 수 있는 대로 아름다운 한글로 대체를 해야 국민들에게 바로 의미가 전달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언어를 바꿔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업이 시급해 보인다. 언어를 현대화 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인문학적인 언어와 동학의 개념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시천주의 개념이 심리에 자리를 잡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하고, 대학에서도 한 과목 필수과목으로 넣어서 한국인의 정신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종교가 필요한 면이 있다. 그 필요한 부분을 채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 같은 사람도 동학이 주변에 있었다면 참여했을 것이다.

 

지금 되어 있는 동학의 형태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와 해월 최시형이 앉을 아름답고 심오한 자긍심의 그릇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 민족의 자긍심을 앉힐 그릇을 만들려고 하면 언어와 형식을 현대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중간에 용담정을 방문했다. 20년만이다. 20년 전 ‘나는 제사가 싫다’를 쓸 당시였다. 그때 보았던 기억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토요일이었는데 우선 사람들이 많은데 놀랐다. 이들이 동학을 만나기 위해서 온 것일까? 나는 깊은 계곡에서 맑은 물이 철철 흐르고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맑은 정기가 감도는 천혜의 자연이 그곳에 있었다. 드디어 수운 대신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용담정에 다다랐다. 마침내 제단 앞에 앉아 있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초상화 앞에 서게 되었다. 나는 사실 그동안 예수님 앞에서도, 부처님 앞에서도 기회가 있었을 때 겉으로 경배를 했지 진심으로 무릎이 꿇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시스템화된 종교는 다 패쓰하고 천지신명을 직접 상대하기로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수운 대신사 앞에서는 그대로 무릎이 꿇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가 걸었던 그 혹독한 고행의 시간을 떠올리며 ‘이제야 찾아와서 너무너무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저절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왜 그런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을까?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은 나름 영리한 사람들을 뽑아서 미국에 유학을, 이민을 보내기도 했다. 그 당시는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는데, 몇 달의 긴 항해를 거쳐 드디어 미합중국의 대륙이 보일 때 그들은 ‘아, 저기 신의 나라가 있다! 드디어 신의 나라에 도착했다!’고 탄성을 내질렀다고 한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생각 하나? 지금도 신의 나라에 도착했다고 탄성을 내지르나? 그 당시 조선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그랬다는 것이다. 이제 제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말을 믿지 않는 건 좋다. 그러나 위에 나열한 저 시대의 천재들이 하나같이 내린 증언은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여기서 동학의 어려운 이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론은 이미 천재들이 다 해 놓았다. 가끔 동학연구회 같은 것을 본다. 동학연구는 이제 그만하고 지금은 그 어려운 언어를 어떻게 하면 민중들이 쉽게 접근해서 자신의 혼을 달랠 수 있느냐 그 길을 찾아서 떠나야 할 시점이다. 이 말은 학문적으로 난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학문과 난에 갇혀 있는 동학을 탈출시켜야 한다. 나는 저 천재들의 언어를 검토 하면서 동학이 학문과 동학농민혁명에 갇혀 있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수운 대신사가 원하는 천도의 세계로 동학을 탈출 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심리라는 게 얼마나 엄청난 지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어떤 한 사람이 어릴 때 피난민으로서 극심한 고통을 겪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면 그 한 인간은 공인이 되어도 피난민 정서를 벗어던질 수 없다. 이 말은 사적정신을 벗어나서 공적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공인이 된 사람이 이런 심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사안에 따라 그 피해가 막대하다. 이렇듯 한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심리적 현상이 동학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래서 이것은 누군가의 인식의 음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러면 이렇게 오랜 시간 동학이 거기에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갇혀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학자들은 자신의 지식자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또 학문적 언어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어렵게 써서 국민들의 접근을 본의 아니게 막았다. 말하자면 자신의 지식을 넓혀 가는데 초점을 맞추었지 어떻게 하면 민중들이 동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동학농민혁명을 띄우는 쪽에서는 나름 종교의 영역 보다 혁명의 영역에 동학을 가두는 것이 더 명분을 갖고 있었다.

-완벽하게 한국사회의 침투에 성공을 한 극성스러운 기독교를 깰 수 없다는 부정성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기독교의 협박이 두려웠을 것이다.

-우리 것은 수준을 낮게 보는 뿌리 깊은 사대주의 사상에 대한 반증일 수도 있다.

-민중이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한 독재정권과 기득권들의 음모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 자신도 모르는 인식의 음모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진지한 학자인 A교수는 1980년 대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한국인들이 어떤 경로를 따라 정신을 서양(기독교)에 팔아넘겼나’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한국에서 기독교의 반격이 두려워서 출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논문을 쓰면서 ‘이런 민족의 역적들이 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인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드러나는 진실이 너무 엄청나서 미치겠더라는 표현을 썼었다. 그 결과 귀국이 4,5년은 늦어졌다는 말도 했다.

이러는 사이 나와 같은 사람에게서 동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뺏어가 버렸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공정하게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때 동학과 민족종교를 따르는 사람이 700만에 이르렀던 역사를 우리는 갖고 있다. 그 당시로 봐서는 인구의 삼분의 일이다.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은 그 양쪽, 즉 동학혁명이나 학문으로서 동학이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깨우침의 세계로 동학이 사용되기를 원했고, 천도의 세계, 즉 종교의 세계로 사용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위해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제 동학을 동학 본연의 자리로 돌려줘야 한다. 수운 최제우가 이 역사에서 자신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길을 터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보면 젊은이들 중 세계를 정신문화로 제패할 꿈을 꾸는 것을 본다. 나는 그런 장면을 만날 때 이런 이런 싶다. 남의 나라 정신을 침범할 생각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 정신적 환경만 생각해도 너무 벅차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일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우니 느닷없이 세계로 건너뛰는 것이라고 본다. 나의 페북 사이트에 목사님들이 여러 명 들어와 있다. 그들 중 특히 눈에 뜨이는 두 사람이 있다. 모든 게 너무 똑발랐으며 에너지가 깨끗했다. 그들이 내놓는 언어에 주 예수만 빼버린다면 하자가 없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을 보며 아, 저런 사람들의 깨끗한 에너지가 동학을 위해 쓰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들의 노고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역사적인 최악의 환경 속에서 개인이 그 역사를 걷어차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쌀이 없을 때는 라면이라도 끓여서 민중들을 먹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똑바른 지도자들은 부자도 못 되고 힘든 고행길을 걸으며 한국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총 매진하였을 것이다.  

 

 인문학과 종교를 부활해 내야 하는 것은 국민정신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국가는 그동안 생존의 문제로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켰다면, 이제는 기형적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의 머리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서학으로 넘어갔다. 이제 한국의 두뇌들은 방향을 바꿔 앞으로 100년에 걸쳐 우리의 하늘 땅을 되찾아 오는데 혼신의 힘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구호를 외친 시대적 요구다. 젊은이들의 정신을 이대로, 한국인이 아닌 상태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霞天(소설가, 문화비평가)  

소설가이며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이하천 소설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