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사랑도둑] 그녀, 쇼윈도 부부 4회
그녀가 담배불을 오지랍스럽게 재떨이에 비벼 끈다. 희색 고양이 눈을 닮은 그녀가 선영을 본다.
“선영아, 사랑이란 무엇일까?”
“응?”
사랑보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잘 헤어질까를 늘 고심하던 선영에겐 느닷없는 질문이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한번이라도 고심해 보았던 적이 있던가? 선영은 탁자에 붙은 벨을 눌렀다. 주인 여자가 문을 열자 막걸리를 달라고 했다. 지혜가 그런 선영을 의아하게 바라본다.
“술 마실 줄 아니?”
“마신지 얼마 되지 않았어. 휘향이 술을 마셔보라고 권했어.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마시면 위로가 된다고. 어느덧 한 병으로 늘었어. 준형이가 욕할 때마다 한잔씩 마셨지. 술을 마시면 그 아이도 용서가 되더구나. 오늘은 너를 이해해보려고 할게. 너처럼 모든 걸 갖춰놓고도 삶의 한 귀퉁이가 무너진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 나에겐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넌 이해를 못할 거야. 세상 물정 돌아가는 것을 접하는 나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는데. 왜 내가 저런 모습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숱한 자괴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지. 난 내가 그 인간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착각을 했어. 그런데 아니었어. 정말 아니었어. 난 그 어떤 여인보다도 그에게 사랑스런 여자가 아니었어. 그는 가상 속 여자들을 사랑했어.”
지혜의 목소리가 젖어간다. 가장 허망한 것이 사랑에 속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쩜 선영보다도 자신의 삶이 더 비참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질투를 할 수 없는 상대를 사랑하는 남편이 증오스럽기만 했다.
그날은 사랑이 고팠다. 자꾸만 달아오르는 뜨거움을 견딜 수 없었다. 남편의 손길은 무심했다. 그녀의 샘은 뚜껑이 닫힌 지 5년. 그런데도 가끔 샘물은 넘쳐흘렀다. 공허하게 푸석푸석한 모래를 적실 뿐이었다.
고픈 몸을 일으켜 담배를 한 개피 꺼내들고 거실로 나왔다. 어둠속의 한줄기 빛이 남편의 서재에서 비치고 있었다. 그는 들어가면 안에서 문을 잠갔는데 빛줄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보니 문을 안으로 잠그지 않은 듯했다.
그는 무슨 성처럼 서재를 지켰다. 다른 것은 다 용납해도 서재만은 절대로 관심을 두지 말아달라는 남편의 부탁대로 한 번도 서재를 들여다보거나 몰래 들어가 보지 않았다.
“저 가느다란 한줄기 빛만큼이라도 그는 나를 안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일까?”
무심코 그녀가 말을 뱉았다.
개양귀비 꽃을 주던 날부터 피우던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담배 연기를 입안에 가득 담고 어둠속에서 웅크리고 앉았다. 푸~하고 연기를 뱉고는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달아오른 몸둥이를 남편의 냉랭한 얼굴을 생각하며 몸을 식혔다.
눈을 감으니 귀가 열렸다.
한줄기 빛줄기를 따라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무릎 걸음으로 서재쪽으로 기어갔다. 살며시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화면 속 예쁜 여자가 남편을 유혹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녀를 바라보며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 그녀의 불그스레한 유두가 그를 미치도록 절정으로 몰고 있었다. 한번도 그녀에게 보여주지 않은 정열적이고 깊고 깊은 사랑을 화면 속 그녀와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문을 열 때 약하게 나는 문소리도 듣지 못하고 화면 속 그녀에게 사랑을 다 쏟아 붓고 있었다.
지혜는 그만 문을 닫지도 못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통곡을 했다. 화면 속 그 여인보다 자신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다.
그녀는 며칠을 앓았다. 마음의 감기가 독했다. 그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화면 속 여인은 양귀비였고 자신은 개양귀비인지도 모르는 자괴감도 들었다가 그 화면 속 여인에게 질투를 느껴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자신에게 반문해보지만, 전혀 질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뒤로 그녀의 웃음이 헤퍼졌다. 그와 부부 동반으로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도 사이좋은 한쌍의 원앙새 흉내를 내면서도 그녀의 가슴은 싸늘한 얼음덩어리처럼 차가워져갔다.
그녀는 그와의 이별을 위해 하나씩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증거를 차곡차곡 만들었다. 그가 화면 속 여자와 뜨겁게 사랑을 하는 순간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고, 그가 결혼 생활의 파탄자라는 증거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챙겼다. 심지어 그가 정치를 하기 위해 벌였던 불법적인 일도 챙겨놓았다.
헤픈 그녀의 웃음을 남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며 이혼을 해달라고 하지 않는 그녀에게 고마워했다. 도의원이 되면 이혼해줄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그녀를 오히려 달랬다.
그녀는 그의 도의원 선거를 위해 열심히 도왔다.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얻기 위해 그가 하라는 대로 해주었다. 그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모든 것이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남편에 대한 복수를 헤픈 웃음 속에 감추고 있던 그녀가 남편의 선거 사무실에 가지 말아야 했다. 오로지 남편을 향한 복수 하나만을 생각하며 이 세상의 모든 남자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을 중단하지 말아야했다고 그녀는 후회했다. 아니, 어쩌면 그 일이 그녀에게 이 세상은 즐거운 소풍을 나온 곳이 아닌가 하고 또 다른 그녀로 살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르는 설레임을 선영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입이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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