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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 올바른 진짜 암 전문의들의 수난사 ( 3 )

김현철 칼럼 | 기사입력 2016/12/01 [11:46]

양심이 올바른 진짜 암 전문의들의 수난사 ( 3 )

김현철 칼럼 | 입력 : 2016/12/01 [11:46]

 

양심이 올바른 진짜 암 전문의들의 수난사 ( 3 )

 

 

 

 

"의료계에서 핍박받은 암 치유자"요, "암을 고치는 돌팔이 의사"로 알려진 헤리 학시(Harry Hoxsey/1901~1974)는 어린 나이에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손에 두 여린 손을 꼭 잡혀 오순도순 타이르는 아버지의 말에 다소곳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간 너도 내가 항암 약을 만드는 것을 보아 와서 어떻게 약을 만드는지 잘 알 것이다. 이 약으로 돈이 있는 환자는 있는 대로, 없는 환자는 없는 대로 죽어가는 암환자들을 살려야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이 약을 시기하는 의료계 고위층 사람들이 나타나 너를 괴롭힐 것이니 조심해라"고 타이르며 마지막 눈을 감았다.

 

헤리는 아버지를 보내면서 눈물을 훔칠 때 문득 언젠가 아버지가 들려주던 아버지의 젊었을 때 얘기가 생각났다.

 

옛날 네 증조부님이 수의사였다. 어느 날 말이 피부암에 걸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시고 뒷산에서 죽게 하려고 말을 끌고 가 놓아주었더니 평소에 전혀 안 먹던 풀만 찾아 다니며 허기진 듯이 연거푸 뜯어 먹기에 이상하게 생각한 증조부는 그 말을 매일 그곳으로 데려갔고 역시 말은 그 풀만 찾아 계속 뜯어먹었다. 수의사 증조부는 문득 그 풀이 항암제임을 눈치 챘다.

 

그러기를 3주가 지나자 말의 기력은 훨씬 좋아 보였고 악화일로에 있던 암 증세가 차차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1년 만에 암은 완치가 되었다. 증조부는 그 때부터 이 풀로 항암제를 만들어 사람에게 시험한 결과 백발백중 암 환자들이 회복되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렇게 해서 당대 최고의 항암제가 탄생했고 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가 대를 이어 암 약을 만들어 주변의 환자들을 살려내는 사실을 헤리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이 때 아버지의 유언이 머릿속에 각인된 헤리는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많은 유산을 늘릴 생각보다는 암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 이상 더 위대한 일은 없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이 아버지가 임종 때 한 예언대로 평생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1924년 헤리는 일리노이(Illinois) 주에 첫 번째 클리닉(Clinic)을 열었다. 전 북미주에서 암 특효약 소식을 듣고 환자들이 물밀듯 몰려오자 학시는 전 미국 17개 주에 단계적으로 암 병원을 설립했으며 마지막으로 개업한 것이 텍사스 달라스 '학시클리닉'이었으니 당대 개인 소유 암 센터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FDA 등 미국의 의료당국은 바짝 긴장하면서 지방검찰 보좌관 알 템플튼(Al Templeton)을 통해 상식 밖의 갖가지 혐의를 씌워 불과 2년 사이에 학시를 백여 차례나 체포했다. 한편, 17개 주의 연방법원 중 두 개의 법원을 비롯해서, 상원의원, 판사, 의사들까지도 이 치료법을 경험하고 이 약이 암에 크게 효과가 있음을 확신, '학시클리닉'의 치료법을 옹호했다.

 

그러던 중 템플튼 보좌관의 형 마이크가 치명적인 암에 걸렸다. 알은 비밀리에 형을 학시클리닉으로 보냈고 형 역시 이곳에서 완쾌했다. 백여 차례나 체포하는 등 학시를 괴롭히던 알은 이제 더 양심상 어쩔 수 없어 검찰보좌관직을 사직하고 드디어 학시의 변호사로 변신했다.

 

1939년 어느 날 미국의 유명한 주간지 에스콰이어(Esquire) 기자 제임스 웨이크필드 버크(James Wakefield Burke/1904~1989)는 출근하자마자 편집장으로부터 "학시클리닉을 문닫게 해야한다는 지시가 있으니 당장 취재하러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현장에 와서 보니 암 환자들 모두가 이 클리닉의 약효과에 찬사를 늘어놓으며 희망에 부풀어 있지 않은가.

 

제임스는 이 클리닉을 문 닫게 하려면 이 날 본 것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하루 일정의 취재 시간을 장장 6주일이나 늘려 심층 취재에 들어갔으나 결론은 이 클리닉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느 도시나 하나씩은 꼭 필요한 클리닉임을 알게 된 끝에 드디어 '암을 고치는 돌팔이 의사'라는 제목의 긴 르포 기사 원고를 본사에 송고했다.

 

그러나 이 장문의 기사가 전혀 보도가 되지 않자 제임스는 결국 이 기사를 책으로 발간, 학시클리닉을 전 미국에 알렸고 그 죄(?)로 제임스는 직장을 떠나야 했다. 사실을 알리는 올바른 기사가 힘있는 자들의 마음에 안 든다고 그 기자를 해고하는 오늘 날 국내 주류 언론의 못된 버르장머리야말로 바로 미국에서 배워 온 것이 아닌가.

 

드디어 AMA(미의사협회) 고위층이 이 약 제조법을 팔라고 요구했고 학시 역시 르네와 마찬가지로 "모든 환자에게 무료 제공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자 협상은 실패했다. 학시는 르네처럼 이제 거대한 적을 만든 것이다.

 

AMA의 잡지 JAMA : 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편집장 피시바인(Morris Fishbein)은 학시가 돌팔이라고 JAMA 잡지에 발표한데 이어 이 기사를 본 의사들은 학시에게 "20세기 최악의 암 돌팔이 의사"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이어 25년 간 AMA, FDA 등 의료기관은 학시를 수단방법 안 가리고 괴롭힘으로써 학시는 미국 역사상 의료당국과 가장 길고 지독한 투쟁을 벌인 투사가 되었다. 불의에 항거하는 남다른 그의 투지력과 많은 유산이 그의 끊임없는 투쟁을 뒷받침했다.

 

학시는 국립암연구소에 이 약의 효과 유무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조사비용이 많이 든다" 또 "임상기록들이 불완전하다"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핑계로 거부당했다. 돈에 구애 받지 않은 학시는 "조사비용 전액을 우리가 댈 테니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역시 거부당했다. 조사하면 자기네 거짓말이 들통나는데 비용을 대준다고 조사를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학시가 아니었지만 정의의 투사로 소문난 학시는 그렇게라도 정부 당국을 조롱하고 싶었던 것이다.

 

AMA 잡지 편집장 피시바인이 '허스트썬데이'지에 "피묻은 돈"이라는 기사로 모함하자 학시는 명예훼손으로 신문사와 피시바인을 고소, 미국 법정에서는 드물게 '큰 바위덩이'와 싸워 이긴 첫 케이스를 장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공판으로 패소한 피시바인은 편집장직을 떠나야 했다. 더욱 웃기는 일은 법정에서 학시의 증언에 따라 자신의 검은 색 피부암(Melanoma)이 학시 클리닉에서 완치되었음을 인정하고 만 쪽 팔린 사실이다.

 

그럼에도 약을 한 번도 조사해 본적이 없는 FDA는 "학시의 약이 가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방사선, 수술, 화학요법 만이 암 치료법"이라는 거짓광고 전단을 만들어 전국의 우체국의 벽에 붙였다.

 

학시가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17개 주 법정 변호사 비용으로 재정이 더 버티지 못하게 되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연방검찰은 잽싸게 17개 주의 학시클리닉을 자물통으로 폐쇄해 버렸다.

 

지칠 대로 지친 학시는 옳지 못한 정부를 상대로 한 25년의 법정 투쟁 끝에 손을 들어야 했고 그 후 미국 정부 관할 밖인 이웃 멕시코로 떠나 미국에서 하던 식으로 여러 암 전문 의사들을 거느리고 새로운 학시클리닉을 개업, 수많은 암환자들을 살리던 중 1974년, 73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나 더는 투쟁이 없는 평화스런 나라로 이주했다.

 

괴이한 일은 지금도 멕시코의 학시클리닉이 발송하는 항암제는 미국의 국경만은 넘어 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학시클리닉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많은 미국인 암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멕시코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효과에 암의 종류에 상관없이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총액 $3,500 밖에 안 드는 치료비의 매력 때문이다.

 

아직도 내 귀에는 "우리는 인체의 모든 내부 암이나 외부 피부암을 분명히 치료한다"고 법정에서 검찰을 향해 외치던 학시의 당당하고도 자신이 넘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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