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사랑도둑] 그녀, 쇼윈도 부부 3회
임서인
반절 밖에 타지 않는 담배의 불을 재떨이에 비비 끄며 그녀가 말했다.
“네 남편 정치에 관심 있다는 말 하지 않았잖아?”
선영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 도의원 출마를 하겠다는 그녀의 남편에 대해 물었다.
선영의 물음에 그녀는 물끄러미 선영을 바라보다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여인을 바라보고 있던 회색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불을 붙이지 않는 담배는 입술 틈 사이에서 절박한 듯 파르르 떨었다. 떨고 있는 담배를 입술에서 빼내어 두 손가락 사이에 끼고 멀뚱히 보다가 회색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회색 고양이를 향해 옅은 미소를 날렸다. 회색고양이가 꼬리를 움칠거렸다. 그녀의 눈과 회색 고양이의 눈이 한동안 허공에서 부딪혔지만 회색 고양이가 눈을 피하고 말았다. 그녀의 표독한 눈빛에 회색 고양이는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혜야, 사실은…….”
“그놈의 인간 날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다.”
앗차, 선영은 말꼬리를 자른 그녀에게 말머리를 넘긴 것을 후회했다. 그녀가 회색 고양이를 쏘아보고 있을 때 앗차 싶었으나 어쩔 수 없는 마음에 선영은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성큼 흰 덩어리 하나를 건져 내 입으로 가져갔다. 부드러운 것이 혀에 스스로 허물어져 갔다. 감각이 귀 쪽으로 몰려 있어 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 인간, 내가 양귀비인줄 알았단다. 개양귀비라고 하더라.”
그녀는 입에서 빼낸 담배를 만지작만지작 하더니 다시 입에 물었다. 불을 당겼다. 파닥하고 소형 라이터의 파열음이 하얀 몸뚱이를 점령한다.
“개양귀비? 그런 꽃이 있었어? 양귀비는 들어보았어도…….”
“줄기에 잔털이 없으면 양귀비이고 있으면 개양귀비 꽃이야. 그 인간이 개양귀비 꽃을 선물로 주지 않았겠니?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개양귀비꽃말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앞에 개자가 붙은 접미사의 의미도 한번 생각해 보라잖니. 개나리, 개살구, 개연꽃 등 개가 붙어있는 식물이 많더라. 접두사 개가 꽃이나 열매 이름에 붙으면 야생이거나, 짝이 되는 본래의 식물보다 질이 떨어지거나, 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개나리는 들에 저절로 피어나는 나리를 가리키고, 개연꽃은 연꽃만큼 탐스러운 꽃을 피우지 못해서 개연꽃이고, 개살구는 새콤달콤한 살구와 달리 시고 떫은맛이 나서 그런 이름이 붙었더라. 그 인간은 아름다운 양귀비에 개가 들어가서 너는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하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그녀의 손가락 사이의 하얀 몸뚱이가 반이나 줄어 담뱃재가 허공에서 힘맹아리 없이 떨어져 나가려고 하자 선영은 얼른 재떨이를 받쳤다. 그제서야 그녀는 하던 말을 잠시 멈추었다.
“양귀비꽃이 아름답던데 그러면 개양귀비도 아름답지 않아?”
선영은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뱉어내기 시작하면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체념했다.
“개양귀비꽃을 선물하며 나를 개무시한 그 인간이 싫어서 한번 개양귀비꽃이 군락을 이룬다는 곳을 가보았다. 개양귀비는 꽃이 피기 전 땅바닥을 쳐다본다잖아. 내가 갔을 때는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는지 온 몸을 곧게 세우고서 얼굴을 반듯하게 들고 위를 향하여 피어있더라. 바람이 살짝 불었어, 개양귀비는 온몸을 바람에 맡기고 흔들리면서 꽃잎이 너울거리는 것이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춤을 추는 듯하더라. 그 오묘하고 요염한 자태에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보았어. 양귀비 꽃과 별로 다른 게 없었어, 오히려 개양귀비가 색깔이 더 곱고 아담해서 집 주변에 심어두고 보기엔 더 낫겠더라. 난 개양귀비를 꽃양귀비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별거 1년이 되는 날이었어. 그 개양귀비 꽃을 선물하던 날이.”
불을 붙이고 겨우 한번 빨아본 담배는 이미 다 타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다 타들어간 담배를 바라본다. 회색고양이도 그녀의 손을 본다, 선영도 그녀의 담배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던 날이 개양귀비 꽃을 선물 받던 다음날이라고 들었다. 그때 개양귀비 꽃을 받던 것에 대해 서럽도록 울어대며 말해주었었다. 그 이튿날 담배를 피우겠다고 전해왔다. 그때 선영은 그녀가 담배를 태우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전화기 저 너머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침통했었다. 그때보다 그녀는 담담히 말은 하지만 말끝이 미묘하게 파르르 떨고 있었다.
“개양귀비 꽃말이 뭔지 아니? 그 인간이 쇼윈도 부부처럼 살자고 선언 하던 날, 꽃말을 알아보라고 하더라. 난 그전에 이미 꽃말을 알고 있었어. 약한 사랑, 덧없는 사랑이라는 말에 왜 저토록 저 인간은 나를 은밀하게 농락하는지 견딜 수가 없었다.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내 몸을 탐하던 자가 내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는 거야.”
그녀가 재떨이에 담배를 꾹 눌러 불을 끄더니 이내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이번에는 곧바로 불을 당긴다. 깊숙이 숨을 들이쉰다. 깊고 오랫도록. 후~하고 연기를 뱉는다. 길고 가늘게.
“난 남자를 믿지 못하겠어.”
그녀는 그 말을 하고 숨을 고른다. 선영은 그녀의 말이 짧아져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회색고양이도 그녀를 본다. 다른 손님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소리에도 무관심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회색 고양이의 눈은 그녀가 뱉아 내는 연기를 끝까지 따라간다.
“별거 1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첫날 밤 본 것이 무엇인지 아니? 개양귀비 아름답잖아. 나도 그리 떨어지는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정말 나에게 향한 사랑이 약한 것일까? 아님 내가 그를 향한 마음이 없는 것일까? 정말 우린 개양귀비처럼 덧없는 사랑을 하는 것일까? 왜 그는 내가 자신에게 돌아가던 날 그 짓을 했을까? 도무지 그 모습이 눈에 선해서 그 인간의 손을 잡는 것조차 싫다. 그의 손이 너무나 차가워. 그 인간도 내 손이 차갑다고 하더라. 그 인간의 몸에서 무슨 냄새가 그리나니?”
그녀는 담뱃재가 고개를 숙이기 전에 재떨이에 털어낸다.
“남편이 네가 돌아가던 날 무엇을 했기에 그래? 너의 모든 것을 내게 말해주었잖아. 말할 수 없는 일이야?”
선영은 아예 자신의 이야기 하는 것을 포기했다. 회색고양이가 머리를 빳빳이 들고 그녀의 손놀림을 바라보다 연기를 따라가느라 눈이 번잡했었는데 두 앞발에 얼굴을 묻는다. 귀는 더 쫑긋 세운다.
“지혜야, 말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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