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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사라리 4회

박종규 | 기사입력 2015/09/19 [19:25]

[단편소설 ] 사라리 4회

박종규 | 입력 : 2015/09/19 [19:25]

 [단편소설] 사라리 4회

    

  강 씨의 장사를 치르고 난 다음 날, 남근숙은 불쑥 마을에 나타났다. 그녀는 도시 여인들이 입는 나들이옷을 걸치고 마치 관광객 같은 차림으로 마을에 돌아온 것이다.

 

  “뜬금없이 기숙이 아프다는 연락이 왔었지라.” 

 

  “쯧쯧쯧! 아, 어딜 가믄 간다고 말이라도 하고 가야 재, 기숙이 전화도 모르고. 동네에서는 사람까장 죽어버리고 생난리 굿을 쳤는디. 어디 갔다가 인자사 나타난다냐?”

 

  이장 정달수가 혀를 차며 나무랐다.

 

  “누가 죽었소? 뭍에 나간 사람이 알 순 없지람 자.”

 

  “아, 강가가 혼자 바닥에 나갔다가 급작스럽게 죽어 부러서 동네가 발칵 뒤집히지 않았능가. 자네는 낮도 봬 덜 않터만!”

 

  “오마, 그랬소. 내 자슥 아프대서 뭍에 나갔다 왔다니께요. 뮌 말들이 고케 많소?”

 

  남근숙은 외투를 벗어 던지면서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여인은 곧바로 서에 불려 갔으나 이내 돌아왔다. 김 경사는 간단한 진술만 듣고는 돌아가라 했다. 서에서는 강 씨의 시신이 발견되면서부터 그녀를 용의 선상에 올려 두고 수사를 벌였으나 남근숙에게는 살해 동기가 될 만한 어떤 실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본서에 이송된 병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두어 달 뒤, 병석이 강씨의 살인혐의를 인정했다는 말이 들리더니 목포로 이송되었다는 말도 돌았다. 그 뒤, 아침마다 도리산에서 내려오는 병석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편 하늘에 시나브로 붉은 기운이 퍼져 오른다. 침을 튀기며 게 껍데기 씹듯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달수의 표정이 하늘빛을 받아선지 발그레 진다. 조병석이라는 사람, 그에게 묘한 연민이 생긴다. 시대는 이런 외딴섬에까지 희생자를 만들면서 흘러가는 모양이다. 

 

  “조병석은 재판을 받았나요?”

 

  “재판을 받았는지 어짠 건지 아무도 몰라라. 갸가 쉽게 풀려나것소? 참 똑똑한 청년이었는디…….”

 

“병석을 경찰에서 잡아두는 데에는 살인 혐의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아 아니어라! 제가 뭘 알것소?”

 

  달수는 황급히 말을 거둬들이면서 손을 내젓는다.

 

  “하여튼 병석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라. 모르는 것이 좋다는 말도 있기는 하고요.”

  “그럼, 사건은 아직도 미결인가요?”

 

  “그라지라. 병석이 사람 죽일 창아지는 못되아라! 왜 안 풀어주는지 누가 알것소. 시상도 요케 많이 달라졌는디…….”

 

  바다 가운데서 배에 사람이 없다면 바다에 사람이 빠진 것이라고 했다. 꿈에 본 배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새벽의 쪽배……. 처음에 배 하나가 나가더니 되 돌아왔고, 다시 두 척이 나가더니 한 척만 돌아오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 척은 바다 어디에 묶어 놓고 온 것일까. 그 새벽에 타지에서 들어오는 배가 없다면 말이다.

 

그러니 한 척, 한 척, 두 척, 마지막 한 척, 이런 배의 드나듦이 당시의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더구나 꿈속에서는 모래톱에 엎어진 사내 모습까지 보였다. 이장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꿈에서 본 그림이 배경으로 들어앉고 있다.

 

마치 그날 사건의 현장에서 배의 움직임을 환히 내려다보는 것처럼, 꿈에 본 배들의 모습에 현실감각을 부여하다가 나는 언뜻 머리를 스치는 한 줄기 섬광을 놓치지 않았다. 오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하나가 나갔다가 돌아오고, 둘이 나갔다가 하나만 돌아오고……. 문제의 핵심은 배로군요. 가만있자, 이장님. 서에 가셔서 김 경사에게 당시 포구의 배 드나듦에 하나, 하나, 둘, 하나의 수식(數式)을 적용해 보라고 전해 보세요. 혹, 그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지 모른다고요.”

 

  “예? 그게 무슨 암호라요, 시방?”

 

  “아무래도 내가 현장을 본 듯해서요.”

 

  “그람 박 선상이 전에 여그 왔다고라? 아니, 이 섬에는 첨 오셨다고 안 했소?”

 

  “근데, 처음이 아닌 것 같거든요!”

 

  “예? 그란데요?”

 

  “경찰에서도 그같은 추리는 해 봤겠지만, 어쩐지 내 생각이 맞을 것 같아서요. 이를테면…….”

 

  “흠, 난 뭔 말씀인지 모르것어라! 아무튼. 하나, 하나, 둘, 하나라고 했소?”

 

  정달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배시시 웃는다. 삼 년이나 묵은 사건이다. 부질없는 짓 같으면서도 어쩐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서에서 나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필 그 꿈이 왜 여기서 생각났을까. 꿈속에서 보았던 배의 드나듦이 절묘하게 사건의 흐름을 보여주는 그림 같았으니.

 

  나는 사흘간 더 머물면서 일출을 찍었다. 수평선에 걸치는 구름의 모습이나 해무의 량, 바다에 촉수를 뻗은 섬의 형상이 일출 시각에 어떻게 어우르는가를 카메라로 잡는 작업이다. 나흘째 되는 날, 사라리를 떠나 어류포 선착장에서 선표를 끊었다.

 

그동안 서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역시 꿈은 꿈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병석이 범인은 아닐 것이라는 심증을 떨칠 수가 없었다. 승객 대기실 창밖으로 보이는 쪽빛 바다는 그 깊이를 가늠해준다. 바람이 심상치 않았으나 배가 떠나는 데는 문제가 없는지 뱃사람들이 출항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언뜻 창틀 밖으로 정달수가 바삐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그는 정복 경찰과 함께 승객 대기실로 들어오면서 손을 흔든다. 경찰이 내게 목례하면서 목청을 돋운다.

 

  “박 선생님. 지송하요 만, 째깐 협조 좀 부탁하것소. 잠깐이면 되니께, 나가는 배는 걱정하지 말고라. 기관선으로 본섬까지 편안하게 모셔다 드릴 수도 있응께요.”

 

  “무슨 일입니까?”

 

  “서에 가서 자세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때 정달수가 눈치 없이 입을 열려는 것을 경찰이 손을 들어 제지한다. 나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어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보낸 메시지가 어떻게 작용했을까. 나는 기껍게 경찰을 따라나선다. 날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비바람이 심하다. 비를 맞고 지서에 들어서자 김 경사로 보이는 사람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히죽 웃으며 손을 불쑥 내민다.

 

  “박 선생님? 저 김만호 경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이 준 암시가 실마리가 되얐구먼요.”

 

  “정말입니까? 해결하셨군요. 경사님 대단하십니다.”

 

  “어려운 수학문제 같았어라. 그래도 암시하는 바가 배의 드나듦이었기 땀시 뜻밖에 쉬운 추론이 가능했어라. 박 선생님, 고맙구먼요. 즈그덜이 조서는 알아서 꾸몄응게, 여그 읽어 보시면 선생님이 준 암시가 어떻게 맞아떨어졌는지 알 것이어라. 그라고, 별 특별한 것은 아닌께 밑에 서명만 해 주시쇼.”

 

김 경사의 구릿빛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자 숨어 있던 고른 이가 하얗게 내비친다. 그의 몸가짐에서 천상 시골형사의 품세가 느껴지는 것은 그의 성실성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럼, 살인사건이었나요? 제가 이 사건 때문에 섬에 또 와야 하는 건 아닙니까?”

 

  “헛허허! 참고인 서명이니 다른 걱정 마시고라. 살인? 글쎄요. 함 읽어 보시랑께요.”

 

  조병석은 어떻게 얽혔을까 궁금했지만, 우정 입 밖으로 그 말을 내지 않았다. 창밖에는 비바람이 여전하다. 오늘 배가 떠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섬은 아름답지만, 접근과 이탈이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 지켜지는 것일까. 경사가 권하는 한쪽 자리에 앉아 사건의 경위를 읽던 나는 다시 한 번 모골이 송연해진다. 남쪽 섬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의 현장을 나는 직접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서울의 침대 속에서 말이다.

 

 

 

 

 

 

 

 

[박종규 소설가]

 

- 전 문학동인 글마루회 회장  /전 에세이스트문학회 회장 / 현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현 한국문인협회 문협진흥재단설립위원 / 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수필집<바다칸타타),<꽃섬>  /소설집 <그날>  / 장편소설<주앙마잘>,<파란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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