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리 2회
그때, 점심나절이 되어 정달수 부부는 뱃질을 멈추고 선수를 포구로 돌려 들어오던 길이라 했다. 파란 뱃길 좌우로 굴 양식장의 하얀 부표들이 거대한 부표 고랑을 이룬 사이를 지나고 있었단다. 백여 미터 떨어진 양식장에서 파도에 까불대는 작은 어선이 눈에 들어왔다. 달수 내외는 키를 그 방향으로 돌려 다가가면서 엔진을 껐다.
“어-이, 거그 누구 있능가아?”
넘실대는 파도가 배 옆구리의 ‘유정호’라는 검은 글씨를 출렁출렁 타넘고 있었다. 강 씨네가 몇 년 전에 사들인 어선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배 가까이에 접근해도 기척이 없었다. 사람이 안 보이니, 이 추위에 소주라도 마시고 뱃바닥에 들어 누워 잠이라도 들었다는 말인가?
육지까지는 삼십 분이 넘는 거린데 바다 가운데서 사람 없이 배만 부표에 묶여 있다면, 사람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던지 바다에 빠졌다는 말이다. 이 시간에 버려둔 배도 아니고 뱃길도 아니라는 생각에 정달수는 거적눈을 치켜뜨면서 서둘러 배에 다가갔다.
“여긴 강 씨네 어장이고, 분명히 강 씨 밴 디, 아니 이것이 뭔 일 이디야! 강 씨 없소?”
배를 끌어다 댔으나 빈 배 혼자 파도에 나부끼고, 조붓한 배 안에는 침묵만 실려 흔들리고 있었다. 일그러진 통발이 한쪽에 치워져 있는 것을 보면서 정달수는 불길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폴세 뭔 일이 난 것이어라! 싸게 신고합시다. 엊그제부터 강 씨 아잡씨가 봬 덜 않더만.”
달수 댁은 작달막한 모습이 영락없이 달수 처였다. 정달수는 마을로 가는 뱃길을 포기하고 지서가 있는 남쪽으로 서둘러 뱃머리를 돌렸다. 사라리는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은 작은 포구다.
강 씨의 돌연한 실종 소식에 마을 사람들을 충격에 휩싸였다. 지서에서 온 경찰이 뻔질나게 강 씨네를 드나들었고, 강 씨 주변 일들에 대한 정황을 여러 번 캐묻고 다녔다. 뒤숭숭하던 차에 기숙에미가 사흘째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또 돌아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기숙에미 남근숙은 본래 이 마을 토박이였다. 유복자로 키운 딸 기숙이 마저 육지로 내보냈고, 이젠 혼자 갯일로 소일하며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암팡진 얼굴이지만 시원한 눈매 때문에 예전에는 총각들 마음 꽤 설레게 했던 남근숙. 지난 일이긴 해도 실종된 강 씨와는 결혼까지 들먹이던 사이였다.
둘이 같이 살 거라고들 했는데, 강 씨가 어느 해 뭍에 나가더니 육지 여자를 꿰차고 돌아와 살림을 차려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유를 댔지만, 맘에 상처를 입은 남근숙은 그 길로 육지로 나갔고, 자기도 육지 남자를 만나 광주에서 살림을 차렸다. 광주에 변고가 생겨 군인들이 밀고 들어왔던 그해 여름, 남근숙은 딸 하나를 달랑 데리고 넋을 놓아버린 얼굴로 고향에 돌아왔다. 광주 도청 앞에서 남편을 잃어버렸다면서.
매일 하는 갯일도 안 나오고 기숙에미 남근숙이 사흘째 집까지 비우니 이웃이 신고를 했다. 작은 섬마을에서 두 남녀가, 그것도 예전에 말이 났던 두 사람이 같이 실종되자 아낙들은 모이면 수군거렸고, 말과 말이 건너다니며 여러 가지로 사건의 진상을 만들어냈다. 강 씨 부인은 그때 마침 시집간 딸이 산달이라 서울로 가고 없는 사이에 초상을 맞은 것이다. 부랴부랴 섬으로 내려온 강 씨 부인은 넋을 놓고 한숨만 퍼질렀고 입맛 뻥긋하면 ‘남근숙 죽일 년’ 타령을 했다.
“기숙 에미가 내 남편을 데려갔어야! 그 오살 것이!”
남근숙은 한때 조병석이라는 총각과도 묘한 사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터였다. 조병석은 군에 갔다 온 뒤로 총기(叢記)가 떨어져 동네바보 딱지를 달고 다니는 철부지 청년이었다. 남근숙은 그런 병석을 유독 챙겨 주어서 한때 아낙들의 입방아에 올랐던 거였다.
병석이와 강 씨, 남 여인의 삼각관계라는 말도 있고, 병석이 둘을 바다에 밀쳐버린 것이 아니냐는 말도 들렸다. 하지만, 나이든 어른들은 무고한 병석이를 왜 끌어들이느냐고 혀를 끌끌 찼다. 서에서는 뻔질나게 마을에 찾아와서 세 사람 주변을 탐문했다.
조병석은 어려서부터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란 ‘동네 인물’이었다. 중, 고등학교도 육지에서 장학금을 받아가며 다녔다. 유난히 도리산을 좋아한 병석은 방학 때면 섬에 내려와 새벽마다 도리산을 오르곤 했다.
도리산은 300 고지가 채 안 되는 야트막한 산이었지만 전망대에 오르면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부모들은 ‘쟈가 산 때문에 집에 오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병석은 도리산을 좋아했다. 병석이 서울의 일류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 조 씨는 가문의 경사라며 동네잔치를 열었는데, 막상 병석은 그날 동트기 전에 집을 나서서 저녁 늦게야 마당에 나타나 마당에 모여든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병석은 도리산에서 오는 길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던 것이다.
병석이 대학 2학년이 끝나가던 가을이었다. 느닷없이 육지에서 온 양복쟁이들이 두 번이나 조 씨를 찾아와 병석의 행방을 물었고, 창유 지서장도 몇 번 조 씨네를 다녀갔다. 그 뒤로는 웬일인지 조 씨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병석은 3학년이 되기 전 곧바로 군에 징집되었으나 군 생활 일 년을 못 채우고 섬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 씨는 무슨 일인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언제 술을 배웠는지 병석의 얼굴에는 늘 불그래 취기가 돌았으며, 손에는 언제나 막걸리 병이 들려 있었다. 섬마을 사람들은 병석이 너무 착한 아이가 되어 돌아왔다고 입을 모았으나, 내심으로는 똑똑한 젊은이를 데려가서 어떻게 했기에 병신이 다 됐는지 속상해했다.
병석은 술에 절어 살면서 무슨 일이든지 동네 사람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으며, 막걸리 한 병이면 품삯도 필요 없었다. 병석은 그런 바보였다. 그러나 마을에서 병석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병석은 꼭 필요한 바보였다.
“시상에 사람이 고케 변해 부렀어야!”
“그 말이여, 데모란 것이 똑똑한 사람을 바보 맹 간 거여.” “그 머이마 이젠 병석이 아녀, 병신이여!” 그런 중에도 병석은 새벽마다 도리산에서 내려오곤 했다. 조 씨는 아들이 달라지자 시난고난 병까지 얻어 구둘 더께로 앓아눕다가 끝내 세상을 등져버렸다.
도리산 중턱에 아비를 묻은 병석은 수개월 동안 도리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틀박이로 들어앉아 있다 나타났는데, 아예 섬을 떠도는 부랑자처럼 행색마저 변해 버렸던 것이다.
사시랑이 꼴을 해서 아무 데서나 술에 취해 자빠져 한뎃잠을 자기 일쑤였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동네 어선이 모두 병석의 잠자리였다. 그날도 비는 오는데, 술에 취해서 마당에 널브러져 쪽잠이 든 병석을 남근숙이 감기 든다며 방안에 들였다가 이상한 말이 돌았던 거였다.
그렇게 평소에도 병석을 남다르게 대했던 남근숙이 이젠 강 씨와 함께 실종되었으니, 추측은 난무할 수밖에 없었다.
[박종규 소설가]
- 전 문학동인 글마루회 회장 /전 에세이스트문학회 회장 / 현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현 한국문인협회 문협진흥재단설립위원 / 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수필집<바다칸타타),<꽃섬> /소설집 <그날> / 장편소설<주앙마잘>,<파란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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