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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몰이 “김일성, 김정일, 김대중, 김갑수, 김대규 개쇅히”

종북몰이가 뭔지 알고나 하는 것인지…종북몰이꾼은 세 종류로 구분

김갑수 칼럼 | 기사입력 2015/06/29 [13:09]

종북몰이 “김일성, 김정일, 김대중, 김갑수, 김대규 개쇅히”

종북몰이가 뭔지 알고나 하는 것인지…종북몰이꾼은 세 종류로 구분

김갑수 칼럼 | 입력 : 2015/06/29 [13:09]

▲ 2012년 한겨레 만평     ©편집부

 

김대규 교수와 내가 진행하는 팟캣 [민심이 갑이다] 댓글에 김 씨 다섯 명을 싸잡아 ‘개쇅히’라고 저주하는 댓글이 달렸다. 이는 언젠가 수구논객 전원책이 텔레비전에 나와, “김정일·김정은을 개새끼라고 못하면 종북”이라고 한 말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종북몰이를 하는 사람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이 만약 종북몰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 실체를 알면 조금이라도 자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린다. 

종북몰이는 얼핏 보아 국가주의나 반공주의의 소산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종북몰이는 진지한 이념논쟁과는 수준이 다른 것이다. 종북몰이는 이념적 성찰과는 관계없이 멀쩡한 정상인을 (형법상의) 범죄자로 모해하는 행위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종북몰이가 본격적으로 시도된 것은 한국전쟁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50년 9.28 수복으로 서울이 대한민국의 세상이 되며 새로이 부각된 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남하’라는 단어였다.

그때 ‘도망쳤다’는 의미를 가진 ‘남하’가 상황이 역전되자 세도당당한 말로 둔갑되었다. 이에 따라 인민군이 몰려 왔을 때 남하하지 않은 사람은 빨갱이거나 부역자거나 잠재적 협력자이고, 도망친 사람 즉 남하한 사람만이 흠결 없는 애국자라는 흑백논리가 조장된 것이다.

어이없는 일 아닌가? 1950년 6월 27일, “우리는 중앙청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군은 도처에서 적을 격파하여 의정부를 탈환하고 해주로 진격하고 있으니 시민은 안심하고 직장을 사수하라.”고 목이 메도록 방송하는 사이 정부 여당은 몰래 ‘남하’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약삭스럽게 피난하여 정처 없이 가다 보니 대구, 부산에서 정부와 함께 ‘남하’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개중에는 겁이 많아 일찍 서둘러 ‘남하’의 계열에 든 사람도 있었고, 난데없는 포성을 듣고는 허파가 뒤집혀 젖먹이를 포함한 아이 넷을 버려두고 자기들만 ‘남하’한 사람도 있었다.

당시 서울시민의 99%는 어리석고 멍청하여 정부의 말을 듣고 직장과 가정을 사수하다가, 갑자기 인민군을 맞이하여 90일 동안 굶주리며 천대받고 천행으로 목숨을 건져 국군과 유엔군을 환영해 주니, 뜬금없이 도망쳤던 세력들이 나타나 정부와 행동을 같이 한 우리는 애국자요, 남은 너희들은 불온한 사람들이라고 핍박하기에 이른 것이다.

“얼마나 고생하셨소? 우리만 피난하여 미안하오.” 이런 말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더라도, 심사니 동태파악이니 해가며 구원(舊怨)을 풀거나 경쟁자를 몰아내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남하파들이 부지기수였으니 잔류 시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발발 후 가장 기민하게 피난 짐을 꾸린 사람들은 관리, 경찰, 지주, 친일경력자, 대한청년단 간부, 미군정 참여자들이었다.

▲ 2012년 경향 만평     © 편집부

물론 잔류자 중에는 좌익도 기회주의자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승만정권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지식인층은 자의반타의반으로 서울에 남은 것이었다. 일단 정부가 후퇴하는 것을 몰랐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설사 알았더라도 그들은 잔류를 택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산주의에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이승만정부에도 그다지 탐탁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존립에 목숨을 걸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세상이 바뀌더라도 그리 두려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온 이승만정부에 의해 기회주의적인 인간형으로 백안시되었다.

게다가 잔류인 중에는 진정한 애국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공직자 또는 지식인으로서 비겁하게 도망치기보다는 백성과 고락을 함께 한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잔류한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중도우익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국민을 내버리고 남하하여 개인의 구명만 꾀하는 비겁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하며 잔류를 결의했다. 국회의원 조헌영은 반공주의자였지만, “오늘 오전에 국회를 열어 서울을 사수한다고 해 놓고 내가 어찌 서울을 떠난단 말이냐? 시민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서울을 지키라고 해 놓고 내가 어떻게 서울을 버리고 가느냐?”고 거듭 말하며 잔류했다.

이승만의 정적 중 하나였던 안재홍은, ‘피난을 가건 남아 있건 생명의 위협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남아 있다가 납북되었다. 그의 예상이 어느 정도 합리적인 것이었음은 1952년 부산정치파동으로 입증되었다. 이승만은 전쟁을 기화로 수많은 정적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제거했던 것이다.

국가주의나 반공주의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예컨대 백범 김구의 이념에는 국가주의나 반공주의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건전한 국가주의나 반공주의는 현대사회 다원성의 측면에서 그 존재적 현상을 인정해 줄 수도 있는 일이다. 국가주의자나 반공주의자 중에서도 종북몰이를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도 의외로 많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나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지사 앞에서 열린 북한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노컷뉴스

그러나 종북몰이꾼들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일베, 활빈단, 어버이연합, 새누리당 일부 의원 부류 등에게는 알량한 국가주의나 순진한 반공의식마저도 없다. 그들은 상대가 정말 종북이라고 생각하여 ‘종북’이라고 공격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특정인이 종북이건 아니건 그런 것은 개의치도 않고 무조건 ‘종북’이라고 공격하는 자들도 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은 누군가를 특정하여 종북으로 몰아야 자기 이득이 되거나 자기 치부를 감출 수가 있다고 계산하는 무리다.

종북몰이꾼은 크게 보아 세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 정신적 불구 상태라고 할 수 있는 파시스트, 둘째 이웃을 범죄자로 몰아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모리배, 셋째 자기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남을 먼저 공격하는 기만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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