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성 조현 기자묘는 역사왜곡을 위한 가짜 (5부)

성헌식 컬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6/04/27 [14:39]

산동성 조현 기자묘는 역사왜곡을 위한 가짜 (5부)

성헌식 컬럼니스트 | 입력 : 2026/04/27 [14:39]

 

A.I의 덕분으로 기자가 매장된 진짜 무덤은 산서성 로성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중국이 문헌 기록의 내용을 잘 충족시킨다고 말해왔던 하남성 상구 또는 산동성 조현에 있는 기자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왜 그들은 그런 무덤을 만들어 역사왜곡을 자행해야만 했을까?

 

1. 기자묘 관련 문헌 기록

 

사기 집해(史記集解)에서 두예(杜预)의 말을 인용하기를, “양나라 몽현에 기자의 무덤이 있다.(梁国蒙县有箕子冢)”와 역시 두레가 춘추석례(春秋释例)에서 "양국 몽현 서북쪽에 박성(亳城)이 있다. (梁国蒙县西北有亳城)"라는 기록이 있으며,

 

진나라 복도의 북정기에 전하기를 "몽현과 박성 사이를 보니 성탕, 이윤, 기자의 무덤이 모두 폐허가 되었다.(伏滔北征记望亳蒙间成汤伊尹箕子之冢墓皆为丘墟"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의 몽현과 박성이 모두 하남성 상구에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후 대청일통지"기자의 무덤은 상구현 북쪽에 있다."라고 썼고, 청의 조현지曹县志와 청나라 서계유(徐继孺)조남문현록(曹南文献录)에서 기자묘는 읍(조현) 서남 20리 반경리에 있고 탕왕능의 서쪽에 있다.(箕子墓在邑曹县西南二十里盘庚里汤陵之西)”는 기록으로 보아 명청 시기에 역사왜곡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하남성 상구시 양원구 몽장사촌(梁園區 蒙檣寺村)에 사는 현지 주민들조차 자기네 마을에 기자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모르고 있고, 게다가 상구시에 있다는 기자묘의 사진을 검색해도 안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상구시에 있었다는 기자묘는 말로만 있었고 실물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연 산동성 조현의 기자묘는 문헌상으로 일치하는지? 조현이 하남성 상구와 그다지 멀지 않다 보니 같은 문헌 기록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로성현에서 기자묘의 실체가 파악되었으니, 지금까지의 조현이 몽현과 박성이었다는 역사 해석은 큰 오류가 있었다고 하겠다.

 

▲ <산동성 서부 조현에 있는 가짜 기자묘>                                                  ©고구려역사저널

 

 

2. 산동성 조현 기자묘는 가짜

 

먼저 지리적 위치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기자의 묘가 있다는 산동성 하택시 조현 일대는 거야택(巨野澤) 또는 대야택(大野澤)이라 불리던 동서 100x 남북 300리 크기의 내륙호수가 있었던 곳이던가 호수와 가까워 묘를 쓰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아래 대야택에 대한 바이두 백과의 설명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번역) 대야는 옛 호수로 거야라고도 한다. 옛 유적은 산동성 거야현 북부에 있고, 과거에는 양산, 동평, 운성, 거야, 문상, 가상, 제녕 등 지역에 걸쳐 있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세로 300, 가로 100리 이상이었다고 한다. 송나라 이후 남쪽 지역은 점차 말라붙었고 원나라 말기에는 양산박도 거의 토사로 뒤덮여 결국 현재의 동평호로 변모했다.

 

(원문) 大野古泽名又名巨野钜野最早见于尚书·禹贡左传记载是古代著名湖泊尔雅中被列为十薮之一古址在今山东省巨野县北部范围曾涉及梁山东平郓城巨野汶上嘉祥济宁等地史载其南北三百里东西百余里该泽是黄河的天然泄洪区历史上因黄河多次决溢注入并带来大量泥沙湖面逐渐向北推移汉代以前多称大野汉代以后多称巨野泽至五代后期因黄河淤积北移在梁山附近形成梁山泊宋代以后南部逐渐干涸元代末期梁山泊也基本淤平最终演变为现在的东平湖

 

상서 우공에 대야택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자를 장사지낼 때도 거야택이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산서성 동남부가 주 활동무대였던 기자의 시신을 언제 물에 잠길지 모르는 산동성 대야택 부근으로 묻을 하등의 이유가 없고 게다가 조현이나 상구에는 기자와 뚜렷한 연고도 없지 않은가! 뭔가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가묘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 (적색은 산서성과 하남성 기자묘 관련 지명, 흑색 글씨는 산동성 거야택 지명)   © 고구려역사저널

 

3. 로성 기자묘의 실체를 밝힌 기록들

 

기자묘에 대한 문헌 기록 중 의구심이 드는 문구가 있는데 송나라 왕상이 쓴 여지승기"기자의 무덤은 송성현 북쪽 4120보 떨어진 옛 몽성 안에 있다. (王象 舆地胜记: “箕子冢在宋城县北四十一里二十步古蒙城内”)라는 문구이다.

 

여기서의 송성(宋城)현이 과연 지금의 하남성 상구 또는 산동성 조현이냐는 것이다. 기자묘를 조성할 당시의 땅은 미자(微子)의 봉지로 바로 로성현 일대였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송 땅을 의미하는 로현 북쪽 4120보 위치에 옛 몽성(蒙城)이 있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진짜 기자묘를 밝힘에 있어 가장 확실했던 기록으로는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이다. 그 책 제335권에 "(로성현) 기자의 무덤은 로성현 동쪽 15리 떨어진 미자촌 북쪽에 있다. 미자촌 동쪽에 삼인묘가 있는데 그 땅을 비간령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을 기자묘로 말한다. (箕子墓在县东十五里微子村北俗因微子村东有三仁庙呼其地为比干岭此曰箕子墓。‌)”라는 기록이 있고, 그곳에는 기자묘의 전설과 유적이 확실하게 있다. 따라서 기자묘가 있다는 양국 몽현과 그 서북쪽에 있다는 박성 모두 산서성 로성현 일대라는 것이 확실하다고 할수 있다.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은 청나라 강희제 때 28년간에 걸쳐 편찬된 백과사전으로 1만 권의 본권과 40권 분량의 색인으로 이루어져 있어 현존하는 가장 방대하고 포괄적인 백과사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 강희제 때 만든 백과사전 고금도서집성  © 고구려역사저널


 그렇다면 중국은 왜 역사적 사실대로 산서성 로현 기자묘를 인정 안 하고 숨겨가면서까지, 산동성 조현에 가짜 기자묘를 만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원본 기사 보기:고구려역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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