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현판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는 주장과, 문화유산의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반론이 맞선다. 그러나 이 논쟁은 단순한 ‘문자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세계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이라 부르는 이 문자는 본래 ‘훈민정음’이다. 이름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지만, 그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훈민정음은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 창제된 애민의 철학이며 인간 존엄을 바탕으로 한 문명적 선언이었다.
문화유산은 과거의 산물이며, 그 원형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형’이라 부르는 것 또한 특정 시대의 선택과 복원의 결과임을 외면할 수 없다. 광화문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중건되었고, 현대에 이르러 다시 복원된 구조물이다. 다시 말해, 광화문은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시대마다 재해석되어 온 ‘살아있는 상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광화문을 과거의 복제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현재와 미래를 함께 담아내는 국가 상징으로 확장할 것인가.
훈민정음기념사업회는 분명히 밝힌다. 한글은 명칭이고, 훈민정음은 철학이다.
대한민국의 문자 체계는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본질은 ‘훈민정음’에 있다. 이 문자는 권력자가 아닌 백성을 위해 만들어졌고, 기득권이 아닌 국민의 힘으로 살아남았으며, 문맹을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끈 문자이다. 이러한 점에서 훈민정음은 문화유산의 범주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에는 여전히 한글, 곧 훈민정음의 정신이 온전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단순한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상징과 정체성 간의 불일치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기존 현판을 바꾸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립이 아니라 확장이며, 훼손이 아니라 공존이다.
첫째, 광화문 현판은 단일 구조에서 복합 구조로 확장되어야 한다. 전통 건축에는 다중 현판의 관습이 존재해 왔다. 이는 훼손이 아니라 의미의 확장이었다. 한자 현판을 보존하면서도, 한글(훈민정음) 현판을 병존시키는 것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결합이다.
둘째, 훈민정음의 표현 방식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한글은 ‘먹의 문자’를 넘어 ‘빛의 문자’로 확장되어야 한다. 증강현실, 미디어 파사드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훈민정음의 정신을 살아있는 상징으로 구현해야 한다.
셋째, 광화문은 정적인 문화재가 아니라 동적인 국가 플랫폼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광화문은 이미 전통과 현대, 국가와 시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그 상징 또한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우리는 분명히 말한다. 광화문 현판 논쟁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 위에 현재와 미래를 더하는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서 문화적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다. K-컬처가 세계인의 언어가 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상징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훈민정음은 인류 문명사에서 보기 드문 ‘사람을 위한 문자’이며, 대한민국이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가치이다.
광화문에 무엇을 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다.
훈민정음기념사업회는 이 시대의 물음에 분명히 답한다. 한글은 이름이며, 훈민정음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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