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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학 시부문 신인문학상 윤원형] 네 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광부의 아들

이성민 기자 | 기사입력 2022/06/15 [10:36]

[대산문학 시부문 신인문학상 윤원형] 네 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광부의 아들

이성민 기자 | 입력 : 2022/06/15 [10:36]

 

                                                     시인 윤원형 부부


대산문학(회장 고현자) 시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윤원형 시인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서 네 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광부의 아들이다.

 

윤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아버님은 광부요 어머님은 광산 근로자 선탄부로 일하시면서사글세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살았다"면서 "산부란 근로자로 입사하여 30년 재직하면서 겪었던 광부들의 열악한 지하 막장의 노동석탄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드라마 같은 눈물과 애환들차마 표현할 수 없는 광부들의 비참함을 못다 배운 한으로 숨겨두고 미래를 향해 하나하나 설계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지펴왔다"고 밝혔다.

 

다음은 윤 시인의 수상소감 전문.

 

네 남매의 맏이로 태어낭 광부의 아들

 

네 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아버님은 광부요 어머님은 광산 근로자 선탄부로 일하시면서, 사글세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윤택해진 집안 살림이라면 부모님께서 방 두 칸짜리 집 마련하여 6식구가 살아온 기억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행복이었습니다.

 

군대 생활 삼 년을 빼고 나면 고향인 탄광촌 도계를 떠나본 기억이 없을 만큼 탄광촌에서 현재까지 살아온 인생이지만 그래도 착한 맏아들로서 남부럽지 않은 사회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아버님 말씀 중, 동생들한테 양보하다 보니 못 가르친 것도 한이 되는데 너까지 광부로 만들 수 없다는 당신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가 광부란 직업을 선택한 것이 늘 죄스러움을 가슴에 간직하면서 아들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책임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19846월 대한 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채탄 후 산부란 근로자로 입사하여 30년 재직하면서 겪었던 광부들의 열악한 지하 막장의 노동, 석탄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드라마 같은 눈물과 애환들,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광부들의 비참함을 못다 배운 한으로 숨겨두고 미래를 향해 하나하나 설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열이 심하고 분진이 휘날리는 막장을 떠나 근로자들의 권익을 찾아주는 노동조합 임원으로 발탁되어 광산 정년이 되는 2015년도까지 25년 동안 총무 담당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지펴왔습니다.

 

도계광업소 노동조합 임원으로 활동할 때 아버님께서 소천하시면서 저에게 남겨준 말씀을 지켰습니다. 원형아. 항상 나보다 못한 이웃과 조금이라도 정을 나누며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석탄을 캐내는 후산부 시절의 경험과 노동조합에서 눈으로 보며 권익을 주장 했던 그때의 모든 사연을 원고지에 옮겨 두었다가 문종복 사진작가(경동상덕광업소 근무)를 만나 2009년 첫 시화전을 가지면서 그대와 함께하는 연말연시를 시작으로 3차례의 작품전시를 펼치면서 세월과 모든 풍경을 주민들께 보여드리면서 탄광촌의 문학을 알리면서 태백 교차로에 1년여 동안 광부의 시를 연재하였습니다.

 

20136월 이웃 돕기 및 광부의 가슴앓이시집을 출간할 때 대산문학회 이희탁 선배님과 부산에 거주하시는 김지원 선생님, 노혜정 시인님의 감수와 더불어, 도계광업소 임광번 전 지부장님의 외 어깨를 다독여 주신 전 조합원 동지 여러분의 노고와 은혜를 보답할 수 없었기에,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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