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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하시마탄광,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 대변인담화'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6/23 [07:12]

[전문] '하시마탄광,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 대변인담화'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6/23 [07:12]

 

▲ 군함도로 알려진 하시마탄광.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 대변인담화

 

지난 6월 15일부터 일본정부가 나가사끼시의 하시마탄광에서 감행된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에 대한 과거 일제의 비인도적행위들을 전면부정하면서 《조선반도출신징용자들에 대한 차별적대응은 없었다.》고 한 일본사람들의 《증언》이라는것을 대대적으로 류포시키는 놀음을 벌려놓고있다.

하시마탄광으로 말하면 돌과 바위로 이루어지고 면적이 0.1㎢도 되나마나한 나가사끼시앞바다의 하시마섬에 있던 해저탄광으로서 생활환경과 로동조건이 너무도 렬악한것으로 하여 개발초기부터 일본사람들속에서도 지옥이라고 불리운 곳이였다.

일제는 마실 물조차 나오지 않는 손바닥만 한 이 탄광섬에 항시적으로 근 1 000명의 조선사람들을 끌어다가 인간이하의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섬둘레를 10m 높이의 두터운 콩크리트담벽으로 둘러막아 바다우에 솟은 감옥이나 다름없는 이곳에 끌려간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은 감독들의 삼엄한 감시와 채찍밑에서 하루 12~14시간이상 고된 로동을 강요당하였으며 형언할수 없는 민족적차별과 학대, 기아와 병마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죽음의 섬에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한 조선사람은 그때를 회상하여 《우리는 죄수나 노예보다 더 혹독한 처지에 있었다. 사람들은 맞아죽고 굶어죽을 바엔 뛰다 죽자고 도망을 치다가 바다에 빠져죽었다. 하시마는 죽어도 묻힐 곳이 없는 그야말로 인간생지옥이였다.》고 증언하였다.

당시 주변섬들에서 살았던 일본사람들까지도 《고기잡이 나갔다가 하시마섬가까이에서 떠다니는 시체를 자주 보았다. 너무 고통스러워 자살하였거나 헤염쳐 도망치다가 힘이 진했을것이다.》, 《하시마탄광에서는 가스폭발사고가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아이고->라는 울음소리가 며칠씩 들려왔다.》고 하였다.

우리 피해자들의 몸에 남아있는 상처자리들과 일본땅 방방곡곡과 바다밑에 깔려있는 조선사람들의 유골들, 돌아오지 못한 혈육들을 기다리며 가슴태운 유가족들이 흘린 피눈물은 그 무엇으로써도 대신할수 없는 산 증거들이다.

바로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엄연한 력사적사실로서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 강제로동범죄의 잔혹성과 악랄성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강조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일제가 저지른 악독한 만행에 대해서는 조선사람들의 불행을 강건너 불보듯 하던 일본인들이 아니라 피해당사자인 우리 인민이 더 잘 안다는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이 너절한 놀음을 벌려놓은데는 반인륜적범죄의 책임에서 벗어나 저들에게 지워진 배상의무를 털어버리고 옳바른 력사인식을 《자학사관》으로 매도하며 국민을 우매화하여 또다시 해외침략의 돌격대로 내몰려는 간악한 흉계가 깔려있다.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는 력사외곡에 환장이 된 일본정부의 가증스러운 망동을 전체 우리 과거피해자들을 우롱하는 용서할수 없는 도발로, 또 하나의 극악한 인권유린범죄로 락인하면서 이런 놀음을 당장 걷어치울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일본정부는 물에 빠진자 지푸래기 잡는 격으로 중대인권유린범죄청산의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헛된 모지름을 쓸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성근하게 반성하고 피해자들앞에 나서서 진심으로 사죄하며 철저히 배상해야 한다.

 

 

주체109(2020)년 6월 22일

평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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