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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고황제 리성계 홍무제도 단군께 존칭썼는데, 뭐 '단군신화?’

"단군 가신지.."스키타이족속이 지은 삼국유사의 의도와 허구성

리복재 역사칼럼 | 기사입력 2011/08/03 [17:02]

조선 태조 고황제 리성계 홍무제도 단군께 존칭썼는데, 뭐 '단군신화?’

"단군 가신지.."스키타이족속이 지은 삼국유사의 의도와 허구성

리복재 역사칼럼 | 입력 : 2011/08/03 [17:02]
▲ 조선  태조 고황제 리성계 홍무제 초상화   

조선왕조실록의 태조 6년 3월 8일에 보면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안익(安翊)·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김희선(金希善)·예문춘추관 학사(藝文春秋館學士) 권근(權近)이 황제의 칙위 조서(勅慰詔書)와 선유성지(宣諭聖旨)와 어제시(御製詩)와 예부(禮部)의 자문(咨文) 2통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실록을 근거로 살펴보면 조선을 개국한 태조 고황제 리성계 홍무제께서 권근 등 대신에게 자신이 쓴 시 3수를 주는데 그 중 고려고경(高麗故京) 즉 '고려의 옛 수도(서울)'라는 시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此是昔時王氏業 檀君逝久幾更張"
“이곳은 옛날에 왕씨(고려 왕조)의 기업(基業)이었는데
단군(檀君) 가신지 오래이니 여러번 왕조가 바뀌었다.“


이렇게 태조 리성계도 스스로가 '오래 전 조선의 임금이 단군(檀君) 이시다' 라고 말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고 “단군 돌아가신지 오래되었다(檀君逝久)”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글에서 [서(逝)]는 [서거(逝去)] 라는 말로 '높임말'이다. 또 서(逝)는 사(死)의 높임말이다. 즉 태조는 단군(檀君)께서 오래 전 부여조선의 임금이시라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고 단군께서 [서거(逝去)] 하셨다는 표현으로 각별히 존칭하고 있다.

조선이 얼마나 위대하고 찬란했고, 나라 영토가 얼마나 넓었는지, 나아가 중시조 단군이 얼마나 선정을 했고 칭송을 받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매국역적들이나 다름 없는 노예근성을 가진 식민사관 사학자들은 아직도 ‘단군신화(단군이 실존하지 않았고 단군이 실존했다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와 같다라는 뜻)’라는 말로 혹세무민,무지몽매하게 만들고 있고, 특히 특정종교는 우리 조상의 동상인 단군상을 훼손하는 등 극악무도한 행위를 했는데, 자신의 뿌리인 조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저지른 광신도들이 부지기수이다.

태조는 권근에게 자신의 시 3수를 준 후 자신이 시 제목들을 정해주면서 권근에게 시를 짓게 하였다.그 중 [시고개벽동이주(始古開闢東夷主)]라는 시 제목도 주었는데 이는 [먼 옛날 한국(동이(東夷))이 개벽(開闢) 할 때의 일]이라는 뜻이다. 이 제목에 대해서 권근이 지은 시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聞說鴻荒日 檀君降樹邊 位臨東國土 時在帝堯天 傳世不知幾 歷年曾過千 後來箕子代 同是號朝鮮"
" 듣자하니 아주 먼 옛날 단군(檀君)께서 강림하시어 동국(東國 : 동방)의 임금이 되시었네.
때는 요임금과 같은 시대인데
몇 세대를 이었는지는 모르나 햇수로는 천년도 더 오랬다 하네.
후에 기자(箕子) 때에도 나라이름은 역시 똑같이 조선(朝鮮)이라 불렀네."

 
출처: 조선왕조실록 인터넷판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C%A1%B0%EC%84%A0%EC%99%95%EC%A1%B0%EC%8B%A4%EB%A1%9D%EC%9D%98+%ED%83%9C%EC%A1%B0+6%EB%85%84+3%EC%9B%94+8%EC%9D%BC+&keyword=%EC%A1%B0%EC%84%A0%EC%99%95%EC%A1%B0%EC%8B%A4%EB%A1%9D%EC%9D%98+%ED%83%9C%EC%A1%B0+6%EB%85%84+3%EC%9B%94+8%EC%9D%BC

위에서 보면 권근도 태조와 마찬가지로 단군(檀君)께서 한국의 오래 전 임금이시라,

▲ 조선을 개국한 단군왕검(한검)의 14세때 모습의 추상화    

하고 있고 단군왕검 시대의 나라이름도 부여조선(扶餘朝鮮)이고 후일 1392년 나라이름도 조선(朝鮮)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위에 보듯이 태조와 권근은 오래된 시기에 배달국에 이어 부여조선이 있었고 그 임금이 ‘단군’이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태조는 단군께 [서거(逝去)] 라는 말로 존칭하고 있고 권근은 조선을 왜 조선이라고 나라이름을 지었는지, 부여조선을 계승하는 뜻으로 조선이라는 나라이름을 지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태조 2년 2월 15일 기사에 보면 태조는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로 정한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東夷之號 惟朝鮮之稱美 且其來遠 可以本其名而祖之"
" 동이(東夷)의 나라 이름은 조선(朝鮮)이 아름다운 이름이고 오래 된 이름이니
이 이름으로 나라이름을 삼는 것이 가할 것이다." (朝鮮을 국호로 정한 이유)

이러한 실록의 기사들로 볼 때 태조 스스로가 부여조선(단군조선)을 이야기하고 있고, 조선이 단군조선을 계승하는 뜻으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지었으며, 태조 역시 조선이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개국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부여조선’이 당시 우리 조국의 오래 전 나라이름으로 확증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일례라 하겠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선시대 임금이 단군, 즉 한검 또는 왕검으로 불렸다는 것을 말하고, 단군이 실존인물이었다는 것을 밝혀주는 대목이다.

인터넷판 조선왕조실록에서 ‘단군’을 검색해 보면 조선 조정에서 국가적인 행사로 한민족의 국조로서 신궁에서 제사를 지내는 기록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조선 태조가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울 때부터 부여조선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으니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데도 아직도 ‘단군신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학자와 교수, 일반인들이 많다. 일제감정기때 일본사학자 금서룡이라는 자가 땡 중 일연이라는 자의 ‘삼국유사’를 접하고 곰과 호랑이(은유적 표현, 호족과 웅족임)부분에서 우리의 역사가 일본보다 앞서 있는 열등감을 만회하고자 자신들의 역사와 비슷하게 조작하기 위해, 단군 조선시대를 부정하고 왜곡하고 나아가 아예 말살시키기 위해, 일본식 말인‘ 신화(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것이 식민사학자 이병도 일파와 그 후계자 또는 제자 또는 후학들이 밥줄을 놓칠까봐 자신들 머리와 배떼지에 집어넣어 놓고 ‘단군신화’라고 주장 해왔다. 그리고 교과서에 기록하고 말았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들이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며 국민이란 말인가?

삼국유사의 의도와 역사적 허구성에 대해

즉, 곰이 인간으로 화했다, 호랑이가 사람으로 화했다는 식의 표현은 일종의 은유적인 표현방식으로 우회적으로 묘사 되었던 것인데, 이병도 일파 등에 의해 ‘단군신화’가 맞다면, 우리는 곰의 자손이라는 말이 된다. 과학적 생물학적으로 맞는가? 똥파리가 소 혓바닥에 똥을 갈겨버린 것처럼 역겹다.
 

 



땡 중 일연의 ≪삼국유사(삼국의 역사서 첮장에 단군조선을 기록해 놓은 서책)≫을 지은데 반론하고자 김부식이≪삼국사기≫로 바로잡고자 지었다는 것인데, 얼마나 우스꽝 스런 잡서인지 아는가? 더욱이 웃긴 것은 두 잡서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역사상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인정받고 있다는사실이다. 국보 제306호로 지정된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승려 일연(一然.1206∼1289)이 75살이던 충렬왕 7년(1281)에 편찬한 역사서라고 나와 있다. 일제 강점기때 금서룡과 이병도 일파에 의해, 그리고 광복 후 이병도 일파 제자와 후계자들에 의해, 현재도 이들 후학들이 강단사학계를 주름잡으며 하는 말들 중에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써서 우리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할 수 있다'라고 떠벌리고 있는 현 상황이다.

여기서 삼국에 대해 기록해야할 책에 뜬금없이 그것도 책 첫 장부터 '(중국의)위서와 고기를 보았는 데 거기에 단군의 어미가 짐승 곰 이었다고 이렇게 나오더라' 하면서 '단군조선'을 짐승 곰 운운하며 허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서 고려시대 땡 중 일연이 어떤 목적으로 또 얼마만큼 우리 역사를 왜곡했는지 짚어봐야 하며, 일제가 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을 불태우지 않고 일제왕실에 가져가지도 않았는지 진실을 알아야 한다.

실증사학으로 범접을 못하게 하고 있는 대한민국 강단사학계에서는 만약 이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삼국 시대 이전 역사를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 동이전(東夷傳)에 의존해야 하는 초라함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떠벌리고 있는 세태를 목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연이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대한 잘못 기록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삼국유사를 편찬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진실이라고 믿는가? 두 잡서 주인공이 흉노족 계통 스키타이족이며, 사대하는 자들이었고 중국 사서를 지들 마음대로 각주하고 해석해서 옮긴 잡서다라는 사실을 아는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地理書)라고 알려진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비로서 '조선(朝鮮)'이 나온다. 이때가 우왕(禹王)시절이며, 련방련합(聯邦聯合) 국가인 배달나라 단군시대 삼세단군(三世檀君)인 가륵천황(嘉勒天皇) 시절이라고 나온다.

이를 사마천이 왜곡하고 신라계 고려인 땡 중 일연이 사대부답게 ‘조선’이란 뿌리를 싹뚝 잘라 불국정토를 만들 의도에서 지었고 - 흉노족 일파인 스키타이 족속인 석씨 후예인 본명 김견명金見明으로 사대모화사상을 가진자, 불교를 진흥시키려는 계략자 - 후에 일제식민시대 일본인 사학자 금서룡(今西龍)이라는 자가 지금의 서울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단군의 모母가 마늘 쑥 등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라는 짐승 곰 부분을 꺼내들며 '아주 좋은 책이야'하고 무릎을 치며 기뻐하고 일본말인 '신화(神話.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넣어 '단군신화' 라는 괴상한 용어를 만들어 전파한 것인데, 식민사학자요 반도사관론자요 민족반역자인 이병도 일파와 매국역적들에 의해 현재까지 "단군신화"로 불리우고 있다.

1948년을 대한민국 '개국 또는 수립' 원년으로 표현해야 할 것을  '건국' 원년으로 행사하는 지지리도 역사의식이 없는 이명박 정부

그렇다면 고려의 땡 중(衆. 승려보다는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용어로 선택했음) 일연은 삼국유사라는 책 첫 장부터가 부여조선(강단사학계는 古朝鮮)을 집어넣었던 것인데, 일연이라는 땡중이 '위서(魏書)와 고기(古記)에 나와 있더라' 면서 "단군왕검의 어미가 짐승 곰이었다"라고 기록해 버렸는데, 이것이 일본인 금서룡에 의해 ‘단군신화’로 둔갑해 매국노 이병도 일파와 그자의후학들이  지금도 요지부동으로 뇌까리고 있다. 그러나 일연이 사서 '위서와 고기'에 나왔다고 하는데, 그러한 책에서 '단군의 어머니가 짐승 곰이었다'고 쓴 기록이 단 한구절도 없다.
 

▲ 특정 종교에 의해 우리의 조상인 단군상의 목을 잘라 버리고 차마 눈뜨고 못봐줄 낙서. 자신의 조상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까지 하겠는가?    

즉, 고려때 일연이라는 땡 중은 광활한 영토를 지녔던 련방련합 민족체를 허물어뜨리고 우리 민족을 비하하고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허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불교를 뿌리내릴 수 있도록 배달민족의 시원인 '조국(단군조선.배달나라)'을 없애려했던 최대 매국역적반역자인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사서로 인해 지금도 우리 정부는 건국 몇 주년 하는 식으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1948년을 건국 원년으로 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역사는 뭣도 모르면서 말이지. 이 세상에서 같은 민족이 어떠한 정변이나 왕조가 바뀔때, 순차적으로 나라를 새로 세울때는 '개국 수립 창업 창립'이라고 쓴다는 것도 모르는 바보 천치도 있는가?

그런데 이 땡 중이 지은 삼국유사의 거짓된 점을 바로 잡으려고 7년 후에 동안(動安) 리승휴(李承休) 선생이 지은 제왕운기(帝王韻記)가 나왔다. 또 세종실록 지리지 평양조에 '단군고기'라는 책도 나왔다. 이후 땡 중 때문에 수많은 사학자들이 단군조선사에 관한 책을 출간했으나 일제에 의해 20만여권이 불타 없어지고, 친일숭미론자 등 더러운 노예 짓거리를 한 자들 때문에 지금껏 우리 민족만 무지몽매하고 있다.

민족정기를 구현해 낼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만들어 버린 정권

황당무계(荒唐無稽)한 말들과 엉터리 해석들이 공공연히 기정사실화 된 채, 실로 오랜 세월동안 잘못 인식되어 왔던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특히 사대주의자와 친일사학자들, 실증학자(강단사학자. 이병도일파 제자 또는 그제자의 제자들)에 의해서, 더욱 왜곡되고 호도 되어 왔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왜곡되고 가려져 왔던 역사의 참된 진실을 하나하나 밝혀내고, 한인시대와 한웅시대에 걸쳐 온 세계에 문명과 사랑과 평화를 전달하고 인류의 정신을 가르치고 지배했던 위대한 조선시대와 우리 선조들이 이룩하였던 찬란한 역사를 밝히는 일에 모두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늘 민족인 천손의 후예인 우리들 모두가 바른 이성적 판단으로 참된 진실을 알아내고, 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 바로 세워서 찬란하고 웅혼한 기상을 되찾아 온 인류에 사랑과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자고 주장한다.

나아가 필자는 현재 국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채 영어를 필수 과목으로 하고 있는 정부정책에 강력히 제동을 걸어서라도 “국사는 필수로, 영어는 선택으로" 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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