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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국(발해)의 강역은 원폭 9,000리

5경 중 서경은 산서성 하진시, 15부 중 철리부는 산서성 남부

성훈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9/02/24 [19:34]

대진국(발해)의 강역은 원폭 9,000리

5경 중 서경은 산서성 하진시, 15부 중 철리부는 산서성 남부

성훈 칼럼니스트 | 입력 : 2009/02/24 [19:34]

 

대진국(발해)는 강역이 넓어 5경을 두어 통치했다. <신당서 권219 북적열전 144, 발해>의 기록을 보면, "이때에 이르러 해동성국(해동성국)이 되었다. 국토는 5경 15부 62주(五京十五府六十二州)를 두었는데, 

숙신의 옛 땅(肅愼故地)을 상경(上京) 용천부(龍泉府)라고 했으며, 용주(龍州),호주(湖州),발주(渤州) 등 3주를 다스렸다. 

그 남쪽은 중경(中京) 현덕부(顯德府)라고 하였는데, 노주(盧州),현주(顯州),철주(鐵州),탕주(湯州),영주(榮州),흥주(興州) 등 6주를 다스렸다.  

예맥의 옛 땅(Ꞑ貊故地)에는 동경(東京) 용원부(龍原府)라고도 하고 책성부(柵城府)라고도 했으며, 경주(慶州),염주(鹽州),목주(穆州),하주(賀州) 등 4주를 다스렸다.  

옥저의 옛 땅(沃沮故地)에는 남경(南京) 남해부(南海府)라고 하였으며, 옥주(沃州),정주(睛州),초주(椒州) 등 3주를 다스렸다.  

고구려의 옛 땅(高麗故地)에는 서경(西京) 압록부(鴨淥府)라고 하였으며, 신주(神州),환주(桓州),풍주(豊州),정주(正州) 등 4주를 다스렸다.  

장령부(長嶺府)는 하주(瑕州)와 하주(河州) 2주를 다스렸다.
부여의 땅(扶餘故地)에는 부여부(扶餘府)를 두고 항상 강병을 두어 거란을 막았으며 (常屯勁兵 扞契丹) 부주(扶州)와 선주(仙州) 등 2주를 다스렸다.
정힐부(鄭詰府)는 정주(鄭州), 고주(高州) 2주를 다스렸다.
읍루의 땅(挹婁故地)에는 정리부(定理府)를 두었으며 정주(定州),반주(潘州) 이주를 다스렸다.
안변부(安邊府)는 안주(安州),경주(瓊州) 등 이주를 다스렸다.
솔빈의 땅(率賓故地)에는 솔빈부(率賓府)를 두어 화주(華州),익주(益州),건주(建州) 등 삼주를 다스렸다.
불열의 땅(拂涅故地)에는 동평부(東平府)를 두어 이주(伊州),몽주(蒙州),타주(沱州),흑주(黑州),비주(比州) 등 오주를 다스렸다.
 
철리의 땅(鐵利故地)에는 철리부(鐵利府)를 두어 광주(廣州),분주(汾州),포주(蒲州),해주(海州),의주(義州),귀주(歸州) 등 육주를 다스렸다.

월희의 땅(越喜故地)에는 회원부(懷遠府)를 두었으며 달주(達州),월주(越州),회주(懷州),기주(紀州),부주(富州),미주(美州),복주(福州),사주(邪州),지주(芝州) 등 구주를 다스렸다.
안원부(安遠府)는 영주(寧州),미주(郿州),모주(慕州),상주(常州) 등 사주를 다스렸다.
또 영주(郢州),동주(銅州),속주(涑州)로 독진주(獨奏州)를 삼았다. 

용원(동경)의 동남쪽 연해는 일본도이고,
남해(남경)는 신라도이다.
압록(서경)은 조공도이고,
장령은 영주도이며,
부여는 거란도이다.  

地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 以肅愼故地爲上京曰龍泉府領龍湖渤三州 其南爲中京曰顯德府領盧顯鐵湯榮興六州 Ꞑ貊故地爲東京曰龍原府亦曰柵城府領慶鹽穆賀四州 沃沮故地爲南京曰南海府領沃睛椒三州 高麗故地爲西京曰鴨淥府領神桓豊正四州 曰長嶺府領瑕河二州 扶餘故地爲扶餘府常屯勁兵扞契丹領扶仙二州鄭詰府領鄭高二州 挹婁故地爲定理府領定潘二州 安邊府領安瓊二州 率賓故地爲率賓府領華益建三州 拂涅故地爲東平府領伊蒙沱黑比五州 鐵利故地爲鐵利府領廣汾蒲海義歸六州 越喜故地爲懷遠府領達越懷紀富美福邪芝九州 安遠府領寧郿慕常四州又 郢銅涑三州獨奏州  

위 신당서의 기록으로는 5경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이 나라 식민사학계는 9,000리 강역을 가지고 있었던  대진국(발해)의 강역을 만주 일대로 비정하고 있으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비정으로 <조선사 35권>에 나와 있는 일제의 반도사관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지껄이고 있다고 하겠다. 언제쯤이나  그들이 거짓말을 중단할지.....

▲  일제의 식민사학계가 비정한 발해의 5경.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지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서 5경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대진국의 남경인 남해부는 본래 남옥저의 옛 땅이다. 지금의 해성(海城)현이 그것이다. 서경인 압록부는 본래 고리국이요, 지금의 임황(臨潢)이다. 지금의 서요하는 곧 옛날의 서압록하였다. 고로 옛 책에서의 안민(安民)현은 동쪽에 있으며, 그 서는 임황현이다. 임황은 뒤에 요나라의 상경임황부가 된다. 곧 옛날의 서안평(西安平)이다." 

여기서 대진국의 남경 남해부는 신라로 가는 통로이므로 하남성에서 황하 북부에 있던 지명으로 보인다. 현 초작(焦作)시. 학벽(鶴壁)시, 신향(新鄕)시가 그 대상이다.
그리고 대진국의 서경압록부는 옛날의 서안평이므로 현 산서성 운성시 하진시로 비정할 수 있다. 그 근거로는 <신당서>와 <한서지리지>의 아래 기록을 들 수 있다.  

高丽,本扶馀别种也。地东跨海距新罗,南亦跨海距百济,西北度辽水与营州接,北靺鞨。其君居平壤城,亦谓长安城,汉乐浪郡也,去京师五千里而赢,随山屈缭为郛,南涯浿水,王筑宫其左。又有国内城、汉城,号别都。水有大辽、少辽:大辽出靺鞨西南山,南历安市城;少辽出辽山西,亦南流,有梁水出塞外,西行与之合。(번역 생략)

有马訾水出靺鞨之白山,色若鸭头,号鸭渌水,历国内城西,与盐难水合,又西南至安市,入于海。而平壤在鸭渌东南,以巨舻济人,因恃以为堑。(마자수가 있는데 말갈의 백산에서 발원하여 색이 오리의 머리와 같아 압록수라 부른다. 국내성의 서쪽을 흘러 염난수와 합쳐져 또 서남으로 안시까지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한서지리지:汉书·地理志》:“马訾水,西北入盐难水,西南至西安平入海,过郡二,行二千一百里。”(마자수는 서북으로 염난수로 들어가고 서남으로 서안평까지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2개 군을 지나고 2,100리를 지난다.

《通典》称“马訾水一名 鸭绿江”。(마자수는 일명 압록강이다) 

위 기록에서 압록수는 산서성의 주 강인 현 분하(분하)이며, 여기서의 바다는 현 황하로 풀어야 한다. 즉 현 분하(압록수)가 현 황하(바다)로 들어가는 곳은 산서성 운성시에 있는 하진시이다. 즉 이곳이 대진국의 서경인 압록부인 것이다. 

▲  서안평은 현 분하(압록수)가 황하(바다)와 만나는 곳으로 산서성 운성시 하진시이다.
 

그리고 15부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철리부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철리의 옛 땅(鐵利故地)에는 철리부(鐵利府)를 두어 광주(廣州), 분주(汾州), 포주(蒲州), 해주(海州), 의주(義州), 귀주(歸州) 등 육주를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이 어디인지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알아보기로 하자.

1. 분주(汾州)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데, 현 산서성 임분시 주위를 말함이다.

1. 后魏太和间置,治蒲子城,在今山西隰州。(현 산서 습주)
2. 后魏孝昌中置,治西河,今山西汾阳县治,北齐改曰南朔州,北周改曰介州,隋改曰西河郡,唐置浩州,改曰汾州,又改为西河郡,寻复为汾州,宋曰汾州西河郡,金元皆曰汾州,明升为汾州府。(현 산서성 분양현)
3. 东魏置南汾州,北周改曰汾州,北齐复曰南汾州,周曰西汾州,隋废,唐置耿州,改曰汾州, 寻曰南梁州,又废国慈州,故治即今山西吉县。(현 산서성 길현)


2. 포주(蒲州)는 고죽성(孤竹城)이 있던 곳으로, 산서성 남부 영제시에 있으며, 백이.숙제의 묘가 있는 곳과 아주 가깝다.

1. 北周置蒲州,隋为河东郡,唐复为蒲州,改河中府,明复曰蒲州,清升为蒲州府,属山西省,民国废,治所为今永济县。(산서성 영제현)
2. 汉蒲子县地,后魏分置定阳县,改曰石城,又改置蒲子县,因汉蒲子县为名,在今山西蒲县东南,隋移于今县东北三十里箕城,又移于今县西南二里,改为蒲县,唐移于今治,金升为蒲州,元仍曰蒲县,清属山西隰州,民国初属山西河东道。 (산서성 포현)



3. 해주(海州) : 산서성 남부 운성시에 있는 염지가 있는 곳이다.
运城古名潞村,位于山西南部,濒临河东盐池。河东盐池又名解池,是一个古老的天然结盐之地。北魏郦道元《水经注》载:“池水东西七十里,南北十七里。紫色澄亭,潭而不流。水中食盐,自然印成。朝取夕复,终无减损。
 

▲  산서성 황하 굴곡지점인 운성시에 에 있는 포주와 해주. 이곳이 대진국 15부의 하나인 철리부가 있던 땅이다.


나머지 광주, 의주, 귀주 등이 어디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분주, 포주, 해주가 있는 산서성 남부로 추정된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仁安十六年句茶蓋馬黑水諸國以其國來降取爲城邑明年築松漠十二城又築遼西六城遂有五京六十州一郡三十八縣圓幅九千餘里可云盛矣是歲唐倭乃新羅並遺使入貢天下稱爲海東盛國至有渤海三人當一虎之語時君民和樂論史樂義五穀豐登四海晏然有大震六德之歌以美之
인안16년구다개마흑수제국이기국래항취위성읍명년축송막십이성우축요서6성수유5경60주1군38현원폭구천여리가운성의시세당왜내신라병유사입공천하칭위해동성국지유발해삼인당일호지어시국민화락논사낙의오곡풍등사해명연유대진육덕지가이미지

인안 16년 구다.개마.흑수의 여러 나라들이 항복해오니 이들을 성읍으로 삼았다. 이듬해 송막 12성을 쌓고 또 요서에 6성을 쌓다. 마침내 5경 60주 1군 38현을 소유하니 강역이 원폭으로 9,000리였다. 성대한 나라였다. 이해 당 왜 신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니 천하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칭송했다. 이에 발해 사람 셋이면 한 마리의 호랑이를 당한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때의 군민은 화락하고 역사를 논하며 의를 즐겼다. 오곡은 풍성하고 사해는 안락했다. 대진육덕이라는 노래가 있어 이러한 대진국을 찬미했다.

 대진국은 고구려의 핵심강역을 모두 수복하였기에, 전성기의 강역은 핵심인 산서성과 하남성으로부터 하북성 내몽고와 만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9,000리 강역이었던 것이다. <한단고기>에 기록된 기록이 허황된 것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하겠다.
 

▲ 해동성국 대진국의 강역은 하남성부터 연해주까지 원폭 9,000리였다.




만주몽골은 조선땅이었어 09/02/27 [17:12] 수정 삭제  
  그럼 발해 서경이 선양이고 서경압록부라했으니 압록이 요하임을 알수 있는데 이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압록이 고대에는 황하였을수도 있겠지만 고구려 말기부터 발해 고려조선초까지는 압록은 요하가 맞는 것으로 보이는데 게다가 삼국유사에도 요하가 압록이라 쓰여있으니 유물로도 증명이되고 문헌으로 증명이 되니 확실하지 않소 고대의 압록은 내가 보기에도 난하의 서쪽어딘가로 보이지만 발해때는 압록은 확실히 요하가 맞소 발해의 영토는 따라서 난하서남부까지로 보이지만 님처럼 황하동편을 모두 차지했는지는 좀의문이드는 군요 발해가 현토군을 공략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현토군을 나는 그당시에는 황하동쪽으로 보니 분명 난하 서남으로 상당히 진격한 것은 맞는데 과연 폭이 9천리나 되는지는 좀 안믿기는군요 5천리라는 기록이 있으니 그걸로 따져서 만주몽골을 발해가 차지했다고 보는것이 옳을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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