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1만척 군함으로 사해통일 천하일가 이룩한 나라조작하고 날조한 역사를 어떻게 국사교사서로 가르치고 배우는가?[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提高韓國新聞) 태중산 역사칼럼] 대조선사(大朝鮮史)에 들어가며... 대조선은 근세조선의 공식국호다. 대조선사를 다루게 된 이유는 위대하고 찬란했던 대조선역사를 밝혀 우리와 우리후손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함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현행 역사교과서는 다시 써야만 한다.
일제강점기하 일제(서구세력 포함)와 매국매족매혼노들은 조선사, 명사, 청사, 명실록, 25사...등 수많은 사서를 자기들 구미에 맞게 조작해 지어냈고, 이것이 지금의 식민사요 반도사이다. 이렇게 조작하고 날조한 역사를 어떻게 국사교사서로 가르치는가?
나아가 일제와 매국매족매혼노들은 우리와 가장 밀접하고 가장 가깝고 직접적인 조상들의 나라인 근세조선를 철저하게 조작왜곡해 놓아 '헬조선'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스스로 정체성 없이 떠돌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일제강점기하 마지막 총독 아베노부유끼의 고별사가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며 스스로 깨치라는 암시를 주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위대하고 웅혼한 기상을 가졌던 조상들의 후예요 대조선인이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 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수많은 사서, 유적 유물, 외국학자들이 발표한 자료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1392년 대조선국이라는 국호로서 조선을 개국시켰다. 태조 고황제 리성계가 1만척의 군함으로 사해통일 천하통일 천하일가를 이룩했고, 3000여번국을 다스린 나라였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조선왕조실록과 국조보감 원문에 들어 있다.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6월 18일 갑자 2번째기사 1403년 ○皇帝勑諭天下文武官員軍民人等:
국조보감[國朝寶鑑] 제11권 세조 25년(경진, 1460)
天眷我列聖 繼世昭聖武 庶揚無競烈 是用歌且舞아, 於皇聖穆 建牙于朔 遹篤其慶 肇我王迹 頑之豪 據雙城 我聖桓 于濯征 狙獷亡 拓我疆 咨麗失馭 外侮交熾 島夷縱噬 納寇恣睢 紅巾炰烋 元餘奰屭 孼僧跋扈 胡魁陸梁아, 於皇聖祖 神武誕揚 載宣天威 赫赫堂堂 愾我敵 戎虎貔 鼓厥勇 若翰飛 動九天 正又奇 螗斧亢 旋自糜파 竹斯破 孰我支 耆定武 神之爲 我雄我奮 如雷如霆 胡堅莫催 胡險莫平 連連安安 奏我訊馘 神戈一揮 妖氛倏廓 無侮無拂 祚我東國 麗主拒諫 敢行稱亂 我運神斷 我師我返 天人協贊 義旗載回 順乃多助 天休震動 士女悅豫 徯我寵綏 壺漿用迎 旣滌穢惡 東海永淸 彼孤臣 煽禍機 我皇考 克炳幾 神謀定 世以靖 島夷匪茹 虔劉我圉 爰赫我怒 爰整我旅 萬艘駕風 飛渡溟渤 乃覆其巢 乃擣其穴 譬彼鴻毛 燎于方烈 鯨波乃息 永奠鰈域아, 於皇列聖 世有武功 盛德大業 曷可形容 我武有奕 進止維程 委委佗佗 永觀厥成
기록의 나라였던 대조선이 왜 기록도 없고 갑자기 멸망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 의문을 의심도 안하고 살피지도 않고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아니야'라고 부정하는데 문제가 있다. 서세동점, 서구는 15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까지 수세기에 걸쳐 대조선을 침략하고 멸망시켰다는 사실이다. 400여년 간 조선은 서구와 왜구들을 막아낸 위대한 나라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못난 조상들이었다며 짓밟고 폄훼도 부족해 경멸시까지 하여 스스로 비탄에 빠지고 자탄하고 있다. 조상들의 한은 어떻게 달래야 하며 못난 후손으로 언제까지 살아가야 할까?
그러나 근세조선을 파면 팔수록 엄청난 유물 등 진실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아시아ᆞ유라시아 ᆞ중앙아시아 ᆞ동남아시아 ᆞ러시아 ᆞ유럽 ᆞ아프리카 ᆞ아메리카 곳곳에서 조선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윤복 ᆞ김홍도 화가의 그림 1800여점이 미국의 펜실베니아대학 박물관에 있다. 한 대학에서만 이렇게 많이 있다. 특히 이 그림들은 공개불가다. 지금껏 그림이 밝혀진 것은 주변 경관이나 어딘지 알 수 없는 부분만 편집해 공개해놨다. 단오절 그림, 씨름...
종교를 앞세운 극우와 극좌는 이러한 조선의 역사에 대해 유물 자료 몇 점 가지고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근세조선을 위대하고 찬란한 나라로 조작하지 말라며 음해 비방질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 조선이란 나라가 이 남북의 땅 반도를 벗어나 지구촌 곳곳에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도....
대한민국은 3대정사만 인정하고 나머지 사서는 모조리 위서로 둔갑시켜놨다. 그런데 3대정사 마저도 조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3대정사(삼국유사 ᆞ삼국사ᆞ조선사)와 일제가 만든 조선사35권과 명사 ㆍ청사 ㆍ25사...등, 특히 이병도일당이 만든 반도사인 대국사관만 부여잡고 강단과 재야가 서로 내가 옳네, 니가 틀렸네로 티격태격 싸우고 있다.
보통 15대까지 직접 조상으로 생각한다고들 한다. 그러면 근세조선의 대조선인이 직접조상이다. 그러나 대한국인은 오늘도 정치와 종교와 이념의 언저리서 서로를 비방질로 난장판을 만들며 산다.
조선인들은 당쟁당파, 더럽고 게으르고 성병이 창궐하고, 힘도 없이 시기질투모함질로 살았던 조상이라면, 지금 우리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근세조선을 헐뜯고 비하하고 폄훼를 서슴지 않는 자들은 자기 조상이 조선인인지, 왜인들인지, 타민족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실록과 사서, 자료들을 공개할 것이다. 여기서는 마지막으로 한나라의 정궁인 미앙궁터 자리에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세웠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한나라의 미앙궁은 중공 산서성 서안이다. 경복궁은 1천개의 전각으로 이루어 졌으며, 그 중 임금이 정무를 보던 곳이 대명전(大明展)이다.
자료출처ㅡ 고전번역서 > 삼탄집 제1권 > 태묘에 친향한 뒤에 임금을 모시고서 잔치하다〔親享大廟後侍宴〕
[국역 주해] 미앙궁(未央宮) : 한나라 고조(高祖) 때 지은 궁전으로, 조현(朝見)을 하던 곳이다. 여기서는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을 뜻한다.
1909년 대조선은 지중해까지도 영해로 두었다. 순종황제가 지중해 해상출돌 예방법으로 반포했다는 사실이다.
승정원일기 141책 (탈초본 3237책) 순종 3년 8월 25일 신축 2/3 기사 1909년 先統(淸/溥儀) 1년제9조 2, 3 地中海及日本國竝韓國의 沿海에 在
第九條, 漁船은 舷[航]行中 特히 本條에 規定이 有 境遇를 除 外에 其積量에 相當 航行中의 船泊에 對야 規定 燈을 揭거나, 又 此를 表示이 可홈。
一, 無甲板船 卽全部를 塗張 甲板에 因야 海水의 浸入을 防치 못 船이 夜間漁業에 從事에 當야 其放出 漁具의 端과 本船間의 水平上의 距離가 百五十尺以內되 時 周回로붓터 見得 白燈一個를 揭이 可홈。 無甲板船이 夜間漁業에 從事에 當야 其放出 漁具의 端과 本船間의 水平上距離가 百五十尺을 超 時 周回로붓터 見得 白燈一個를 揭고, 且我船이 他船에 向야 漸近야 往 時, 又 他船이 我船에 向야 漸近야 來 時 其白燈의 下方에 少야도 三尺을 隔고, 且漁具의 結着 方向에셔 水平上으로 少야도 五尺을 隔야 白燈一個를 增表이 可홈。
二, 第一에 規定 無甲板船을 除 外에 流網을 用야 漁業에 從事 船舶은 網의 全部, 又 一部를 水中에 投下 間에 最히 見得기 易 所에 白燈二個를 揭이 可홈。 此兩燈은 上下의 距離가 六尺보담 不少고 十五尺보담 不多며, 且龍骨線으로 測 前後의 距離가 五尺보담 不少며 十尺보담 不多도록 其一燈을 他燈下의 下方에 裝置고 其下燈은 網의 方向에 揭이 可홈。 此而[兩]燈은 周回가 不少야도 三海里의 距離로붓터 見得 者를 要。 摠積量二十噸未滿의 帆走漁船은 地中海及日本國竝韓國의 沿海에 在야 반다시 兩燈中 其下燈을 揭을 要치 아니。 然이나 此를 揭치 아니 時 他船이 我船에 向야 漸近야 來든지, 又 我船이 他船에 向야 漸近야 往 時 少야도 一海里의 距離로붓터 見得 白燈一個를 同一 位置【網 又 漁具의 方向에 在야】에 表示이 可홈。
三, 第一에 規定 無甲板船을 除 外에 延繩을 用야 漁業에 從事에 當야 延繩을 結着거, 又 此를 曳入 船舶으로 碇泊치 아니고, 又 第八에 依야 停留치 아니 者 流網을 用야 漁業에 從事 船舶과 同一 燈을 揭이 可홈。 其延繩을 延거, 又 曳網을 用 者 其船의 種類에 應야 航行中의 汽船, 又 帆船에 對야 規定 燈을 揭이 可홈。 摠積量二十噸未滿의 帆走漁船은 地中海及日本國竝韓國의 沿岸에 在야 반다시 兩燈中 其下燈을 揭을 要치 아니홈。 然이 此를 不揭 時 他船이 我船에 向야 漸近야 來든지, 又 我船이 他船에 向야 漸近야 往 時 少야도 一海里의 距離로붓터 見得 白燈一個를 同一 位置【釣繩의 方向에 在야】에 表示이 可홈。
해상 충돌 예방법을 비준하다
순종실록 3권, 순종 2년 10월 8일 양력 1번째기사 1909년 대한 융희(隆熙) 3년 해상 충돌 예방법을 비준하다
법률(法律) 제27호, 〈해상 충돌 예방법(海上衝突豫防法)〉을 재가(裁可)하여 반포하였다.
【원본】 4책 3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40면 【분류】 사법-법제(法制)
八日。 法律第二十七號, 海上衝突豫防法。 裁可頒布。
【원본】 4책 3권 34장 A면 【국편영인본】 3책 540면 【분류】 사법-법제(法制)
[다음편 부터는 실록과 사서 등 원문해석과 함께 게재할 예정입니다.]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역사는 생활이며 정치다. 모든 일상은 역사로 이루어 진다. 가장 가깝고 가장 밀접하고 직접적인 조상들의 나라 대조선. 우리는 세뇌되어 식민반도사만 알고 있다. '조선은 실로 위대하고 찬란했다.' 조상들의 나라 대조선의 역사를 바르게 알자. 우리는 대조선인이다. 그래서 우리와 후손들에게 자부심과 자긍심을 심어주자! (자료 및 제보를 보내 주실 곳: zaqwsx1312@hanmail.net)
|
연재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