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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1만척 군함으로 사해통일 천하일가 이룩한 나라

조작하고 날조한 역사를 어떻게 국사교사서로 가르치고 배우는가?

태중산 역사칼럼 | 기사입력 2017/07/26 [16:55]

조선은 1만척 군함으로 사해통일 천하일가 이룩한 나라

조작하고 날조한 역사를 어떻게 국사교사서로 가르치고 배우는가?

태중산 역사칼럼 | 입력 : 2017/07/26 [16:55]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提高韓國新聞) 태중산 역사칼럼] 대조선사(大朝鮮史)에 들어가며... 대조선은 근세조선의 공식국호다. 대조선사를 다루게 된 이유는 위대하고 찬란했던 대조선역사를 밝혀 우리와 우리후손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함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현행 역사교과서는 다시 써야만 한다.

 

일제강점기하 일제(서구세력 포함)와 매국매족매혼노들은 조선사, 명사, 청사, 명실록, 25사...등 수많은 사서를 자기들 구미에 맞게 조작해 지어냈고, 이것이 지금의 식민사요 반도사이다. 이렇게 조작하고 날조한 역사를 어떻게 국사교사서로 가르치는가?

 

▲ 교과서와 사전 등지에 명태조 주원장 어진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사진 왼쪽은 조선 태조 고황제 리성계(연호 홍무제) 어진이다. 전혀 다른 사진인데도 주원장으로 날조해놨다.     © 태중산 역사칼럼니스트

 

▲ 주원장 진짜 모습. 중공당국이 주원장의 가짜묘를 비공개하고 있다. 홍건적과 주원장은 리성계장군에게 소탕되었다.     © 태중산 역사칼럼니스트

 

나아가 일제와 매국매족매혼노들은 우리와 가장 밀접하고 가장 가깝고 직접적인 조상들의 나라인 근세조선를 철저하게 조작왜곡해 놓아 '헬조선'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스스로 정체성 없이 떠돌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일제강점기하 마지막 총독 아베노부유끼의 고별사가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며 스스로 깨치라는 암시를 주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위대하고 웅혼한 기상을 가졌던 조상들의 후예요 대조선인이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 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1945년 8월 일본의 제9대 마지막 총독"

 

조선왕조실록과 수많은 사서, 유적 유물, 외국학자들이 발표한 자료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1392년 대조선국이라는 국호로서 조선을 개국시켰다. 태조 고황제 리성계가 1만척의 군함으로 사해통일 천하통일 천하일가를 이룩했고, 3000여번국을 다스린 나라였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조선왕조실록과 국조보감 원문에 들어 있다.

 

▲ 태조 고황제 리성계 어진     © 태중산 역사칼럼니스트

 

▲ 태조 리성계의 진짜 어진은 주원장으로 둔갑시켜 놨으니, 6.25전란때 소실되었다며 추측으로 그린 것이다.     © 태중산 역사칼럼니스트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6월 18일 갑자 2번째기사 1403년

○皇帝勑諭天下文武官員軍民人等:

朕惟天生一代之君, 必成一代之治, 自古以來, 莫不皆然, 而其間治有隆汚, 政有得失, 亦由人君善用人與不善用人之所致也。 且以唐、宋言之, 唐 太宗有撥亂反正之材, 抱濟世安民之德, 克致貞觀之治, 斗米三錢, 外戶不閉, 四方肅靖, 蠻夷率服, 近古鮮比。 求其故, 太宗蓋能用天下之賢, 王珪、魏徵, 釋之於嫌怨; 李靖、尉遲敬德, 擧之於仇敵; 房玄齡、杜如晦, 用之於異代。 宋 太祖起介冑之中, 踐九五之位, 撫輯四方, 削夷列國, 與世休息, 迄於丕平, 開三百餘年之洪基, 興聲名文物之風俗。 求其故, 太祖亦能用天下之賢。 范質、王溥, 皆先代之舊臣; 石守信、王審琦, 俱前朝之宿將, 太祖擧而任之。 以此觀之, 唐 太宗、宋 太祖, 推赤心以用人, 故人皆盡心以事之, 遂皆成一代之明君賢臣, 載在信史, 昭然可鑑。 朕以高皇帝嫡子, 奉藩于燕, 高皇帝以燕地與胡虜接境, 屢屬以邊事。 後懿文太子薨, 高皇帝以朕堪屬大事, 欲正位東宮, 永固基本。 不幸高皇帝賓天, 允炆矯遺詔嗣位, 戕害諸王骨肉, 懷釁之意已甚, 疑朕之心實深。 卽位未幾, 首遣奸臣圍逼, 如釜魚罝兔, 決無生理。 朕實不得已起兵自救, 初豈有心於天下哉! 竟以一隅之衆, 敵天下之兵, 三四年間, 大戰數十, 小戰無算, 制勝克捷, 卒平禍亂。 此豈人力所能爲也! 賴天地宗社之靈, 父皇母后之佑, 天命所集, 人心所歸, 是以至此。 朕自卽位之初, 不敢用一毫自私, 思天下者, 父皇之天下, 軍民官員, 皆父皇之赤子, 除更改父皇成憲, 濁亂父皇天下之奸惡, 悉已誅戮, 其餘文武官員, 仍舊用之無疑, 陞賞黜罰, 一從至當而已。 夫以唐 太宗、宋 太祖, 尙用異代之臣。 況朕, 父皇之臣, 素非讎怨, 他人之比? 近者, 間有無知小人, 尙懷疑心, 不思朕推赤心委任之意, 居閑則妄生異議, 處事則不肯盡心, 此徒蓋不達天命故也。 人君代天理物, 故曰天子; 奉行天命, 故曰天吏。 若不有天命, 凡有力者, 皆得爲之。 且以近代論之, 元有天下, 海宇之廣, 生齒之繁, 國用之富, 兵甲之盛, 孰得而勝之! 及天命已去, 群雄竝起, 我太祖高皇帝不階寸土一民, 卒平禍亂而有天下, 蓋亦用才於異代, 釋憾於怨仇, 所以創業垂統, 制禮作樂, 身致太平, 餘四十年。 由是觀之, 亦不越乎用人之所致也。 我父皇積功累仁, 聖德格天, 天命眷顧之隆, 垂裕(無彊)〔無疆〕 , 故福被朕躬, 以承大統。 朕豈敢違天命與父皇之德, 以爲治乎? 思朕往者親當鋒鏑之際, 所獲將士, 不殺一人。 於此之時, 尙不殺之, 矧今旣爲天子, 而肯私以怨惡, 加於人耶? 故用人之際, 無分彼此, 視爲一體。 若盡忠於國者, 雖讎必賞, 若心懷異謀者, 雖親必誅。 且以奉天征討將士論之, 從朕征戰, 身當矢石, 萬死一生, 以報朕父皇之恩, 其有犯法者, 朕亦不宥。 何則? 法度, 本父皇法度, 朕豈敢私! 今天下一家, 四海一統, 軍民相樂, 共享太平。 敢有不思太祖之恩, 妄興異議, 自分彼此, 心懷疑忌, 志有不足, 訕毁怨謗, 不安其職者, 必有天災人禍。 事發到官, 族滅其家。 朕仰遵成憲, 俯察輿情, 推至公之心, 廣仁厚之化, 嘉惠海內, 子育元元, 欲比隆前規, 以臻至治。 爾天下文武官員軍民人等, 遵守朕訓, 各盡乃心, 毋妄懷疑, 以速咎戾, 則可以皆保富貴於無窮矣。 故玆勑諭, 宜體至懷。

 

▲ 일본에서 보관중인 조선원선. 이 배가 정크선이다. 정크선은 최대 2만톤까지 있었다. 추후 열거     © 태중산 역사칼럼니스트

 

▲ 정크선과 거북선. 사진=나무위키     © 태중산 역사칼럼니스트

 

▲ 2000명의 승객과 35만 점의 도자기를 싣고 1882년에 침물한 대조선 정크선 텍싱호(Tek Sing). 1999년 발견되어 보물이 인양되었다. “동양의 타이타닉호”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사진=Original source/couldn’t find.     © 태중산 역사칼럼니스트

 

국조보감[國朝寶鑑] 제11권   세조 25년(경진, 1460)

 

天眷我列聖 繼世昭聖武 庶揚無競烈 是用歌且舞아, 於皇聖穆 建牙于朔 遹篤其慶 肇我王迹

頑之豪 據雙城 我聖桓 于濯征 狙獷亡 拓我疆 咨麗失馭 外侮交熾 島夷縱噬 納寇恣睢 紅巾炰烋

元餘奰屭 孼僧跋扈 胡魁陸梁아, 於皇聖祖 神武誕揚 載宣天威 赫赫堂堂

愾我敵 戎虎貔 鼓厥勇 若翰飛 動九天 正又奇 螗斧亢 旋自糜파 竹斯破 孰我支 耆定武 神之爲

我雄我奮 如雷如霆 胡堅莫催 胡險莫平

連連安安 奏我訊馘 神戈一揮 妖氛倏廓 無侮無拂 祚我東國 麗主拒諫 敢行稱亂

我運神斷 我師我返 天人協贊 義旗載回 順乃多助 天休震動 士女悅豫 徯我寵綏 壺漿用迎 旣滌穢惡 東海永淸

彼孤臣 煽禍機 我皇考 克炳幾 神謀定 世以靖

島夷匪茹 虔劉我圉 爰赫我怒 爰整我旅 萬艘駕風 飛渡溟渤

乃覆其巢 乃擣其穴 譬彼鴻毛 燎于方烈 鯨波乃息 永奠鰈域아, 於皇列聖 世有武功

盛德大業 曷可形容 我武有奕 進止維程 委委佗佗 永觀厥成

 

기록의 나라였던 대조선이 왜 기록도 없고 갑자기 멸망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 의문을 의심도 안하고 살피지도 않고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아니야'라고 부정하는데 문제가 있다. 서세동점, 서구는 15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까지 수세기에 걸쳐 대조선을 침략하고 멸망시켰다는 사실이다. 400여년 간 조선은 서구와 왜구들을 막아낸 위대한 나라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못난 조상들이었다며 짓밟고 폄훼도 부족해 경멸시까지 하여 스스로 비탄에 빠지고 자탄하고 있다.  조상들의 한은 어떻게 달래야 하며 못난 후손으로 언제까지 살아가야 할까?

 

그러나 근세조선을 파면 팔수록 엄청난 유물 등 진실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아시아ᆞ유라시아 ᆞ중앙아시아 ᆞ동남아시아 ᆞ러시아 ᆞ유럽 ᆞ아프리카 ᆞ아메리카 곳곳에서 조선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윤복 ᆞ김홍도 화가의 그림 1800여점이 미국의 펜실베니아대학 박물관에 있다. 한 대학에서만 이렇게 많이 있다. 특히 이 그림들은 공개불가다.  지금껏 그림이 밝혀진 것은 주변 경관이나 어딘지 알 수 없는 부분만 편집해 공개해놨다. 단오절 그림, 씨름...

 

종교를 앞세운 극우와 극좌는 이러한 조선의 역사에 대해 유물 자료 몇 점 가지고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근세조선을 위대하고 찬란한 나라로 조작하지 말라며 음해 비방질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 조선이란 나라가 이 남북의 땅 반도를 벗어나 지구촌 곳곳에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도....

 

 대한민국은 3대정사만 인정하고 나머지 사서는 모조리 위서로 둔갑시켜놨다. 그런데 3대정사 마저도 조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3대정사(삼국유사 ᆞ삼국사ᆞ조선사)와 일제가 만든 조선사35권과 명사 ㆍ청사 ㆍ25사...등, 특히 이병도일당이 만든 반도사인 대국사관만 부여잡고 강단과 재야가 서로 내가 옳네, 니가 틀렸네로 티격태격 싸우고 있다.

 

보통 15대까지 직접 조상으로 생각한다고들 한다. 그러면 근세조선의 대조선인이 직접조상이다. 그러나 대한국인은 오늘도 정치와 종교와 이념의 언저리서 서로를 비방질로 난장판을 만들며 산다.

 

조선인들은 당쟁당파, 더럽고 게으르고 성병이 창궐하고, 힘도 없이 시기질투모함질로 살았던 조상이라면, 지금 우리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근세조선을 헐뜯고 비하하고 폄훼를 서슴지 않는 자들은 자기 조상이 조선인인지, 왜인들인지, 타민족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실록과 사서, 자료들을 공개할 것이다. 여기서는 마지막으로 한나라의 정궁인 미앙궁터  자리에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세웠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한나라의 미앙궁은 중공 산서성 서안이다. 경복궁은 1천개의 전각으로 이루어 졌으며, 그 중 임금이 정무를 보던 곳이 대명전(大明展)이다.

 

▲ 조선말 일본인이 그린 경북궁     © 태중산 역사칼럼니스트

 

 자료출처ㅡ 고전번역서 >  삼탄집 제1권 >

태묘에 친향한 뒤에 임금을 모시고서 잔치하다〔親享大廟後侍宴〕


躬禋太室薦馨香 仙仗朝回坐未央 祝上三呼均蹈舞 恩頒一札正汪洋 風迎協氣來千里 雨洗驕陽浹四方 芳宴初開綏後祿 嘉賓旣醉示周行 兩階干羽陳先業 萬代規模遺後王 更有詞臣爭獻頌 直從風雅共流光

 

[국역 주해] 미앙궁(未央宮) : 한나라 고조(高祖) 때 지은 궁전으로, 조현(朝見)을 하던 곳이다. 여기서는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을 뜻한다.

▲ 중공당국이 공개한 한나라 미앙궁 복원도.     © 태중산 역사칼럼니스트

 

1909년 대조선은 지중해까지도 영해로 두었다. 순종황제가 지중해 해상출돌 예방법으로 반포했다는 사실이다.

 

승정원일기 141책 (탈초본 3237책) 순종 3년 8월 25일 신축 2/3 기사

1909년 先統(淸/溥儀) 1년제9조 2, 3 地中海及日本國竝韓國의 沿海에 在

 

▲ 북한이 조선말 1만8천리 강역도를 스크린에 펼치며 공연하는 장면. 사진=구글이미지     © 태중산 역사칼럼니스트

 

第九條, 漁船은 舷[航]行中 特히 本條에 規定이 有 境遇를 除 外에 其積量에 相當 航行中의 船泊에 對야 規定 燈을 揭거나, 又 此를 表示이 可홈。

 

一, 無甲板船 卽全部를 塗張 甲板에 因야 海水의 浸入을 防치 못 船이 夜間漁業에 從事에 當야 其放出 漁具의 端과 本船間의 水平上의 距離가 百五十尺以內되 時 周回로붓터 見得 白燈一個를 揭이 可홈。 無甲板船이 夜間漁業에 從事에 當야 其放出 漁具의 端과 本船間의 水平上距離가 百五十尺을 超 時 周回로붓터 見得 白燈一個를 揭고, 且我船이 他船에 向야 漸近야 往 時, 又 他船이 我船에 向야 漸近야 來 時 其白燈의 下方에 少야도 三尺을 隔고, 且漁具의 結着 方向에셔 水平上으로 少야도 五尺을 隔야 白燈一個를 增表이 可홈。

 

二, 第一에 規定 無甲板船을 除 外에 流網을 用야 漁業에 從事 船舶은 網의 全部, 又 一部를 水中에 投下 間에 最히 見得기 易 所에 白燈二個를 揭이 可홈。 此兩燈은 上下의 距離가 六尺보담 不少고 十五尺보담 不多며, 且龍骨線으로 測 前後의 距離가 五尺보담 不少며 十尺보담 不多도록 其一燈을 他燈下의 下方에 裝置고 其下燈은 網의 方向에 揭이 可홈。 此而[兩]燈은 周回가 不少야도 三海里의 距離로붓터 見得 者를 要。 摠積量二十噸未滿의 帆走漁船은 地中海及日本國竝韓國의 沿海에 在야 반다시 兩燈中 其下燈을 揭을 要치 아니。 然이나 此를 揭치 아니 時 他船이 我船에 向야 漸近야 來든지, 又 我船이 他船에 向야 漸近야 往 時 少야도 一海里의 距離로붓터 見得 白燈一個를 同一 位置【網 又 漁具의 方向에 在야】에 表示이 可홈。

 

三, 第一에 規定 無甲板船을 除 外에 延繩을 用야 漁業에 從事에 當야 延繩을 結着거, 又 此를 曳入 船舶으로 碇泊치 아니고, 又 第八에 依야 停留치 아니 者 流網을 用야 漁業에 從事 船舶과 同一 燈을 揭이 可홈。 其延繩을 延거, 又 曳網을 用 者 其船의 種類에 應야 航行中의 汽船, 又 帆船에 對야 規定 燈을 揭이 可홈。 摠積量二十噸未滿의 帆走漁船은 地中海及日本國竝韓國의 沿岸에 在야 반다시 兩燈中 其下燈을 揭을 要치 아니홈。 然이 此를 不揭 時 他船이 我船에 向야 漸近야 來든지, 又 我船이 他船에 向야 漸近야 往 時 少야도 一海里의 距離로붓터 見得 白燈一個를 同一 位置【釣繩의 方向에 在야】에 表示이 可홈。

   

해상 충돌 예방법을 비준하다

 

순종실록 3권, 순종 2년 10월 8일 양력 1번째기사 1909년 대한 융희(隆熙) 3년

해상 충돌 예방법을 비준하다

 

법률(法律) 제27호, 〈해상 충돌 예방법(海上衝突豫防法)〉을 재가(裁可)하여 반포하였다.

     

【원본】 4책 3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40면

【분류】

사법-법제(法制)

 

八日。 法律第二十七號, 海上衝突豫防法。 裁可頒布。

     

【원본】 4책 3권 34장 A면

【국편영인본】 3책 540면

【분류】 사법-법제(法制)

 

[다음편 부터는 실록과 사서 등 원문해석과 함께 게재할 예정입니다.]

역사는 생활이며 정치다. 모든 일상은 역사로 이루어 진다. 가장 가깝고 가장 밀접하고 직접적인 조상들의 나라 대조선. 우리는 세뇌되어 식민반도사만 알고 있다. '조선은 실로 위대하고 찬란했다.' 조상들의 나라 대조선의 역사를 바르게 알자. 우리는 대조선인이다. 그래서 우리와 후손들에게 자부심과 자긍심을 심어주자! (자료 및 제보를 보내 주실 곳: zaqwsx13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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