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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학회31차포럼, 김순진 '우리겨레 시원, 개천절의 진실!'

김일미 기자 | 기사입력 2017/07/24 [15:54]

대조선학회31차포럼, 김순진 '우리겨레 시원, 개천절의 진실!'

김일미 기자 | 입력 : 2017/07/24 [15:54]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 김일미 기자] 위대하고 찬란했던 대조선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대조선역사학회 제31차포럼이 지난 22일 오후 2시 영등포 구국실천연합 강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특별강의는 본지 역사전문위원이자 한문화사업총단대표 조홍근교수의 '세계문자의 기원은 한배달조선 우리 글'과  대조선역사학회 힉술위원 김순진교수의 '우리겨레 시원, 개천절의 진실!' 이라는 주제로 3시간 동안 강연했다.

 

▲ '우리겨레 시원, 개천절의 진실!' 특강하는 김순진교수     © 김일미 기자

 

 다음은 '우리겨레 시원, 개천절의 진실!' 2부영상과 특강 요약 자료이다.

 

"우리겨레의 시원! 개천절의 진실" 특강2부 (20170722 )
(https://youtu.be/Ec_yLP3_Dfs)

 

우리겨레 시원, 개천절의 진실! -특별강의 요약 자료

 

1. 문자(文字)를 사용하여 기록에 남기는 시대부터를 “역사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날짜”와 “시간”을 함께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시간(時間)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1년 단위로 묶어놓은 것을 “달력”이라고 한다. 아래는 <삼국사기>의 일부로 날짜를 기록함에 있어 4계절을 동시에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 <고려사>, <명사>, <청사>, <조선왕조실록>, <적벽부> 등에서 4계절을 표시하고 있는 기록을 볼 수 있다.)

 

2. 우리가 겨레의 시원을 선포한 것으로 알고 있는 “처음으로 나라를 연 날” 또는 “처음으로 하늘을 연 날”을 “개천절(開天節)”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군이 부여조선을 개국한 날을 개천절로 잘못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여조선을 우리 민족의 시원의 역사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일제의 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은 이미 깨달은 바 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고 하는 개천절을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을까? 먼저 달력의 역사에서부터 알 필요성이 있다.

 

3. 달력에는 음력과 양력이 있다. “음력(陰曆)”은 “달(月)”을 기준한 달력을 말하고, “양력(陽曆)”은 “해(日)”를 기준해서 만들어진 달력이라는 정도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달력은 구한말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이어 단발령(斷髮令, 우리 조상들이 하늘과도 같이 여겨왔었던 상투를 잘라내었다.)이 시행되었던 1895년 을미개혁 때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 정확하게는 1895년 11월 17일에 현재의 서양의 달력인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11월 17일은 음력일까? 양력일까? 여기서의 11월 17일은 분명히 음력이어야 한다.

※ 3-1. 이 역사의 시작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임진년에 왜(倭)가 일으킨 난리”라는 뜻의 왜란(倭亂)은 현대적인 용어로 “쿠데타(Cout d'etat)”에 해당하는 용어인 바, 조선(대륙 아시아)의 중앙정부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새로운 제국의 건설이 북미대륙에 전개되고 있었던 역사가 1868년 메이지유신(명치유신) 때를 기점으로 중앙제국에 다시 출현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4. 그러면 우리 민족의 고유의 달력도 또한 음력이었을까? 우리는 대부분이 음력(陰曆)을 우리 민족의 고유(固有)의 달력이라고 알고 있다. 과연 그럴까?

 

1) 음력(陰曆)은 달(月)의 달력이다. 달은 밤에 떠올라 태양빛을 반사하여 빛을 낸다. 초승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 날짜를 정확히 모르더라도 달의 모양을 보면 대략 음력 초사흘이나 음력 보름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2) 또한 음력은 달을 볼 수 있는 세계 누구나가 공유하고 있다. 그래도 음력이 우리 민족의 고유 달력일까? 더 깊이 있게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

3) 하지만 달은 “빛(光)”은 발산하고 있지만 “열(熱)”을 발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달은 뜨겁지 않다. 그러므로 뜨거움과 차가움으로 대비되는 여름과 겨울 등의 4계절은 달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4) 달은 29일에 해당하는 “한 달”은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나, 1년 365일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달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 존재하는 1년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우리 민족의 고유의 달력은 과연 음력일까? 우리 민족의 고유 달력은 음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5. 현재의 중국(China)에는 농력(農曆, 절기력), 공력(公曆, 그레고리력), 음력(陰曆) 등 3가지의 달력이 존재한다.

 

국감에서 도마에 오른 “달력 개수” 논란? http://news.donga.com/3/all/20161005/80641623/1

1)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잘 알려진 육당 최남선의 아버지 최헌규는 관상감(觀象監, 현재의 기상청)에서 근무했던 사람으로 중국의 황제로부터 황력(皇曆)을 맨 처음 직접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황력(皇曆)을 농력(農曆)으로 인쇄하여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2) 최헌규가 인쇄하여 팔았다고 하는 농력(農曆)은 우리 역사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에 중국에 농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최헌규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의 중국에서 판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1895년 서양의 달력이 들어왔다면 한자로 기록할 때 양력(洋曆)으로 기록했어야 한 것을 양력(陽曆)이라고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그렇게 했을까?

 

7. 삼국사기, 고려사, 명사, 청사, 조선왕조실록, 적벽부(赤壁賦) 등에 춘정월(春正月), 하사월(夏四月), 추칠월(秋七月), 동시월(冬十月) 등의 달력 기준의 기록이 보인다.

 

8. BC2333년은 무진(戊辰)년으로 상달 초사흘인 10월 3일이 개천절(開天節)에 해당하나 상원(上元)갑자(甲子)년으로부터 125년 되는 해이다.(신단실기 단군세기. 開天一百二十五年戊辰十月三日 國人推戴神人爲壬儉 是檀君)

 

9. 개천절(開天節)은 “상원 갑자년 상달 초사흘”에 해당하는 날로 먼저 “초사흘(3일)”은 초승달이 뜨는 날짜로 “천지인(天地人)” 사상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며, “상달”은 간지(干支), 즉 천간지지(天干地支)의 해(亥)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12지지(地支)는 해자축, 인묘진, 사오미, 신유술 등으로 나열되므로 해월(亥月)이 상달(上月)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 위와 같이 계산할 때 BC3897년과 BC8937년이 상원갑자년에 해당하게 된다. 최근에는 1864년이 상원(上元)갑자(甲子)년에 해당한다.

 

11. 제왕운기, 역대신선통감, 사요취선, 유학수지 등에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 등 역대 제왕들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12. 지금으로부터 12,900여 년 전 영거 드라이아스기가 있었다.

 

13. 14,000여 년 전의 흑피옥(黑皮玉)에 한자가 쓰여져 있다.

 

14. 청주의 소로리 볍씨는 17,000여 년 전 재배되었다.(오리자 사티바 코레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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