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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세종’ 바로 보기 [1]

조성문 | 기사입력 2008/01/10 [09:41]

‘대왕 세종’ 바로 보기 [1]

조성문 | 입력 : 2008/01/10 [09:41]
▲     © 세종신문
우리 여주는 새해 벽두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 KBS사극 ‘대왕 세종’이 그것이다. 앞으로 1년 동안 대한민국은 ‘세종’이라는 화두에 휩싸일 것이다. 국민 모두가 대왕의 생애를 반추하며 그분이 눈물겹도록 고마운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그분과 함께하는 우리 여주가 자랑스럽고 소중한 곳임을 다시 알게 될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 사람치고 세종대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세종대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많은 사람들이 ‘대왕 세종’을 시청하면서 조금이나마 세종대왕의 참모습을 알게 되었으면 한다.

 ‘대왕 세종’의 시청률이 초반부터 심상치 않다. 이른바 대박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극적 구성을 위한 몇 가지 장치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2회까지 방영된 극의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에서 하륜(河崙), 황희(黃喜), 명나라 사신 황엄(黃儼)이 동시에 등장하는 시기는 1406년(태종 6)부터다. 그리고 하륜이 의정부의 수장인 영의정이고, 황희가 승정원 지신사이며, 황엄이 그들의 황제에게 바칠 말과 처녀를 공출하러 왔을 때가 1408년과 1409년이다.
 
그렇다면 1412년에 이르러 형과 함께 대군(大君)의 칭호를 받는 충녕(忠寧; 뒤에 세종)은 지금 상황에서 ‘충녕대군’이 아니라 ‘충녕군’으로 불러야 맞는다. 태종(太宗)과 원경왕후(元敬王后)는 슬하에 4남 4녀를 두었다. 그 중에서 왕자는 양녕(讓寧 1394-1462), 효령(孝寧 1396-1486), 충녕(1397-1450), 성녕(誠寧 1405-1418)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세자인 양녕과 충녕의 나이 차는 3살에 불과하다. 그러하기에 극중 배역의 나이 차이는 좀 심한 듯 보인다.

세종대왕의 어머니인 원경왕후가 왕비가 되기 전인 정녕옹주(靖寧翁主) 시절 태몽을 꾸었다. 한양 북악산(北岳山) 위에 큰 황소 한 마리가 구름을 타고 나타났는데 뿔 사이에 빛나는 붉은 해가 끼어 있었다. 잠시 뒤 소가 봉우리 위에서 발을 헛딛는 바람에 붉은 해가 굴러 떨어지니 그 기세가 궁궐과 마을을 타 태워버릴 듯 하였다.
 
이때 어디선가 붉은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그 해를 삼키더니 정녕옹주의 품에 안겼다. 이 꿈을 꾸고 나서 곧 태기가 있었고 열달 뒤 태어난 아기가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첫돌 잔칫상에서 책을 집었다고 한다. 그만큼 책을 좋아했다는 뜻일 것이다.
 
어느날 독서에만 열중하였던 충녕군이 몸이 쇠약해져 병석에 눕게 되었다. 당분간 책을 읽지 말라는 태종의 엄명이 떨어졌고 충녕군이 읽던 책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병풍 틈에 구소수간(歐蘇手簡)이라는 책이 한권 남아 있었다. 중국의 구양수(歐陽修)와 소식(蘇軾)이 주고 받은 편지모음집이었다. 이 책을 수십번 읽고 또 읽어 한 달 후 충녕군이 병석에서 일어났을 때에는 책이 너덜너덜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쌓은 학문은 아버지 태종을 감동시키고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1416년(태종 16) 2월 9일. 임금이 “집에 있는 사람이 비를 만나면 반드시 길 떠난 사람의 노고를 생각할 것이다.”하니 충녕대군이 말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황새가 언덕에서 우니 부인이 집에서 탄식한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이 기뻐하여 “세자가 따를 바가 아니다.”하였다. 세자가 일찍이 임금 앞에서 사람의 문무를 논하다가 “충녕은 용감하지 못합니다.”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비록 용맹하지 못한 듯하나 큰 일에 임하여 대의(大疑)를 결단하는데 당세에 더불어 견줄 사람이 없다.”
 
1418년(태종 18) 6월 3일. 세자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녕대군으로 왕세자를 삼을 때 신하들이 입을 모아 충녕대군을 가리켜 효성스럽고 우애스러우며 온화하고 인자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바로 이런 분이었기에 극중에서처럼 아무리 나이 어리고 극한상황에 처했다 할 지라도 목숨을 걸고 따르는 아랫사람의 가슴을 치며 ‘왕자만이 백성을 구할 수 있다.’고 소리치는 장면은 상상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여주포커스(원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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