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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사건,화제의 사진과 인물들(1)

"자신과 남을 모두 속인다"는 '자기기인'이라는 한자성어가..

윤복현 기자 | 기사입력 2007/12/28 [11:47]

2007년도 사건,화제의 사진과 인물들(1)

"자신과 남을 모두 속인다"는 '자기기인'이라는 한자성어가..

윤복현 기자 | 입력 : 2007/12/28 [11:47]
▲  태안 앞바다 기름제거 현장
 "자신과 남을 모두 속인다"는 '자기기인'이라는 한자성어가 선정된 2007 정해년 한 해에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태안 앞 바다 기름떼를 제거하는 현장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어려운 경제상황속에서도 열심히 살아온 국민 모두가 그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막대한 국익과 관련하여 2여년 동안 감추어지고 왜곡된 '황우석 사태'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국익을 수호하기위해 치열하게 투쟁해 온 애국 국민들이 그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다.  

▲ 년간 300조 국익을 외면해 온 국정책임자 노무현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진실규명 국익수호 협의회'
 또한 수많은 인물들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새롭게 주목을 받은 인물이 있었는가 하면 비리사건에 연루돼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인사들도 있었다. 올 한 해 화제가 됐던 인물들을 분야별로 정리해 본다.
 
▲  국정 책임자가 막대한 국익문제에 대해 방관하거나 외면하면 그 책임을 묻기위해 국민에 의해 고발될 수 있다
 
◇정ㆍ관계 

▲ 이명박.박근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 `일하는 경제대통령'을 기치로 내걸고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압도적 여론지지율을 토대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6월 서울시장직을 퇴임한 이후 사실상 단신으로 대권 도전장을 냈으나 청계천 복원, 대중교통체계 개편 등 서울시장 시절 치적과 특유의 추진력으로 `거대 야당' 한나라당 내에서 비교적 단시간내 주류를 형성하며 당을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선공약으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내걸어 당 안팎에서 환경파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지난 10월 세계적 시사주간지 타임이 발표한 '환경영웅(Heroes of the Environment) 45인'에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과 함께 포함되기도 했다. 

▲박근혜 의원=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했으나 즉각 결과에 승복하면서 `통 큰 정치지도자'로서 이미지를 굳혔다. 

불법대선자금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은 뒤 2년3개월간 특유의 카리스마로 당을 운영하면서 5차례의 국회의원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40대 0의 완승을 거둔 데 이어 올해 경선 승복과 이 후보 지지유세 등으로 정치입지를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친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을 입고 정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정치인으로 꼽히는 그는 여성 국회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정치적 리더십, 모범적 의정활동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의원에게 주어지는 `백봉신사상'의 올해(제9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조순형 의원 = 대선정국에서 민주당을 살릴 `구원투수'로 부상했으나 당내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이인제 후보에게 밀리자 경선 레이스를 포기하고 대권의 꿈을 접은 뒤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 논의에 반발, 끝내 민주당을 탈당했다. 

2004년 3월 민주당 대표로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을 주도했던 그는 `탄핵 역풍'에 휩쓸려 17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지난해 7월 서울 성북을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권에 컴백했다.

이후 전효숙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과정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대선을 앞둔 범여권 대통합 논의 과정에서 `깨끗하고 강직한 이미지'를 내세워 출마를 선언, 여론조사 지지율 3위권에 오르는 파괴력을 보였지만 결국 조직과 자금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김장수 국방장관 =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 공식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면서 고개 조차 숙이지 않음으로써 군의 `기개'를 아낌없이 보여준 것으로 세인의 눈에 각인됐다.

평양에서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해 '꼿꼿 장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화제가 된 그는 귀환 뒤 기자들의 질문에 "악수를 할 때 고개를 숙이면 부딪칠 것 아니냐"며 고 농을 건네기도 했다. 

김 장관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취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정부 일각에서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 'NLL은 영토개념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 북한의 `NLL무효화' 입장을 수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가운데 "NLL은 해상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 NLL 재설정은 있을 수 없다"고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군 원로들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으로부터 격려를 받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 작년 5.31 지방선거에서 `최연소(45) 민선 서울시장'이란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당선된 뒤 올 한 해 무능.태만 공무원 퇴출제도인 '3% 퇴출제', 장기전세주택(시프트) 등으로 이목을 끌었다. 

3% 퇴출제로 공직 사회 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오 시장은 서울시내 518개 동사무소 중 120개를 폐지하는 동 통폐합, 2010년까지 서울시 공무원 정원 1천300명 감축, 기구 통.폐합을 통한 국(局) 단위 이상 기구 7개 감축 등 일련의 구조조정 계획을 쏟아 냈다. 

이 같은 시정 운영 성과에 힘입어 오 시장은 한국소비자포럼으로부터 '2007 올해의 브랜드 대상' CEO특별상을, 경향신문으로부터는 '신뢰경영 CEO대상' 지방자치단체분야 대상을 받는 등 각종 리더십 관련 상을 휩쓸었다. 

오 시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권도전 여부에 대해 "시장을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말해 10년 뒤에는 대선도전을 할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겼다.
 
▲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 = 제5대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으로 역대 위원장 가운데 처음으로 임기를 채운 뒤 8월3일 퇴임했다. 아래로 권한을 이양하는 선이 굵은 업무 스타일이었으며 소신이 강해 임기 중에 청와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신용카드사의 구조조정, 부동산발 금융시장 불안을 막기 위한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 기업공개제도의 선진화, 국제회계 기준 도입을 위한 로드맵 마련,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18년간 끌어온 생보사 상장안 등을 임기 중 해결했다.

세계 100대 은행 중 국내 은행이 4개에 불과할 정도로 국내 금융회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데 대해 항상 아쉬움을 표시했고 퇴임 직전 기자 간담회에서는 "산업자본이라고 대못질 해놓고 못쓰게 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라며 정부의 금산분리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  변양균.신정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 청와대 비서실 서열 2위에서 `신정아 허위학력 파문'에 휩싸여 나락의 길을 걷게 됐다.

행정고시 출신인 변 전 실장은 옛 경제기획원과 기획예산처에서 예산업무를 꾸준히 해온 `예산 전문가'로 부처 내 `주류'는 아니었지만 기획예산처 국장이던 2001년 민주당에 파견돼 당시 정책위 의장이던 이해찬 전 총리를 보좌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를 계기로 참여정부 출범 후 기획예산처 장관에 이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고속승진했다. 

그러나 올해 9월 초 `학력 위조' 파문의 장본인인 신정아 씨를 비호한 의혹이 제기되고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신씨에게 보낸 이메일 중 `사랑하는 쩡아에게'로 시작하는 `연서'가 발견돼 신씨와의 관계가 들통났다. 변 전 실장과 신씨의 `로맨스'는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또 검찰 수사에서 경북 울주군 모 사찰을 지원해주기 위해 행정자치부에 특별교부세 집행 압력을 한 혐의가 추가로 밝혀져 `특별교부세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 = 행정고시 출신으로는 드물게 사무관 시절부터 조사국에서 잔뼈가 굵은 조사통으로 세무행정의 최고 자리인 국세청장까지 올랐지만 부하 직원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현직 국세청장으로는 사상 처음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사무관 시절 재벌기업의 불균등 감자와 관련한 변칙 증여에 대해 외국의 사례를 원용해 500여억원을 추징, 변칙 증여에 대한 과세 기반을 마련했고 국세청장 취임 전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실시한 정부 부처 실국장급 다면평가에서 상사.동료.후배들로부터 모두 1위를 받았을 정도로 대인 관계도 원만했다. 

청장 취임 이후에는 종합부동산세 과세와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 등 굵직한 현안들을 처리하고 세금 징수를 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하는 제도를 도입해 "다음 청장은 할 일이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일을 했고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지난해 7-11월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현금 5천만원과 미화 1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11월6일 구속됐다. 

◇재계ㆍ금융계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 3월19일 열린 전경련 임시총회에서 회장에 추대됐다.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30대 그룹의 총수가 '재계 수장'을 맡았다는 점에서는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안도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계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4대 그룹 회장이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젊은 총수가 회장을 맡지 않은데 대한 실망감도 없지 않았다. 

'대안부재' 상황에서 기정사실화돼 가던 조 회장의 전경련 회장 합의추대는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이 '70대 회장 불가론'을 주장하면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우여곡절 끝에 당초 예정보다 20여일 늦게 전경련 회장에 선출된 조 회장은 정부에 전수조사를 통한 덩어리 규제 혁파를 주장해 관철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으나 7월25일 열린 제주 CEO포럼에서 사돈간인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최태원 SK그룹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 올해 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면서 명실공히 그룹 회장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1998년 갑작스레 사망한 부친 고(故) 최종현 회장에 이어 30대 젊은 나이에 경영일선에 나선 최 회장은 '오너와 전문경영인 파트너십' 체제를 도입해 손길승 회장을 후견인 삼아 경영 수업을 했다. 그러다 2003년 SK글로벌 사태로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소버린까지 공격해오면서 회장직을 내놓아야 할 뻔한 상황에까지 몰렸다. 이후 소버린이 물러나면서 안팎으로 그룹의 체제를 정비하고 입지를 다지는 작업을 했으며 그 마무리가 지주회사 체제 개편이었다.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에 방문했을 때 디카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나 다른 나이 많은 재벌 회장들의 짐을 들어주는 모습, 야구장 관중석에서 가족과 함께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들이 TV에 나오면서 국민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와이번스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우승을 하는 등 경사가 겹쳤다.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지난해 북핵 위기로 대북사업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던 금강산 관광사업 등 그룹의 대북사업들을 반석 위에 올려놨다. 

연초부터 대북화해 무드를 바탕으로 '금강산의 속살'이라는 불리는 내금강 관광을 북측으로부터 허가를 받아낸 데 이어 지난 10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백두산 및 개성관광이라는 큰 선물까지 챙겼다. 

또한 현 회장은 대북 사업 논의를 위해 11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 신뢰를 재확인하는 등 향후 대북 사업 확장을 위한 기반을 확고히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그는 그동안 끊임없이 괴롭히던 그룹 경영권 문제와 관련해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인 쉰들러홀딩스를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여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 구속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재계의 의리파' 또는 '카리스마 총수'로 통하는 김 회장은 폭력배를 거느리고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찾아가 보복폭행하는 전대미문의 '총수 보복폭행' 사건의 장본인으로서 뉴스의 초점이 됐다. 

3월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둘째 아들(22)이 북창동 나이트클럽 종업원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당하자 이를 보복하기 위해 직접 나선 `빗나간 부정'이 화근이 됐다. 김 회장은 보복폭행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대기업 총수로서는 처음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등 생애 최악의 시련을 겪었다. 

보복폭행 혐의로 구속기소된 뒤 열린 첫 공판 때 상대방을 얼마나 때렸느냐는 검찰 신문에 "복싱을 좀 아느냐. 복싱에서처럼 '아구를 여러 번 돌렸다'는 거다"라며 오른 팔을 휘두르는 동작을 취하는 등 튀는 언동으로 또 한 번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9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및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고 일본으로 출국, 현재 지친 심신을 추스르면서 향후 사회봉사명령 이행에 이은 경영복귀 구상에 몰두중이다.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 향년 87세를 일기로 지난 8월 노환으로 별세했다. 김 회장은 은행가와 공직자, 기업인, 소설가까지 폭 넓은 삶을 살아왔으며 최근까지도 전경련 자문위원을 지내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위한 경제 서적을 집필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김 회장은 해방 직후부터 대구에서 섬유사업을 벌이다 지방에도 은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1967년 지역 상공인들과 힘을 합쳐 우리나라 첫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을 세우고 초대 행장을 지냈다. 

이후 제일은행장과 외환은행장, 한국산업은행 총재,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고 전국은행연합회 회장까지 맡았다가 1982년에는 11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올랐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 기업계로 돌아와 삼성전자 회장(1987년), ㈜대우 회장(1988년)을 지냈으며 1995년부터 1999년까지는 이수화학 회장으로 일하며 이수그룹을 키워냈다. 

그는 경제인사로는 특이하게 '욕망의 방', '비둘기의 역설', '복제인간' 등 수십 편의 장.단편 소설을 출간한 소설가였으며 지난 6월에는 미수연 겸 전집 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했다.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 향년 90세를 일기로 지난 7월 숙환으로 별세했다.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리는 이 회장은 비단을 파는 점원으로 일하며 받은 개성상인의 도제식 경영 수업을 토대로 1937년 건복상회를 세워 사업가로서 여정을 출발했다.

이후 개풍상사 설립, 대한탄광 인수, 대한양회 설립, 서울은행 창립 등에 이어 1959년에 동양제철화학의 전신인 동양화학을 세운 뒤에는 40여년간 오로지 화학산업에만 매진했다. 

그는 교육, 문화예술 발전에도 관심을 보여 1979년에는 재단법인 회림육영재단을 세워 학술 문화부문 연구비 지원 활동을 했으며 1982년에는 인천 송도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해 송도 중고등학교를 운영했다. 

또 1992년 인천공장 근처에 송암미술관을 건립해 인천 시민들에게 문화예술공간을 제공하고 2005년에는 평생 모아온 문화재 8천400여점과 송암미술관 일체를 인천시에 기증했다. 

▲강권석 전 기업은행장= 3월 기업은행장으로서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했으나 11월30일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향년 57세. 연임 직후 골프 라운딩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기록했을 정도로 유난히 좋은 일이 많았던 한 해였기에 그의 예상치 못한 죽음은 금융권에 큰 충격을 줬다. 

생전에 항상 기운이 넘쳤고 일에 대한 욕심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2004년과 2005년 중소기업대출을 큰 폭으로 늘려 국책은행으로서 꾸준히 중소기업을 지원했다는 대의명분을 얻었고, 시중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기업은행을 제2의 도약대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오는 날 (중소기업의) 우산을 빼앗지 않겠다'는 우산론, '비오는 것을 미리 알려 비를 피하게 하겠다'는 일기예보론, '은행은 기업의 종합병원이고 은행원은 기업의 주치의'라는 기업주치의론 등 수려한 언변으로 톡톡 뛰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 직원들에게 남긴 `CEO 편지'에서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것을 강조하면서 바쁜 월말이지만 주변 사람들을 되돌아볼 것을 당부해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법조계 

▲임채진 검찰총장 = 올해 대선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던 `BBK 사건' 수사 와중에 총장에 취임했다. 

8월 도곡동 땅 수사 때 `∼로 보인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검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던 점을 인식한 듯 취임사에서부터 "있는 건 있다, 없는 건 없다"고 말하겠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  임채진 검찰총장
임 총장은 국회 청문회 직전 자신이 이른바 삼성 `떡값검사'에 포함돼 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한때 낙마 위기를 맞기도 했다.

취임 이후 삼성 수사와 관련해 총장 보고라인에서 벗어난 특별수사ㆍ감찰본부를 구성해 검찰에 대한 불신 정국을 타개해보려 했으나 정치권은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법무부 검찰 1.2과장과 검찰국장, 법무연수원장 등 다양한 법무ㆍ검찰 행정 보직을 거쳤고 서울지검 북부지청장, 서울지검 형사부장 및 2차장, 춘천지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주요 보직을 경험한 행정ㆍ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 및 `BBK 사건' 수사 등 올해 대선을 뒤흔든 두 가지 굵직한 검찰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지난 8월 도곡동 땅 수사결과 발표 때 `이상은씨 지분은 제3자의 차명재산'이라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보충설명 때 "∼로 보인다"고 표현해 여론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어 12월 BBK 수사결과 발표 때는 "있는 건 있다고 하고 없는 건 없다 하겠다"는 임채진 검찰총장의 원칙에 맞춰 "㈜다스가 이 후보 소유라는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분명하게 선을 그었지만 신당에 의해 탄핵 발의를 당하는 등 또다시 곤욕을 치렀다.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면서 현직 치안감 등을 직접 조사했고 박한상씨 존속 살해, 지존파 납치ㆍ살해, 영생교 신도 암매장 등의 사건ㆍ사고를 맡았으며 `내기 골프'를 즐긴 재벌 회장 구속기소,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연예계 및 태권도협회 비리 등 굵직한 강력사건을 처리해 검찰 안에서 `강력통'으로 통한다. 

◇사회

▲이원희 교총 회장 = 서울 잠실고교에 근무하던 중 지난 7월12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사상 처음으로 교사 출신 회장으로 당선됐다. 이 회장의 당선은 1947년 교총이 출범한 이래 대학 총장이나 교수가 회장을 맡아 왔던 전례를 깬 것이다.

충북 충주 출신인 이 회장은 서울사대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부터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EBS 언어ㆍ논술 스타강사인 이 회장은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전문위원과 교육부 논술심의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상담교사단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올해 5월까지는 교총 수석부회장을 맡았다. 

평교사 출신이 처음으로 최대 교원단체의 수장을 맡으면서 교육계의 관심이 쏠렸고 교장공모제 등 여러 가지 교육 이슈를 둘러싸고 교육부, 정치권 및 다른 교원단체와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지 주목받았다. 이 회장은 대선 과정에서 각 후보를 초청해 교육공약을 점검한 뒤 선호도를 공개해 교원의 정치 참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서남표 KAIST 총장 = 국내 최고 수준의 이공계 대학인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개혁의 바람이 몰아쳤다. 그 중심에는 개혁의 전도사 서남표 총장이 있었다. 

정년 보장 '테뉴어(tenure) 교수' 심사에서 연구 실적이 미흡한 교수들을 무더기 탈락시켰고, 금년도 신입생부터 학점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학생들에게서 연간 1천500만원에 달하는 학비를 징수키로 했다. KAIST는 그동안 학생들에게 학비를 받지 않았다. 

또 '20년 후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인재를 뽑는다'는 목표 아래 학업성적 외에 인성, 창의성, 리더십 등을 종합 평가하는 방식으로 2008학년도 입시제도도 과감하게 개혁했다. 

이 같은 KAIST의 '고강도 개혁'은 그동안 현실에 안주해 온 국내 다른 대학에도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미국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과 미 과학재단(NSF) 부총재 등을 역임한 뒤 "조국에 마지막 봉사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며 지난해 7월 이 학교 총장에 취임했다. 

▲  김용철 변호사
▲ 김용철 변호사 = 삼성그룹 법무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삼성그룹 내 비리를 폭로했다.
 

서울지검 검사 등을 거쳐 1997년 삼성그룹에 입사, 구조조정본부 법무팀 이사와 재무팀 상무, 법무팀장 등으로 근무하다 2004년 퇴직했다. 이후 법무법인 서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11월 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가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정ㆍ관계, 법조계에 대한 광범위한 로비활동을 고백하고 4차례에 걸친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폭로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이 계열사를 통해 수천억원대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뒤 엘리트 검사는 물론 국세청과 재경부 등 정부부처 주요 인물들에게 정기적으로 '떡값' 명목의 뇌물을 상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삼성그룹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을 통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아들 이재용 전무에게 그룹 경영권을 편법상속했으며 이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비해 그룹 법무팀에서 주요 진술을 짜맞추는 등 수사에 대비한 법률적 작업을 진행했다고 고백했다. 

김 변호사의 잇따른 폭로에 대해 삼성그룹은 "근거없는 음해성 주장"이라고 반박했으며 검찰도 '떡값검사'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일축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김 변호사의 자료를 근거로 삼성그룹을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이 '삼성비자금 특별수사.감찰본부'를 꾸렸으나 삼성특검법안으로 수사는 특검으로 이관될 전망이다. 

▲   이필상 교수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 `시민운동 1세대 총장', `첫 서울대 출신 고대 총장' 등 별칭까지 얻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논문표절 시비에 휘말려 취임 56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 전 총장은 다른 대학 출신임에도 시민단체 활동으로 구축한 깨끗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지난 해 말 16대 고대 총장이 돼 교수사회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고 사회의 이목도 끌었다. 

하지만 1988년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등이 제자 논문을 표절한 것이라는 의혹이 취임 6일 만에 제기되면서 한 달 반 동안 곤욕을 치른 끝에 중도 하차했다. 

이 전 총장은 "표절이 아니라 관행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교수의회는 사실 확인을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했고 논문 중 6편은 표절이고 2편은 중복 게재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대 출신으로 1990년대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활동한 그는 박원순(참여연대), 최열(환경재단), 지은희(한국여성단체연합) 등과 함께 시민운동 1세대로 꼽힌다. 

▲  이명박.김경준
▲ 김경준 전 BBK 대표 = 올해 대선 정국을 뜨겁게 달군 `BBK 사건'의 핵심인물.
 

미국 명문대인 코넬대를 졸업하고 살로먼스미스바니 등에 근무하면서 `투자 천재'로 주목받아 오다 1999년 투자자문사 BBK를 세웠다. 이듬해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와 LKe뱅크라는 금융지주회사를 세워 동업한 바 있는 김씨는 2000-2001년 옵셔널벤처스라는 회사의 주가를 조작하고 공금 319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던 중 미국으로 도피했다. 

현지에서 체포돼 수감생활을 하던 김씨가 한국 송환을 자청하고 11월 전격적으로 한국 검찰에 신병이 넘겨지면서 이 후보의 BBK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한 수사가 촉발됐다.

그는 미국 교도소에서도 변호인을 통해 "BBK는 100% 이 후보 소유"라고 주장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이면계약서'를 한국 검찰에 제출하는 등 이 후보가 사건의 배후라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검찰 수사결과 이 후보 관련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결론이 나면서 김씨는 홀로 영어의 몸이 된 채 재판에 넘겨졌다. 

▲ (고)권중희
▲권중희 =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를 끈질기게 추적해온 권중희 씨가 11월16일 7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권 씨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자택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다 심장마비로 숨졌다.


경북 안동 출신인 권씨는 1981년 백범 선생을 살해한 안두희 씨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범행을 부인하자 안씨의 추적에 나섰다. 이후 1987년 3월 서울에서 가명을 사용하며 숨어 지내던 안씨에게 몽둥이를 휘둘러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등 배후를 추적하다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권씨는 이후 계속 안씨를 찾아다니며 암살 배후에 대한 자백을 받아내 1993년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권씨는 2004년 '백범 선생 암살 진상규명 방미 조사단'을 꾸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를 방문해 조사를 벌였으며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고문을 맡는 등 사회활동을 해왔다.

▲정진동 목사 = 충북 노동자들의 '대부'이자 한국 노동운동의 '큰 별' 정진동 목사가 12월10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1933년 청원군 옥산면에서 출생한 정 목사는 1972년 청주 도시산업선교회에서 주임목사를 맡으면서 노동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뒤 '신흥제분노조 사건' 등을 노동자 편에서 해결한 주역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30여 차례나 경찰에 연행돼 1979년에는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인 그는 민주주의 민족통일 충북연합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꾸준히 활동했다. 

정 목사는 2003년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의 고문을 맡아 통일운동에 전념하다 2005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투병생활을 해왔다. '노동현장에 보내는 편지', '민중의 자유는 멀고 험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문화계
 

▲신정아 전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 올해 여름 우리 사회를 강타한 초대형 사건의 주인공. 신씨는 7월4일 35세의 젊은 나이에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으로 선임돼 선망의 대상이 됐지만 곧바로 터져나온 학력위조 의혹으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곤두박질쳤다. 

연합뉴스의 취재결과 예일대 박사학위는 물론 캔자스대 학사.석사학위도 없는 것으로 드러나 광주비엔날레 감독 선임이 취소되고 동국대 조교수직에서도 파면됐다. 이어 신씨가 나이와 경력이 걸맞지 않는 영향력을 미술계에서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변양균 전 청와대정책실장과의 부적절한 관계 덕분이었던 것으로 드러나자 세상은 또 한번 떠들썩해졌다.

신씨를 동국대 조교수로 임용하는 과정을 둘러싸고 동국대 재단과 조계종 계파간 알력이 표면화했으며 사회 각계의 허위학력자들이 줄줄이 발각되거나 양심선언에 나섰다. 또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성곡미술관에 은닉돼있던 쌍용 괴자금 87억원까지 발견되는 등 사회 각계에 일파만파의 영향을 미쳤다. 

검찰은 10월30일 신씨 사건을 "학력 위조에서 벌어진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고 신씨를 업무방해, 업무상 횡령, 개인채무자회생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  장윤 스님
▲장윤(章允) 스님 = 지난 5월 동국대 이사에서 해임된 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가짜학력 문제를 처음으로 언론에 폭로한 장본인. 18년간 동국대 재단이사회를 이끌었던 전 이사장 녹원스님의 이른바 '직지사단'에 속해 있으나 현재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이사장 영배스님 등에 밀려 재단 내 비주류가 되어 주류파와 대립했다.
 

가짜학력 폭로 이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부터 신씨 문제와 관련해 회유성 압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자 잠행해 언론의 추적대상이 되면서 "장윤스님이 누구냐"는 궁금증을 자아내며 세간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신씨 가짜학위 폭로를 계기로 그가 소속된 조계종단이 변 전 실장과 관련한 예산 특혜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이며 어려움을 겪자 주변 스님들의 눈총과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조계종 직할 사찰인 강화도 전등사 주지에서 사퇴했다.

▲  소설가 김훈 
▲소설가 김훈= 4월 출간한 장편 역사소설 '남한산성'으로 올 한해 국내 작가 중에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
 

'남한산성'은 1636년 겨울 병자호란 때 청의 대군을 피해 인조가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47일 간 머물며 겪은 치욕을 그린 작품. 충무공 이순신의 삶을 담은 '칼의 노래', 가야 악사 우륵의 이야기 '현의 노래'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장편 역사소설이다.

'남한산성'은 일본문학 등 외국문학이 휩쓰는 서점가에서 출간 초기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 문학의 자존심을 세웠다.

한국 소설로는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래 약 9개월 만에 베스트셀러 정상을 탈환한 이 작품은 장장 6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10위권을 지키며 40여만 부가 팔렸다. 김훈은 상금 5천만원이 걸린 대산문학상을 거머쥐는 기쁨도 함께 누렸다.

▲발레리나 박세은
▲발레리나 박세은 = 올해 초 스위스에서 열린 제35회 로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1위를 하며 발레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발레 무용수로서 신체 조건을 타고난데다 테크닉과 표현력이 뛰어나 차세대 한국 발레 유망주로 꼽힌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무용원 예비학교를 거쳐 지난 3월 예종 무용원에 영재 입학했다가 현재 휴학중이다. 7월에는 발레스타 강수진, 김지영 등이 출연한 '2007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도 초청 받아 무대에 올랐다.

로잔 콩쿠르 수상으로 무료 해외연수 기회를 얻어 지난 9월부터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의 세컨드 컴퍼니인 ABT 스튜디오 컴퍼니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세계 4대 발레경연대회의 하나인 USA 발레콩쿠르(일명 잭슨콩쿠르)에서 우승하고 그해 10월에 열린 제1회 베이징 국제발레경연대회에서도 2등을 차지한 바 있다. 

▲극작가 배삼식 = 인문학적 감각과 재미, 감동을 적절히 배합하는 드문 솜씨를 인정받으며 올 한해 대학로의 가장 유망한 극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예술의전당에서 재공연돼 큰 인기를 모은 김성녀의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 극단 미추의 신작 '열하일기만보', 중국으로 수출된 최초의 마당놀이 '삼국지'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연암 박지원의 삶과 그의 작품을 무대로 끄집어낸 '열하일기만보'로 상금 3천만원이 걸린 대산문학상 희곡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이강백, 이윤택 등 당대 최고의 극작가들이 탔던 이 상이 30대 중반의 젊은 극작가에게 돌아간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서예가 김응현 = 2월1일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여초(如初) 김응현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2006년 11월 타계), 백아(白牙) 김창현(金彰顯)과 함께 형제 서예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추사 김정희의 맥을 이은 소전 손재형(1903-1981), 검여 유희강(1911-1976) 이후 형 김충현과 함께 우리 서예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려왔다. 전예해행초 모든 서체에 능했으며 원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는 필치를 자랑했다. 

휘문고와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50-1960년 국회보 주간을 맡았고, 국회 도서관 1호 직원이 되기도 했으나 붓을 놓지 않아 1956년에는 동방연서회 설립회원으로 참여했고 1969년부터 이사장을 맡아 제자 수천 명을 길렀다.

▲원로무용가 송범 = 한국무용가로 6월15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본명은 송철교. 양정중학교 2학년 때 최승희의 공연을 보고 춤에 입문한 고인은 1962년부터 1992년까지 30년 간 국립무용단장을 맡아 한국무용의 기틀을 닦았다. 

전통춤을 서양식 무대로 끌어올려 무대화하고 '도미 부인', '별의 전설' 등 전통 연희를 총체적으로 종합해 서양의 발레에 대응하는 대형 무용극(舞踊劇)을 정립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근현대무용의 선구자인 조택원 선생의 춤을 이어받아 국수호, 조흥동, 정재만 등 한국 남성 무용의 인맥을 형성하는데도 큰 공헌을 했다. 대표 안무작으로 '환상 교향곡', '검은 태양', '견우직녀', '춘향전', '도미부인', '은하수', '영은 살아있다', '별의 전설', '왕자 호동', '꿈꿈꿈' 등이 있다. 

대통령 표창(1972), 국민훈장 동백장(1973),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73), 무용공로상(1982), 대한민국 예술원상(1984) 등을 받았다. 문화관광부는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무형문화재 박병천씨 = 전남 진도 출신의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의 보유자로 11월20일 74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1980년 진도씻김굿 무악(巫樂) 부문 보유자로 인정됐다. 

진도 씻김굿은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풀어주고 편안한 세계에서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진도지역의 굿이다.

고인은 무악연주와 특유의 구음(口音)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아 생전에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타계 후 나흘만인 24일 그의 고향인 진도군 진도군청 앞 철마광장에서는 고인을 위한 씻김굿이 열려 많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딸 미옥(47) 씨가 주재한 이날 씻김굿은 고인의 오랜 친구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굿 보유자인 강준섭(75) 선생이 출상 전 초상집에서 상두꾼들이 상주를 웃기기 위해 벌이는 남도 특유의 익살과 해학이 돋보이는 민속놀이인 다시래기 굿으로 문을 열어 또 한번 큰 화제가 됐다. 

▲ (고)피천득
▲수필가 피천득= '국민 수필가' 금아(琴兒) 피천득이 97세를 일기로 5월27일 별세했다.


피천득은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서정적이고 섬세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로 풀어낸 한국 수필 문학계의 대가. 영문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1974년까지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대표작은 일본 여성 아사코와의 만남과 이별을 소재로 한 '인연'.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이 작품을 읽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설렘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첫 사랑의 대명사가 된 작품이다. 

'인연'은 피천득 타계 후 한동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시인 오규원= 2월2일 오후 5시1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분명한 사건'(1971),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1987), '사랑의 감옥'(1991),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에 이르기까지 시집 10여 권을 남겼다.

1990년대 초반부터 사소한 사물들의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날(生) 이미지의 시'를 추구한 것이 특징. 

20여 년 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며 신경숙, 장석남, 함민복, 하성란, 천운영, 강영숙, 박형준, 백민석, 윤성희 등 많은 제자를 시인과 소설가로 길러냈다.

▲  (고)권정생
▲아동문학가 권정생= 5월17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70세.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으로 등단한 권정생은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작품의 주요 주제로 다뤄왔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물과 힘겨운 인간의 삶을 보듬는 따뜻하고 진솔한 글로 어린이는 물론 성인 독자들로부터 폭넓게 사랑받았다. 

'몽실언니',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오소리네 집 꽃밭' 등 다수의 아동 문학작품을 남겼다. 1984년 출간된 '몽실언니'는 60여만 부의 판매량을 기록한 아동문학계의 대표 베스트셀러.   

◇연예계

▲ 영화감독 심형래
▲심형래 감독 = 6년여의 제작기간에 걸쳐 완성한 SF블록버스터 '디 워'가 예상을 깨고 8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올해 최고의 화제 감독으로 떠올랐다.


영화를 본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지만 일반 관객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올해 개봉작 중 최다 관객을 동원했을 뿐 아니라 '디 워'와 관련한 신드롬이 사회적 이슈가 돼 한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다. 

특히 '디 워'를 둘러싼 논란은 충무로 주류 영화계와 심 감독을 지지하는 대중 사이의 감정대립 양상으로까지 번지면서 국내 영화계의 배타성과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논란을 촉발하기도 했다.

▲  영화'디워'의 한 장면
'용가리' 흥행 실패 이후 '코미디언 출신의 괴짜 영화감독' 정도로 무시를 받던 심 감독은 '디 워'의 흥행 성공으로 일순간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으며 '디 워'는 미국 개봉에 이어 내년에는 일본 개봉까지 예정돼 있다.
 

▲영화배우 전도연 = 이창동 감독의 복귀작 '밀양'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연기해 찬사를 받았던 전도연은 한국 여배우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의 영화제로 꼽히는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해 국내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  배우 전도연
한국 여배우가 세계 3대 영화제(칸ㆍ베를린ㆍ베니스)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것은 1987년 '씨받이'로 강수연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후 20년 만의 일이며, 전도연의 수상 소식은 침체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전도연의 수상 소식에 전 국민이 환호했으며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이라는 후광에 힘입어 전도연은 청룡영화상과 영평상(映評賞), 대한민국 영화대상 등을 모두 휩쓸며 충무로의 대표적 연기파 여배우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  배우 배용준
▲배우 배용준 = '욘사마' 배용준이 주춤하던 한류 붐을 다시 일으켰다. 올해 방송가에서 가장 화제가 된 MBC TV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저력을 아시아권에 다시 과시했다.
 

배용준은 제작기간 3년을 넘기며 숱한 좌초 위기를 맞았던 '태왕사신기' 프로젝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보증수표나 다름없던 배용준 덕분에 투자, 캐스팅, 편성 등 온갖 난관을 딛고 총 제작비 600억 원에 달하는 대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촬영일정이 늦춰져 본의 아니게 공백기를 가졌던 그는 일단 촬영이 시작되자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손가락 인대 부상에 이어 목뼈와 무릎까지 심하게 다쳤지만 종영 직전까지 책임감 있게 촬영에 임했다. 

이런 그에게 국내외에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일본 등 아시아권에 보도됐다. 결국 드라마는 시청률 30%대를 웃돌며 성공리에 막을 내렸고, 방영 중인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극장에 상영되는 등 여러 가지 진기록을 일궈낼 수 있었다. 

▲배우 공유 = 8월 막을 내린 MBC TV '커피프린스 1호점'은 '만년 2인자' 공유를 데뷔 6년 만에 정상으로 밀어올렸다. 여성 시청자들은 공유가 뿜어내는 진한 커피향에 취해 한여름을 보냈다. 

'남장 여자'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관심을 모은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윤은혜가 '인기 다지기'를 했다면, 공유는 자신의 진가를 세상에 널리 알리며 올해 브라운관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잘 자란 똑똑한 부잣집 도령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듯하나 여리고 순수한 면도 있는 남자 주인공 최한결 역을 공유는 기다렸다는 듯 완벽하게 소화하며 여심(女心)을 흔들어놓았다. 

2001년 데뷔한 공유는 성실하게 달려왔지만 마음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다. 영화 '잠복근무', 'S다이어리', 드라마 '어느 멋진 날', '건빵 선생과 별사탕' 등을 통해 특유의 건강한 매력을 발산했지만 그는 스타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대목에서 번번이 멈추는 듯한 인상을 줬다. 그러나 쓰디 쓴 인내의 결과는 달았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통해 그는 '만인의 왕자님'이 됐다. 

▲  배우 이순재
▲탤런트 이순재 =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올 한해 그야말로 거침없이 활약하며 노익장을 과시한 70대 스타.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한방 병원장으로 출연한 그는 몰래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다가 들켜 망신을 당하는 등 기존의 대쪽 같은 모습과는 정반대의 망가진 연기를 펼쳤다. 이런 모습으로 그는 '야동순재'라는 별명을 얻으며 손자뻘인 10대들까지 좋아하는 '국민 할아버지'가 됐다. 

'거침없이 하이킥' 종영 후에는 MBC 사극 '이산'에서 영조 역을 맡아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다시 중후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다. 

서울대 연극반에서 연기를 시작한 그는 1956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로 데뷔했으며 1992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하기도 했다. '사랑이 뭐길래', '허준', '상도' 등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하며 50년이 넘도록 식지 않는 연기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 

▲  그룹 원더걸스
▲보컬그룹 원더걸스 = 2007년 하반기 전국은 '텔 미(Tell Me)' 열풍에 휩싸였다. '텔 미 텔 미 테테테테테 텔 미~'란 후렴구는 강한 중독성을 발휘하며 남녀노소를 파고들었고 특히 30-40대 남성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 눈길을 끈다.


중학생 2명, 고교생 2명, 대학생 1명으로 구성된 5인조 원더걸스는 가요계 '미다스의 손'으로 부상한 박진영의 작품. 그가 만든 1980년대 스타일의 디스코풍 '텔 미'는 원더우먼이 팔찌로 총탄을 막는 동작에서 나온 '팔찌춤', 디스코 동작을 응용한 '패션춤' 등과 어울려 빠른 속도로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또 멤버들이 선보인 '뽀글이' 퍼머, 큰 귀고리, 원색 팔찌, 망사 장갑에 레이어드 룩(겹쳐입기)으로 젊은 세대의 패션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텔 미'는 각종 가요 차트에서 수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각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들의 '텔 미 댄스' 동영상이 '올해의 동영상'으로, '원더걸스'는 '올해의 인기 검색어'로 각각 선정됐다.

▲'무한도전' 팀 = 올해 TV 오락 프로그램은 예년에 비해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집단으로 나온 연예인이 모두 주요 역할을 맡으면서 특별한 형식 없이 자기들끼리 '노는' 형태의 프로그램들이 주목 받았다. 

이런 흐름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것이 MBC TV '무한도전'.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등이 출연해 웃고 떠드는 장면에 전 국민이 배꼽을 잡았다.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였던 '무한도전'은 지난해 5월 별도 프로그램으로 독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미셸 위, 티에리 앙리, 마리아 샤라포바, 패리스 힐튼 등 화제의 인물이 잇달아 출연, 케이블ㆍ위성 채널 재방송을 포함해 일주일에 평균 90회가량 방송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출연진 간에 반말이 남발하고 비속어가 많이 사용되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가수 유니(본명 이혜련) = 1월 21일 자택에서 목을 매 숨져 연예계에 큰 충격을 줬다. 섹시한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던 그의 자살은 2년 만에 복귀하는 3집의 발표를 하루 앞두고 일어나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유니의 자살을 계기로 '악플'(악성 댓글)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기도 했다. 우울증을 앓았던 유니는 성형 논란 등에 관한 악성 댓글로 심적 고통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희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가수 데뷔에 앞서 연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KBS 드라마 '신세대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했으며 '본 투 킬', '세븐틴', '질주' 등의 영화와 '왕과 비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이후 2003년 유니라는 이름으로 1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전향했다. 섹시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그는 2005년 2집 '콜 콜 콜'을 발표하고 인기를 이어갔으나 3집을 유작으로 남기고 말았다.

▲  (고)배우 정다빈 
▲탤런트 정다빈 = 가수 유니가 자살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월 10일 남자친구의 집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돼 연예계는 물론 사회 전반을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정다빈은 평소 밝고 활달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그의 자살 소식은 더욱 큰 충격을 던졌다. 그의 죽음을 놓고 소속사와 가족이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있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시신 부검 결과 자살로 결론 지어졌다. 

동국대에서 연극학을 전공한 그는 2000년 영화 '은행나무 침대2-단적비연수'에서 최진실의 아역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MBC 시트콤 '논스톱' 시리즈에서 통통 튀는 연기력과 해맑은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으며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로 스타덤에 올랐다. 2004년에는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를 통해 스크린에도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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