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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후 처음 열린 청문회, 무엇이 밝혀졌나?-(3)

특조위원장 '아무것도 하지 않아', 정부 증인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아'

이성민 기자 | 기사입력 2015/12/17 [15:14]

세월호 침몰 후 처음 열린 청문회, 무엇이 밝혀졌나?-(3)

특조위원장 '아무것도 하지 않아', 정부 증인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아'

이성민 기자 | 입력 : 2015/12/17 [15:14]

 

 

▲ 세월호 침몰시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해경 측 증인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모르겠다" 등 모로쇠로 일관했다. 사진=SBS뉴스이미지     © 이성민 기자

 

[플러스코리아타임즈=이성민 기자] 지난해 발생한 4·16 세월호 참사 원인이 결국 인재(人災)라는 사실이 이번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에서 재확인됐다. 하지만 여당 측 위원들이 불참하고 증인들이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반쪽짜리 청문회에 그쳤다는 평가라는 지적이다.

 

‘세월호 1차 청문회’ 3일째인 16일, 서울 중국 서울 YWCA 회관에서 열린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인 이수하(47)씨·정성욱(45)씨는 사고 다음날인 17일에 잠수인력 500명이 투입됐다는 해경 발표를 두고 “팽목항에 있는 모든 대기인원을 다 합쳐도 500명이 안 됐을 것”, "저희가 본 건 망치로 두드려서 확인하고…그 인원이 다였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석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3일 동안 확인한 것은 (해경의 희생자 구조에 대해)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지휘나 조정을 하지 않았다"며 세월호 침몰에서 정부와 해경을 싸잡아 비판, 폭로하고 "어느 누구도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특조위 위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며 청문회를 마무리 지었다.

 

다음은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영상과 기사전문.

 

▲ 세월호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민간잠수사 전 모씨와 김 모씨. 사진= 뉴스타파 이미지     © 이성민 기자

 

세월호 참사 초기에 가이드라인을 설치하기 위해 투입된 민간잠수사가 세월호의 도면도 보지 못한 채 잠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늘(16일) 서울 명동 YWCA 회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청문회 마지막 날, 참고인으로 출석한 잠수사 전 모씨는 지난해 4월 17일 가이드라인 설치를 위한 입수 전에 세월호 도면이나 참고자료를 받았냐는 특조위원의 질문에 “그 당시에는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전 씨는 또 앞서 해경이 수면 위의 부이에 임시로 연결해 놓은 가이드라인이 있었지만 “어디까지 연결해 놓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어디까지, 무슨 용도로 연결해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다 서로 엉켜 있어서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잠수사들은 움직이는 경비정 위에서는 작업이 안전하게 진행될 수 없어 “18일 새벽에 바지선을 해경측에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말해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에도 해경의 대응이 부실했음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은 지난해 4월 대통령의 사고현장 방문시에 김석균 해경청장이 잠수사 5백여명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한 부분은 실제 입수인원이 아니라 동원된 인력으로 이해했다면서 이로인해 생긴 오해는 자신의 책임이라면서 초기에 전파된 상황보고서에 그런 식으로 기재된 부분에 대해서도 잘못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 세월호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 이성민 기자

 

1차 청문회 마지막날 참고인으로 출석한 희생자 가족들은 정부가 세월호 인양과정에서도 희생자 가족들의 정보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면서 해양수산부에 바지선 탑승 허가 및 인양 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희생자 가족을 대표해 나온 단원고 고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 정성욱씨는 “세월호를 인양할 때 해수부 장관이 모든 것을 오픈하고, (가족들도)참여시키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기구에 한 번도 참여해본 적 없다”고 밝혔다. 정씨는 특히 “(세월호에)무엇이 있기 때문에 숨기는 것인지, 낮에는 작업을 안하고 밤에 작업을 한다. 낮에 뭔가를 실어서 나가는데 어디로 가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발뺌한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함께 출석한 고 이준우 학생의 아버지 이수하씨는 “특조위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세월호 피해 가족들의 마지막 보루”라면서, "특조위에서 조사된 결과를 가족들과 국민들이 승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로써 사흘 동안 열린 세월호 참사 특조위 1차 청문회는 일정을 모두 마무리 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참사 당일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B703(기종CN235)기가 해경 지시가 아닌 기장의 판단으로 출동했으며 당시 상황실과 현장 사이에 정보 공유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으며 또한 목포 상황실이 국회와 감사원, 검찰 등에 제출한 TRS(주파수공용통신) 교신 녹취록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드러나는 등 일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증인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모르겠다”고 답변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부분에 대한 마땅한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앞으로 피해자들이 신청한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지속할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 특조위는 활동기간 1년에 6개월을 연장할 수 있으며 청문회는 횟수제한 없이 실시할 수 있고 특검은 2회에 걸쳐 요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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