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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후 처음 열린 '청문회', 무엇이 밝혀졌나-(2)

‘경비정이 선미로 가야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는데도 접근도 하지 않은 이유’

이성민 기자 | 기사입력 2015/12/16 [18:34]

세월호 사고 후 처음 열린 '청문회', 무엇이 밝혀졌나-(2)

‘경비정이 선미로 가야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는데도 접근도 하지 않은 이유’

이성민 기자 | 입력 : 2015/12/16 [18:34]

 

 [플러스코리아타임즈=이성민 기자]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15일 제1차 청문회 이틀째 일정을 진행했다.

 

▲ 14일 오후, 사건 당시에 대해 증인들의 "모르겠다"는 답변에 김동수씨가 "위증하지말라"며 자해소동이 벌어졌다. 기사는 세월호 사진 아래에 배치. 사진=구글이미지     © 이성민 기자

 

오전 9시 반부터 진행된 청문회에서는 어제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지휘부들이 다시 출석한 가운데, 사고 당시 해경의 초기 대응과 함께 청와대 보고, 지시 상황 등에 대한 질의가 집중됐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해경의 답변을 종합해보면, 이번 청문회를 통해 '해경이 세월호 탑승객들을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으며, 핵심 증인으로 지목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장관은 병을 핑계 삼아 증인출석을 안해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과 이 전 장관이 팽목항을 지키며 있었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 분의 출석을 누가 막고 있는 것은 아니냐?"라는 불만들이 쏟아 졌으며,  유가족 대표 유경근 씨는 증인들의 증언이 자꾸 바뀌는 것을 보고 "오늘 청문회로 나는 확실히 뒤에 누가 있다는 것을 200% 확인했다."고 말했다.

 

▲ 세월호 청문회 장면 . 사진=MBC 캡쳐   © 이성민 기자

 

▲ 영국의 구조방법. 좌초된 배를 넘어가지 않도록 예인선으로 떠받치고 있다    © 이성민 기자

 

▲ 그러나 세월호는 넘어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 이성민 기자

 

세월호 영웅 김동수(50)씨가 14일 오후 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장에서 자해를 시도했다.

 

침몰 여객선 세월호에서 20여명의 학생들을 구조해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리는 김동수씨가 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장에서 자해를 시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청문회를 생방송한 팩트TV에 따르면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는 14일 서울 중구 YMCA 대강당에서 열린 특조위 청문회에서 "이래서는 안 된다"고 외치며 자해를 시도했다.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에게 큰 부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의인 김동수씨는 상의를 걷어 올리고 자해를 시도했지만 생방송 영상을 통해서는 외상이 확인되지 않았다.

 

세월호 의인 김씨는 지난해 4월 16일 전남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탑승자 중 한 명이었다. 안산 단원고 학생 등 20여명을 구조한 영상이 뒤늦게 공개됐지만 파란 바지를 입은 점 외에는 신원이 곧바로 확인되지 않아 한때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만 불렸다.

 

김씨는 앞서 지난 3월에도 자살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김씨는 인터뷰에서 "학생들을 구출하면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과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지만 세월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병원의 판단 때문에 입원비도 모두 직접 지불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책정한 4인 기준 1가구 긴급 생계비 월 108만원을 받아왔지만 이마저 끊길 처지"라며 "영웅, 의인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무의미하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신경써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다음은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영상과 기사를 싣는다.

 

지난해 4월 김경일 123정장이 “참사 당일 현장 도착 직후 5분여 동안 퇴선방송을 수 차례 실시했다”면서 시연까지 벌였던 기자회견이 김석균 해경청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이에 따라 해경 수뇌부가 구조실패와 사후 조치의 모든 책임을 김경일 정장에게만 떠넘겼다는 ‘꼬리 자르기’ 의혹에 대한 재조사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늘(15일) 서울 명동 YWCA 회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청문회 이틀째 일정에서 김진 특조위원은 증인석에 앉은 김석균 전 해경청장에게 “지난해 4월 28일 김경일 정장의 기자회견을 직접 지시했나”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전 청장은 “당시 구조와 관련한 숱한 오보와 잘못된 의혹 제기들이 있어서 123정 대원들로부터 현장 구조활동 내용을 직접 청취한 뒤 이를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라고 홍보라인에 지시했다”고 답변했다. 지금까지는 김경일 정장이 재판 과정에서 “위에서 지시가 왔었다”고 진술한 것이 기자회견 관련 경위의 전부였으나 그 ‘윗선’이 김 전 청장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따라 김 청장이 해경의 퇴선방송이 없었다는 사실을 123정 대원들로부터 사전에 보고 받아 알고 있었는지, 퇴선방송이 없었던 것을 알고서도 ‘거짓 기자회견’을 묵인했는지, 아니면 해경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거짓 기자회견’을 기획한 것인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김 청장은 “기자회견 지시 당시 123정이 실제로 퇴선방송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느냐”는 후속 질문에 대해서는 “방송을 실시했는가 하는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모르겠고 전체 내용을 전해듣고 기자회견을 지시했다”고 답변해 책임을 회피했다. 김경일 정장은 이 기자회견 직후 실제로 퇴선방송을 한 것처럼 근무일지를 조작한 사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탄로나 공문서 조작 혐의로 기소돼 처벌받았다.

 

“‘수차례 퇴선방송했다’는 대외비 문건, 어제 처음 봤다”… 김석균 ‘황당 답변’

 

김석균 청장은 이같은 ‘거짓 퇴선방송’ 내용을 비롯해 해경이 당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 국회 국정조사 등에 대응하기 위해 작성돼 대외비로 관리해 오던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 문서에 대해 “최근에 처음 봤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해 청문위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김진 위원이 “이 자료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고 묻자 김석균 증인은 “저런 대외비 문건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요 근래에 처음 알았다”고 대답했다. 이에 김 위원이 “그렇다면 어제 출석했던 이춘재 전 해경 경비안전국장이 보여줬느냐”고 묻자 증인은 “어제 이춘재 국장이 보여주긴 했는데 그건 저것과는 다른 형식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 위원은 “그럼 이런 문건이 또 있다는 것이냐”면서 황당해 했다.

 

 


실제로 뉴스타파가 확보한 해당 문건을 보면, 해경은 ‘해경 경비정이 선미로 가야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는데도 접근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9시 30분 123정에서 현장 도착시 외부 갑판에 승객들이 보이지 않아 마이크를 이용하여 퇴선안내 방송을 수 차례 하였음”이라고 대응하도록 되어 있는 등, 당시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일종의 ‘모범답안’을 제시해 놓고 있다.

 

▲ 대외비로 분류한 문건     © 이성민 기자

 

이 문건은 지난해 7월 광주지검이 김경일 123정장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것으로, 당시 주임검사의 보고서에는 “해경이 과실 없이 최선을 다한 것처럼 수사 및 언론 대응하기 위해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을 정리하여 대외비로 관리해 오는 것을 압수”했으며 “수사기관에 출석해 진술한 해경들은 이 기조와 일치되게 진술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해경 차원에서 수사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 광주지검 공문     © 이성민 기자

 

123정장, 긴박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데이터 송신

 

한편 김경일 123정장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세월호 참사 해역에 도착한 뒤 누군가와 연락을 취한 통신 기록이 처음 공개됐다. 이호중 위원이 공개한 이 통신 기록에는 김 정장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36분, 48분에 각각 9초와 48초간 데이터를 송신한 것으로 나와있다. 착신자에 대한 전화번호는 없었고 대신 착신자 정보란에 ‘[p] 직접접속’으로 돼 있었다.

 

김 정장이 데이터를 보낸 9시 36분은 123정이 세월호 사고 현장에 도착해 단정을 내려 구조에 나선 시각이었고, 48분은 세월호 승조원 5명이 처음으로 구조된 시각이다. 사고 현장에서 긴박하게 구조작업이 진행된 당시 김 정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대용량 문자 메시지나 사진 등을 전송한 것이다.

 

이 의원은 “카카오톡 등을 통해 세월호 영상을 찍어 보낸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김 정장은 “사진을 찍지 않았고, 데이터를 보낸 기록을 오늘 처음봤다”고 말했다.

 

▲ 123정장의 통화 기록    © 이성민 기자

 

세월호 특조위의 1차 청문회는 16일 ‘참사 현장에서의 피해자 지원 조치의 문제점’을 주제로 하는 사흘째 일정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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