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사서와 고지도가 증명한 '북극해'는 빙산이 있는 'COREA의 북해'

산해경,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이라 한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5/10/27 [14:21]

사서와 고지도가 증명한 '북극해'는 빙산이 있는 'COREA의 북해'

산해경,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이라 한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입력 : 2015/10/27 [14:21]

[플러스코리아타임즈=김종문]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수많은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에 MONGAL(몽골 蒙古)은 Bering Strait(베링해협)서쪽 北極海(북극해)인근에 있었다. COREA(고려, 高麗)의 한반도는 몽골의 동쪽에 위치한 수만리 크기의 반도인 미대륙이다. 지구를 다스리던 강대국이었던 COREA는 근세기 해체되어 세계사조작으로 지워지고, 미대륙에서 東北亞(동북아)에 동서 오백리의 남북의 한반도로 조작되었다. 그것을 위하여 중요지명들 또한 이동되었다. 그래서 北極海(북극해)는 역사기록들 속에 COREA의 바다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참조기사: '몽골', 17세기까지 1만리 떨어진 북해 근처에 있었다  

참고기사: 18세기 베링해협이 넓어지던 시기, 황해도 주민 수백명 익사

참고기사: '북극해는 원래 호수였다', 18C 바다로 변한건 왜일까?

   

▲ A: 1795 Pinelli (1559 Hajji Ahmed), B: 1780 J.A. Dezauche, C: 현재의 북미, 1: Florida(플로리다), 2: California(캘리포니아), 3: Hudson Bay(허드슨만), 4: 요동반도(遼東半島), 5: Chukchi Sea(축치 해) 16세기 북미는 아세아와 하나로 붙어 있었다. 중간에 베링해와 북극해의 대륙붕인 축치 해는 1780년경까지도 지형이 현재와 크게 달랐다. 지구의 지형은 18세기에 크게 변하여 두 대륙은 현재처럼 멀어진 것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북해는 COREA의 바다,  파도가 산처럼 높았다.

 

역사기록상에 COREA의 북해는 파도(波濤)가 높고 거세기로 유명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경사편  논사(論史) 한국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기를,“명해(溟海)에는 바람은 없으나 파도가 백 길이나 일어서 오직 날아다니는 신선만이 건널 수 있다.”하였는데, 대체로 우리나라 북해(北海)는 파도가 매우 거세어 다른 바다와 다르다.

 

우리나라(COREA)의 바다인 북해(北海)는 파도가 너무나 높아서 다른 바다들과는 달랐다.

 

해동역사(海東繹史) 제58권 예문지(藝文志)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있다.

"흑수양(黑水洋)은 곧 북해양(北海洋)이다. 그 물빛은 어둠이 깊어서 검은색이 먹 같으므로 갑자기 그것을 바라보면 정신과 담력을 다 잃게 된다. 성난 파도가 물을 내뿜으며 솟는 것이 일만개의 산이 치솟아 오르는 것 같으며, 밤이 되면 파도 사이가 선명하게 빛나 그 밝기가 불빛과 같다. 배가 파도 위로 올라갈 때는 바다가 있는 줄을 못 느끼고 오직하늘의 해가 밝고 말끔할 뿐이다. 그러다가 배가 우묵한 파도 밑으로 내려갔을 때 앞뒤로 수세(水勢)를 쳐다보면 그 높이가 하늘을 가린다."

 

北海(북해)는 물이 깊어서 검은 색을 띄었고 파도가 거세어 산처럼 높았다. 현재의 북극해(北極海) 또한 수심이 깊어 검은색이며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하다.

 

▲ A: Arctic Ocean(북극해, 北極海)의 氷山(빙산), B: 北極海(북극해)의 波濤(파도)  북극해는 빙산이 유명하며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 버린다. 북극해는 수심이 깊어 검은빛을 띄며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하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COREA의 북해는 氷山(빙산)이 있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경사잡류 기타전적(其他典籍) 중 다음의 기록이 들어 있다.

"모든 바다에 얼음이 얼지 않으나 오직 북해(北海)만은 얼음이 얼어 빙산(氷山)을 이룬다. 가아(哥阿) 지방은 비가 내리지 않고 항상 날씨가 맑은데 심지어 36년 동안이나 비가내리지 않기도 했다. 덕묵다(德墨多)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북해에는 비가 적게 내리는데 그것마저도 여름철에 겨우 먼지를 적실뿐이니…"

 

COREA의 北海(북해)는 氷山(빙산)이 있는 바다였으며 현재의 北極海(북극해)도 빙산이 있는 바다이다. 원래 북해에는 비가 적게 내렸으며 현재의 북극해도 비가 적은 지역이다. 북극해가 COREA의 바다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은 이외에도 많이 있다. 그러나 역사기록들을 보는 사람들의 지리인식이 심각하게 조작되어 있어 기록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해는 몽골의 북쪽에 위치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수많은 고지도들은 몽골의 위치를 베링해협서쪽에 표기하였다. 그런데 1700년을 넘어가면 대부분의 지도들에 몽골이 현재의 유라시아 중앙으로 표기됐다. 그것은 앞서 < '몽골', 17세기까지 1만리 떨어진 북해 근처에 있었다  > 에서 보았듯 몽골의 위치를 세계사조작에 맞게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역사기록상에 蒙古(몽골)은 北海(북해)에 감싸여 있었다. 배달겨레의 선조들은 北海(북해) 주변의 거대한 몽골초원들과 수만리의 한반도인 미대륙에서 살았다. 北海(북해)는 天海(천해)라고도 불렸으며 현재의 北極海(북극해)를 말한다.

 

山海經(산해경) 海外北經(해외북경)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朝鮮)이라 한다. 조선(朝鮮)은 천독(天毒)인데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 朝鮮 天毒 其人 水居 偎

 

朝鮮(조선)은 북해의 주변에 있었으며 동해인 대서양의 안쪽인 미대륙에 있었다. 조선사람들은 물가에 살았으며, 북해는 조선인들이 살아가던 바다처럼 거대한 호수였다.

 

성호사설 제17권 인사문(人事門) 부열 축북해(傅說築北海)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있다.

"《묵자(墨子)》에 보면, “옛날에 (은나라)부열이 북해(北海)의 바닷가 환토(圜土)의 위에 살면서 굵은 베옷을 입고 새끼줄을 띠고서 고용(雇傭)되어 부암(傅巖)의 성을 쌓았다.”고 했으니, 두 가지 설이 서로 비슷하다. 내 생각으로는 부열이 요심(遼瀋)의 사람이 아닌가 한다. 맹자가 말하기를, “백이(伯夷)가 주(紂)를 피하여 북해의 바닷가에 살았다.” 했는데, 고죽(孤竹)의 옛터가 오늘의 요심(遼瀋)에 있으면서 북해의 바닷가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伯夷叔齊(백이숙제)는 北海(북해)의 바닷가에서 살았다. 遼東(요동)에서 북쪽으로 北海(북해)는 가까이 있었다.

 

연행기사(燕行記事) 문견잡기(聞見雜記) [잡기(雜記)]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의무려산(醫巫閭山) 뒤는 모두 몽고(蒙古) 땅에 속하며 망망한 큰 사막(沙漠)인데, 북해(北海)가 둘러 있다. 5년에 한 번 얼음이 얼고 자고로 중국에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다 밖은 무슨 괴물이 있는지 모른다."

 

산해관 동쪽 의무려산의 북쪽은 몽골지역으로 사막이었다. 몽골사막은 북해가 북쪽으로 둘러져 있었다. 오년에 한번 얼음이 어는 지역으로 건조하며 온난한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몽골사막은 남쪽으로 만리가량 이동되었으며 북극해는 현재의 몽골인 몽골리아와 만리가량 떨어져 있다.

   

▲ A: 1716 Johann Baptist Homann, B: 1757 Buache Philippe, C: 현재의 베링해, D: 고지도들로 복원한 17세기의 지형(참고한 지도 1551 Orontius Fineus, 1795 Pinelli(1559 Hajji Ahmed), 1660 Benedictus Arias Montanus, 1757 Buache Philippe)   고지도상에 북해와 지구의 지형은 16세기와 전혀 다르며 18세기와도 크게 다르다. 18세기말 이전의 지도들을 참고하여 해수면상승 이전의 지형을 채색하여 보았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지도설명: 1716년에도 베링해협은 매우 좁았으며 Bering Sea(베링해)는 육지였다. 1780년경까지도 베링해의 대부분은 육지였다. 현재의 지형은 17세기와 완전히 다르며 18세기와도 크게 다르다. 북해의 지형은 육지였던 베링해가 바다가 되면서 일어났던 해수면 상승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지구의 지형이 현재처럼 변한 것은 200여 년에 불과한 짧은 기간인 것이다.]

 

COREA는 北海(북해)에 제사를 지냈다.

 

세계사에서 COREA(고려, 高麗)는 東北亞(동북아)에 동서 오백리의 南北(남북)의 韓半島(한반도)에 弱小國(약소국)이었다. 北海(북해)는 COREA와 무관한 바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COREA의 역사기록들에 北海(북해)는 COREA에서 제사를 모시던 바다였다.

 

조선왕조 세조실록 2년(1456) 3월 28일(정유) 3번째기사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양성지(梁誠之)가 상소(上疏)하기를

"1. 악진해독(嶽鎭海瀆)입니다. 대개 일대(一代)의 흥(興)함에는 반드시 일대(一代)의 제도가 있었으며, 본조(本朝)의 악진해독(嶽鎭海瀆), 명산 대천(名山大川)의 제사는 모두 삼국과 전조의 구제를 의방해서 한 것이므로 의논할 만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一, 岳、鎭、海、瀆。 蓋一代之興, 必有一代之制, 本朝岳鎭海瀆名山大川之祀, 皆倣三國及前朝之舊而爲之, 多有可議者焉。 "

 

"또 동해신(東海神)을 강릉(江陵)에, 서해(西海)는 인천(仁川)에, 남해(南海)는 순천(順天)에, 북해(北海)는 갑산(甲山)에 이제(移祭)하고,"

"又移祭東海神於江陵, 西海於仁川, 南海於順天, 北海【鴨綠江上流。】於甲山,"

 

조선왕조 세조실록에 北海(북해)의 제사를 모신 곳은 백두산 鴨綠江(압록강) 上流(상류)인 甲山(갑산)이었다. 甲山(갑산)은 COREA의 북쪽으로 지대가 높은 지역이었다.

 

조선왕조 고종실록 40년(1903) 3월 19일(양력) 2번째기사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있다.

“지난번에 조칙(詔勅)을 받들어 보니, ‘천자(天子)만 천하의 명산(名山)과 대천(大川)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데, 오악(五嶽)ㆍ오진(五鎭)ㆍ사해(四海)ㆍ사독(四瀆)을 아직까지도 미처 봉하지 못하여 사전(祀典)을 구비하지 못하였다. 장례원(掌禮院)에게 널리 상고하여 제사지낼 곳을 정함으로써 짐(朕)이 예(禮)로 신을 섬기려는 뜻에 부응하게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頃伏奉詔勅, ‘唯天子祭天下名山大川, 而五嶽、五鎭、四海、四瀆之封, 尙今未遑, 祀典未備矣。 其令掌禮院博攷定祀, 用稱朕以禮事神之意’事, 命下矣。"

 

1903년 大韓帝國(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천자로써 천하의 명산(名山)과 대천(大川)에 제사를 모시었다. 그것은 이전에 嶽鎭海瀆(악진해독)에 제사를 모시었던 東國朝鮮(동국조선)이 여러 제후국을 거느린 中國(중국)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은 MONGAL(몽골 蒙古)을 Bering Strait(베링해협)서쪽 北海(북해)근처에 표기하였다. 蒙古(몽골)의 동쪽 수만리 크기의 韓半島(한반도)는 美大陸(미대륙)이다. 한반도의 북쪽에 있던 北海(북해)는 현재의 北極海(북극해)이다. 한반도는 미대륙에서 東北亞(동북아)에 동서 오백리의 남북의 한반도로 이동되었다. 蒙古(몽골)과 주위의 중요지명들 또한 이동되었다. 그러나 북해는 이동시키지 못하였다. 그래서 역사기록상에 COREA의 북쪽에 있던 북해가 현재는 없는 것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역사기록상 北海(북해)는 COREA의 바다였다. 氷山(빙산)이 있었으며 바다가 깊어 검은 빛이어서 흑수양(黑水洋)이라 불렸다. 파도가 거세어 산처럼 높았으며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러한 北海(북해)는 현재의 北極海(북극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배달겨레의 선조들이 살던 땅은 朝鮮(조선)이며 천독(天毒)이라 불리었으며 東海(동해)의 안쪽 北海(북해)의 주변에 있었다. 북해의 남쪽에는 몽골의 초원들과 사막들이 있었다. 수많은 고지도들에 蒙古(몽골)은 베링해협 서쪽 북극해의 남쪽에 표기되었다. 北海(북해)는 현재의 北極海(북극해)이며 東海(동해)의 안쪽 수만리의 韓半島(한반도)는 美大陸(미대륙)인 것이다.

 

근세조선인 대조선에서는 오직 天子(천자)만 천하의 名山(명산)과 大川(대천)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는 그러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들이 너무나 많다. 즉 대조선COREA는 지구를 다스리던 東方(동방)의 中國(중국)으로써 嶽鎭海瀆(악진해독)에 제사를 모시었던 것이다. 北海(북해)는 COREA(고려, 高麗)에서 제사를 모시던 바다였다.

 

北海(북해)를 COREA(고려, 高麗)인들은 우리 바다라 불렀다. COREA의 수많은 인민들이 살아가던 삶의 터전이며 소중한 영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근세기 지구를 다스리던 대조선COREA가 해체되어 사라지면서 COREA는 東北亞(동북아)에 동서 오백리 南北의 韓半島(한반도)에 약소국으로 조작되었다. 너무나 완벽하고 철저하여 사람들은 의심조차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현 동북아 남북의 韓半島(한반도)가 배달겨레의 한반도인가? 그렇다면 氷山(빙산)이 떠다니는 COREA의 北海(북해)는 어디에 있는가?

영문고지도들을 공부하다 우연히 고지도들의 중요지명들이 이동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후 현재의 중요지명들의 위치가 세계사조작을 위하여 이동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2년여간 지명이동사례들을 탐구하여 정리하였습니다. 2014년 7월부터 고지도조작의 사례들을 모은 ‘고지도의 진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울주군, 제5회 작천정 벚꽃축제 개최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