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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백두산은 조선의 백두산과 달라, '몽골의 동남쪽에 있었다'

백두산은 북해인근 몽골의 동남쪽 수 천리 거리에 있었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5/05/31 [12:11]

현 백두산은 조선의 백두산과 달라, '몽골의 동남쪽에 있었다'

백두산은 북해인근 몽골의 동남쪽 수 천리 거리에 있었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입력 : 2015/05/31 [12:11]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김종문] 白頭山(백두산)은 배달겨레의 시조이신 桓雄天王(환웅천왕)께서 神市(신시)를 건설하신 太白山(태백산)으로 민족의 시원과 닿아 있는 聖山(성산)이다. 배달겨레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白頭山(백두산)의 위치를 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백두산은 북한이 명명한 백두산과 중공이 명명한 장백산이 하나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왜 그랬을까? 먼저 역사기록을 살펴보자.

정약용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20권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백두산(白頭山)을 형성한 산줄기는 대개 몽골(蒙古) 땅에서 시작되어 서북쪽으로부터 머리를 들이밀었는데, 동남쪽에서 대지(大池) 천지(天池)에 이르기까지의 수천 리가 대간룡(大幹龍) 여러 산맥 중 중심되는 주맥(主脈))이 됩니다."

백두산의 산줄기는 MONGAL(몽골, 蒙古)에서 시작되어 동남쪽으로 천지에 이르기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蒙古(몽골)의 위치는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이 Bering Strait(베링해협)서쪽 北海(북해)인근에 일관되게 명시했다. 몽골의 동남쪽에 백두산은 북미 북서지역에 있었던 것이다.

[참조기사: '몽골',17세기까지 1만리 떨어진 북해 근처에 있었다

▲ 1566 Orontius Finaeus  A: MONGAL(몽골, 蒙古)과 沙漠地帶(사막지대), B: 白頭山(백두산)예상지역  1: 蒙古(몽골), 2: BALOR DESERT(베얼사막, 孛兒沙漠), 3: lop Desert  蒙古(몽골)은 Bering Strait(베링해협)서쪽 北海(북해)인근에 있었다. 白頭山(백두산)은 蒙古(몽골)에서 남동쪽으로 數 千里(수 천리) 아래쪽에 있었으며 거대한 沙漠地帶(사막지대)와 가까이 있었다. 白頭山(백두산)은 北美(북미) 북서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白頭山(백두산)은 蒙古(몽골)의 東南(동남)쪽에 있었으며, 白頭山(백두산)의 北(북)쪽에 沙漠(사막)이 있었다.

원래 蒙古沙漠(몽골사막)의 동남쪽에 위치하였던 白頭山(백두산)은 북쪽으로 사막이 가까이 있었다. 

1675년(숙종 2) 北崖老人(북애노인)이 저술한 揆園史話(규원사화) 檀君紀(단군기)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대저 하얀 돌산인 백두산은 대황(大荒)의 남쪽에 굳게 자리하여 좌우로 1천리에 높이가 2백리로, 웅장하게 구비쳐 흐르고 있으니, 동방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진산이다.”
“盖白頭巨岳, 盤據大荒之南, 橫亘千里, 高出二百里, 雄偉山層崚蜿蜒磅礴,爲東方諸國之鎭山”

白頭山(백두산)은 大荒(대황)이라 불리는 거대한 蒙古沙漠(몽고사막)의 남쪽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白頭山(백두산)은 북쪽이 綠地(녹지)이다.
 
▲ 1757 Buache Philippe 1: MONGAL(몽골, 蒙古)에서 白頭山(백두산) 천지(天池)로 이어지던 산맥들, 2: Bering Strait(베링해협)  蒙古(몽골)은 Bering Strait(베링해협)서쪽 北海(북해)인근에 있었다. 1780년경 까지도 Bering Sea(베링해)에는 요동반도가 있었다. 蒙古(몽골)에서 남동쪽으로 알래스카까지 數 千里(수 천리) 거리에 여러 산맥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현재는 베링해협에 의해 침식되어 지형이 변했고 지명들은 東亞細亞(동아세아)로 이동되었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長白山(장백산)은 韓半島(한반도)의 西(서)쪽에 있었다.

현재 長白山(장백산)은 白頭山(백두산)을 이르며 한반도의 동쪽에 위치하여 있다. 그러나 장백산은 원래 동국조선의 서쪽에 있었던 산이다.

정조 21년(1797) 2월 25일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경성(鏡城)의 본영은) 큰 바다가 동쪽을 감싸고 장백산(長白山)이 서쪽에 깎아지른 듯이 서 있으니, 참으로 사방이 막힌 요새입니다.”
“大海環其東, 長白截其西, 誠四塞之地也”

현재의 長白山(장백산)은 韓半島(한반도)의 동쪽인 함경도와 중국 지린 성(吉林省)에 걸쳐 있다. 한반도의 서쪽에 있었다던 역사기록들과 불일치하는 것이다.

▲ 1: 현재의 몽골인 Mongolia(몽골리아), 2: 현재의 韓半島(한반도)인 朝鮮半島(조선반도), 3: 현재의 白頭山(백두산, 2750m), 4: 현재의 天池(천지)  원래의 蒙古(몽골)은 베링해협 서쪽 北海(북해)인근에 있었으며 白頭山(백두산)은 蒙古(몽골)의 東南(동남)쪽에 수 천리 거리에 있었으므로 북미북서지역에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蒙古(몽골)은 원래의 위치에서 萬里(만리)가량 南西(남서)로 移動(이동)된 지명이며 白頭山(백두산) 또한 移動(이동)된 지명이다. 원래 白頭山(백두산)의 북쪽은 大荒(대황)으로 沙漠(사막)과 불모의 땅이 있었다. 현재의 白頭山(백두산)은 北(북)쪽으로 沙漠(사막)이 아닌 綠地(녹지)가 있다. 白頭山(백두산)의 가로 길이는 千里(천리, 약 470km)였으나 현재의 백두산은 길게 잡아도 50km정도이다. 현재의 천지 또한 둘레길이가 14.4km(약 31리)로 원래의 천지둘레인 80리(약37km)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원래의 白頭山(백두산)은 韓半島(한반도)의 서쪽에 있었으나 현재의 白頭山(백두산)은 동쪽에 있다. 현재의 白頭山(백두산)은 역사기록들과 완전히 불일치하는 가짜인 것으로 판단된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현재의 白頭山은 위치부터 크기까지 역사기록들과 전혀 맞지 않는다.

白頭山(백두산)과 長白山(장백산)은 다른 산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 會寧都護府[회령도호부]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白頭山(백두산) 바로 長白山(장백산)이다. 부의 서쪽으로 7, 8일 걸리는 거리에 있다. 산이 모두 3층으로 되어 있는데, 높이가 2백 리요, 가로는 천 리에 뻗쳐 있다. 그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둘레가 80리이다. 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鴨綠江(압록강),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松花江(송화강)과 混同江(혼동강),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蘇下江(소하강)과 速平江(속평강),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豆滿江(두만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白頭山(백두산)과 長白山(장백산)은 같은 산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역사기록들에는 다른 산으로 명기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들어 있다.

인조 2년(1624) 9월 28일 1번째기사

“신이 순행차 삼수(三水)에 도착하여 관방(關防)의 형세를 살펴보건대, 백두(白頭)·장백(長白) 두 산이 모두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로(父老)에서 물어보니 ‘백두산은 우리 지경에서 거리가 겨우 4∼5일정(日程)이고 장백산은 더욱 가깝다.”
“臣巡到三水, 審視關防形勢, 則白頭、長白兩山, 皆在眼前。 問于父老則 白頭去我境, 僅四五日程, 長白則尤近

백두산(白頭山)과 장백산(長白山) 두 산은 인접한 다른 산이다.

숙종 18년(1692) 2월 17일3번째기사.

“또한 백두산(白頭山) 남쪽이 되고 장백산(長白山) 북쪽이 되어 바로 두만강(豆滿江)의 상류가 되니, 이미 이처럼 빠른 길이 있으므로 운총을 경유해서 동떨어지게 먼 길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且處於白頭之南長白之北, 正是豆滿上流, 旣有此捷路, 不必由雲寵, 以抵絶遠之吉州”

白頭山(백두산)의 남쪽에 長白山(장백산)이 있었다.

숙종 38년(1712) 3월 4일 1번째기사

“백두산(白頭山)과 장백산(長白山) 두 산 사이에 보다회산(甫多會山)의 분수령(分水嶺)이 있는데”
“且白頭、長白兩山間, 有甫多會山分水嶺”

白頭山(백두산)과 長白山(장백산) 사이에 甫多會山(보다회산)이 있었다.

숙종 38년(1712) 5월 15일1번째기사

“역관(譯官)이 백산(白山) 지도(地圖) 1건(件)을 얻기를 원하니, 총관이 말하기를 ‘대국(大國)의 산천은 그려 줄 수 없지만, 백산은 곧 그대의 나라이니 어찌 그려주기 어려우랴.’ 하였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백산 이남은 땅을 다툴 염려가 없을 듯합니다. 하였다.”
“譯官願得白山圖一件, 摠管曰: ‘大國山川, 不可畫給, 而白山, 乃爾國也, 何難畫給?’ 以此觀之, 白山以南, 似無爭地之慮”

1712년 淸(청)과 東國朝鮮(동국조선)의 경계는 白頭山(백두산) 천지와 압록강과 두만강이었다. 위 기록에 백산은 장백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백두산은 청나라와 국경이 닿아 있기에 지도를 줄 수 없으나 백산(장백산)은 동국조선의 강역이니 지도를 그려줄 수 있다고 하였던 것이다.

白頭山(백두산)과 長白山(장백산)은 인접하여 있었으나 엄연히 다른 산이었다.

▲ Alaska의 Mount McKinley(6168m)  MONGAL(몽골, 蒙古)의 南東(남동)쪽에 위치한 돌산으로 연중 대부분 눈에 쌓여 있는 白山(백산)이며 산상에 거대한 호수들이 있다. 크기가 천리를 넘는 거대한 산이다. 지금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알래스카의 기후가 얼어붙었지만 古地圖(고지도)들에 알래스카 북쪽은 蒙古(몽골)의 沙漠地帶(사막지대)였다. 蒙古沙漠(몽골사막)을 횡단하던 사람들이 멀리서 보면 항아리를 엎어 놓은 모습이라던 기록들과도 일치한다. McKinley산은 여러 역사기록들과 일치하여 白頭山(백두산)으로 판단된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조선왕조실록에 長白山(장백산)과 白頭山(백두산)은 다른 산으로 명기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산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현재의 韓半島(한반도)인 東亞細亞(동아세아)의 朝鮮半島(조선반도)를 COREA의 韓半島(한반도)로 만들면서 白頭山(백두산)과 長白山(장백산)을 정해야 하는데 거대한 산들이 인접한 곳이 없기에 하나의 산으로 조작하여 교육을 통해 세뇌한 것이리라.

이상의 역사기록들로 白頭山(백두산)의 기준을 정해보자.
 
白頭山(백두산)은 北海(북해)인근 蒙古(몽골)의 東南(동남)쪽 數 千里(수 천리) 거리에 있었다.
가로로 천리(약 470km)의 거대한 산들이 두 개가 가까이 있었다. 
백두산(白頭山)과 장백산(長白山) 두 산 사이에 보다회산(甫多會山)이 있었다.
높이가 2백리(약 94km)이다. (해발이 아닌 올라가는 거리)
마치 흰 독을 엎어놓은 듯하다.
꼭대기에 80리(약 37km) 크기의 天池(천지)가 있다.


이 외에도 조건들은 많으나 위의 조건들만으로도 白頭山(백두산)과 長白山(장백산)은 가려지게 될 것으로 판단한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영문고지도들을 공부하다 우연히 고지도들의 중요지명들이 이동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후 현재의 중요지명들의 위치가 세계사조작을 위하여 이동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2년여간 지명이동사례들을 탐구하여 정리하였습니다. 2014년 7월부터 고지도조작의 사례들을 모은 ‘고지도의 진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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