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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5.18 전두환 일당과 광주 민주화항쟁 단체들이여!

어찌하다가 민중항쟁 민주화의 구심점이 없어지고 말았단 말인가

편집부 | 기사입력 2014/05/18 [10:00]

[앵콜]5.18 전두환 일당과 광주 민주화항쟁 단체들이여!

어찌하다가 민중항쟁 민주화의 구심점이 없어지고 말았단 말인가

편집부 | 입력 : 2014/05/18 [10:00]
▲ 5.18광주민주화 항쟁 탑     © 편집부

▲ 국가안위와 정치안정화와 민주회복을 위해 평화롭게 시위하는 광주 시민들.  이하 자료사진     © 플러스코리아

[민족/역사/통일=플러스코리아타임즈 리복재 기자칼럼] 5.18민주화운동 제 34주년 기념식이 5.18 유가족과 3단체(유족회,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기념재단 관계자, 새정치민주연합과 야당 등이 전면 불참한 가운데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됐다. 정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대신 정홍원 국무총리가 새누리당은 이완구 원내대표와 주호영 정책위의장 등 주요 당직자가 기념식에 참석했다.
 
본지에서는 이복재(리복재) 기자의 취재수첩 형식으로 2007년도에 쓴 칼럼을 5.18민주화운동 제 34주년 기념식에 맞춰 앵콜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유죄판결을 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서훈 취소가 2005년 12월 21일 정부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거쳐 지난해 3월에서야 이루어 졌다.

개정된 상훈법과 5·18민주화운동특별법에 의해  취소 대상이 되는 서훈은,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공로로 받은 경우 △서훈 공적이 거짓일 경우 △국가안전 관련 죄로 형을 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형법·관세법·조세범처벌법상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를 받은 경우 등이다.

전두환은 1980년 국군보안사령관 자격으로 태극무공훈장을 받는 등 모두 10개의 훈장을 받았으며, 노태우도 같은 해 보안사령관 자격으로 을지무공훈장을 받는 등 12개의 훈장을 받았던 바 있다. 
 
▲ 전두환과 군부세력들은 사형등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으나, 김대중 정권에 의해 사면되었다. 용서와 화합으로  살려 줬다지만, 어디 이렇게 해서야 민족정기와 역사를 바로 세울수가 있겠는가?     © 플러스코리아

 
전두환, 노태우가 누구 였던가?
그들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악용한 정치군인들 이었다!

그들은 박정희 정권 때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군 인사를 요리조리 떡 주무르듯 하고서 국민과 국가를 수호해야 할 신성한 군인들을 정치군인으로 만들어 유신철권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정부장의 총탄에 의해 죽자, 막강한 보안사(현 기무사)를 등에 업고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의 그늘에 야습하더니, 급기야 드러내놓고 국가를 강탈 하고자 민주화를 열망하던 국민과 광주시민을 폭도요 빨갱이로 몰아 부쳤다.

박달나무 곤봉과 총 개머리판과 대검으로 머리와 얼굴등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짓이겨 죽이고, 여학생의 유두를 자르고 여성의 자궁을 드러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살아 있는 생명체를 적괴수를 잡은양 용맹성을 떨치는 등 극악무도한 짓거리를 자행 하였던 전두환과 그 일당 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바로잡지도, 찾지도 못하고 일제와 부왜역적 식민사학자들이 우리역사를 1만년 가까이 없애버리고, 발해사를 없애기 위해 ‘통일신라’로 폄하해 버렸던 민족반역자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미명하에 고조선 및 고구려사 왜곡 등 ‘한국사 침탈’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와 의식 있는 민족단체와 사학계에서는 무엇하고 있는가.

광주 민중항쟁 정신을 되살려 위대한 우리민족의 정기를 바로잡고 과거사 정리에 박차를 가해주기를 참여정부에 마지막으로 바라면서 80년 광주 민중항쟁, 그때의 장면을 되살려 보고자 한다.

▲작전명령 [화려한 휴가]. 국방의무를 다하는 죄없는 병사들에게 '작전명령 화려한 휴가'로 명령하여 국민을 찢어 죽이라 명령했던 전두환 군부독재세력들!!    ©플러스코리아

▲ 계엄군에게 처참하게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죽임을 당했던 아버지를 땅속에 묻기 위해 어린 자식들이 상복을 입고 망월동 묘역에서 먼 산야를 바라보고 있다.     © 플러스코리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집착하였고 솟구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극심한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저곡가 저임금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몰아부치면 인권도 자유도 민주도 없었고,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압살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우선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으로 그칠 줄 모르고 전개되었다.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부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온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 일당은 오히려 민주화 과정의 과도기를 틈타 자신들의 집권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다음, 당시 분출되고 있던 전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세력과 야당의 정적을 제거해야 했다. 그 제물이 광주였다.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곳이며 야당의 정적 중에서 가장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던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 전라도 광주였던 것이다.  

전라도 광주는 70년대 박정희 개발 독재 때부터 희생양이었다. 겉으로는 정적인 김대중을 제거하기 위한 비열하고 치졸하게도 같은 민족을 철저히 소외시켰고,  경제 등 산업기반시설 구축 등 외면하였고, 우리 민족을 다시 동서로 가르는 지역감정의 볼모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장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며 투쟁해 온 민주투사의 고장이었다.
 
전두환 신군부 일당의 학살만행에 맞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시민전체가 일심동체로 저항하였던 것은 정신적 측면에서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든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피의 진압으로 5·18민중항쟁은 끝났지만, 그 후 청년학생을 비롯한 양심적인 민주인사들과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일당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으로서 항쟁의 정당성은 온 천하에 입증되기에 이르렀다. 

▲ 시민들에게 총기 발포를 앞두고 있는 게엄군과 특전사 요원들     © 플러스코리아
 
 전두환과 이에 동조한 정치군인들은 알고 있으리라...

네 놈이 우리민족의 가슴에 한을 심었으렸다! 
네놈들이 감히 두 눈 게슴츠레 뜨고 국민들에게 총칼 질을 했으렸다!
인간답게 살기위해 처절하게 자유와 민주을 외치고
정의로움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을 사정없이 옥죄고 있었으렸다.! 

 
▲5.18 기념관 전시실     ©플러스코리아


그렇거든 너희에게 답하는 것은 우리들의 자유이리라...
한국해 넘실거리는 파도에 담아 답하는 것은 8천만의 자유이리라...
백두산하 먼 산 허리를 담아 답하는 것은 우리들의 자유이리라...
 
네놈들의 두 눈에 처절한 피눈물이 흐르게 해주마!!!
네놈들의 심장에 독묻힌 날 선 칼을 박아주마!!!
네놈들의 정신에 사지육신 흔들리는 바람을 넣어주마!!! 

 
▲ 진압후 게엄군들은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린 중학생을 찾아 내어 끌고가 죽이고 구타하고 서슴없이 고문을  자행했다.     © 플러스코리아

마음의 안식처였고 무한한 자부심이었던 빛고을 광주여!

 80년 5월, "군부정치 물러가라!! 민주주의 보장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민감한 대학생들의 등교를 일부러 가로막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병사들에게 곤봉과 대검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찌르라고 명령했던 전두환 일당. 오로지 학업에 전념하기 위하여 등교하려던 그 학생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이들을 토끼몰이 하듯이 시내 금남로로 내쫒고 반항하는 젊은이들 사냥에 나선 대한민국 특전사와 게엄군. ‘작전명령 화려한 휴가’로 가정집, 여관, 건물안을 샅샅이 뒤져 젊은이들을 곤봉으로 구타하고, 총 개머리판으로 짓이기고, 대검으로 찌르며 피를 흩뿌리게 했던 극악무도한 전두환 일당.

국가안위와 정치안정화를 바라며 평화롭게 민주적인 절차방식으로 시위하는 광주전남의 어린이, 학생, 주부, 노인, 장애인에게까지 대검으로 찌르고 총 개머리판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얼굴을 짓이겨 죽였고, 임산부 배를 대검으로 갈라서 살아있는 생명체를 꺼내 적들의 괴수를 잡은 것처럼 용맹성을 떨치고, 지나가는 여학생을 붙잡아 대검으로 유두를 잘라내고, 자궁을 난도질하고, 노인이 시위한다고 목졸라 죽이고, 냇가에서 멱을 감던 7~8세 어린이를 정조준해서 죽였다.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주부와 여학생을 군화발과 진압봉으로 실신시키고 대검으로 유두를 잘라내고 자궁을 도려내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던 전두환에게 동조한 정치군부.

망월동 묘지에서 죽어서라도 한과 슬쁨을 잊고 새로운 연분을 지어 행복하게 살라며, 영혼(진중) 결혼식 때 만들어진 님을 위한 행진곡,“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신혼 초 교사인 남편을 기다리다 게엄군의 무참한 구타로 숨진 故 최미애 열사     ©플러스코리아
오월의 노래
(이곡은 유명한 프랑스 샹송 가수 Michel Polnareff의 "Qui A Tue Grand Maman" [누가 할머니를 교살했는가?]를 편곡한 곡입니다. 군부는 특전사 및 계엄군을 동원하여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는데 그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에서 어느 이름 모를 편곡자가 이 곡의 리듬에 가사를 붙여서 1980년 5월 항쟁을 추모하는 곡인 [오월의 노래]가 만들어지고 이후 거의 모든 시위현장에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1.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2.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 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3.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투쟁 없이 어떻게 헤쳐 나가리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4.
대머리야 쪽바리야 양키놈 솟은 콧대야

물러가라 우리 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붉은 피피피
  
▲ 전두환 일당은 신혼여행가는 부부까지 끌어내 곤봉으로 구타하고 대검으로 난도질을 해댔다.     © 플러스코리아

이제 광주는 한이 아닌 평화의 상징이 되어 대한민국, 세계의 성지가 되었다.
그런데, 광주 5.18기념재단과 민중항쟁 단체들이여!


7~8세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켜달라는 군인에게 아무 이유 없이 토끼몰이 당하여 평생 불구가 되고 끌려가고 유두를 절단 당하고 자궁을 난도질 당하고 얼굴을 알 수 없게끔 짓이겨 죽임을 당했던 소중한 넋들을 잊었단 말인가. 피로써 민주주의 서막을 열어준 민주차량들의 거리행진을 잊었단 말인가. 정의와 도덕으로 무장한 민주투사들의 목숨을 내던진 차량시위를 정녕 잊었단 말인가. 대나무창과 총과 주먹밥을 쥐고서 민주화를 외치던 민주투사를 정녕 잊었단 말인가.

오늘 님들에게 묻노니, 어찌하다가 민중항쟁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 없어지고 말았단 말인가. 민주주의 기본 도리인 자유와 평등을 외면하고 소신마저 없고 기본 예의마저 갖추지 못한자들이 준동한다는 말인가. 태극기를 머리와 등 뒤에 꽂고 내달리며 계엄군의 저지선을 뚫고 들어가 죽었던 민주투사를 정녕 잊었단 말인가. 

민주의 성지 빛고을 광주야 말로 우리가 마지막 까지 지키고 싶은 깨끗함이고 양심이고 도덕이며, 민주개혁의 중심으로서 정의와 도덕으로 무장한 민주투사들이 뭉쳐져 단호히 개혁을 외칠 줄 알았소. 
 
▲ 전두환 일당들은 시위하다 잡힌 사람들을 트럭에 실어 어디론가에 끌고가 죽이고 묻어버려, 현재까지 알려 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플러스코리아
 
그런 광주가... 80년 5월 민중항쟁시 그때, 집에서 회사에서 공공기관에서 몰고나온 차량과 정당방위 하는 민주투사들.
 
무지막지한 곤봉과 대검,M16소총,기관총,장갑차,무장헬기의 난사로  국민의 피를 뿌리게 했던 계엄군들에게 온몸엔 곤봉으로 구타당했어도, 대검에 찔려 얼굴엔 피가 낭자 했어도, 차량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동지가 총에 맞아 죽었어도, 옆에 있던 동지가 핸들을 잡고 가다 또 총에 맞아 죽어갔어도, 뒤에 타고 있던 동지가 핸들을 잡아  눈물을 펑펑 쏟으며 계엄군에게 죽어 갔어도, 오열하는 시민들을 쳐다보며 그곳 금남로에서 터미널에서 역전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죽임을 당했어도, 산자의 몫을 다해 달라며, 우리의 진실을 알려 달라며, 우리를 죽여야 하는 이유와 역사에 바로 정립될 수 있도록 해주라며, 두 눈 부릎뜨고 처절하게 죽어 갔다. 
 
▲ 국민을 보호해 주라는 국민의 여망을 짓밟고, 그것도 모잘라 국민을 죽여 개끌듯이 끌고가는 게엄군들. 이들의 행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외국 언론인의 모습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 플러스코리아
 
이름 없이 산화한 열사들을, 저들 군부독재세력들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 트럭과 청소차에 실어 , 어디론가 어디론가 깊숙이 감추어, 이름 없는 야산과 들판에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는 백여우처럼 꽁꽁 숨기어 버리고,  사망숫자가 많아 질 까봐 지금도 알면서도 모른 체 두 눈 딱 감고 있잖소. 그런 광주가...
 
5.18 기념재단과 민중항쟁 단체들이여!
이제는 배떼지가 불렀다고 민주투사와 민주영령들이 기억에서 가물거리오? 


재단이 두드리면 소리만 요란한 양철판 처럼 소음만 내고 마는 깊이도 넓이도 뻔히 눈에 보이는 그런 이들만이 모여 있는 것이오?

이제 전두환 독재세력들이 저지른 전모를 밝히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재단이여. 그리고 이와 관련 민중항쟁 단체들이여. 전두환 일당의 허위사실 유포에 단호히 대처하고 그들에게 동조한 자들을 색출하라.

더이상, 빛고을 광주를 우습게 만들지 마시라. 민주투사 영령들을 우습게 만들지 마시라.

▲ 어린 사춘기 소녀의 젖가슴을 도려내었던 전두환과 그 일당들. 여고생들이 있을 수 없는 죽임을 당한 친구의 책상위에 꽃을 놓아 두었다.     © 플러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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