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양심있다면 지나국은 만주 반환해야 한다지나국은 역사적 양심이 있다면 한민족에게 깊이 감사하고 만주를 반환해야 한다<민족회의>와<플러스코리아>가 민족운동과 민족정론의 선봉이 되기를 바란다
<플러스코리아>는 21세기 인류혁명의 상징이며 대한민국의 국익문제와 직결되는 황우석사태 당시 세계최초로 인간체세포 줄기세포 특허를 개발해 낸 황우석박사를 특허강탈(도용)을 목적으로 논문문제를 부추겨 학문적으로 매장시키려 한 미국국적자 유대인 새튼의 음모를 세계금융을 독점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비밀그룹(프리메이슨)의 실체분석과 더불어 고발하고 대한민국의 줄기세포 특허를 보호하고, 대한민국의 인재로서 황우석박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민족사를 주관적 관념이 아니라 학문적 차원에서 객관적 시각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현실정치문제에 대해서도 국민과 민족편에서 비판하고 문제제기해 온 민족언론지라 할 수 있다. 현재 인터넷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복재 플러스코리아 공동대표는 황우석사태 당시 진실규명운동과정에서 필자와 만나 <진실규명 국익수호협의회>단체를 이끌면서 특허관리를 외면한 당시 노무현전대통령에 대해 직무유기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으며, 플러스코리아를 민족정론지로 만들고 진실규명을 외면하는 기존의 언론매체에 대응하는 인터넷언론들을 하나로 결집해 내자고 결의하고 다짐한 바 있다. 참고로 <플러스코리아>라는 이름이 영어라고 해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영어는 어차피 고대로 올라가면 동북아시아 지역의 고대 한국인들이 서진하면서 변형된 한국어의 아류어니까 말이다. <플러스 코리아>는 한국말로 <불러!코리!>를 길게 발음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고대 한민족의 중심종족이였던 <코리>를 지향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당시 최첨단 과학기술에 해당하는 철제기술을 선도하고 철제기술을 전제로 하는 최고의 기마술로 초원과 지나대륙을 지배하던 <코리>는 '고리.구리.구려.고려'다. 단군22대 색불루천황이후부터 부여를 개국한 해(고)모수와 부여를 접수한 고두막,고구려를 개국한 고추모,고추모 아들로 백제(일본)를 개국한 온조와 비류, 사로국을 건설한 박혁거세, 인류에게 자비를 가르친 불교교조 석가모니,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을 경영한 징기즈칸,징기즈칸의 혈족으로 중앙 아시아 지역에 티무르제국을 건설한 티무르, 인도에 무굴(몽골)제국을 건설한 바부르에 이르기까지 모두 코리족이다.
민족과 인류를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이념으로 헌신하고 있는 모든 민족단체들은 <민족회의>로 결집해서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족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야말로 한국인들 중에 알맹이 한국인들로 서로의 패거리주의는 완전히 버리고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하나가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족회의>의 운영은 각 단체장들로 구성된 집행부에서 논의와 협의를 통하여 모두가 만족하고 동의하는 회의결과로 합의와 원칙을 이끌어 내서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민족회의>가 힘과 추진력을 발휘하려면 먼저 민족운동에 참여한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인성이 바로 서야 한다. 예의바르고 양심적이어야 하고 책임성이 강해야 한다. 이런 품성이 정립되지 않으면 그 어떠한 사회운동도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집행부가 결정한 민족적 사업을 추진될 수 있는 조직이 세밀하게 구성되야 한다. 또한 재정확보가 되야 한다.재정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업이 추진되기 어렵고 민족운동이 확산될 수 없다. 민족운동에 동참하고 하는 민족자산가들은 빌딩이라도 제공하여 활동할 수 있게 하고, 재산이라도 투자하여 재정문제없이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산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 재정확보는 <재정위원회>구성을 통하여 민족기업인들의 후원과 더불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사업으로 국민적 후원으로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기본원칙이 되야 한다.민족운동은 국민적 지지없이는 확산될 수 없다. 항상 조직의 부패와 비리는 돈문제에 있다. 재정의 수입과 지출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되야 한다. 지출에 있어서 집행부가 급여지급으로 생계보장을 해 주어야 한다. 대신 집행부는 <민족회의>회칙을 통하여 임기를 정하고 <민주적 선출방식>에 따라 유능한 인재들로 구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집행부 선출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이러한 각 단체회원들의 명단확보를 통하여 투표권자를 선거 전에 확보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를 통하여 집행부가 구성될 수 있도록 해야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민족운동이 추진될 수 있다.
이번에 플러스코리아 상임대표를 맡게 된 김영기 님 또한 100년 전 일제가 만주철도권을 갖는 조건으로 고종황제의 승인도 없이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지나국에 넘긴 간도반환소송을 100년이라는 시한을 앞두고 스위스 국제사법재판소에 접수하는 쾌거를 이룬 인물로서 남북한의 온 동포들이 박수를 쳐 주고 향후 민족정부가 수립되면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 인상도 선하시고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시는 것 같은 김영기 님은 현재 <민족회의>집행부를 이끌고 계신 분이시고, 미.소 냉전이 치열하던 8.15이후에 중립 민족자주외교노선으로 민족분단을 막고 민족통합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헌신했던 김구.여운형.김규식.조소앙 등 민족주의 정치인들의 정치노선을 지향하고 있는 점 또한 민족주의 정치노선을 가지고 3여년간 개혁국민정당에서 정치활동를 했던 필자와도 공감되는 부분이였다. 현재 우리 민족이 분단을 지속하고 있는 배경에는 미.소가 심어 놓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대결에 있다. 김영기 상임대표의 경우 8.15이후 민족자주연맹을 이끌었던 김규식 선생의 정치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에, 필자의 경우 국제적 흐름을 갈파하고 폭넓은 시각과 대범한 활동으로 항일운동을 이끌었고, 신한청년당을 만들어서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고 8.15이후에는 건국준비위를 구성하여 민족통합정부를 구성하고자 했던 몽양 여운형을 정치적 스승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모두 외세가 주입한 좌우이념을 초월하여 민족통합을 추구한 민족주의 노선의 정치인들이였다는 사실이다.
왜 일제식민지 생활을 하고 8.15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민족이 분단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만주지역에서 일어난 신흥강국 청나라의 강성함으로 인하여 점점 부패하고 망해가는 명나라만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청나라는 오랑캐 취급하다 침략을 당하여 인조가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을 하고 말았던 조선의 소중화사대주의에 기인한다. 주변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주정신을 상실하고 노예로 살아 가야 하는 사대주의는 모든 고통의 댓가가 백성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백성의 삶은 피폐해지고 결과적으로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조선은 세종임금당시 세계최초 로켓무기를 개발하고도 명나라의 압력으로 그것을 자주국방에 활용하지 못하고 말았으며, 정조의 죽음으로 개혁이 중지되고 다시 소중화사대주의 세력이 득세하게 됨으로써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의 과학문물을 수용하여 산업화시키고 정치조직을 근대화시키고 군대를 신식군대로 양성함으로써 아시아지역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되는 일본과는 대조적인 조선의 권력집단의 국제적 흐름에 대한 인식과 내부쇄신 부재가 결국 일제의 침략을 허용하고 미.소에 의한 민족분단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우리 민족내부의 문제를 더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대외교에 첨단무기체계가 부재한 허술한 국방체계, 그리고 권력집단의 부정부패비리는 결국 자식들과 후손들이 고통당하고 절망하는 망국으로 가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시는 과거의 뼈아픈 고통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외부를 향해서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철저히 돌아 보고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김대중전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6.15민족합의이행만이 한민족이 살 길이다 외세의 이념에서 탈피하여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이념으로 나갈 때만이 비로소 평화요 통일인 것이다. 그 열매가 바로 2000년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우리 민족까리 교류협력.공존번영.연방통일>하자고 합의한 6.15민족합의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8.15이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에서 활동하였고 여운형 선생을 절세로 애국자로 추앙하고 그의 민족주의 정치노선을 대통령이다. 그랬기 때문에 빨갱이란 음해매도를 부릅쓰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만나 역사적인 민족자주적 통일선언문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남한의 대통령은 김대중의 대북노선을 계승하면서도 한국의 민족주의로 무장하고 한반도와 세계에 홍익인간이념을 크게 실현할 인물을 대통령으로 추대해야 민족과 인류가 사는 길이다. 오늘이 김대중전대통령 서거1주년이다. 김대중전대통령은 인간으로서나 정치인으로서나 모든 고난과 음해와 시련을 극복하고 오직 국민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던져 불꽃처럼 살다 간 한민족이 낳은 위대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김대중을 음해매도비난했던 모든 사람들은 오늘 김대중전대통령에게 사죄하고 한심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 보고 사람이라면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4대 강국들이 한반도를 놓고 으르렁거리는 지정학적 상황에서 어느 누구의 편도 들어 주지 않으면서 우리 민족에 이익에 적극 활용하고 서로를 이롭게 하겠다는 김대중의 중립 자주실리.인류공존.인류평화 노선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생존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소외된 나라들은 반드시 '해꼬지'를 할 수 밖에 없고 전쟁을 부추길 수 밖에 없다. 분단된 한머리 땅은 본래가 역사적으로도 매우 값어치있는 땅이기 때문에 남북이 통합되고 만주를 회복할 때까지 주변 외세들에게 비싸게 놀아 주면서 우리민족의 실리를 챙기는 중립자주외교를 펼쳐야 하는 것이다. 현재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외교노선은 완전히 미국의 대북노선(북한 굴복시키기)을 따라가는 사대외교노선으로 지나국이 화들짝하는 명분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100년 전 한민족의 영토인 간도는<우리 민족끼리>계속 국제적 이슈화와 국제법적 투쟁을 통하여 반드시 되찾아야 할 것이다 100년 전 간도(만주)는 분명히 한민족의 영토이고, 고대로부터 한민족의 거주공간이다. 한반도와 만주는 고고학적으로도 고인돌.청동검.온돌이라는 한민족의 아이콘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결코 구분될 수 없는 하나의 터전이다. 단군3조선에서 25대 솔나단군황검시절에 주나라에게 은나라가 망하자, 은나라에서 망명해 온 은나라 왕족 기자의 후손들이 다스리던 번조선(기자조선=영역:요서.산동)이 한나라 내부의 혼란을 틈타 난하를 건너서 조선땅으로 망명해 온 연나라 노관의 부하장수 위만의 위장술에 속하여 강탈당한 이후에도 대릉하를 기점으로 만주와 한반도는 <동이>로 대변되는 오리지날 한민족의 터전이였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는 청나라가 확장시켜 준 영토다. 모택동과 사회주의 혁명을 했던 주은래는 매우 양심적인 지성인이였는데, 주은래는 지나국의 역사왜곡행위를 실랄하게 비판하면서 민주지역에서 일어난 청나라는 지금의 영토로 확장시킨 나라이며, 만주를 지나국의 영토로 삼은 점에 대해 한민족에게 사죄했다. 지난 1963년 6월28일 지나국을 42일간 방문한 북한 조선과학원 대표단 20명과 만난 자리에서 행한 주은래 당시 쥐나국 총리는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려는 반지성적인 지나국 국수주의자들의 움직임을 질타하며 역사침공 행위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공식사과했다. 우선 그는 한-중 고대-중세사와 관련,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며 "이는 쥐나국 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 쇼비니즘(국수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며,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였다"며 역사왜곡의 근본책임이 쥐나국에 있음을 시인했다. 그는 구체적 실례로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분명한 것은 조선족 일부가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이다.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거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역사기록과 출토된 문물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우선 단군조선사와 관련해서도 "쥐나국 역사학자들은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기도 했는데 이것은 역사왜곡"이라며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다는 말이냐"고 고조선사를 한국역사로 인정했다. 그는 고구려사와 관련해선, "진, 한나라 이후 빈번하게 랴오허 유역을 정벌했는데 이것은 분명 실패한 침략"이라며 "당나라도 전쟁을 치렀고 또 실패했으나 당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그때 여러분 나라의 훌륭한 한 장군이 우리 침략군을 무찔렀다"며 고구려사를 한국역사로 인정했다. 그는 발해사와 관련해선, "징보(鏡泊)호 부근은 발해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며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민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라며 발해사를 한국고대사의 한 지파로 인정했다. 쥐나국 영토를 크게 넓힌 만주족의 나라 청나라(한반도 후예의 나라) 주은래는 만주족이 지배한 청나라시절 한국의 조상들이 지배했던 영토가 청나라의 영토 팽창주의로 크게 줄어든 데 대해 공식 사과하기까지 했다. 쥐나국이 100년 전 한민족의 영토인 만주를 양보해야 하는 역사적 당위성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만주족은 쥐나국에 대해 공헌한 바가 있는데 바로 쥐나국 땅을 크게 넓힌 것이다. 왕성한 시기에는 지금의 쥐나국 땅보다도 더 컸었다. 한족이 통치한 시기에는 국토가 이렇게 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역사의 흔적이고 지나간 일들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며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중국의 영토 침탈을 사과했다. 주은래 총리는 사과후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쥐나국 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라고 재차 쥐나국 학자들의 쇼비니즘을 재차 비판했다. 그는 "쥐나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고 역사왜곡 시정을 약속했다. 한 시대의 거목다운 깨끗한 역사인식이자 사과였다. 그런 면에서 <동북공정> 역사침공을 벌이고 있는 현 쥐나국 지도부는 주은래의 표현을 빌면 졸렬한 '쇼비니스트(개념없는 광신적 애국주의)'에 불과하다.
역사학자들의 말처럼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는 금나라를 기리며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 지었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금나라 태조와 정확히 어떤 혈연관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누르하치가 계승한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가 신라인이라는 문헌들은 많이 존재한다. 먼저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金史)'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金之始祖諱函普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금나라의 시조인 함보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고려에서 왔는데, 그의 형제는 고려에 남고 혼자만 금나라로 왔다는 이야기다.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도 금나라의 태조에 대해 "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김)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松漠紀聞)'은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이었다"고 전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비단 지나국의 사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부안 김씨들은 그들의 '족보'를 내세워 '금사', '만주원류고', '송막기문' 등의 내용을 이렇게 뒷받침한다. "함보는 법명이고 그의 본명은 김행 (혹은 김준)으로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자 경순왕 김부의 손자이다.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금나라의 역사서 '금사'와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 주장이다. 다만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김준의 직계 아들인지 몇 대를 거친 손자인지는 의견이 다양하다. 어느 것이 옳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인데,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유민이라는 점만은 어느 이야기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를 더 보자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안정복 역시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김준은 삼형제인데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때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고 밝히고 있어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 김함보라고 주장한다. 청나라를-엄격히 말하면 후금(후금은 청나라의 전신이다)-세운 사람은 누루하치. 그런데 그의 성은 '애신각라'이다. 이 신기한 조합의 한자를 분석해보기로 하자. 애신각라(愛新覺羅)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고국인)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청나라를 세운 만주인들의 '근원'을 살펴 보면 신라와 관련된 성이라는 해석은 상당히 신빙성을 가진다.(뒤에 서술)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지료'인데,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뜻한다. '(신라 왕실의 성인) 김씨의 겨레' 혹은 '금, 밝음을 숭상하는 겨레'라는 말이다. 청나라라면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오랑캐의 나라로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나라이다. "청나라는 우리나라를 어버이의 나라로 섬겼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청태조 누르하치가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었지요. 또 유명한 '삼전도 항복' 때는 친명배금을 외치는 조선에 와서 '원래 우리는 고려인의 후손으로 그대들과 같은 나라였다'는 취지로 '그대는 왜 동족을 따르지 않고 명나라를 돕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청은 조선에 번번이 형제의 도리를 강조했습니다. 조선은 명분론에 매여 끝까지 청을 형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역사연구단체 한배달의 오정윤 연구원은 먼저 청나라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긴 예를 들었다. 그는 누르하치가 백두산 지역에서 태어난 것을 지적하며, 당시 백두산 지역에는 만주계 조선인이 많았고 그들 중 상당수가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고려인 또는 조선인으로 귀화했다고 설명했다. 한 때, 누르하치도 평안도 지방관현에 벼슬을 수차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는 이야기까지 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왜 청나라가 끝까지 조선에 호의적이었을까요? 바로 청나라가 금(김)나라로부터 나왔고 금나라는 신라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고로 김나라에서 출발한 청나라는 고려에 멸망한 신라 마의태자의 손자로 추정되는 김행(김함보)는 고려에서 만주지역에 사는 여진족의 거주지로 가서 금(김)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동해안 지역과 금강산지역에는 마의태자 전설과 유적들이 많다.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 왕건에게 바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동해안을 따라 금강산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손자들 중에 김행이 만주로 이주하여 고구려.대진국의 후예인 여진족을 규합하여 김(금)나라를 세웠고, 금나라를 계승한 청나라에 이르러 중원을 정벌하여 지금의 지나국의 영토를 확장한 것이다. 그리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김부의다. 따라서 한머리 땅인 한반도지역에서 만주지역으로 이주해서 금나라를 세웠다는 결론이 분명하게 나오니 일부 뻥튀기 역사매니아들은 고려와 고려를 이은 조선를 지나대륙에 있었다느니,현재 서울은 조선의 도읍지가 아니라느니 하는 <대륙조선사>와 같은 귀신 씬나락 까 먹는 소리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 여진은 고구려와 대진국을 잇는다는 의미의 축약어로 고구려의 후예들인 여진족은 만주지역에 거주했던 만주족이였고, 신라.고려는 한머리 땅에 존재했던 것이다. 당시 지나대륙은 몽골초원의 몽골제국에게 멸망당하는 송나라가 존재하고 있었다. [몽골비사]에 테무친은 <코리군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징기즈칸의 선조는 <코리족>으로 광개토태왕 당시 초원지역으로 이주당한 부여족을 의미한다. 해모수의 부여를 접수한 고두막의 아들이 고무서이고 동부여에서 망명해 온 고추모에게 딸 소서노와 혼인시켜 부여단군직을 승계시키는데 이 때 부여인들이 거세게 반대하게 되서 남쪽으로 남하하여 압록강 지류 혼강위에 골본성에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라고 칭한 것이다.고추모의 부여단군승계에 반대한 부여인들이 바로 징기즈칸의 선조들인 셈이다. 징기즈칸을 중심으로 대통합된 몽골(말칼=말갈)이 김(금)나라와 송나라를 멸망시켰고 원나라가 망한 이후 명나라가 개국하고 만주지역에는 누르하치가 거란과 여진(말갈족)을 대통합하여 청나라를 개국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지금의 광대한 지나영토를 확장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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