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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 고분으로 본 광개토태왕의 강역은 어디?
광개토태왕의 강역으로 본 동북공정의 허구의 (4부)
 
성훈 칼럼니스트
 아래는 본 4부작의 마지막 (4부)입니다.
(1부) 고구려의 초기 강역과 압록수는 어디?
(2부) 두 무덤(이제묘)이 밝혀준 고구려의 강역
(3부) 광개토태왕 비문의 염수와 토곡은 어디?
(4부) 덕흥리 고분으로 본 광개토태왕의 강역

 

덕흥리 고분으로 본 광개토태왕의 강역

1976년 북한 평남 덕흥리에서 한 무덤이 발굴되었다. 그 무덤의 주인공은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태왕까지 벼슬을 한 인물로, 그의 무덤에는 13 명의 태수가 무덤의 주인공에게 하례를 드리고 있는 벽화와 함께 아래의 묵서명이 발견되었다.  이 묵서명을 현 식민강단사학계에서 언급함은 금기사항으로 되어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덕흥리 고분의 묵서명 
□□郡信都[縣]都鄕[中]甘里             釋加文佛弟子□□氏鎭仕  
位建威將軍[國]小大兄左將軍             龍將軍遼東太守使持            
節東[夷]校尉幽州刺史鎭                   年七十七薨[焉]永樂十八年
太歲在戊申十二月辛酉朔卄五日         乙酉成遷移玉柩周公相地  
孔子擇日武王[選]時歲使一                良葬送之[後]富及七世子孫      
番昌仕宦日遷位至侯王                       造欌萬功日煞牛羊酒 米粲
不可盡[掃]旦食鹽[豆]食一記             [之][後]世寓寄4)無疆

□□군 신도현 도향 [중]감리 사람으로 석가문불의 제자인 □□씨 진은 역임한 관직이
건위장군 국소대형 좌장군 용양장군 요동태수 사지절 동이교위 유주자사였다.
진은 77살로 죽어 영락 18년 무신년 초하루가 신유일인 12월의 25일 을유일에 (무덤을) 완성하여 영구를 옮겼다.

주공이 땅을 보고 공자가 날을 택했으며 무왕이 때를 정했다. 날짜와 시간의 택함이 한결 같이 좋으므로 장례 후 부는 7세에 미쳐 자손이 번창하고 관직도 날마다 올라 자리는 후왕에 이르기를, 무덤을 만드는데 1만 명의 공력이 들었고, 날마다 소와 양을 잡아서 술과 고기, 쌀은 먹지 못할 정도이다. 아침에 먹을 간장을 한 창고 분이나 두었다.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다. 무덤 찾는 이가 끊어지 않기를...


우선 유주자사 진의 고향인 신도현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으로 찾아보면, 진은 산서성 임분(尧都) 출신으로 보인다. 여하튼 평남 덕흥리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信都县) : 汉置,为信都国治,三国魏擅冀州治,晋立南宫王子玷为长乐王,因改国长乐国,其后石赵、慕容燕、苻秦皆置冀州于此,隋初析置长乐县,省信都入之,仍为信都郡治,唐初复曰信都,为冀州治,后改国尧都(요도=임분),寻复故,明省入冀州,即今河北省冀县治。

▲  1976년 평남 덕흥리에서 발견된 고분에 적혀있는 묵서명 (14행 154자)


2) 유주(幽州)는 어디인가?

여기서 가장 논란이 되어 온 것이 무덤의 주인공이 ‘요동태수’와 ‘유주자사’를 지냈다는 기록이다. 즉 광개토태왕 시 요동군은 물론 유주 지역까지 다스리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고대 유주는 중국의 주장처럼 하북성 일대가 아니라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을 (섬서성 북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1부)에서 언급된 한서지리지에서 보듯이 유주자사는 대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현도군, 낙랑군 등 8개 군을 다스리는 벼슬이다. 유주 지역은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 북서부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주자사 진에게 하례를 드리고 있는 13태수의 지명을 살펴보면, 
(1) “연군(燕郡) 태수”           (2) “범양(范陽) 내사”          (3) “어양(漁陽) 태수”
(4) “상곡(上谷) 태수”           (5) “광령(廣寧) 태수”          (6) “대군(代郡) 내사”
(7) “북평(北平) 태수”           (8) “요서(遼西) 태수”          (9) “창려(昌黎) 태수”
(10) “요동(遼東) 태수”         (11) “현토(玄兎) 태수”        (12) “낙랑(樂浪) 태수”
이고 1명은 판독 불능인 상태이다.
 
▲   무덤의 주인겅인 유주자사에게 13명의 태수가 하례를 드리고 있다.  
이 12 태수의 지명은 (1부)에서 언급한 한서지리지 유주의 6개 군의 지명과 일치한다.
(상곡군) 거용, 창평, 탁록            (우북평군) 대갈석산
(요서군) 고죽성, 유성, 비여        (요동군) 안시, 요양, 서안평
(현토군) 서안평                           (낙랑군) 패수, 수성, 대방

이중 위치 추적이 가능했던 몇 개 지명에 대해서 언급을 해보면,
상곡군 탁록은 치우천황이 황제헌원과 싸워 항복을 받은 곳으로 현 산서성 운성시 일대,
요서군은 고죽성이 있는 곳으로 산서성 운성시 서쪽 영제시 일대이다.
현토군/요동군은 현 분하가 황하로 들어가는 곳인 서안평 즉 산서성 하진시 일대이다.

그리고 북평군은 산서성 운성시 예성현 영락진 일대이다.
우선 ‘永乐县’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검색을 해보면 아래와 같다.
后魏置,故城在今河北省满城县西北鱼条山下,北周移治北平故县,而此城废。
后魏置,故治在今河北省徐水县西。
后魏置,故治在今山西祁县东
辽置,为锦州治,元省入州,即今辽宁省锦县治。

北周置,寻省,以地属黄城县,唐分黄城于县东北二里永固堡重置永乐县,宋省为镇,故城在今山西永济县东南一百二十里,按《元和志》、《寰宇记》皆云后周置永乐县,不去置郡,隋志作永乐郡,盖字之误也。
북주 때 치소로 황성현에 속했다. 당나라가 황성현의 동북 2리에 있는 영고보를 영락현으로 나누었다. 송 때 진으로 되고 고성은 산서성 영제현 동남 일백이십리에 있다. <환우기> 주 때 영락현이 되었고, 군으로 가진 않았다. 수지에 영락군으로 만들어졌고 盖字之误也(?)
汉为北平县,北魏称永乐县,唐天宝元年(742)改为满城县。
한나라 때 북평현이라 했으며, 북위 때 (5세기 후반 장수왕 때) 영락현으로 불렀다. 당천보원년(742년) 만성현으로 개칭했다.

따라서 광개토태왕의 강역은 무덤이 발견된 한반도(덕흥리)와 무덤의 주인공의 벼슬인 유주 즉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 중북부(유주)까지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있는 만주 지역과 하북성/내몽고는 자연 광개토태왕의 강역이 아니라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유주자사는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의 군(郡)을 다스리는 벼슬이다. 요서, 요동, 현토, 북평, 상곡, 낙랑을 표시했다.
 
▲  산서성 남부에 있던 모든 지명은 명나라 영락제와 민국 형성 때 하북성 북경 부근으로 옮겨진다. 그것을 일제는 다시 한반도로 옮겨 반도사관을 만든다. 이렇게 일제 때 만들어진 사학 이론이 아직도 우리 교과서에 실려 있다.
정복군주 광개토태왕의 강역

1. 직접 통치 강역
   핵심강역인 산서성을 포함하여 ,
   한반도, 동북삼성, 하북성, 내몽고, 하남성 (유주와 요서 10성)

2. 복속시킨 강역 
   백제 (산동성과 호북성, 호남성 외) 
   신라 (안휘성, 절강성 외) 
   왜국 (광동성, 복건성)

3. 유물이나 기록으로 본 강역 
   감숙성 돈황석굴 (고구려식 벽화) 
   청해지방과 티베트 (비문의 토곡혼 기록)

▲   감숙성 돈황에서 발견된 고구려 양식의 벽화. 성벽이 치양식이고, 오우관에 상투를 튼 모습이 이채롭다.
즉 광개토태왕은 한족의 강역인 섬서성 일대를 제외하고는, 동서남북으로 뺑 둘러서 대륙의 모든 강역을 지배했다 할 것이다. 즉 중국 대륙 거의 대부분은 광개토태왕이 정복한 강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감숙성 돈황석굴의 벽화나 청해.티베트 지역의 토곡이 고구려와 관련이 있었다고 하면 거짓말 같은 이야기라고 일축해버렸다. 그 이유는 한반도 북부에 있는 고구려가 거기까지 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고, 그곳은 이미 역사적으로 한족의 강역으로 인정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대로 고구려의 핵심강역이 산서성이라면 감숙성 돈황과 청해의 진출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론 기록으로 뒷받침해 줄 사서의 기록이 없어 그 사실을 확정지어 말할 수는 없으나, 감숙성 돈황석굴의 벽화는 분명 예사롭지 않다. 거기에 고구려와 관련된 벽화가 있는 이유는 아마 광개토태왕 때문일 것이다.
 
▲  광개토태왕 시절의 통치강역은 실로 엄청난 강역이었다.  섬서성을 제외한 중국 대륙 전체를 통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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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2/16 [17:00]  최종편집: ⓒ pluskorea
 
넘 오버하는거 아닌가? 어버금물 09/02/20 [01:56] 수정 삭제
  한반도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면 뻥까는 거 아닐까! 저런 내용을 학계가 인정해줄까? 성훈씨는 한문내용을 제대로 이해라도 할까? 그리고 여러 문헌적 비교분석이나 제대로 하면서 삼국을 논하는 것일까? 기초지식이 부족하면 고등지식도 어려운 법이다.
하긴 문무왕 묘지명에 새겨놓은 글도 안믿는 애들이니 한상훈 09/02/21 [03:51] 수정 삭제
  문무왕 묘지명에 분명히 흉노왕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새겨놓아도
문무왕이 중국사관에 젖어서 새겨놓은 엉터리라고 우기는 인간들도 있더이다.
세상에 아무리 중국사관이라도 묘지명에 거짓말을 적을 사람이 어딨단 말인가?
어떠한 증거를 대놓아도 식민사관에 세뇌당한 사람들은 절대로 교화시킬수 없습니다.
특히 40대에서 50대 60대로 갈수록 더 지독합니다.
그들을 교화시키긴 거의 불가능합니다.
고려사가 정말 알고 싶습니다. 선각자 09/02/24 [14:28] 수정 삭제
  잘못 배운 역사가 몇십년이 지나도 바꾸어지지 않는 현실이 정말로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인간 식민 사학자 이병도가 잘못 뿌려 놓은 역사가 이토록 한국 고대 역사를 황폐 하게 만들었으니 ... 이를 어찌 하면 좋을지 .. 성훈 선생께서 열심히 자료를 준비 하여 글을 올리면 정말로 별별 소리가 다나오는것 같습니다. 선생께서는 그냥 한귀로 흘려 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전에 말씀을 드렸었는데 고려사에 대해서도 시간을 내 주셨으면 합니다. 정말로 귀한 자료 감사 합니다.
유고의 기록이 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성겸 09/03/10 [19:26] 수정 삭제
  아래의 기록을 한 번 읽어보세요...
에서는 누군가가 쏙 빼버린 것으로 봅니다.
국강상광태토경평안호태왕 비문에 나온 얘기를 곁들여서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 五年乙未, 二月, 太后生子于「溫湯」. 上, 以漸違王化, 親征・・至, 破其部落七百余所, 獲牛馬羊豕万數. 二后亦騎馬而從上. 上, 以后有身止之, 而不聽. [歸]生女, 名以. 八月, 又乘虗入寇. 上, 以七千騎馳到上, 虜獲八千余級. 侵. 十一月, , 欲雪之恥, 將七千人過至, 遇大雪多凍死, 廻歸而勞軍.
○ 5년{단기2728년/AD395}을미, 2월, 태후가 온탕에서 아들 을 낳았다. 상은 가 점차 왕의 가르침을 어기기에, 친히 ・・을 정벌하고 까지 이르면서, 그들의 부락 700여 곳을 깨뜨렸고, 소・말・양・돼지를 노획한 것이 만으로 셈이 되었다. 두 후{平昜과 吐山} 역시 기마하여 상을 따랐다. 상이 후는 임신 중이라 말렸어도 듣지 않았고, 돌아와서 딸을 낳았더니, {이 세 산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으로 하였다. 8월, 가 또 빈틈을 노려 쳐들어오니, 상이 기병 7천을 몰아서 위쪽{북?}에서 8천여 급을 노획하였다.{☞에는 4년 기사로 되어있음} 이 의 을 침입하였다.
11월, 이 에서의 수치를 설욕하려고 7천병으로 를 건너서 에 이르렀다가, 큰 눈을 만나서 많은 이가 얼어 죽었더니, 군사를 돌려 으로 돌아가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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