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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5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11

조선(朝鮮) 제31대 등올(登屼) 천왕(天王)의 역사, [삼권분립(三權分立)]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1/21 [10:12]

[홍익인간 7만년-15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11

조선(朝鮮) 제31대 등올(登屼) 천왕(天王)의 역사, [삼권분립(三權分立)]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1/21 [10:12]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 서기전873년 무자년(戊子年)에 조자문(曹子文)이 등올 천왕께 아로기를, “정치와 법률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행정관과 사법관은 각각 그 직책이 달라야 서로 권한을 빼앗지 않고 그래야만 정치와 법률이 명백하여 공정하게 시행될 것입니다” 하니, 천왕께서 옳다 하시며 입법, 사법, 행정을 각각 나누어 다스리니 정치와 법률이 공평하였다.

 

입법(立法), 행정(行政), 사법(司法)은 서기전3897년 배달나라 초기에 이미 정립되었던 제도이며, 단군조선도 배달나라의 삼권분립(三權分立) 제도를 계승하였던 것인 바, 이때에 이르러 다시 정비한 것이 된다.

 

[태평시대(太平時代)]

 

서기전859년 임인년(壬寅年)에 봉황(鳳凰)이 백악(白岳)에서 울고 기린(麒麟)이 와서 상원(上苑)에서 놀았다.

 

봉황은 신령(神靈)스런 날짐승이며, 기린(麒麟)은 신령(神靈)스런 길짐승이다.

 

봉황의 봉(鳳)은 봉황새 중에서 수컷이며 황(凰)은 암컷이다. 봉황은 머리에 벼슬을 달고 있는 신령스런 새로서 불사조(不死鳥)라고도 불리운다. 서기전2598년경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는 벼슬이름을 새이름으로 정하였는데 봉황을 총리로 삼았던 것인 바, 후대에는 봉황이 왕(王)을 상징하는 것으로 된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문장(紋章)이 봉황이다.

 

단군조선 시대부터 나타나는 삼족오(三足烏)는 머리에 벼슬이 있는 검은 새로서 흑봉황(黑鳳凰) 즉 검은 봉황이 된다.

 

백악(白岳)은 후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있던 상춘(常春) 즉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 있는 산(山)이다. 백악산아사달은 아사달로서 백악산이 있는 곳을 나타내는 것이다.

 

기린(麒麟)은 초원지대에서 긴 목을 가지고 나뭇잎을 뜯어 먹고 사는 짐승으로서, 사슴(鹿)과 같은 무늬를 가진 큰 동물이다. 한편, 천리마(千里馬)를 가리키는 기린마의 기는 기(驥)이다.

 

[추밀(鄒密) 즉위]

 

서기전850년 신해년(辛亥年)에 등올(登屼) 천왕께서 붕하시고 아들 추밀(鄒密)이 즉위하였다.

 

추밀은 등올 천왕의 태자(太子)가 아닌 다른 아들이 된다.

 

등올 천왕의 재위기간이 서기전874년부터 서기전850년까지 24년간인데, 이는 선대왕인 숙부(叔父) 내휴(奈休) 천왕이 재위한 것으로 인하였다고 보인다. 즉 등올 천왕의 선친인 마휴(摩休) 천왕의 재위기간이 34년간인데, 만약 등올이 태자로서 바로 즉위하였다면 내휴 천왕의 재위기간인 35년간을 합하여 59년간 재위한 것이 될 것이다. 

 

내휴(奈休) 천왕 즉위 원년(元年)인 서기전943년에 번조선의 번한(番韓) 누사(婁沙)가 태자(太子) 등올(登屼)과 소자(少子) 등리(登里) 형제에게 소위 형제가(兄弟歌)를 지어 바쳤는데, 이때 등올 태자가 약 20세라고 보면 서기전963년경 탄생한 것이 되고, 천왕으로 즉위한 서기전874년에는 약90세가 되며, 붕하신 서기전850년에는 약114세가 된다.

 

 

-조선(朝鮮) 제32대 추밀(鄒密) 천왕(天王)의 역사 -

 

[선비(鮮卑)의 조공]

 

서기전847년 갑인년(甲寅年)에 선비산(鮮卑山)의 추장(酋長) 문고(們古)가 찾아와 공물을 바쳤다.

 

선비산(鮮卑山)은 선비족(鮮卑族)이 사는 지역에 있는 산(山)이 된다.

 

선비(鮮卑)의 역사는 서기전3897년 이전의 한국(桓國)시대가 되는 서기전5000년경부터 12한국의 하나로서 이어져 온 것이 되는데, 특히 서기전1622년에는 단군조선 제15대 대음(代音) 천왕이 아우 대심(代心)을 남선비(南鮮卑)의 대인(大人)으로 봉하였던 것이며, 대대로 반역하지 않고 배달조선을 중앙조정으로 정통성을 이은 나라로서 받들었던 것이 된다. 남선비(南鮮卑)는 선비의 남쪽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며, 단군조선에서 선비를 나누어 그 남쪽에 대인(大人)을 특히 봉한 것이 된다. 대인(大人)은 고대중국의 대부(大夫)에 해당하는 벼슬직책이 된다.

 

선비(鮮卑)는 구려(句麗)의 서쪽이자 몽고리(蒙古里)의 남쪽이며 흉노(匈奴)의 북쪽이자 견족(畎族, 犬戎)의 동쪽에 위치한 나라가 된다. 선비의 동쪽이 단군조선 삼한(三韓) 본국을 가리키는 동이(東夷)가 된다.

 

선비(鮮卑)를 선패(鮮稗) 또는 선백(鮮白)이라고도 하며, 통고사(通古斯, Tunggus)라고도 하는데, 통고사는 동호(東胡)의 다른 말로서, 결국 단군조선에 속한 백성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 된다. 고대중국의 기록은 흉노(匈奴), 선비(鮮卑), 번조선을 경우에 따라 동호(東胡)로 기록한다.

 

[초(楚)나라 사람이 단군조선 조정(朝廷)에서 벼슬하다]

 

서기전838년 계해년(癸亥年)에 초(楚)나라 대부(大夫) 이문기(李文起)가 조정(朝廷)에 들어와 벼슬을 하였다.

 

초(楚)나라는 양자강 중류지역을 중심으로 한 나라였는데, 적족(赤族, 南蠻)의 나라이며 전욱고양(顚頊高陽)의 아들이 여기에 봉해져 축융(祝融)이라 불렸고 그 후손이 서기전1180년경에 주문왕(周文王)을 섬기고 서기전1110년경 주나라 성왕(成王) 때 단양(丹陽)에 봉해졌다.

 

이후 서기전890년경 주나라 이왕(夷王) 때에 초나라가 왕을 참칭하였다 하고, 서기전741년에 초자웅거(楚子熊渠)라는 사람이 왕을 참칭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초자(楚子)는 초나라의 제후인 자작(子爵)이라는 말이며, 웅거(熊渠)는 그 사람의 이름이다.

 

서기전838년에는 주나라가 약해져 가면서 초나라의 세력이 점점 커져가던 시대가 되는데, 주(周)나라는 폐쇄정치를 하였던 하(夏)나라나 은(殷)나라와는 달리 단군조선과 그 백성들이 오고가는 왕래가 상대적으로 쉽고 자유로왔던 것이 된다.

 

단기고사(檀奇古史)에서는 주(周)나라 또는 주나라 제후국 출신의 사람들이 단군조선 조정에 들어와 벼슬을 많이 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일식(日蝕)]

 

서기전837년 갑자년(甲子年) 봄 3월에 일식(日蝕)이 있었다.

 

[흉년(凶年)]

 

서기전835년 병인년(丙寅年)에 농사가 크게 흉작(凶作)이었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흉년이나 천재지변을 대비한 구휼법(救恤法)이 시행되고 있었다. 참전계경(參佺戒經)에 천재지변의 순환(循環) 원리(原理)에 관한 가르침이 있으며, 이러한 천재지변에 대한 대책으로서의 구휼법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자 감물(甘勿) 즉위]

 

서기전820년 신사년(辛巳年)에 추밀(鄒密) 천왕께서 붕하시고 태자 감물(甘勿)이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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