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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55]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08

제26대 추로(鄒魯)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1/17 [12:34]

[홍익인간 7만년-155]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08

제26대 추로(鄒魯)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1/17 [12:34]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첱산태백] 서기전1062년 가을 7월에 백악산(白岳山)의 계곡에 흰사슴(白鹿) 200마리가 무리지어 와서 뛰어 놀았다.

 

백악산은 상춘(常春)지역에 소재한 아사달(阿斯達)의 산으로서, 백악산 줄기를 따라 구월산(九月山)이 있고 다시 녹산(鹿山)이 있는 것이 된다. 즉 구월산 남쪽 기슭의 산이 녹산(鹿山)이 된다. 구월산(九月山)의 구월(九月)이 다른 말로 아사달(阿斯達)이다.

 

백록(白鹿)은 녹산(鹿山)과 관련되는데, 백악산 줄기에 녹산(鹿山)이 소재하고 여기의 계곡(溪谷)에 흰사슴 200마리가 무리지어 뛰어 놀았다는 것이 되며, 이는 태평시대(太平時代)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 된다.

 

[주(周)나라의 조공]

 

서기전1047년 갑오년(甲午年)에 번한(番韓) 을나(乙那)가 즉위하고 주(周)나라 왕 하(瑕)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朝貢)을 바쳤다.

 

주나라 왕 하(瑕)는 소왕(昭王)이라고 하며 제4대왕으로서 서기전1053년부터 서기전1002년까지 51년간 재위하였다

 

[소련, 대련의 묘(廟)를 세우고 삼년상 제도를 정하다]

 

서기전1012년 기사년(己巳年)에 번한(番韓) 등나(登那)가 즉위하였고, 이극회(李克會)가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의 묘(廟)를 세우고 삼년상(三年喪) 제도를 정할 것을 청하니, 번한(番韓)이 이에 따랐다.

 

소련과 대련은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240년경의 인물로서 효(孝)의 대명사로 불는데, 특히 공자(孔子)는 예기(禮記 雜記 下)에서 상을 잘 치뤘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그 주해(註解)에서 삼년상(三年喪)의 유래를 들면서 소련과 대련을 동이(東夷)의 아들(子)이라 밝히고 있는 바, 예기의 주해를 단 인물은 소련과 대련의 효에 관한 역사를 기록을 통하여 알고 있었던 것이 된다.

 

동이의 아들이란 단군조선(檀君朝鮮) 본국 즉 삼한(三韓) 출신임을 나타내는 것인데, 소련과 대련은 서기전2239년에 제2대 부루(扶婁) 천왕의 부름을 받고 단군조선 진한(眞韓) 조정에 들어가 다스림의 도리 즉 치도(治道)에 관하여 아뢰었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태자 두밀(豆密) 즉위]

 

서기전998년 추로(鄒魯) 천왕께서 붕하시고 태자 두밀(豆密)이 즉위하였다.

 

추로(鄒魯) 천왕은 85년을 재위하였는데 변란(變亂) 등의 특이한 기록이 없는 점으로 보아 태평시대(太平時代)였음이 틀림없는 것이 된다.

 

 

-조선(朝鮮) 제27대 두밀(豆密) 천왕(天王)의 역사 -

 

[아란산(阿蘭山) 붕괴]

 

서기전997년 갑신년(甲申年)에 천해(天海)의 물이 넘쳐 아란산(阿蘭山)이 무너졌다.

 

천해(天海)는 하늘(天)의 바다(海)라는 뜻인데, 단군조선 땅에서 하늘의 바다는 지금의 바이칼호로서, 북쪽이 하늘을 상징하여 북해(北海)가 된다.

 

큰물이 모여 있는 곳이 바다(海)라고 기록되는데, 육지 속에서는 호수(湖水)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북해(北海)라는 말은 단군조선 시대 말로 ‘바이하이’라고도 발음되었던 것이라  보이는 바, 이 ‘바이하이’의 마지막 발음인 ‘이’가 ‘ㄹ’로 변음되면서 ‘바이할’이 되고, ‘ㅎ’이 ‘ㅋ’으로 격음화 되어 ‘바이칼’로 소리가 변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위치상으로 아란산(阿蘭山)은 바이칼호 주변에 있던 산이 되는데, 특히 바이칼호의 서쪽에 위치한 양운국(養雲國) 부근에 소재한 산으로서 지금의 사얀(Sayan)산맥에 위치한 산이 될 것이다.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의 조공]

 

서기전997년에 수밀이국(須密爾國), 양운국(養雲國), 구다천국(句茶川國)이 사신을 보내 특산물(方物)을 바쳤다.

 

수밀이국과 양운국과 구다천국은 모두 서기전3897년 이전의 한국(桓國) 시대의 12한국에 속한 나라로서 이때까지 존속하여 온 것이 되는데,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을 거치면서 망하지 않고 자치세습국(自治世襲國)으로 내려온 것이며, 수시로 한국(桓國)의 정통성(正統性)을 이은 종주국(宗主國)이 되는 배달조선(倍達朝鮮)에 조공(朝貢)을 바친 것이 된다.

 

수밀이국(須密爾國)은 송화강과 우수리강과 흑룡강 유역에 소재한 나라로서 소흥안령산맥(小興安嶺山脈)의 동쪽에 위치하며, 숙신(肅愼)의 북쪽이나 북동쪽에 위치한 나라가 된다.

 

양운국(養雲國)은 바이칼호의 서쪽에 위치하였던 나라가 된다. 한편 바이칼호 동쪽에는 12한국의 하나인 비리국(卑離國)이 소재하였던 것이 되는데, 지금의 부리야트공화국 자리가 된다.

 

구다천국(句茶川國)은 독로국(瀆盧國)이라고 불렸는데, 북개마대령(北蓋馬大嶺)이 되는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의 서쪽에 위치하였던 것이 되며, 쑥과 마늘을 산출하던 곳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큰 가뭄과 홍수와 구휼]

 

서기전990년 신묘년(辛卯年)에 큰 가뭄 끝에 큰 비가 쏟아져 백성들에게 곡식의 수확(收穫)이 없으므로 천왕께서 명을 내려 창고를 열어 두루 나누어 주게 하였다.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평상시에 창고에 곡식을 저장하여 두었다가 흉년에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구휼법(救恤法)이 있었던 것이 되는데, 이러한 법제도는 후대 고구려의 진대법(賑貸法)의 원류가 되는 것이다.

 

단군왕검 천왕께서 가르친 천범(天範) 8조에도 구휼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구제구휼(濟恤)하더라도 모욕(侮辱)을 주거나 천대(賤待)하지 말라고 각별히 가르치고 있으며, 만약 이를 지키지 아니하면 영원히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며 몸과 집안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내륙 동이(東夷)의 맹주(孟主) 서언왕(徐偃王)]

 

서기전980년경 서국(徐國)의 언왕(偃王)이 주(周)나라를 공격하여 36군(郡)을 차지하니, 주나라 목왕(穆王)이 서언왕을 동방 36국의 주인(主人)으로 섬기도록 하였다.

 

주(周)나라 목왕(穆王)은 제5대 왕으로 서기전1001년부터 서기전947년까지 55년을 재위하였으며 이름을 만(滿)이라고 한다.

 

서국(徐國)은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서이(徐夷)라고 불리는데, 서기전1236년에 산동지역에서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출발하여 서기전980년경에 출현한 서언왕(徐偃王)이 반경 500리(里)의 땅을 차지하여 36국을 다스려 주나라와 대등한 천자국(天子國)을 이루었더 나라이다.

 

이후 서국(徐國)은 서기전680년경에 이르러 초(楚)나라 문왕(文王)에게 크게 패(敗)하여 서산(徐山)으로 수도를 옮겼다가, 서기전668년에 관중이 재상으로 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 시절에 제나라에 복속하였고, 이후 독립을 시도하다가 서기전530년에 초(楚)나라 영왕(靈王) 시절에 초나라에게 정벌을 당하였으며, 서기전526년에 다시 안영이 재상으로 있던 제(齊)나라 경공 시절에 제나라에게 정벌을 당하였고, 서기전512년에 오(吳)나라 합려왕에게 완전히 망하였다.

 

이리하여 서국(徐國)은 서기전1236년에 산동지역에서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봉해져, 약 250년이 지난 서기전980년경에는 중국내륙의 대표적인 동이족 국가의 맹주(孟主)로서 주(周)나라와 종주(宗主)를 다투었던 것이며, 그로부터 다시 약300년이 지난 서기전680년경 이후에는 초(楚)나라와 제(齊)나라의 침공으로 위축되었다가, 서기전512년에 오(吳)나라에 완전히 망하게 된 나라로서, 무려 725년을 존속한 나라가 된다.

 

[삼성묘(三聖廟) 제사]

 

서기전979년 임인년(壬寅年)에 번한(番韓) 해수(奚壽)가 아들 물한(勿韓)을 상춘(常春)의 구월산(九月山)에 파견하여 삼성묘(三聖廟)에 제사를 돕게 하였는데, 묘(廟)는 상춘(常春)의 주가성자(朱家城子)에 있다.

 

삼성묘(三聖廟)는 삼성(三聖)을 모신 사당(祠堂)이다. 삼성(三聖)은 세분의 성인이란 뜻으로서 통상적으로 한국(桓國)의 시조이신 한인(桓因), 배달나라 시조이신 한웅(桓雄), 단군조선의 시조이신 단군왕검(檀君王儉)을 가리킨다.

 

번한 해수가 아들 물한을 진조선(眞朝鮮)에 파견하여 삼성(三聖)께 올리는 제사를 돕게 하였다는 것이다.

 

상춘의 구월산에 삼신(三神) 제천단(祭天壇)이 있으며 삼성묘(三聖廟)도 건립하여 삼성(三聖)을 모신 것이 된다.

 

주가성자(朱家城子)는 후대에 고주몽(高朱蒙) 성제(聖帝)께서 수도로 삼았던 성(城)으로서 상춘(常春)에 소재한 것이 된다. 즉 고구려(高句麗) 개국 시조인 고주몽 성제는 고구려 이전의 북부여 말기에 대통(大統)을 이어 북부여를 계승함으로써 졸본(卒本)을 수도로 삼았는데, 이때를 졸본부여(卒本夫餘)라 하는 것이 되고, 이후 서기전26년에 소위 눌현(訥見)으로 수도를 옮겼는 바, 이 눌현이 곧 상춘(常春)인 것이다.

 

눌현(訥見)은 늘봄의 이두식 표기로서 눌현보다는 눌견으로 읽는 것이 이두식 표기에 해당하는 한자를 읽는 방법이 되는데, 눌(訥)은 늘의 이두식 표기이고 견(見)은 봄의 이두식 표기가 되는 바, 물론 눌견보다는 늘봄이 더 정확한 독법이 된다. 상춘(常春)은 훈독(訓讀)으로 늘봄이다.

 

[해모(奚牟) 즉위]

 

서기전972년 기유년(己酉年)에 두밀(豆密) 천왕께서 붕하시고 해모(奚牟)가 즉위하였다.

 

특별히 태자(太子)라고 적고 있지 않는데, 해모는 두밀 천왕의 태자가 아닌 다른 아들이 분명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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