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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154]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07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1/15 [23:50]

[홍익인간 154]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07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1/15 [23:50]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서기전1112년 기축년(己丑年) 7월 15일 영고탑(寧古塔)에 도읍을 옮겼다고 대진국(大震國, 渤海) 초기에 편찬되었다는 단기고사[檀奇古史]에 기록되고 있는데, 단군조선의 수도는 송화강 아사달(阿斯達)과 상춘(常春)의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 그리고 장당경(藏唐京)의 3경(京)이 확실한 바, 영고탑에 천도(遷都)한 것이 아니라 이궁(離宮)으로서 어떠한 이유로 장기간 체류하였던 것으로 인하여 후세에 천도한 것으로 오기(誤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고탑 천도(遷都) 문제]

 

영고탑은 서기전1345년에 건립된 이궁(離宮)인데, 서기전1280년에 신지(臣智) 육우(陸右)가 백악산에서 영고탑으로 천도할 것을 간(諫)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서기전1250년에 신독(申督)의 난(亂) 때문에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이 많은 백성들과 함께 피난한 곳이기도 하고, 서기전1233년에 마한(馬韓) 여원흥(黎元興)이 주축이 되어 다시 영고탑으로 천도할 것을 간(諫)하였으나 또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단기고사에서는 서기전1112년 7월 15일에 영고탑으로 천도한 이후 후단군조선(後檀君朝鮮)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는 대진국 시대 초기에 조사하거나 답사한 결과, 천도(遷都)인지 이궁(離宮)에 단순히 머문 것인지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미비한 상황에서, 영고탑으로 옮긴 사실은 전해져 왔기 때문에 천도(遷都)라고 오기된 것으로 보이며, 대진국의 첫 수도가 동모산(東牟山)이라 그 부근이 되는 영고탑(寧古塔)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서기전2049년에 신지(神誌) 발리(發理)가 지은 서효사(誓效詞)에서 상춘(常春)의 구월산(九月山)을 신경(新京)이라 묘사하고 있으며, 서기전1984년에 우착(于捉)의 난으로 천왕이 상춘(常春)에 피하여 구월산 남쪽 기슭에 신궁(新宮)을 건립하고서 이궁(離宮)으로 삼았는데, 이곳이 백악산아사달 신궁으로서 녹산(鹿山)이라 하는 곳이 된다. 상춘(常春)은 지금의 장춘(長春)이다.

 

서기전2084년에 제5대 구을(丘乙) 천왕이 장당경(藏唐京)에 행차한 사실이 있어 이미 장당경은 그 이전부터 이궁(離宮) 또는 별궁(別宮)으로 존재한 것이 된다. 장당경은 지금의 심양(審陽)인데, 그 글자 자체에서 보더라도 서기전2324년경 단군왕검 천왕께서 서기전2357년부터 서기전2334년까지 전란(戰亂)을 일으켜 세상을 씨끄럽게 한 반란자(叛亂者) 당요(唐堯)를 굴복시키고 천자(天子)로 용인(容認)하면서 안치(安置)한 곳이 틀림없는 것이 된다.

 

[북막(北漠)의 침공과 토벌]

 

서기전1105년 병신년(丙申年)에 번한(番韓) 노단(魯丹)이 즉위하였으며, 북막(北莫)이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니 노일소(路日邵)를 보내 토벌하고 평정케 하였다.

 

북막(北漠)은 북쪽의 사막지대 나라를 가리키는데, 지금의 몽골고원 지대가 될 것이다.

 

서기전2137년에 제4대 오사구(烏斯丘) 천왕의 아우인 오사달(烏斯達)이 한(汗)으로 봉해진 몽고리(蒙古里)는 지금의 내몽골 지대가 될 것이며, 몽고리의 남쪽에 구려(句麗)가 위치하고 몽고리의 동쪽에 부여(扶餘)가 위치하는 것이 된다.

 

북막(北漠)은 몽고리(蒙古里)의 일파이거나 견족(畎族) 또는 선비(鮮卑)의 일파이거나 혼합족일 가능성이 많다. 견족(畎族)은 돌궐족(突厥族)의 선대(先代)라 보면 되는데, 돌궐족과 흉노족(匈奴族)은 몽골지역을 다스리면서 몽골족과 혼합된 것이 되며, 모두 단군조선의 후예(後裔)인 것이다.

  

[영신(佞臣)과 직신(直臣)]

 

서기전1104년 정유년(丁酉年)에 솔나(率那) 천왕께서 상소도(上蘇塗)에 계시면 옛날부터 전해오는 의례를 강론하시다 영신(佞臣)과 직신(直臣)의 구분을 물으시니, 이에 삼랑(三郞) 홍운성(洪雲性)이 나서서 대답하여 아뢰되, “이치를 굽히지 않는 자는 직신(直臣)이며, 위세를 두려워하여 굽혀 복종하는 자는 영신(侫臣)이며, 임금은 근원이고 신하는 흘러가는 물인데, 근원이 이미 흐렸다면 그 흐름이 맑기를 구하여도 될 수 없는 일이나니, 때문에 임금이 성인(聖人)이 된 후에야 신하(臣下)가 바른 법이옵니다” 하니, 천왕께서 “옳은 말이오”라고 하셨다.

 

상소도(上蘇塗)는 전국에 소재한 소도(蘇塗)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을 가리키는데, 천왕(天王)이 제천행사를 주관(主管)하는 곳이 된다.

 

삼랑(三郞)은 삼신시종랑(三神侍從郞)의 준말로서 삼신(三神)을 모시는 벼슬 이름이 된다.

 

[밭곡식 풍년(豊年)]

 

서기전1092년 기유년(己酉年)에 밭곡식에 풍년이 들어 한 줄기(莖)에 다섯 개 이삭이 달린 조(粟)가 있었다.

 

단군조선 시대에 풍년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서기전1992년에 벼(禾) 한포기에 여덟 개의 이삭이 달렸다는 기록과, 여기 서기전1092년에 조(粟) 한 줄기에 다섯 개 이삭이 달렸다는 기록과, 서기전795년의 오곡(五穀) 풍년에 관한 기록을 들 수 있다.

 

[감성(監星) 설치-천문관측]

 

서기전1066년 을해년(乙亥年)에 번한(番韓) 모불(牟弗)이 감성(監星)을 설치하였다.

 

감성(監星)은 천문(天文) 관측기관인데, 단군조선 진한(眞韓)에서는 서기전1916년에 처음으로 감성을 설치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태자 추로(鄒魯) 즉위]

 

서기전1063년 무인년(戊寅年)에 솔나(率那) 천왕께서 붕하시고 태자 추로(鄒魯)가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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