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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12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81

제12대 아한(阿漢) 천왕(天王)의 역사,[하(夏)나라의 망조(亡兆)가 무르익다]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7/12/15 [15:51]

[홍익인간 7만년- 12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81

제12대 아한(阿漢) 천왕(天王)의 역사,[하(夏)나라의 망조(亡兆)가 무르익다]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7/12/15 [15:51]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서기전1799년 임술년(壬戌年)에 하(夏)나라 사람이 들어와 걸왕(桀王)이 무도하여 스스로 망할 것이라 전하였다.

 

걸왕은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데, 말기에 달기(?妓)라는 여자에 빠지고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여 나라의 정세(政勢)가 극도록 불안하게 되었던 것이며, 이에 제후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던 것이고 하나라의 제후국에 해당하는 상(商)나라의 탕(湯)이 군사를 일으키곤 한 것이다.

 

서기전1833년에 송화강의 북쪽에서 외뿔짐승(一角獸)이 출현한 것은 하(夏)나라의 망조(亡兆)를 나타낸 자연현상이 될 것이며, 서기전1813년에 상탕(商湯)이 군사를 일으키자 하나라 걸왕이 단군조선에 구원을 요청하였던 것이고, 이에 단군조선이 군사를 내어 탕을 치도록 하니 탕이 사죄하므로 군사를 물렸던 것이 된다.

 

그런데, 하나라 걸왕의 폭정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므로 상탕(商湯)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고, 결국에는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 사부(師傅)가 된 유위자(有爲子) 선인(仙人)의 제자였던 이윤(伊尹)을 재상(宰相)으로 둔 탕(湯)이 단군조선의 도움으로 서기전1766년에 하나라를 멸하고 상(商,殷)나라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하(夏)나라는 서기전2224년에 우(禹)가 단군조선의 사자(使者) 유호씨의 명을 받아 유상(有象)과 함께 순임금을 협공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우의 군사가 순임금을 죽였고, 이에 우가 권력욕에 눈이 멀어 단군조선의 명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며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면서 독단(獨壇)을 설치하여 결국 단군조선을 반역하였던 것이고, 정식 천자국(天子國)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후대에 하나라 왕이 단군조선에 예를 표하면서 묵시적(?示的)으로 천자국을 인정받은 것으로 된다.

 

하(夏)나라 말기에 상탕(商湯)이 군사를 일으켜 공격을 해오자 단군조선에 구원을 요청한 사실로 보아 하(夏)나라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의 천자국(天子國)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되고 실제로 망하기 이전인 서기전1813년과 서기전1767년 등 두차례 이상 군사적 구원을 받은 사실이 있기도 하다.

 

[은탕의 재상 이윤(伊尹)의 스승, 유위자(有爲子)]

 

서기전1797년 갑자년에 하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상(商)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마다하고 단군조선에 많이 망명하였다. 이윤(伊尹)이 상(商)나라 탕(湯)의 재상이 되어 탕을 도와 하(夏)나라 걸왕(桀王)을 쳤다. 이에 이윤의 스승이었던 유위자(有爲子)가 “이는 사람을 사랑하고 하늘을 따르는 일이지만 이윤(伊尹)이 아니면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때 하나라 사람들이 단군조선에 대거 망명하였던 것인데, 이러한 역사적 망명 사건은 이후 중국역사에서 종종 나타나며, 하(夏)나라의 건국 당시인 서기전2224년경에도 하나라 시조 우(禹)가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면서 단군조선의 정치제도를 흉내내어 마음대로 제후를 봉하고 조공(朝貢)을 받는 등 폭돌한 정치를 펼치므로, 이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라의 땅에서 탈출하여 단군조선 직할 영역으로 망명하였던 사실도 있었다.

 

이윤(伊尹)이 처음부터 상탕(商湯)의 사람이 아니었으나, 상탕이 결국 이윤(伊尹)을 재상(宰相)으로 등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세력이 팽창하고 민심(民心)을 얻음과 더불어 하(夏)나라를 멸할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결국에는 단군조선의 군사적 후원까지 얻어 천명(天命)이라는 명분(名分)하에 하나라를 멸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위자 선인은 서기전1950년경 이전에 출생하여 서기전1797년 현재 약150세이던 때가 되는데, 이윤이 상탕의 재상이 되어 본격적으로 하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하나라는 이미 기울었고 이 하(夏)나라를 경략할 인물로 곧 이윤만이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서기전268년에 지었다는 위(魏)나라 사람이자 공자(孔子)의 7세손으로 전하는 공빈(孔斌)의 홍사(鴻史) 서문에도 유위자(有爲子) 선인(仙人)의 제자이던 이윤(伊尹)이 은탕(殷湯)의 재상(宰相)이 되었다라고 적고 있기도 하다. 

 

이에 앞서 유위자 선인은 서기전1833년에 송화강 북쪽지역에 출현한 외뿔짐승을 하(夏)나라의 망조(亡兆)로 내다보았고, 서기전1797년에 이르러 유위자(有爲子) 선인이 하(夏)나라를 대신할 은(殷)나라는 이윤(伊尹)의 보좌(輔佐)로 이룰 것이라 단정한 것이 된다.

 

[우가(牛加) 홀달(屹達) 즉위]

 

서기전1783년 무인년(戊寅年)에 상나라 사절이 처음으로 입조하였다. 이해 7월에 아한(阿漢) 천왕이 붕하고 우가(牛加) 흘달(屹達)이 즉위하였다.

 

이때, 상(商)나라가 하나라의 틀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어느 정도 힘을 과시하던 때가 되는데, 상나라의 상국(上國)이 되는 하(夏)나라를 무시하고 하(夏)나라의 상국(上國)이 되는 단군조선(檀君朝鮮)에 직접 사절을 파견하여 예를 표한 것이 된다. 이때까지 단군조선은 하(夏)나라 정세를 관망한 것이 되며 하나라와 상나라 중 어느 나라를 후원할지는 도(道)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정하였던 것이 된다.

 

이 흘달(屹達)을 대음달(代音達)이라고도 하고, 제15대 대음(代音) 천왕의 대음(代音)을 후흘달(後屹達)이라고 하는데, 흘달(屹達)이 클달(泰地)의 음차가 되는 글자라면, 대음달(代音達)의 대음(代音)은 대음(大音)으로서 “큼”을 나타낸 이두식 표기가 되는 것이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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