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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단편소설] 하얀 도화지 1회

박종규 | 기사입력 2015/10/16 [12:33]

[박종규 단편소설] 하얀 도화지 1회

박종규 | 입력 : 2015/10/16 [12:33]

 

   [박종규 단편소설]    하얀 도화지  1회

                                                                

    

  심성 나쁜 혹부리 영감은 제 혹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이게 되었다지요?

 

  언론에서는 연일 분유회사의 밀어내기 사태를 놓고 갑의 횡포를 들먹이고, 급기야는 제품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네요. ‘갑의 횡포, 을의 눈물’ 시리즈가 꼬리를 물참입니다. 이런 일에 익숙해진 다른 기업들도 오금이 저리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유통기한은 다가오는데 남아도는 제품은 떼어버려야 할 혹이었을 겁니다. 그 혹 처분하려다 혹 하나 더 붙인 꼴이랄까요. 그런데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더 큰 혹을 달고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직은 사회 초짜인 내게 보이지 않는 그 혹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은 여간 씁쓸하지 않았지만요.

 

  바로 며칠 전이었습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광고회사의 프레젠테이터가 되어 쟁쟁한 어른들 앞에 나서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우리 회사가 선정된 것은 뜻밖이었지요. 아무래도 그때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너무 잘해버렸나 봅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면 아이디어를 구상하느라 머리에서는 쥐가 나고, 며칠 동안 날밤을 새우고, 팀원들은 경쟁사에게 정보가 샐까봐 통신 두절 상태에 들어갑니다.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 이런 싸움에 회사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곳이 광고시장이니까요. 우리가 큰 회사라면 나는 지금 개선장군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죠! 현관에는 대형 플래카드를 걸어 직원들의 기를 살릴 것이고, 오늘 저녁은 축하파티로 술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겁니다. 그러나 광고주는 내일까지 실행 일정표를 보내 달라는데, 조 실장도 사장님도 떫은 감 씹는 표정이니 이게 웬 아이러니일까요.

 

아이디어경쟁에서 이기는 것! 그 짜릿함은 다른 육체적인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광고주는 실력이 검증된 몇몇 광고기획사를 지명, 광고 건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 주어진 기간에 광고 시안을 만들어 오라 합니다. 말하자면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붙이는 것입니다.  기획력과 광고 아이디어가 뛰어나야 선정되겠지요. 이번 일도 지명을 받은 광고회사들이 팔 걷어붙이고 대들었을 겁니다. 그런 전투에서의 승리이기 때문에 내겐 아쉬움이 더 컸고요.

 

프레젠테이션이 좀 유별나긴 했었습니다. 회사에 당장 일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해 봐야 적자 날 것이 뻔했으며, 더구나 파트너십이 모자란 고객이라고 직원들 간에도 말이 돌았던 건이었지요. 광고가 소비자의 마음을 잡으려면 지성과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디어 생성 과정에서부터 광고주의 간섭이 지나치면 좋은 광고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이번 일이 그랬고요. 지나친 간섭으로 배가 산으로 올라갈 지경인데다가 예산까지 턱없이 적었습니다. 일을 포기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요! 그 와중에 인제 와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니,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었답니다. 그러나 관(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이따금 큰 일거리가 생기는 수도 있기 때문에 회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지는 게임을 치르게 하려고 여직원을 혈혈단신 전쟁터에 보냈던 겁니다. 하필이면 나를.

 

그날, 넓은 회의실에는 한자리 하는 인사 십여 명이 나의 일 거수 일 투족에 눈 화살을 꽂고 있었습니다. 유독 혼자라서 부담스러웠으나 준비해 온 보드를 세워 놓고 지켜보는 눈길 하나하나에 기죽지 않고 침착하게 설명을 해 나갔습니다, 자신감이 비치도록 억양에도 힘을 실었고요.

 

물론 처음에는 시선 처리 때문에 얼굴이 붉어져 당황했지요. 끝내고 회의실을 나와서야 등골에 땀이 흐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끝내 박수를 받았으나 기대는 안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청(廳)으로부터 우리 회사가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온 거예요. 내가 해낸 것입니다.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이기다니! 회사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든 나는 내 할 몫을 거뜬히 해낸 것이었지요.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조 실장은 내 보고를 받자마자 뭐 씹은 얼굴로 사장실에 불쑥 들어갔고. 그 녀석 일을 저질렀다고 투덜대는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웬만하면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애썼는데 유미 양한테도 격려 좀 해 주라는 사장님의 구시렁거림도요. 세상일이란 참 묘하기도 하지요. 뒤이어 조 실장이 사장님 말꼬리를  받아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CF 한 편 제작비도 안 되는 예산으로 세 편은 만들어 달라고 할 걸요. 못 한다고 버텨 보아야 하겠어요. 역시 저는 월계관 없는 승자가 될 수밖에 없었나 봐요. 세상에! 경쟁에서 이겨놓고 이 무슨 낭패일까요.

 

  청에서는 우리 회사를 선정해 주었는데 우리가 막상 못 하겠다고 발을 뺀다면 그들도 황당할 것입니다. 서류상으로 하자가 생길 수도 있고, 1위로 선정된 회사에 일을 주지 않는 것은 불공정 사례로 남게 되겠지요. 이 게임에서 조 실장이 절대 유리한 고지에 있는 이유입니다.

 

사장님은 언젠가 말했습니다. 게 중에는 일이 커지는 것도 싫고, 새로운 일이 생기는 것도 마뜩잖아 무탈하게 넘어가기만 바라는 복지부동형 인간들이 있다고. 그런 타성을 비켜서 접근하면 이번에는 상응한 대가를 바란다고요. 저들과 거래하려면 그런 속성을 미리 알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기야 요즘 대기업의 횡포가 회자하는 시점이지요. 갑의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하지만 공직자들까지 설마 그럴 리가요! 어쩜 예산이 적은 이유가 아닐까요?

 

“어쨌든 일은 하는 방향으로 합시다. 자기들이 우리 회사의 손을 들어줬으니, 칼자루는 조 실장 손아귀에 들어온 거잖아. 절충점을 찾아봐요.”

 

“글쎄요. 그쪽에서 양보하겠습니까? 양보라는 것이 결국은 예산문제와 직결되는데 얼마나 끈질긴지, 아마 오기로 우릴 선정했는지도 몰라요. 어제저녁에는 퇴근 후에 집에까지 전화가 왔어요. 꼭 우리가 해 줘야 한다고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 조 실장의 모습이 훤히 그려집니다.

 

“그래, 그 여자지? 참, 이 광고 몇 회나 전파를 탈 것 같아?”

 

“한 방송국에 30회요. 그 정도의 노출로는 누가 보기나 했는지 기억도 못 합니다. 어떤 시간대를 잡느냐가 중요한데, 예산이 적으니 좋은 시간댄들 잡기나 하겠어요?”

 

방송광고는 광고비를 많이 책정한 회사가 지상파의 좋은 시간대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나 전자회사, 요즘은 휴대전화기 광고가 저녁 뉴스 시간이라든지, 소위 황금 시간대를 점령하고 있답니다. 이처럼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는 광고료도 비싸고, 대형 광고주들이 연간 계약을 맺기 때문에 예산이 적은 소액광고주들은 어쩔 수 없이 시청률이 떨어지는 B나 C 타임 대에 들어갈 수밖에요.

 

그렇기에 광고 아이디어가 각별해야 노출이 적더라도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그도 저도 아니면 TV 방송 광고에 나왔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하물며 적은 예산으로 두 편을 내보낸다면 노출 빈도가 다시 반으로 줄어들게 되겠지요. 시청자들이 얼마나 기억하겠습니까?

 

“고집들은 있어서 전문가 의견을 들으려 하질 않아요. 언제 사장님이 직접 그 팀장을 만나야 할 거예요. 내 능력으로는 안 돼요.”

 

“한 편만 하자 우겨보고, 그 말이 먹히면 해 주자.”

 

조 실장은 심드렁했으나 결국 그렇게 결론이 났고, 이튿날 조 실장은 나와 함께 청에 들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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