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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송산 백일장’ 개최

고려충신, 송산 조견 선생 추모

최종석 기자 | 기사입력 2015/09/03 [12:22]

제15회, ‘송산 백일장’ 개최

고려충신, 송산 조견 선생 추모

최종석 기자 | 입력 : 2015/09/03 [12:22]

 

[플러스코리아타임즈 = 최종석 기자]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송백(松柏)같은 의기충절(意氣忠節)을 역사위에 남기신 성남시 향토유적 제3호 송산 조견 선생을 추모하는, 제15회 ‘송산(松山) 백일장’ 대회가 성남문화원(원장 김대진)주최로 오는 9월 12일 오전10시 성남시청 내 공원(성남여수지구)에서 개최된다.

    

▲     ©최종석 기자

이날 백일장은 관내 초 ·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며, 운문부(동시, 동요, 시조시), 산문부(일기, 편지, 기행문)로, 우수 입상자 총 44명을 선정하여 성남교육장상 등을 시상하게 된다.

    

▲     © 최종석 기자


송산 조견 선생(1351~1425)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양이고 초휘는 윤(胤)이고 자는 종견(從犬) 이며 호는 송산, 시호는 평간공(平簡公)이다. 조견 선생은 일찍이 중이 되어 여러 절의 주지를 역임하고 30세가 넘어서 환속,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렴사에 이르렀다. 개국공신 2등으로 평양군에 봉해졌으며 1415년 공조판서로서 형 조준이 새 조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을 눈치 채고 "우리집은 교목 세신이오 마땅히 국가와 존망을 같이 해야 하오" 하였으나 조준은 듣지 않고 조선을 세우는데 힘을 썼다. 준도 자기의 동생 견이 말을 듣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고 영남으로 내려 보냈다.

    

▲     © 최종석 기자


이처럼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며 내려갔으나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고려는 멸망하였다. 견은 통곡하고 두류산(지리산)으로 들어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형 조준은 동생에게 개국공신을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태조는 그의 뜻을 가상히 여겨 호조전서, 평성부원군, 개국공신, 평간공을 내리고 여러 번 불렀어도 그는 "송산의 고사리를 캐어먹고 살지언정 성인의 백성이 되기는 원치 않소" 하고 나서 자기 이름자를 윤에서 견으로 고쳤다. 일부러 개견 변을 쓴 것은 나라가 망해도 죽지 않는 것은 개 라는 뜻과 또는 개는 주인을 생각한다는 뜻이라 하였다. 후에 양주 청계산에서 살 때 태종이 청계산까지 친히 찾아가 벼슬을 권했으나 굽히지 않고 뒤에 양주의 송산에 숨어 여생을 마쳤다.

    

송산 조 견 선생의 묘역은, 현재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30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말선초의 사대부 묘제로 석물(묘표, 문인석, 석등 등)이 600년이 넘은 묘역으로 성남문화원 학술토론회 및 문화재 지정 청원에 따라 2001년 2월 20일 성남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행사를 주최하는 김대진 원장은 “미래 성남시의 주인공인 학생들에게, 뜻을 굽히지 않은 고려 충신 송산 조견 선생의 성심스러운 삶의 도를 심어주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제고하는 기회를 주고자 영속적으로 매년 송산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며, “송백(松柏)같은 의기충절(意氣忠節)의 정신을 기리는 이번 백일장에 문학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의 많은 참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성남문화원은 향토유적 지정·청원에 앞장서 왔으며, 성남학 연구의 총본산으로 전통문화 사업추진에 전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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