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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사랑도둑] 남편의 선물5

임서인 | 기사입력 2015/07/25 [23:19]

연재소설 [사랑도둑] 남편의 선물5

임서인 | 입력 : 2015/07/25 [23:19]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며 졸고 있던 선영을 깨웠다. 하늘이 붉어지며 어둠이 약간 밀려나 있었다.

밤새 쪼그려 앉아 있다 보니 잘 펴지지 않는 몸을 간신히 움직여 선영은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준형이 일찍 깨어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아이 방으로 들어가려 문을 여니 안으로 잠갔는지 열리지 않는다. 큰소리로 준형을 부르며 문을 세게 두드려댔으나 준형인 일어나지 않는다.

건넛방에서 잠을 자던 영준이 눈을 부비며 나왔다. 영준에게 형을 깨우라 이르고 부엌으로

들어와 부리나케 아침 준비를 했다. 영준이 준형을 깨우지 못하자 할 수없이 영준이 먼저 밥을 먹여 학교에 보냈다.

 그녀는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영준의 모습을 보려고 베란다로 나갔다. 

 603동 경비실 앞에 경호네와 1101호 여자와 604동 1302호 여자가 영준을 붙들고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영준이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모습이 보였다.

 영준이 뛰어가고 검은색 니트를 길게 늘어뜨린 1101호 여자가 선영의 집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얼른 그 여자의 시선을 피해 몸을 숨겼다. 어제 밤일을 경호네가 여자들에게 말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1101호 여자는 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은 죄다 알고 있는 여자였다. 그 여자의 입심은 가히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로 셌다. 그녀의 남편은 법조계에서 알아준다. 그러다 보니 이 아파트 여자들은 법과 관련되어 있는 일이면 1101호 여자에게 묻는다. 그러면 여자는 판사처럼, 죄의 가볍고 무거움을 즉석에서 판결을 내리곤 했다.

분명 그 여자는 선영의 죄와 남편의 죄를 조목조목 헌법 몇조 몇항을 들먹이며 판결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선영은 마음을 졸이며 준형의 방문 앞에 섰다. 문을 두드리려는데 준형이 그제사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온다.

 “몇 시야?”
 “8시.”
 “××년아, 이제 깨우면 어떻게 해?”

 준형의 눈이 험악해지며 손으로 선영의 목을 눌렀다. 순간, 그녀는 손을 목에서 떼어내며

준형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뭘 잘했다고 나를 때려!”

 준형의 검은 눈동자가 눈에서 사라졌다.

선영은 그런 모습을 보면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온힘을 다해 준형과 맞섰다.

엄한 목소리로 준형을 꾸짖으며 나무랐다. 준형은 선영의 그런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욕을 하며 욕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나와 교복을 입고는  아침도 먹지 않고 영준이 나가면서 밀쳐놓은  문 사이로  빠져나갔다.

 선영은 “준형이는 아프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천형이다. 미워하지 말자. 불쌍한 준형이, 불쌍한 준형이.” 하고 되뇌었다. 그 아이에 대한 미움이 불쌍한 마음으로 바뀌어 자식에게 당하는 씁쓸한 마음이 위로가 된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도  준형은 그녀에게 욕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경호네가 나오다 욕하는 준형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 멈추었다.

준형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자 경호네는 얼른 몸을 빼며 선영의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거실에 선영의 모습이 보이자 문 안으로 들어왔다.

 “준형이가 엄마에게 욕도 하나요?”
“아, 아닙니다. 나에게 한 것 아니에요?”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시치미를 뗐다. 새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입술이 바짝 탔다.

 이 아파트 여자들은 교양과 염치를 제일로 친다. 자식에게 말을 할 때도 큰소리로 말하지 않고 부드럽게 낮고 느리게 말한다. 자식들도 예의를 다해 말을 하는 법을 가르친다.  어린 아이에게도 엄마, 아빠라 부르게 하기보다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현영과 준형의 방금 전 모습을 보았다면 천하에 배운 데가 없는 집이라고 손가락질 당할 것이다.

 이 아파트 여자들은 남편에게 돌봄을 받는 안락한 여자들이다. 젊고 매력적이며 교양과 염치 속에 숨겨진 다소 건방진 듯한 이들은 남편의 사회적인 권위에 어울리게 행동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안일을 충실히 이끌어가고 아이들을 사회에 나가 손색이 없을 정도로 교육시키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녀가 당하고 있는 고난은 자신들에게는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부양하고 보호해줄 남편이 언제나 자신들 곁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돈을 번다는 것이 절실하지도 않다. 간혹 한 두 사람이 직장에 나가기도 한다.

그녀들은 핑크빛 안경을 끼고 시야를 넓혀 주거나 가정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주는 자리를 원하며 산다. 생존의 문제로 싸워본 적이 없다. 여자들의 남편은 의사, 교수, 공직자, 증권브로커 기업가들이 대부분이어서 택시기사 따위가 자신들 속으로 들어와 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녀처럼 몇 알의 진정제로 달래는 여자는 드물었다. 그녀는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등이 꼿꼿한 여자들을 볼 때마다, 같은 나이의 여자들과 비교하여 자신은 늙었고, 추하고, 뚱뚱하다고 자격지심에 시달리며 스스로 비하시키기도 했다. 아내들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빠지는 자기가치부재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밤에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경비가 올라와 이 광경을 보기 전에 빨리 문을 고치세요.”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경호네의 말을 들으며 선영은 부끄러웠다. 나는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더 이상 캐물으려 하지 않은 경호네가 고맙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불안하고 불쾌하기조차 했다.

 그녀는 가끔 경호네를 통해서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 상실감을 느끼곤 했다.

평소에는 잠재되어 아무런 거리낌이 없던 경호네와의 비교도 이런 모습을 들킨 후에는 심리적 난관들이 복잡하게 얽혀 버리고 만다. 선영이 또 한 번의 상실감을 느끼며 경호네에게 아무 말을 못하자 그녀는 슬며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처음 옆집으로 이사 올 때 경호네는 작고 통통하여 보잘 것 없는 여자처럼 보였다. 그녀의 빼어난 외모에 칭찬을 하면서도 고위공직자인 남편을 들먹이며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여기고 싶어했다.
 
해가 갈수록 경호네는 골프와 피부마사지 샾에 들락거리더니 돈 많은 사모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무릎 나온 선영의 바지를 눈여겨보았다가 자신이 싫증나서 입지 않는다며 최고급 바지 하나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녀는 경호네가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건네준  옷을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다.

 서로 이웃 간에 다정다감하게 지내다가도 경호네는 선영과 말을 섞는 것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경호네가 골프를 치고 와서 그녀와 같이 골프를 쳤던 여자들이 얼마나 대단한 여자들인지 늘어놓으며 그녀를 은근히 무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가 초인종을 누르면 경호네는 안에 있으면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경호네 뿐만 아니라 603동 여자들이 은근히 자신을 따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영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면 일부러 남편과의 정다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이 팔짱을 끼며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듬뿍 짓곤 했다.

 선영은 경호네가 이 모습을 보았으니 한 집으로  몰려가 차를 마신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을 흉볼 게 틀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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