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세포배아복제줄기세포는 미유대양키들에게 강탈당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줄기세포 최대 후원사인 삼성을 로버트화 시키기 위해 삼성그룹 막내딸까지 죽이는 짓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은 이 취재파일을 보시는 분은 저와 같을 것입니다. 이 취재기사가 나가고 삼성그룹에서 찾아왔었고, 결국 금전 등을 거부해버렸습니다. 지금도 간간히 인기순위에 오르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역사란 과거를 알아야 현재에 대처할 수 있고 미래를 지향하는 나침반인 것입니다. 다시는 이런 나라, 이런 국민이 되어선 안 되겠습니다. [2007년 5월 6일 보도한 기사를 2018년 5월5일 앵콜기사로 선정하며. 편집부]
[줄기세포게이트 진실보고서 13편-리복재 기자] 줄기세포 사건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 등 효과야 다방면에 걸쳐서 있겠지만, 주목할 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위협적인 면을 띄우고 유태인을 앞세워 우리 국부를 강탈해 가려는 음모라고 확신하며, 여기에는 국내 의료, 종교, 정당, 수구 카르텔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눈이 멀어 일부는 직접 음모를 꾸몄고, 나머지는 협조 내지 공조한 것입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만남은 99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새로 탄생한 복제 한우의 이름을 김 대통령이 황우석의 성을 따서 황진이를 지칭한 “진이”로 직접 지어주기도 하였으며, 이후 국민의 정부의 두뇌한국(BK21)사업 지원대상에 포함돼 활기를 띠게 되었던 것입니다.
황 박사는 2001년 초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에게 "생명체 복제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선도국으로 이른 시일 안에 실용화되도록 하겠다" 는 보고를 하자, 김대통령은 "동물 체세포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을 개발했다는 말을 들으니 대단히 기쁜 일"이라며 황 박사를 격려 및 치하했다고 합니다. 그해 4월에는 김 대통령은 북한과의 과학기술 교류 활성화를 위해 황 교수가 당시 개발에 성공한 복제 젖소와 한우 20마리의 북송 계획을 승인 했으며, 퇴임 후(2004.8.) 황 박사가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했을때 DJ는 ‘實事求是(실사구시)’ 휘호를 써주었다고 알려 졌습니다.
이 후에도 추석이나 설 날 황 박사는 DJ를 방문하며 인연을 소중히 여겼고, 특히 2005년 1월 새해 인사때에는 체세포배아복제줄기세포 원천기술의 성공이 '국민의 정부' 당시 두뇌한국(BK21) 사업 지원대상에 포함된 덕분에 경이적 성공으로 귀결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각별한 감사의 뜻을 전하며 "대통령님이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오늘날 연구성과가 나왔다"며 김 전 대통령이 `실사구시' 휘호를 써준 일을 언급하면서 "그 휘호를 안방에 걸어놓은 뒤부터 마치 하늘이 도와준 것처럼 실험에서 큰 돌파구가 열렸다"고 덕담을 했다는 일화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황 박사와 노무현 대통령의 관계는, 일반 국민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황 박사가 노 대통령에게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슬라이드로 보고하는 자리에서 세종대왕과 한글창제를 보여 줌으로서 배아줄기세포 상용화로 노무현이 세종대왕과 같은 훌륭한 업적을 이룩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4년에는 국가기술 최고훈장인 '창조장'이 수여되었고, 이후 줄기세포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노 대통령 부부가 극비에 황 박사를 찾아가 격려하기도 했던 일화가 있습니다.
황 박사 사건이 터진 2005년 11월, 덕본사람은 이광재 의원과 삼성 및 현 정권과 구정권 입니다.
그 중에서도 현 정권과 구정권은 자신들의 무거운 짐(삼성X파일, 남북문제, 미 부시대통령과 노 대통령 밀담과 아울러 북한 핵 문제, 즉 미국이 북한 땅에 핵을 터트린다고 협박 내지 회유 등 의혹)을 한꺼번에 털어 버리기 위해 황교수 죽이기 카드를 철저히 써먹었던 것입니다. 현'구 정권 실세들의 악랄한 정치술수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광재 의원은 불법대선자금 특검, 측근비리 특검, 유전 특검에서 무사히 살아났었는데, 남아있던 한 가지 짐이 바로 대선자금으로 받은 삼성채권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날 노성일의 폭탄선언이 터짐과 동시에 검찰은 삼성채권 6억원을 받은 이광재 의원에게 공소시효(2000년 5월)가 지났다는 이유로 '처벌불가' 처분을 내린 것입니다. '삼성채권' 문제는 삼성이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2000년 10월- 2002년 12월),이건희 회장 개인재산으로 사들인 채권 837억원 중 361억1천만원이 정치권으로 들어갔던 것으로, 이회창 캠프에는 32억 천만원, 노무현 캠프에는21억원, 김종필 후보에게는 15억4천만원이 각각 제공되었던 사건입니다
이중, 이광재의원에게 채권 6억원 어치가 이회창 후보 캠프에는 서정우 변호사에게 24억7천만원의 채권이 전달됐다고 합니다.
X파일사건이 사실상 종결되면서 검찰로부터 무혐의를 받은 이건희,이학수, 홍석현등 삼성 3인방이 더 이상 여론재판의 도마에 오르지 않게 되었고, 대권 관련 삼성채권문제가 일단락되어 현 정권의 짐이 덜게 된 것이 이날의 ‘황교수 사건이 내려준 은덕?’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현 정권이 의도적으로 난국타개를 목적으로 때를 맞추어 사건을 터뜨린 것이 아니냐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황우석 죽이기’와 관련하여 들어난 흔적들은 모두 중앙일보와 메디포스트, 보광창투 등 이건희 회장의 처 홍라희 계열의 홍석조와 홍석현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사건 초기에 무료변론을 내세워 황 교수의 변호인을 자처한 이건행 변호사는, 과거 중앙일보 법률자문위원으로 활약한 중앙일보맨이었으며, 사건 후 미국 이민전문변호사 박 마테오씨에게 황우석 박사의 돈을 가져다 쓰라고 했던 것입니다. 특허 문제를 다루어 우리 네티즌에게 낯익은 미국 모아미디어가 계약당사자 없이 팔려 간곳도 미주 중앙일보였으며, 모아미디아 매각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튼의 특허 문제를 다루던 미국 이민 변호사 인 P변호사(박마테오)에게 돈을 가져다 쓰라고 한곳도 역시 중앙일보이며 딴지 총수 김어준을 꽁꽁 묶어둔 곳도 역시 중앙일보입니다.
삼성과 보광창투-중앙일보-메디포스트에 대해서
메디포스트의 배후 보광창투는 이건희가 아니라 홍석현입니다. 이건희와 홍라희의 둘째딸 이서현의 남편인 김재열은 동아일보회장 김병관의 아들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동아일보가 벙어리 짓했던 진짜 이유입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보여준 검찰의 비겁한 행동을 삼성장학생과 연관 지어 생각하고 있으나, 오히려 검찰을 현실적으로 압박 할 수 있는 사람은 오해받지 않겠다고 자리를 사양했던 홍석조 검사(전 광주지검장)가 더 검찰과의 인맥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드러난 연결고리는 모두 이건희 처갓집인데, 만일 삼성이 몸통이 아니라면 떳떳이 밝힐것이지, 왜 그 많은 욕을 먹고 있으며 수많은 삼성비난에도 아무 소리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하고 있었을까요? 이것은 답이 금방 나옵니다. 국민들의 눈에는 홍석현도 삼성이고, 홍라희도 삼성이고, 홍석조도 삼성이고 모두 모두가 삼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너무 거대한 탓에, 설사 회사 이익금 모두가 이건희가 아닌 그들의 주머니에만 들어간다 할지라도, 처남들 모두 이건희와 한패거리로 여겨질뿐 구태여 삼성과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국민들의 선입관적 인식을 처남매부지간인 이건희가 신문광고를 내가며 부인해 본들 무슨 효과가 있고, 또 설령 그렇게 자신의 결백을 밝혀야할 필요성도 없거니와 서로의 의리만 상할 뿐입니다. 이건희는 돈앞에는 처남매부지간의 의리도 없다는 진실을 이미 처남들의 떡값 배달 사고 시 눈치챘던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삼성과는 실제에 있어서 관계없는 일들을 삼성이 한 것으로 보는 시각, 즉 황우석 지지 시민들이 처음 황 교수 사건이 터졌을 때 미즈메디 병원소속 연구원들을 황 교수 팀원으로 착각했던 전례가 있듯이, 큰 나무의 그늘에 가려 작은 가지들의 실체가 안 보이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삼성과 줄기세포 사건은 관련이 있는가?
그렇다고 삼성이 반드시 이사건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건진행과정에서 황 교수와의 공조를 포기당한 삼성은 “특명 2005”의 요청에 의하여 소요경비를 지불하는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는 의혹에 대해서 밝혔습니다. 속된말로 울며 겨자 먹기로 분담금을 떠맡았지만 한마디도 불평을 늘어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전에도 조금 밝혔지만, 본격적으로 의혹을 제기해 보겠습니다.
아마도 홍석현, 홍석조씨는 국민들의 이러한 착각을 즐기며 웃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제일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던 친딸을 잃게 되는 불행을 입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독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줄기세포 사건이 터지자 두 명의 의문의 죽음이 몰고 온 것은 무엇인가
▲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故 이윤형씨의 사진 © |
|
2005년 11월 20일 전 국정원 2차장 이수일(호남대총장)씨가 광주 사택에서 자살했다고 보도했으며( 이 사건은 나중에 기술 할 예정), 21일경 외신 기사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셋째딸 이윤형양의 죽음을 놓고, 삼성그룹측과 언론은 22일경 처음 교통사고다 라고 발표했다가 26일경 외신(미주 한국일보 기자의 노력으로)이 뉴욕 이양의 아파트에서 18일경 자살한 것으로 보도하자, 이 나라 언론들도 자살로 보도만 하고 말아 의혹만 더욱 증폭시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었습니다. 어느 언론도 이 중대한 죽음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황우석 박사와 연관 지어져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미국, 특히 어떤 강력한 조직(진실규명 지지자들은 '프리메이슨' 지목)이 무서워 보도하지 않고 있을까요?
MBC PD수첩이 황 교수팀의 문제점을 보도한 것은 단순한 생명윤리문제나 논문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한달 넘게 이슈화하고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선 점, 과학,언론,종교,의료 전문가들이 연일 의혹을 증폭시키며 이슈화 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알아 보겠습니다.
두 사건(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두 당시 여러 복합적인 관련 문제들을 잠재우기 위해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이수일씨 문제는 간단히 언급하자면,"국정원 도청사건(X파일) 잠재우기"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국정원이 1,800여명의 도청한 사건은 중차대한 문제로서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 2명이 검찰에 구속된 상태에서 갑자기 20일에 전 국정원 2차장 이수일(전 호남대총장)의 자살사건이 발생하였고, 검찰의 도청사건 수사는 위축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 되는등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가 될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 황우석 교수팀의 생명윤리의 줄기세포 문제가 MBC에 의 한달간 정도나 집중 방영되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대한민국 최고의 갑부 이건희의 친 딸이 미국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자살사고?’인데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니 이 회장 조차도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고 억울하게 눈감게 한 이유? 없는 의문의 ‘자살사건’이 동시에 터졌습니다. 삼성은 국정원 X파일 문제와 불법상속 편법 증여문제와 김대중 정권시절 대북문제등 그룹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수세에 몰리자, 그룹 총수가 미국으로 나가 있던 상황에서 친딸을 잃었습니다. 막내딸 이양을 애지중지하며 제일 정을 많이 주었다는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2003년 이양이 국내 스키장에서 다른 사람과 부딛혀 머리를 다치자 스키장에서 헬멧을 안쓰면 스키를 못타게 할 정도로 이양의 안전과 사랑에 대해서는 넘쳐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필자와 알고 있는 미국 지인이 현지를 답사하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윤형씨의 옛 남자 친구인 신수빈 군과 인터뷰하여 보내 준것을 편집 수정 재 정리 했음을 밝힙니다.
이 사건과 관련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2005년11월21일 삼성그룹비서실은 이건희 삼성회장의 둘째딸 이윤형양(26세)이 날짜 미상인 상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 했다”고 발표 했었습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지 보도 후 5일이 지난 뒤 11월26일 NYT지는 “이양의 사망원인은 알려진 바와 같이 교통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살이었다”라고 보도합니다.
NYT지의 이러한 정정보도는 현지 미주 한국일보 기자의 끈질긴 추적끝에 확인된 것이었습니다. NYT지는 당시 이양의 시체를 검시 하였다는 뉴욕시 검시담당관과의 인터뷰를 추후 보도하였는데, 검시관의 말로는 “타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목주위에 밧줄이 걸렸던 흔적으로 보아 자살이 틀림없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막내 딸인 이양이 머나먼 타국 땅에서 스물여섯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그 짧은 생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어떤 소식도 분명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신문보도와 주변정황등을 살펴볼 때 이양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사건이 아니라, 계획된 살인행위였다는 심증을 사건당시부터 가지고 있었던 네티즌들이 많은 걸로 판단됩니다.
더 타임스, 가디언 등 영국의 주요 신문들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막내딸인 이윤형(26)씨 자살 사건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이 신문은 "윤형씨는 인터넷 홈페이지 `이뿌니 윤형이네'(Pretty Yoon Hyung)에서 유감없이 매력과 자신감을 드러냈으나 냉혹한 삶의 현실 속에서 꽃다운 나이에 뉴욕의 아파트에서 전깃줄에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습니다.
▲ 서울중앙지검 정문 옆에 걸어 놓은 프랑카드 © 플러스코리아 |
|
하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 그 몇 가지 이유와 증거들에 관해 검토한 후, 이 사건과 ‘황우석 죽이기’와의 연관성에 대하여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양의 사건에서 가장 큰 의문점이며 자살이 아니었다는 증거로는, 바로 스스로가 죽음을 택했다는 ‘유서’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유서는 소위 ‘자살증명서’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가고 있고 또 끊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그 ‘자살인’들의 몇%정도나 자신의 자살을 증명할 유서를 남기고 떠나는 지에관한 통계가 있는 것도 아니며, 자살인들이 반드시 유서를 남겨야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삼성가 막내 딸 이윤형양의 경우는 거꾸로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서’를 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의혹에 관해서 쉽게 설명하자면, ☞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었다면 유서를 남길 수 없었을 것
☞그녀는 아직 어린 나이에, 가족관계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던 것(부잣집 막내 딸로서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순수한 가족 관계에 있던 점. 즉, 예를 들어 수양딸이거나 , 계부, 계모 관계도 아니며, 가족들로 부터 버림 받은 제멋대로 살아오지 않았다)
☞ 이양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 공부를 위해 미국유학 중이었던 것
☞ 이양은 매일 가족들에 전화하고 특히 조카들을 아주 귀여워 했으며, 여느 학생처럼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죽음 직전까지 블로그에 조카 사진을 올려 놓고 기뻐했다고 함. 그녀의 성격은 온건하며 합리적이고 사리를 따르는 조심스런 여성의 한사람이었음은 그녀의 블로그에서 나타나고 있음)
☞ 대학원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따돌림도 당하지 않았고 영어도 잘하고 학업성적도 좋은 학생이었던 것
☞ 그가 죽음의 이유로 유서를 남겨야 했지만 죽어야 할 그럴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것
☞ 이건희 회장은 3남매 중 막내인 이양을 특히 귀여워 했고 이양은 누구보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다는 것(이양이 자살하려했다면 최소한 자기 아버지인 이회장에게는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을 한번이라도 전했을 것)
☞ 이양은 마약이나 흥분제 복용 사실이 없었으며 자살 검시의견에도 거론된바 없음
☞ 자살 이유로서 삼성비서실이 밝힌 사실은 교통사고-자살 등 횡설수설 한점 등입니다.
▲ 이양의 아파트는 맨하탄 남단에 위치한 뉴욕대학에 가까운 그린위치타운 . 사진=뉴욕대학 주변 © 플러스코리아 |
|
여기서 삼성비서실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의혹은,
1. 교통사고설은 자살 이유를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한 것인가?
2. 정말 교통사고를 당한것으로 믿고 있는 것인가?
3. 이유를 밝힐 수 없는 중대한(재벌 간 아니면 국가 간) 사유가 있는 것인가?
자, 사고가 발생한지 며칠이 지난 후 기자들의 추궁을 받고 마지못해 교통사고라고 밝힌 것이니 삼성비서실이 의도적으로 거짓정보를 흘린 것만은 틀림 없을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위 사항 중 삼성이 밝힐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해당된다면, 자살 이유에 대하여 세간에서는 신수빈(이양친구)군과의 결혼을 부모가 반대했다는 결혼 비관 자살설, 마약중독설, 우울증설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저간의 사정과, 이양을 아는 친구들의 증언을 참작하면 마약 중독설이나 우울증설은 전혀 신빙성이 없다고 보아야합니다.
그러면 ‘결혼비관 자살설’에 대하서는 신수빈군의 확실한 증언이 없어 그 깊은 사정을 알 수 없지만, 학교졸업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양이 지금 당장 결혼을 해야 할 절박한 사정에 처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간적으로 보아 학교졸업 후에 결혼문제를 거론해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며, 이에 관한 부모자식 간 의견충돌이 있었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바 없습니다. 이양의 성격은 활발하면서도 다소 내성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인생의 고민을 눈앞에 두고 혼자서 고민하며 자신의 목숨을 ‘사랑’에 바칠 만큼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도 아님은 그녀의 사후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로 보아 결혼비관설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들도 이양의 죽음을 둘러싸고 어느 정도 이해 하겠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자살할 아무런 근거나 명분이 없음을 알 수 있으며, 자살하기 전 유서가 없는 점은 더욱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이양이 언제 죽었는지에 대하여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의혹 선상에 있는 이 양의 죽음을 파헤치면 황 박사 사건도 보인다? (줄기세포 사건과 관련 부분의 의혹 제기는 차후 기술할 예정)
삼성 비서실의 발표는 11월21일 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만 보도했을 뿐,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왜 사고가 일어났었는지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밝힌바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전인 11월18일부터 19일 사이입니다. 이양 남자 친구 신수빈군이 2005년11월19일 밤 3시에 이양의 아파트를 찾아가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11월19일 새벽3시 이후부터는 이양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이양이 언제 죽어있었는가에 대한 정답은 아닙니다. 신군이 이양을 마지막 만나본지 며칠만인지, 또는 얼마동안 이양의 시체가 그곳에 놓여있었는지 정확한 사망시간마저 비밀에 가려져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밝혀진 유일한 사실은 이양이 자신의 집안에서 죽어있었다는 것과 그 시간이 11월19일 새벽 3시 이전이었다는 것뿐인데 목에 눌린 흔적이 있었다는 검시관의 증언을 뒷받침할 증거도 의사의 사망진단 내용도 모두 비밀입니다.
☞11월18일은 미국시간으로 금요일 밤입니다. 이양의 아파트는 맨하탄 남단에 위치한 뉴욕대학에 가까운 그린위치타운에 위치합니다. 이양의 주변지역은 유명한 그린위치타운으로서 밤에도 환한가로등과 주변상점들의 불빛이밝은 상가 겸 주거지역이며 한국의 아파트와는 달리, 길거리에 연접한 미국식입니다 .
☞ 신군이 이양의 아파트를 방문한 시간이 19일 밤3시인데 왜 그 늦은 밤에 그것도 이양과 이별한 옛 남자 친구가 이양의 아파트를 방문하게 되었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평소 밤늦은 새벽에 이양 집에 오지 않았던 신군이 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즉 누군가 신군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래도 신군은 옛 여자 친구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방문하여 신고 했을 것이며, 이후 누군가로부터 지시와 회유,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묵비권으로 돌아서지 않았을까요?
11월19일이면 뉴욕도 역시 늦은 가을에 속하는데, 신군이 누군가로부터의 전화연락을 받지 않았다면 구태여 그 늦은 밤에 찾아올 이유가 없었으리라 판단합니다. 만일 이양이 자살하기 전 자신의 치구였던 신군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려했었다면, 신군이 분명 전화를 받는 즉시 이양의 아파트로 달려왔을 것입니다.
위 지도에서 보는것 처럼 만하탄 뉴욕대학주변은 반경2마일 내입니다. 차로 달려오면 불과5분, 늦어야15분 거리입니다. 더군다나 그 늦은 시간에는 차가 막히는 교통체증도 없습니다. 이양의 목숨을 건지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양이 보내온 전화가 아니라면, 제3자, 즉 그 누군가로 부터의 연락을 것이며 사건현장을 위장한 후 빠져나가면서 자살신고를 하도록 유도한 것이 확실 합니다.
만일 이양이 죽은 지 며칠이지나 신군이 아닌, 아파트관리자가 발견했다면 일은 다른 방향, 즉 사건의 윤각이 잡혔을 것입니다. 신고를 하게 되면, 또 언론사가 알게 되어 있고 911구급차대신 기자가 먼저 달려오게 되면 일은 복잡해 집니다. 속전속결을 위해서는 이런위급상황에 경험이 없는 신군 같은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범인들이 원하는 범죄 기본원칙입니다.
☞ 정리해 봅시다. 이양의 죽음은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죽지않았다면, 이양이 취한행동을 이해하거나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양의 죽음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미국의 생활습관은 어떤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반드시 911번을 눌러 호출 한다는데 있습니다. 화재여부를 불문하고 교통사고이던 강도사건이건 모두 지역경찰을 부르지 않고 911번을 부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신군도 역시 911번을 눌러 호출했을 것이고 앰블런스는 가까운 병원에 이송합니다
맨하탄 MIDTOWN이나 LOWTOWN지역에는 여러 개인병원들이 있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지역내 가장 가까운 큰 병원 NYUMEDICAL CENTER로 가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지역 경찰에 신고 하게 되어 있고, 만일 이양이 병원으로 옮기기 전 이미 죽어있었다면 경찰관이 아파트에 엠블런스와 함께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경찰관은 당연히 사자의 시체를 확인하고 죽었을 경우에는, 지역내 검시관(의사)과 감식반이 올 때까지 현장보존을 해야 합니다. 자살했다면 자살한 장소에 대한 사진촬영은 필수이며 목격자의 증언과 경비원의 진술 ,신수빈군의 증언 등을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검시관의 발표는 목 주위가 눌린 자국이 있다고 말했을뿐 자살이라는 말을 명확히 한 것은 발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디에도 이양이 자살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 그렇다면 타살된 것이냐라는 물음에도 답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타살여부를 가리기전에 이양의 시체는 화장 처리되었기 떄문입니다.
죽은 이양의 부모가 미국 현지에 있었고 사망이후 현지 삼성직원들이 현장과 병원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이양의 시체는 부모의 동의나 친지의 의견 수렴도 없이, 다시는 시체를 검시 할 수도 죽은 원인을 밝힐수도없게 죽은 다음날 화장처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가족들은 월요일 아침 시체가 아닌 한줌의 재를 앞에 두고 장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점이 이 사건에 있어서 가장 의심이 가는 부분입니다. 급성 전염병환자가 아닌 이상 19일날 새벽3시에 시체를 발견한 후 병원으로 옮긴 즉시 화장 처리를 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오직 한 가지 이유가있다면 이양의 죽은 이유를 감추기 위한 것뿐입니다.
미국의 법 규정은 화장시 반드시 친지나 부모의 동의 또는 그에 상응하는 요구가 있어야 하며, 필요한 기간을 두고 있습니다. 관에 넣어 매장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다수의 경우 화장보다는 매장하는 것이 미국인의 관습입니다. 이는 화장하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에 속하는 것이니 이양의 경우는 그 죽은 원인과 결과를 놓고 볼 때 상식적이 아닌 비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화장처리된 것이 분명합니다.
신군이 도착하였을 당시 이양이 살아 있었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고 보지만, 그 당시 어떤 상태로 죽어 있었는지만 말해주어도 자살 또는 타살여부가 밝혀질텐데 신군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필자와 아는 지인이 현지답사를 하였고, 또한 신군을 만나 확인한 사실이며, 미국아파트 구조를 알고 미국생활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답변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이양의 죽음은 절대 자살이 아니며 이 사건으로 인해 황우석 사건 윤각이 드러난다?’ 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