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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칸 2009/04/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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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북경도 고구려의 유적이랄 수 있는데 주변의 수와 당을 맞이한
    그렇다면 북경도 고구려의 유적이랄 수 있는데 주변의 수와 당을 맞이한 고구려 성을
    소개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고구려성의 특성인 치와 해자(사항에 따라 틀리겠지요)가 있는...옛 자료나 성터라도..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성 훈 2009/04/2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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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도 고구려의 강역이었으나 후방이었습니다.
    수양제와 당태종과의 전쟁은 산서성 남부에서 일어난 전쟁입니다.
    그래서 북경과 수.당 전쟁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산서성에는 많은 옛 고성들이 북경 주변에는 별로 없습니다. 나중에 평요고성을 설명하면서 치와 해자에 대해 언급해 드리겠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 asdfa 2009/04/2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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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당한 소설이 구만
    중국 문화대혁명때 사람의 담이 얼마나 크면 땅의 수확량이 얼마나 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성훈님의 담이 좀 작은것 같습니다.광동성이나 광서성 같은데 가서 둘치면전체중국땅이 다 고구려 땅이 될턴데
    무식한 놈은 봤지만 이렇게 무식한 놈은 첨이고
    낮가죽 두꺼운 놈을 봤지만 이렇게 두꺼운 놈도 첨이다.
    이놈의 나라는 개나 소나 다 글을 쓰지 법으로 미친놈은 글을 쓰지 말게해야 하는데
  • 김성겸 2009/04/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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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북경"과 "당산"간에 고구리의 초도가...
    지금의 "북경"과 "당산"간에 고구리의 초도{동도}가 있었고
    "북경" 서방 인근인 "회래"지경에 고구리의 서도가 장수대제가 평양대성으로 이도할 때까지 고구리의 주도성이었음을 알게 되면,
    성훈 님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얘기는 하시기 곤란할 것입니다.....
  • 성훈 2009/04/2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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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한 사서의 근거와 유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한서지리지와 신당서 열전 동이에 나오는 기록의 지명을 고죽국 왕자인 백이.숙제의 묘가 밝혀주었고, 게다가 포주고성이라는 유적지와 수양이라는 지명과 대청광여도와 현대 지도까지 근거가 있는데도, 믿지 못하고 엉뚱한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역사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북경 근처에 고구려의 도읍을 갖다 놓으면 역사 기록이 절대로 안 맞습니다. 김성겸선생님 미안합니다만 고정 관념을 버리셔야 될듯 합니다. 이미 왜곡된 중국 지도로만 역사의 지명을 비정하면 역사의 톱니바퀴가 절대로 맞을 수가 없습니다.
    믿고 안 믿고는 본인의 자유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는 동도 서도 이론을 자꾸 들먹거리면 전 김성겸선생님을 다시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 김성겸 2009/04/2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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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만,
    성 훈 선생님;
    저에 대한 평가는 선생님의 손 안에 있을 것이나,
    안타깝기는 서로가 매일반일 것입니다.

    제가 보내드렸던 파산 부산 부산과 그 이전 기록 부산을 잊지 않으셨으면 하며,
    전대의 구리읍{현} 구리성과 후대의 구리천제국 등에 대한 고려도 반추하시고,
    어떠한 "한서지리지도" "한서"본기보다 앞설 수는 없을 것이며 역시 조작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입니다. 예단은 금물일 것입니다....

    힘들여 하셨던 귀한 일 중에
    혹여 발을 잘 못 디딘 곳이 없으신지 주변에 널린 것이 함정들이니 매번 주의하시리라
    생각할 것입니다.
    나중에 추모경이 출간되거든 제 판단이 아닌 굵은 글자들을 일별하여 주시기만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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