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고기의 23가지 실증사례 (1)
사대식민사학자와 반도식민사학자들이 환단고기에 대해 전면적인 사료적 가치를 부정하는 데, 반해 의식 있는 재야사학자들과 정통역사가들은 "개인 이익이나 떼거리 이익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의 평화세계를 향해 마음을 열어 민족국가역사를 복원할 때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며 "환단고기가 위서라한다면 다음 23가지 실증 사례에 답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 [정리]<환단고기가 위서인 이유>. https://m.blog.naver.com/dbswlgus2367/220548274366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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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가 위서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주장한다.
(위 블로그의 게시물 게재 위치: https://m.blog.naver.com/dbswlgus2367/220548274366 )
"<환단고기>란, '계연수'라는 존재불명 인물이 닦은 초고를 이유립이라는 사람이 계승에 마무리했다고 주장하는 '역사' 책입니다. 역사라고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군왕검이라는 사람 이전에 살던 선대 나라와 선대 단군 왕조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다만, 내용의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관련된 유물이 발견된 적도 없으며 논증도 허술해 학계에서 위서로 간주합니다. 철저히 객관 위주의 이성을 갖고 계신다면 환단고기 내용이 얼마나 우주를 초월하는 뭔가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실 겁니다.
환단고기 전개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환단고기의 논리는 대부분 간파 당했으며 그 외에도 환단고기의 상당 부분이 잘못됐음을 증명할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굵직한 내용 위주)아주 짧게 요약해보자면;구석기 신석기 시대에 걸쳐 환국이라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한민족의 나라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지도자(혹은 백성)들은 매우 위대해 신적인 능력까지 있었는데 그래서 한 명 당 적어도 3천 살 이상을 살 수 있어 7명의 환국 지도자들이 63182년을 다스렸다고 합니다1. (조상님들은 엘프와 비슷한 무언가셨던 겁니다) 환국의 넓이는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라 기록합니다. 그런데 아시아의 넓이가 동서 24,699리 남북 22,127리로 환다고기대로라면 위와 아래로는 남극과 북극에 닿는 길이입니다..."생략/
충격적이게도 1980년대 말, 일본 요코하마 출생으로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한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鹿島昇·1925년생)가 번역한 것으로 돼 있는 양장본 ‘한단고기(桓檀古記)’를 국회도서관에서 접한 순간 필자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1982년 쇼와(昭和 57년) ‘역사와 현대사(歷史と現代社)’를 발행인으로, ‘(주)신국민사(新國民社)’를 발매인으로 해서 도쿄에서 출간된 일본어 책이기 때문이었다.
이 일본인이 펴낸 한단고기를 국내 유수의 사학자들에 의해 번역을 하게 되고, 마치 그것이 진실인양 책팔이 장사치로 나선 대부분의 재야사학자들을 보면서, 한 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이전 이유립 선생이 월간 '자유'지에 의해 발표된 한단고기는 개무시해버렸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가지마는 환단고기를 일본 신도(神道)에 접목시켜놓았는데, 가지마 노보루의 환단고기 원문(한자)과 국내에서 출간된 한단고기의 원문이 똑같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한단고기는 일본인과 한국의 재야사학자들이 엉터리로 만들어 놨다. 그렇다고 한탄만 하고 있으면 되겠는가?
한단고기는 조선후기 학자 리기선생의 지도로 1911년 계연수선생에 의해 ‘삼성기’와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란 네 책을 한데 묶어 편찬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이때 조선독립군 부대에서 한단고기를 편찬하는데 군자금을 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대조선역사의 진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첫째 : 한단고기에 단군조선 13세 흘달(屹撻) 단군 50년(서기전 1733년) ‘5성취루五星聚婁'라고 하여 5개의 별이 루성 중심으로 모이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했는데, 이것이 천문학자인 서울대 박창범 교수와 라대일 박사 등에 의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된 것이다. * 동영상 참고
▲오성취루현상 © 플러스코리아
‘한단고기’는 구한말 리기선생과 계연수선생이 썼고, ‘단기고사’는 발해의 대야발이 편찬했으나, 일부 사대식민사학자들은 과학적 검증 없이, 삼국사기 전인 것과 후대의 조작 흔적이 있다는 것을 내세워 무조건 위서로 몰고, 외면하여 진지하게 연구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는‘환단고기’와 ‘단기고사’ 등에 기록된 일식 등 천문현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했다. ‘5성 취루’, ‘일식’ 등의 현상이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었는지를 천문학적으로 연구, 검증한 것이다.
박창범 교수는 특히 두 책에 모두 기록된 ‘5성 취루’현상에 주목하여 추적 조사한 결과, 실제로 서기전 1734년 7월 13일 일몰 직후 금성, 목성, 토성, 화성 그리고 추가로 초승달까지 일렬지어 하늘에 나타나는 장관이 연출됐음을 확인하였다.
박창범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우연히 맞출 확률은 0.007%에 불과하며, 책의 조작 여부에 관계없이 역사적인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확인했다.
이것은 우리 민족 문화사 가운데, 상고사를 실증적 규명단계로 진입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단군조선이 민족국가로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창조했음과 더불어 환단고기의 실체를 입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환단고기 등장 이전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발해 3대 문왕 대흠무의 연호가 환단고기에 ‘대흥(大興)’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서기 1949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출토된 정효공주 묘지 비문에서 문왕 대흠무가 자기 존호를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大興寶歷孝感金輪聖法大王)’이라 하고 불법의 수호자로 자처한 데서 드러나, 환단고기가 사료로서 가치 있음이 과학적으로 실증된 것이다.
▲정효공주묘 비문 © 플러스코리아 셋째 : 고구려 유장 리정기장군이 중공 중동부 15개 주에 대제(大齊, 평로치청)라는 큰 나라를 세우고, 4대 58년간 다스린 기록이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에 처음 나오는데, 이것도 1997년 처음으로 발간된 책 <고구려를 위하여>(김병호, 하서출판), 그리고 KBS 역사스페셜 ‘중국 속에 또 다른 고구려가 있었다, 이정기 왕국(2001.5.16)’에서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
넷째 : 강화도 마니산에 제천단 참성단이 있어 역사적으로 각 왕조마다 해마다 천제를 지내온 바, 그 첫 기록이 환단고기 단군세기 단군왕검 무오 51년(BC 2282년)에 쌓았다는 것이 나온다. 마니산 참성단은 지금도 의연히 그 자태를 빛내고 있으며, 서울올림픽, 월드컵축구와 전국체전 성화채취의 기본성지가 되고 있다. 강화도에서는 이 밖에도 고조선 유물로 정족산성과 고인돌 127기가 있다.
▲리정기 장군의 세력 확장도 © 플러스코리아
다섯째 : 단군조선의 실재를 보여 주는 것으로, 평양 강동현에 있는 대박산에서 단군릉이 1993년 발굴되었다. 여기에서는 왕과 왕후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북한은 단군릉을 거대하게 개건하여 성역화하였다. 그리고 1926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모금운동을 하여 평양 강동현 단군릉을 보수하고 해마다 제사를 올린 바도 있다.
▲평양의 단군릉 © 플러스코리아
여섯째 :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는 장수왕이 즉위하자, ‘건흥(建興)’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기록이 보인다. 건흥 연호는 1915년 충북 충주 노온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광배명(光背名)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고구려 불상에는 ‘건흥오년세재병진(建興五年歲在丙辰)’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한때 백제 불상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광개토대왕릉비>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은 임자년인 412년에 사망하게 된다. 즉위년 칭원법에 따라 이 해를 장수왕 즉위 원년으로 삼아 본다. 그러면 장수왕 즉위 5년은 병진년이다. 따라서 병진년 불상 광배병과 <태백일사>를 통해 ‘건흥’이 장수왕 대의 연호라는 새로운 지견을 추가할 수 있게 된다.
▲연개소문 © 플러스코리아
일곱째 :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여 연개소문의 아버지 이름은 태조(太祚), 할아버지는 자유(子遊), 증조부는 광(廣)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연개 소문의 할아버지와 증조부의 이름은 <태백일사>를 제외한 어떠한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1923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의 묘지에서 천남생의 증조부 이름을 ‘자유’로 명기하고 있어서 <태백일사>의 진가가 드러나게 되었다.
여덟 번째 :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진역유기>를 인용하여 현재 태국에 있는 아유타국과 백제 상인이 교역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는 지역적 근접성으로 보아 백제가 현대의 캄보디아인 부남국(扶南國)과 교역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뒷받침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백제 해외경영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아홉 번째 : 실증사학을 내세운 사대식민사학의 거두 이병도 박사가 과거에는 단군을 신화로 몰다가, 친구인 재야사학자 최태영 박사와 국사 찾기협의회원들(김세환, 박창암 등)의 우정 있는 충고를 받아들여 참회하고, 단군은 실존의 우리 국조이며, 역대왕조가 단군제사를 지내왔으나 일제 때 끊겼고, 삼국사기 이전의 환단고기 등 고기의 기록을 믿어야 한다고 1986년 10월 9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에 쓴 사실이다. 단군조선의 사실과 환단고기를 믿으라고 쓴 것이다. 사대식민사학자들은 그들 태두의 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기사 © 플러스코리아
열 번째 :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실증적 입장에서 깊이 연구하여 6하 원칙에 입각하여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위조했는지 명백히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제시한 반도식민사학자들과 이를 같이하는 유사학자와 사이비사학자들 중 현재까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다음 호에 계속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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