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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당시 옥수수 가루 나누어주던 시절은...

"저 시절에는 오늘 날 처럼 그런 나쁜 인간들이 많지를 않았었는데요"

편집부 | 기사입력 2006/09/10 [23:28]

1961년 당시 옥수수 가루 나누어주던 시절은...

"저 시절에는 오늘 날 처럼 그런 나쁜 인간들이 많지를 않았었는데요"

편집부 | 입력 : 2006/09/10 [23:28]
▲ 1961년 당시 옥수수 가루를 나누어 주던 모습.   별빛삿갓  제공

 1961년 당시 학교에서 급식으로 나누어 주던 먹거리로 옥수수 가루가 있었다. 꿀꿀이죽이라 불리기도 했던 옥수수가루는 미국에서 빈민국에 원조해 주던 것인데 미국에선 돼지사료(미국의 퓨리나회사와 카이길 회사에서 제조)로 쓰이는 것이었다. 그 일부를 수년간 한국에 무상원조해 준 것이었고,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 꿀꿀이 죽이라고 일컬었다.
 
본래 이 사진은 '황우석팀 연구재개촉구 교수모임'의 자유게시판에 닉네임 '별빛삿갓'이  올린 사진인데, 닉네임 '또삼식'의 댓글에는 "저 시절에는 오늘 날 처럼 그런 나쁜 인간들이 많지를 않았었는데요. 그 때가 그리워집니다."라는 글과 함께 닉네임 머털의 "우유가루를 나누어주던 것도 기억납니다."라는 글이 올라 있어, 새삼 과거의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우리 어르신네들의 생활과, 그래도 노숙자가 없었고 오늘날과 같이 남을 비방하고 헐뜯는 분탕질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준다.
 
또한 마로니에 인터넷방송을 운영하는 닉네임 마로니는 "저는 그 맛을 잊지 못합니다. 옥수수빵 만드는 공장이 서울 금호동에 있었는데요. 공장건물은 6.25 상이용사들이 집단거주하던 건물이었습니다. 정양원 이라고 불렀던거로 기억합니다. 이 정양원은 정치깡패 이정재가 어깨에 힘주고 왔다가 딥따 터지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는곳. 당시 전쟁 상이용사들 무시 못했거던요.ㅎㅎ"라는 댓글을 올려 당시 전후의 정치, 경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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