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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사태에 대한 인문학적 보고서

원칙과 상식의 씨앗을 뿌려라.

이하천 소설가 | 기사입력 2006/08/03 [09:53]

황우석사태에 대한 인문학적 보고서

원칙과 상식의 씨앗을 뿌려라.

이하천 소설가 | 입력 : 2006/08/03 [09:53]

 [플러스코리아 이하천 소설가]

플러스코리아에 관여하게 된 동기

역사적으로 우리는 진정성이란 아주 고귀한 인간의 심성을 빼앗겼다. 그렇다. 그것이 진정성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산맥을 오르내렸는가?

필자는 30대 중반까지 시를 써오다가 시만 가지고는 안되겠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즉시 소설부문으로 분야를 바꿔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하려니 무언가 거대한 산맥이 나를 가로 막고 있어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산맥을 넘지 못하면 나는 외형적으로는 성공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마음에 무거운 맷돌을 단 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불행한 영혼을 껴안은 채 벌벌거리며 돌아다녔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필자는 그 산맥을 넘기 위해 젊다면 젊은 나이인 37살에 15년이라는 긴 외국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깊은 산골로 들어와 긴 칩거생활에 들어갔다. 그것은 나로서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한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 칩거생활이 20년 가까이 지속하리라는 것은 나 자신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칩거의 결정은 젊은 나이라는 조건 때문에 너무도 어려웠지만, 그러나 나 자신에게 내린 너무도 잘한 형벌의 결정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 내 육체와 영혼이 따로 노는 것 같은, 그러면서 일으키는 불협화음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이유를 찾아 나섰어야만 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20년이라는 아주 긴 여행이 되어버렸다.
 
그 산맥을 넘는 일이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면, 나는 아마 일찍 포기하고 살았지 않았나 싶다. 넘어도 넘어도 또다른 산맥이 가로막는 그 험난했던 정신의 길에서 나는 때론 절망했고 때론 희망에 차서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 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이 땅의 여성성의 문제였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인을 찾아 가던 중 제사와 호적제도라는 거대한 산을 또다시 만났다. 아니 이 모든 문제의 뿌리를 보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사회의 원칙과 상식은 가정에서부터 깨어졌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다. 가정의 질서가 원칙과 상식의 땅 위에 세워져야 사회의 질서가 원칙과 상식의 땅 위에 세워진다 그 간단한 상식적 논리를 이 역사에 세우기 위해 걸으면서 나는 소설쓰기와, 문화비평을 병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황우석사태에 대한 인문학적 보고서 7편을 써

 그 후 나는 계속 또 걸었다. 왜 이렇게 원칙과 상식에 혼란이 왔을까? 왜 이렇게 가짜들이 많은가? 왜 이렇게 경박한가? 왜 이렇게 두 가지 언어를 쓰면서 살아야 할까? 공적인 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계속 걸었다. 이제 나는 이 긴 여행의 마지막 자리에서 ‘진정성’이라는 언어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의 그 긴 여행이 나 자신 속의 진정성의 획득에 대한 갈구였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런 와중에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 사건을 만났다. 나는 처음에 이게 뭐지? 하는 심정으로 사건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무언가 광풍과도 같은 회오리바람이 내 내면을 강타했고, 나는 모든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밤낮으로 정신없이 이 사건을 따라잡아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3개월 정도 하고 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라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싸움은 내가 20여년 지속적으로 해오던 원칙과 상식을 세워야 한다라는 명제에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싸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황우석사태에 대한 인문학적 보고서를 1~ 7편까지 쓰게 되었다.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본 황우석사태

나는 이 사건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고 글을 쓴다. 과학적 시각은 내 분야도 아니어서 그럴만한 실력이 없다. 또 내가 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글을 쓴다면 그건 비전문가적 글을 생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하고 결정하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러면서 정체성 문제라든지, 허약한 윤리의식이라든지, 공적정신의 결여라든지, 인식의 어두움이라든지, 미성숙한 여성성으로 인한 심각한 마음의 상처라든지, 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지지자들의 심리적 배경이 무엇인지, 진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애국운동이 무엇인지, 악이란 무엇인지... 등
 
내가 20여년 동안 언어싸움을 하면서 이 사회에 던졌던 화두의 증거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 말은 현단계 한국인의 무의식 세계에서 드러나는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 20년 전부터 주장해 오던 내 논리가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말하고도 일치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광풍과도 같이 휘몰아치는 어떤 기운으로 인해 한동안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어서 지지부진했던 내 내면세계가 한 단계 높은 지점으로 성큼 올라설 수 있었고 그리고 그 단계에서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단계에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귀국 후 20여년의 언어싸움을 하면서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이 페미니즘이었다. 그 당시 ‘이 시대에 태어난 한국인은 누구나 지금 뜨거운 물결로 일고 있는 페미니즘을 한번 쯤은 통과해야 한다.’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그로부터 10년을 페미니즘의 열기 속에서 지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주의에 가두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적은 없었다. 나의 의식은 계속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을 원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지속적으로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계속 앞만 보고 걷고 또 걸었다. 그때 나의 심정은 좀 외롭다고 해서 편협적이거나 거짓말을 하며 글을 쓸 수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표면적인 이유들 말고 반드시 더 깊은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같은 사건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많은 동지들을 발견했다. 나는 실로 오랜 만에 언어가 확실히 통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고독한 결정

그러나 삶은 복잡해서 때로 어떤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할 시점이 있다. 이럴 때 혼자서 걸었던 경험의 세계는 나에게 언제라도 다시 혼자가 되어도 좋다는 용기를 주었다. 이 말은 틀린 길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는 말하고도 통한다. 틀린 길을 가면 틀린 언어가 생산되고, 그렇게 되면 정신이 혼탁해지기 때문이다.
 
혼탁한 정신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이 사회에 잡물질이 들어간 질 나쁜 언어의 빵을 내놓는다는 말과도 통한다. 나는 공인들의 이런 행동들에 대해 새파랗게 질린 사람이다. 결국 원칙과 상식의 길을 닦아야 할 공인들이 빠져 있는 개인적 논리(가부장적 언어의 틀이 가르친 논리)가 이렇게 혼탁한 사회를 만들어낸 주범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말은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저 말하고 할 수가 없다는 말하고도 통할 것이다.


나는 슬픈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기쁜가.
그것도 아니다.
나는 이미 그런 일차방정식적 감정의 틀은 벗어버린 지 오래다.
나에게는 오로지 일이 있을 뿐이다.
원칙과 상식의 길을 닦는 일이 되는 쪽이면 힘을 보태고
그  일이 방해되는 쪽이면 빠질 뿐이다.


나는 플러스코리아가 뿌리는 씨앗이 이 한반도 땅 곳곳을 날아다니며 길거리에 나딩굴고 있는 보잘 것 없는 돌 틈새 사이까지도 떨어지기를..., 그래서 진정성을 찾기 위한 운동, 즉 원칙과 상식의 길을 닦는 운동으로 발전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것은 먼 후일 이 땅의 곳곳에서 숨쉬고 있을 합리적이고도 긍정적인 인간들의 탄생을 꿈꾸어 본다는 말이다.

둘째형 06/08/03 [15:11] 수정 삭제  
  진정성을 찾기 위한 운동, 즉 원칙과 상식의 길을 닦는 운동으로 발전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것은 먼 후일 이 땅의 곳곳에서 숨쉬고 있을 합리적이고도 긍정적인 인간들의 탄생을 꿈꾸어 본다. 2
소다미 06/08/03 [18:18] 수정 삭제  
  진정성을 회복하는 운동을 통해 훗날, 합리적이고도 긍정적인 인간들의 탄생을 꿈꾸어 봅시다. 이하천 선생님 더위에 좋은 글 올려 주심을 감사합니다.
자성화 06/08/04 [09:23] 수정 삭제  
  선생님의 이십년엔 새발에 피지만..저도..지금까지..제 속에서 의문과 고통과 과제를 주었던 산맥을 황박사님을 통해서..극명히 보았습니다...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제가 존재할 이유이고요..인간이 그 스스로의 조건을 극복하게 하기 위해서..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나 봅니다..선생님..건필하시고..황빠라는 역사적..인문학적 심볼을 문학으로 성취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좋은시간 06/08/04 [09:38] 수정 삭제  
  이하천 선생님이 표현하신 글귀에 등장하는
고귀한 언어들에서 가슴 느꺼워지는 단어,

그 '동지' 라는 뜨거운 이름과
'언어가 확실히 통하는 사람들' 이라고 명명되는 일원속에
저도 담겼으면 좋겠네요..

선생님의 글에서,
세상의 온갖 진귀함과 순리, 참과 거짓,
위선적인 사회적 병폐와 모순등을

동서양의 문화차를 극복한 삶의 체험속에서 그려낸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통하여
한국 여성들에게 커다란 한 획을 그어주신것 같습니다.

받아들임과 버릴것의 번민속에서
자신의 굳은 신념으로 투명한 당신의 가치관을 쫓아서
외롭고도 어려운 길을 걸어오면서,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당당히 이겨내며
'극기' 해오신 정신세계를 엿볼수 있는듯 합니다.
분개한민초 06/08/04 [12:29] 수정 삭제  
  그누구도 그어떤 직위자라도 국가장래를 해치는 자는 반드시 국민의 힘으로 응징해야 합니다. 그들이야 말로 매국노라는 칭호를 붙여서 사회에 공개해야겠죠.
조은날 06/08/04 [14:09] 수정 삭제  
  당신의 삶은 그야말로 한국 여성으로서 가부장제와 맞서싸운
투쟁의 길이었습니다.
새삼 길이라는 단어가 삶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여정이란 곧 삶의 궁극적인 본질을 찾아가는 길이겠지요.
삶의 본질을 찾는 방법(way), 이치(道)로서
상식과 원칙의 길을 닦는 데
선생님의 정직한 글쓰기가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믿습니다.

아하 06/08/05 [15:56] 수정 삭제  
  표정이 밝으셔서 20년이란 세월을 은둔생활하셧다는 말에 의아했습니다.
이제 은둔에서 해방되셧어니 이복재기자님을 도우셔서 원리원칙을 지키는 나라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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