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의 베어진 나무와 억새풀] 暻井.
빌딩 주인이라고 해봐야 관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나무들의 공간을 좋아했던 나도 주인이 아닌 관계로 관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밑둥이 잘려지고 남은 자리에 나무가 자라나 있는 것 같다. 금새 푸른 빛이 눈빛을 정화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무들은 없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벌레들이 살고 가끔 나비가 찾고, 또 가을이면 고추잠자리가 옥상까지 올라오고, 또 가끔 새들도 찾아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이제 그 면면들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관리가 되지 않은 나무들과 억새 몇몇은 내 소유가 아니므로, 주인이 잘라낸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제 그 푸름과 벗하며 찰나의 도원경(桃園景)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나무들도 참 살기가 벅찼을 것 같다. 여름내 가뭄이 찾으면 말라버려 성장을 못하다가 늦여름 태풍 등이 찾으면 겨우 물기가 서려 자라다가 가을 겨울이 찾아버리면 다 자라지도 못하고서 한 해의 성장을 끝내야만 하는 반복이 십년 이상 계속 된 것이었다. 때로는 채 익지 못한 열매들이 그대로 남았다가 다음해 새 열매가 자라 구랍 열매와 올해 열매가 함께 매달려 있는 풍경도 자아내곤 했다. 그래도 좋았는데... 휑하다는 표현이 참으로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비어버렸다. 무슨 도인이 마음을 비웠느니 그런 비움과는 결코 같지 않다.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엊그제 그 밑둥위로 서리마저 앉았다. 마치 설상가상이라는 사자성어가 마음 깊이 자라잡는 모습이었다. 되돌릴 수도 없고, 또 나로써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 다만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나무와 억새들이 생각난다.' 이 표현만 떼내어 보면 나는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일 수도 있다. 무슨 대단한 존재들도 아닌데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소중했던 공간의 생명들이었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또 함께 했던 작은 생명들도 있었고, 그들의 조화는 좋았는데 말이다. 올해는 고추잠자리를 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올해 한 번도 지빠귀 비슷한 새들이 여기를 찾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올해가 한 달 남짓 지났는데 말이다. 올해는 어쩌다보니 오늘이 입춘이다. 하지만 여기에 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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