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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에서는 주 무왕이 은나라 왕족인 기자에게 봉지로 하사했다는 산서성 남부 능천(陵川)현에 있는 기자산과 기자 동굴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연재에서는 그 기자산에서 살았던 기자의 무덤(箕子墓)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운 이성계에게 명나라에서 하사한 국호 조선(朝鮮)은 단군조선을 계승하라는 뜻이 아니라 주 무왕으로부터 봉지를 하사받은 기자조선을 본받으라는 취지의 지상명령이었다. 그러기에 근세조선은 평양에 조성된 기자릉을 무척이나 극진히 모셨을 것임이 자명하다.
허구의 900년 기자조선의 도읍인 평양 기자릉은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광복 후 1959년 북한의 김일성은 기자릉이 가묘(假墓)로 판명나자 봉건적 지배 계급과 예속의 산물이며 조선 민족의 수치라고 규정해 철거를 명하고는 대신 공원을 조성했고 평양에 단군릉을 조성했다.
기자의 무덤은 어디 있나요?
중국의 인터넷 검색 싸이트 바이두(百度) 백과의 A.I에게 누구나가 늘 하듯이 두리뭉실하게 “기자의 무덤이 어디 있느냐?”고 일상적으로 질문했더니, 그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대답) 기자 무덤의 정확한 위치는 역사적으로 논란이 되어 왔지만, 중국의 주요 고고학 유적지로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산동성 하택(荷澤)시 조(曹)현 기자릉은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무덤은 한때 저수지에 잠겨 있다가 폐쇄된 후 재건되었다. 한국의 기씨 후손들이 여러 번 방문했다.
2. 하남성 상구시 양원구 몽장사촌(商丘梁园区蒙墙寺村=蒙城) : 역사 문헌과 <수경주>와 <대청일통지> 등에 “기자릉은 상구 몽현 고성 내에 있다.”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3. 한반도 평양의 모란봉 을밀대 아래쪽에 1102년 1122년 고려 숙종 때 건축된 기자릉이 있었습니다. 명나라 때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의관총(衣冠塚)이라고 합니다. 1959년에 김일성 주석의 철거 명령이 내려졌고,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사 문헌적 근거는 진(晋)나라 두예(杜预)의 《춘추석례》에 “양나라 몽현 서북에 박성이 있다. <春秋释例> 梁国蒙县西北有亳城。” , 진나라 복도(伏滔)의 《북정기》에 “망몽, 박간, 성탕, 이윤, 기자의 무덤 모두 지금 쓸쓸한 언덕이 되었다 <北征记> 望蒙、亳间,成汤、伊尹、기자(箕子)之冢, 今为丘墟也。”와
송나라 왕상이 쓴 <여지승기>의 “기자 무덤이 송성현 북쪽 41리 20보에 있는 옛 몽성 내에 있다. 《舆地胜记》 箕子冢在宋城县北四十一里二十步古蒙城内。” 라는 기록이다. 즉 여기서의 송성이 양국 몽현으로 지금의 하남성 상구라는 취지이다. (이상) 그런데 과연 그럴까?
여하튼 가장 이상한 점은, 한반도 평양에서 잘 사시던(?) 기자대왕께서 어찌 된 일인지 이역만리나 떨어진 산동성 서부 조(曹)현 또는 하남성 동부 상구(商丘)에 묻히게 되었으며, 또한 산서성 남부 능천현 기자산에 살던 기자가 동쪽으로 천 리나 떨어진 곳에 묻히게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통상 무덤은 그 사람이 살던 곳이나 태어난 고향에다 쓰는 법이다. 기자의 고향은 은나라의 도읍이었던 북부 하남성 동단 안양(安陽) 또는 조가(朝歌)이거나, 봉지에서 살던 기자산 부근에 묻혀야 지극히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기자는 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묻히게 되었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의 진짜 무덤을 찾아서
다시 한번 A.I에게 “在陵川縣附近有箕子墓嗎?”라고 문의했더니 슬그머니 이야기 보따리를 살짝 풀어놓았다.
(대답) “현재까지의 가능한 정보에 따르면, 산시성 릉천현 인근에 기자의 무덤이 존재했다는 결정적인 역사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해당 지역은 기자와 관련된 문화적 전설과 기념 유물이 풍부합니다.”
이번에는 마치 수사관이 용의자에게 뭔가 다 알고 물어보듯이 콕 찝어서 “在潞城縣有箕子墓嗎?”라고 문의했더니 낙담했는지 툴툴 털어내듯이 다음과 같이 이실직고했다.
(답변) “로성(潞城)현에 있는 기자 무덤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의 자료에 따라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주류 학계의 견해는 그 지역에 기자의 실제 무덤은 없고, 단지 기자를 기리는 기념비나 의관총만 있다는 것입니다.
'기자릉'이라는 무덤이 있지만 여러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장치시 로성구 미자진 자북촌(長治市潞城區微子镇子北村)에 묘비가 없는 무덤이 하나 있는데, 현지 주민들은 이를 '기자릉'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기자의 실제 매장지가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삼인(三仁, 미자, 기자, 비간)‘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고, 실제 매장지는 다른 곳(조현, 상구)에 있습니다. 현지의 기록은 존재하지만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고·근대 서적 전집>에는 "로성현에 있는 기자의 무덤은 현청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15리 떨어진 미자촌 북쪽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 내용은 다른 권위 있는 역사 자료에서 뒷받침되지 않으며 민간 전설이나 과장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원문) 关于潞城县是否有箕子墓的问题,根据目前公开资料,存在不同说法,但主流观点认为当地并无真实箕子墓,仅有纪念性质的“箕子坟”或衣冠冢。“箕子坟”但非真实墓葬 多份资料指出,在潞城区微子镇微子村(原微子镇子北村)有一处无墓碑的坟茔,当地人称为“箕子坟”。然而,这并非箕子实际葬地,而是后人出于对“三仁”(微子、箕子、比干)的敬仰而设立的纪念性遗迹。 箕子实际葬地另有他处根据《史记集解》等早期史料,箕子墓最可信的说法位于河南省商丘市蒙县故城(今梁园区蒙墙寺村)一带, 另有说法认为其在山东省曹县郑庄镇王厂村,该墓已被列为县级文物保护单位,并有韩国箕氏后裔前来拜谒。地方志记载但存疑 : 《古今图书集成》曾记载 “潞城县箕子墓:在县东十五里微子村北”,但此说缺乏其他权威史料佐证,可能源于民间传说或附会。 (结论) 潞城区微子镇确实存在一处被称为“箕子坟”的遗迹,但学术界普遍认为这是衣冠冢或纪念冢,并非箕子真实葬地。箕子晚年远赴朝鲜,最终卒于当地,其真实墓葬更可能在河南商丘或山东曹县一带。如需实地探访,可前往潞城区微子镇微子村(有“箕子坟”遗迹)
A.I는 뭔가 진실을 말할 듯하다가 애매하게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로성(潞城)에 있다는 저 무덤이 혹시? 진짜 기자의 무덤은 아닌지?
다음 연재를 기대해주십시오. 원본 기사 보기:고구려역사저널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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