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삶과 자유인의 길....돈, 노동, 그리고 인간다운 삶

고대 그리스와 현대의 대조: 자유와 돈에 대한 철학적 성찰



노동 중심 사회의 함정: 여유를 잃은 현대인의 초상



스스

김학영 기자 | 기사입력 2025/01/03 [08:14]

노예의 삶과 자유인의 길....돈, 노동, 그리고 인간다운 삶

고대 그리스와 현대의 대조: 자유와 돈에 대한 철학적 성찰



노동 중심 사회의 함정: 여유를 잃은 현대인의 초상



스스
김학영 기자 | 입력 : 2025/01/03 [08:14]

물질적 풍요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현대 사회에서 돈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돈은 자유인의 삶에서 탐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은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여유를 통해 인간다운 일을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다운 일이란 정치라고 정의했다. 그녀는 인간이 스스로의 목적을 찾고, 공동체를 위해 행동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활동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란 단순히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이는 공동체를 위한 고민과 행동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선비들도 명예와 자존심을 중시하며 돈벌이를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정도에서 그치는 것으로 여겼다.

본문이미지

▲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자유인들은 물질적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정치와 철학 등 공적 활동에 참여하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이러한 가치관은 현대 사회에서 물질적 풍요와 인간다운 삶의 균형에 대한 고민을 환기시킨다.    

 

충분한 재산을 모았음에도 여전히 돈에 집착하는 삶은 노예의 삶과 다를 바 없다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보았다. 현대인의 삶은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노예적이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여유를 누리며 인간다운 삶을 꾸리는 방법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직업을 찾는 데 필요한 영어와 수학 과목에는 열정을 쏟지만,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음악, 미술, 체육 과목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노동이 사라진 노동자의 사회"로 묘사한다.

 

일만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 일이 사라진 상황에 맞닥뜨리면 실업은 단순히 생계를 잃는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과 자존감을 상실하는 문제로 다가온다. 이는 곧 삶의 목적을 스스로 찾지 못하고 남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삶이 허무한 사람들은 종종 그 허무를 채울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환호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쟁은 그들에게 삶의 목적과 숭고함을 제공하는 하나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은 진정한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인생의 가장 큰 죄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는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등으로 우리 시간을 채워주지만, 이는 오히려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빼앗고 있다. 노예에게 노동 없는 시간이 두렵듯, 현대인도 여유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중독적인 콘텐츠에 몰두한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온라인 데이트의 세계에서도 드러난다. 데이트 사이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광고하고 관계를 맺을 기회를 제공하지만, 여기에서도 진정한 자신보다 꾸며낸 모습이 우선된다.

 

회원들은 사진, 소득 수준, 교육 수준 등 자신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여 기재하며, 이는 마치 부동산 중개업자가 평범한 집을 "매혹적"이라고 광고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자신을 더 나은 모습으로 보이려 하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려는 무의식적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본질적으로 진실과 멀어지게 만든다.

 

온라인 데이트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외모, 소득, 교육 수준 등 다양한 요소가 관계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성은 외모를 중시하고 여성은 소득 수준에 민감한 반면, 여성의 과도한 부유함은 오히려 남성에게 기피 대상이 된다.

 

이런 통계는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또한, 인종에 대한 편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피부색은 상관없다"고 기재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같은 인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우리가 외부에 공개하는 정보와 실제 행동 간의 괴리를 드러낸다.

 

정치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견된다. 유권자들은 공개적으로 진보적이고 평등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실제로는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후보를 지지하기도 한다. 1989년 뉴욕 시장 선거와 같은 사례는 이러한 모순을 잘 보여준다.

 

흑인 후보 데이비드 딘킨스가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압도적으로 앞섰으나 실제 선거에서는 예상보다 적은 표 차로 승리한 것은 많은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는 진보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결국, 현대인은 외부의 기대와 요구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꾸리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자기 성찰과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지게 한다. 돈과 명예, 사회적 기준이 아닌 스스로의 목적을 찾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시작일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생각하지 않는 삶은 죄악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진정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원본 기사 보기:내외신문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PHOTO
1/23
연재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