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를 꽃피운 람세스 2세..미이라의 가치카데시 전투에서 아부 심벨 신전까지: 람세스의 위대한 발자취
람세스 2세의 미라와 현대 이집트의 역사적 연속성 람세스 2세의&nbs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로, 그의 업적과 영향력은 오늘날 현대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집트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는 람세스 2세를 중심으로 고대 이집트 왕국의 의미와 그의 업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공유되었다.
특히, 이집트인의 관점에서 람세스 2세가 지닌 상징성과 그가 이룩한 건축 및 정치적 유산이 현대 이집트 정체성에 미친 영향을 깊이 있게 논의하며 청중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적 맥락을 제공했다.
'파라오'라는 용어는 고대 이집트 왕을 뜻하는 단어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기원은 고대 이집트어의 '페르 아'에서 유래되어 본래 '위대한 저택'을 의미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왕은 '파라오'보다는 '레스티'나 '이티' 같은 다른 칭호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으며, '파라오'라는 명칭은 그리스인들의 음차를 통해 확산된 표현이다.
이 용어가 성경과 꾸란에서 이집트 왕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대 이집트에서는 이러한 전통적 의미를 넘어, 훌륭한 인재를 칭송할 때 '파라오가 해냈다'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파라오의 상징성이 재해석되고 있다. 특히 축구 선수 모하메드 살라가 '이집션 킹'으로 불리며 이러한 맥락을 이어가고 있다.
람세스 2세는 왕족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권력 구도를 극복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의 즉위 이후 국가의 치안과 안보를 최우선으로 삼았으며, 선제 공격과 내부 개혁을 통해 왕권을 공고히 했다. 군사적 업적 중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카데시 전투에서는 약 2만 명에서 2.5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히타이트와 맞섰지만, 승패가 갈리지 않은 무승부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전투를 계기로 양국은 16년간 평화 협정을 맺으며 상호 방위 조약을 포함한 협력을 통해 아시리아 세력을 견제하기로 했다. 이러한 외교적 성과는 람세스 2세의 전략적 사고와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람세스 2세의 업적은 군사적 측면을 넘어 건축과 문화적 유산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건축가 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거대 신전과 동상을 건설하며 이집트의 왕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아부 심벨 신전은 오늘날까지도 이집트의 역사적 상징물로 남아 있으며, 그가 66년간 통치하며 남긴 다양한 기념물들은 당시 이집트 사회와 정치의 안정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는 무덤이 도굴되며 시신이 훼손되는 사건도 발생했는데,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조차 왕권이 죽음 이후까지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의 미라는 1881년에 비밀리에 숨겨진 무덤에서 발견되었으며, 함께 발견된 199구의 파라오 미라들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1970년대에 람세스 2세의 미라는 프랑스로 옮겨져 보존 작업을 받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이집트 정부는 프랑스와 협력했으며, 프랑스 측은 그의 시신을 왕으로 예우하며 의장대의 영접을 받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람세스 2세의 미라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도 전해진다.
그의 머리카락이 도난당해 경매에 출품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는 미라 보존 작업에 참여했던 스태프의 후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람세스 2세는 이러한 현대적 일화를 통해서도 여전히 역사적 관심의 중심에 서 있다. 아울러 그의 신전 근처에서 출토된 양 머리 유물은 당대의 제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그가 종교적 상징성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나타낸다.
현대 이집트인들에게 람세스 2세와 같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유산은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기초로 남아 있다. 이집트는 아랍 문화에 깊게 동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이집트의 독창적 문화와 역사를 통해 그 뿌리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고대 이집트의 다양성과 유산은 이집트가 다른 아랍 국가들과 차별화되는 요인이 되었으며, 어려운 시기에는 이 역사적 뿌리가 현대 이집트인들에게 정신적 지주로 작용하고 있다. 람세스 2세는 특히 모든 세대의 이집트인들에게 큰 의미를 갖는 인물로 남아 있으며, 그의 업적은 오늘날에도 본받고 싶은 사례로 거론된다.
이번 토론은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현대적 의미를 연결하며 람세스 2세를 중심으로 이집트인의 자부심과 문화적 정체성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참가자들은 그의 업적과 삶을 재조명하며 현대 사회에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청중에게는 이러한 논의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연결 고리를 발견할 기회를 제공했으며, 토론을 마치며 의견과 소감을 나눌 수 있는 참여의 장을 열어두었다.
이러한 역사적 토론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넘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이처럼 람세스 2세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을 넘어, 현대 이집트인들이 자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데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본 기사 보기:내외신문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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