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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우 박사 이야기] 법학도가 될 뻔한 예산군 청년, 매헌 윤봉길 의사의 농촌계몽 후배가 되다

박상진기자 | 기사입력 2023/04/24 [06:03]

[이선우 박사 이야기] 법학도가 될 뻔한 예산군 청년, 매헌 윤봉길 의사의 농촌계몽 후배가 되다

박상진기자 | 입력 : 2023/04/24 [06:03]

 

▲ 이선우 박사 부부  (사진: 이선우 박사 제공)  ©  박상진 기자

 

오는 29일 매헌 윤봉길의사 4.29 상해 의거 91주년 및 탄신 115주년 기념식이 충남 예산군 충의사 인근 도중도 주무대에서 개최되고, 29일과 30일 2일간 윤봉길평화축제가 펼쳐진다.

 

매헌 윤봉길 의사를 생각하면 윤의사의 고향 예산군에서 태어나 윤의사의 농촌계몽운동에 심취되어 농민운동을 크게 실천했던 이선우 박사가 떠오른다. 매헌 윤봉길의사 4.29 상해 의거 91주년 및 탄신 115주년 기념식을 며칠 앞두고, 이선우 박사 인생 스토리를 톺아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다음은 이선우 박사의 설명을 참조하였다.)

 

 "매헌 윤봉길의사의 고향 예산에서 태어난 흙손 이선우 박사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농촌계몽 운동에 심취되어 푸른겨레연수원. 유관순청소년수련원 .한민족수련원.매헌민족대학.한겨레 평화대학등 국민자율 민족교육원 5개를 설립하여 도의문화 창달을 위한 덕사 양성과 우리도 잘살수있다는 새마을교육 그리고 각계 각층의 바른 품성을 위한 인간교육등 연수생 88만명을 배 출하여 사회개혁을 위한 민족교육 분야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였다"

 

<법학도의 길에서 농학도의 길로> 

 

이선우는 예산군 신양초등학교와 신양중학교를 졸업하고 큰 형님이 계시는 공주의 공주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공주고 2학년때 뜻한바 있어 1년 휴학을 하고 홍성 용봉산에 들어가 심신 수련을 하던중에 인근의 시량리 매헌 윤봉길 의사의 충의사에 자주들려 윤의사님의 농촌계몽운동에 감명을 받

았다. 무지한 농민들에게 슬기로운 지혜와 근면 협동정신을 일깨워주신 매헌 윤봉길의사의 살신위국 충정의 기 초가 농촌 농민들을 일깨우는 애농애국정신으로 부터 출발되였다는 것을 알게된 이선우는 자연스럽게 매헌 윤 봉길의사의 농촌계몽운동에 심취되었다

 

홍성군 장곡면 천태리가 고향이면서 예산농고 재학시절 부터 농촌계몽 운동을 하여 전국적으로 유명세가 있었던 한흙 한인수 농민운동가를 만나 또 한 번 감동하였다.

 

 "농촌은 뿌리요 도시는 꽂 이다 뿌리가 시들면 꽃도 시든다" =한흙 선생님=

 

"낙후한 농촌을 우리가 지키자!"를 외치면서 농촌 농민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불어 넣으면서 정신혁명! 기술혁명! 생활혁명!을 외치고 있었다.

 

"이선우 동지 만나서 반갑소"농민운동 은 제2의 독립운동 입니다 "농촌이 사 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이나라가 사 느 냐 죽느냐와 다르지않습니다" =한흙 선생님=

"매헌 윤봉길의사 처럼 한목슴을 내놓 고 독립운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성과 가 없듯이" "농민 운동도 자신의 생명을 다바처서 전력 투구하지 않으면 결실이 없습니다" 

 

"절망속에서 헐 벗고 굶 주리며 칠흙 같은 어두운 밤길을 헤매 고있는 농민 들에게 필요한것은" 농민들에게 낚시 질한 고기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 질하는 법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

 

▲ 예산군 대술면 수련원 (사진: 이선우 박사 제공)   ©  박상진 기자

 

예산 금오산 기슭의 정자나무 밑에서 냉수 한 그룻에 목을 축이면서 열변을 토하시는 한흙 선생님의 애농혼에 취해서 시간 가는줄 모르 는데 어느덧 먼산 산허리에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후 한흙 선생의 영향을 받아 이선우는 휴학기간을 이용하여 농촌봉사 활동을 두루 체험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복학한후 어느덧 졸업반 이된 이선우는 대학학력 예비고사를 합격하고 부모님의 간곡힌 뜻에따라 서울로 법대를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아버님 어머님의 권유와 희망에 따라 법대 원서를 써가지고 장항선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중 공교롭게도 온양역 근방에서 한흙선생을 열치안에서 만나게 되였다.

 

한흙 선생 : "어! 왠일인가! 이선우 동지 어디가는가?"

 

흙손 이선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선생님, "서울가는 길입니다 대학입학 원서 내러 갑니다"

 

한흙 선생 :  "오!그래요 그런데 무순 학과에 입학 할려고? 하나요"

 

흙손 이선우:"네 법학과를 갈 생각 입니다"

 

한흙 선생 : "이거 참 큰일 일쎄 괜찮은 청년들이 다 법대나 상대가서 출세 하거나 돈이 나 벌려하니 이농촌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

 

이선우는 한선생께서 탄식조로 차장 밖을 응시하시면서 하시는 한숨소리 에 크게 한 대 뒤 퉁수를 얻어 맞은듯 한 기분으로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 었다

 

"선생님은 어디까지 가시나요?"

한흙 선생 :  "오! 농민운동하는 흙의 동지들과 함 께 세워 놓은 "농민의 집" 복지농도원 에 가는 중 일쎄"

 

흙손 이선우: "선생님 부족하지만 저도 선생님을 따라 농민운동에 투신하겠습니다. 저도 농부의 자식 입니다 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신 '농촌은 뿌리요 도시는 꽃이다 뿌리가 시들면 꽃도 시든다' 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대학은 법대에서 농대로 바꾸고 덴마크처럼 잘사는 농촌을 위해 축산학을 전공 하겠습니다"

 

한흙선생: "참 장하다! 이선우 동지! 내가 천군 만마 를 얻은것 같네요. 농도원 동지들이 모두 기뻐 할것입니다. 이선우 동지 환영합니다" 그 결단에 찬사를 보냅니다." 

 

이렇게 하여 열차에서 벌어진 우연한 인연 때문에 나는 천안에서 열차를 바꿔 타고 대전 시 도마동 363번지에 있는 사단법인 복지농도원 이라고 하는 자생 농민교육원에 입단하고 충남대학교 농과대학 축산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 1학년생으로 연령 20세에 훈련 교관 이라는 직책을 부여받고 이선우는 낮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저녁과 새벽에는 연수 생을 상대로 야간점호 새벽구보체조 등을 지도 하면서 대학에서 배운 최신 농사정보기술을 농도원 연수생에게 전수하였다.

 

충남대학 4학년동안 주학야훈(晝學夜訓)하면서 농촌계몽 운동에 앞장선 이선우에게 너무나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한흙 한인수이 직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 경희대의료원에서 치료 중이었는데 고(故)박정희 대통령은 제1회 516민족상 수상자이며 새마을 운동의 실천적 지도자인 한인수를 꼭 살려내야 한다는 간곡한 바람으로 유명한 의료진이 전력투구했지만 당시 의료기술의 한계에 부딪혀 경희대 한방의료원에서 마지막 한방치료에 기대를 걸어보았으나 운명이 얼마남지 않했다고 생각했는지 한흙 한인수는 이선우를 조용히 병실로 호출했다.

 

한흙 한인수는 병실에서 이선우의 두손을 꼭잡고 굳은 표정으로 마지막 유언을 했다.

피와 땀과 눈물로 걸어온 농도장정을 변치말고 초지일관 해줄것을 당부하면서 자신이 싣던 낡은 구두 한켤래를 주셨다. 그리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묵묵히 복지농촌 건설을 위해 정진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한국 농민운동의 실천적 선구자 한흙 한인수는 1974년 2월7일 새벽3시 흙손 이선우를 비롯 한 수많은 흙의 동지들이 부르는 애국가와 선구자 그리고 농도원가를 부르는 애절한 통곡 소리를 뒤로 하고 하늘의 별이 되어 소천하셨다.

 

전국 방방곡곡에 새마을운동의 불을 붙이고 훍의 영웅 한흙 한인수는 한줌의 흙 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흙 한인수의 불꽃같은 농민운동의 열정은 흙손 이선우에게 이어져 농도개척(農道開拓)은 계속되었다.

 

◆국가위탁 합숙 교육생 88만명을 배출한 흙손 이선우 

흙손 이선우는 33세에 사단법인 복지 복도원의 원장으로 취임하여 이사장 및 회장을 역임하면서 푸른겨레연수원(천안병천.12만평)을 설립하였고, 유관순청소년수련원(천안병천).한민족수련원(예산대술).매헌민족대학(예산).한겨레평화대학(서울)을 설립하여 덕사(德士)를 양성 하였다. 또한, 원장,회장,총장을 역임 하면서 약 40여 년 동안 합숙교육생을 88만명 배출했다. 이 업적은 이 분야 세계 신기록으로 평가 받았다

 

▲ 이선우 박사 제공 자료사진   ©  박상진 기자

 

다음 아래는 이선우 박사측으로 부터 받은 자료.

 

"한흙 한인수 선생의 불꽃같은 농민운동의  열정,

흙손 이선우가 잇고 있다." 

 

흙손 이선우는 33세에 사단법인 복지 복도원의 원장으로 취임하여 이사장과 회장으로 푸른겨레연수원(천안병천)을 설립하였으며, 유관순청소년수련원(천안병천).한민족수련원(예산대술)매헌민족대학(예산).한겨레평화댁학(서울)을 설립하고 원장 회장과 총장을 역임하면서 약40 년동 안 [88만명] 연수생을 배출했다.

 

■수상 경력

□세계 한민족 평화대상

□새마을훈장 노력장

□자랑스런 충청인 대상

□자랑스런 충대모범동문상

□대전시민의상(1979년29세)

□대한민국 사회공헌대상

□위대한.한국인물대상 외다수 

 

▲ 이선우 박사 제공 자료사진   ©  박상진 기자

 

■각계 사회단체 활동 경력  

□한국FTA국제수출전략연구윈장.역임

□한국품성교육지도자연합회장.역임 

 □기업경쟁력강화연수원장 역임

[한국조폐공사.국방과학연구원.하나은행.공무원CEO등.각기업체간부및.중견사원.경쟁력강화교육실시]  

□푸른겨레연수원.건립.원장.이사장.역임(부지12만평) 천안병천 (1985년)  

□유관순청소년수련원.건립.이사장  

□한민족수련원.건립 원장.이사장 역임 예산 대술 소재(1998년)  

□매헌윤봉길의사 민족대학.학장. 역임 이사장.역임(예산).덕사양성

□아프리카 5개국 국가지도자 새마을 연수단장 역임(각국.국회의장단.장관.외교관등연수) 

□극동방송 운영이사(전)

□KBSTV 자문위원(전)

□충청향우중앙회 공동 대표(전)

□한겨레평화대학.총장(서울시민대학)(현)  

□한국사회단체총연맹 총재(현)

□겨레사랑국민총연합 상임의장(현)

□세계 충청인총연맹 총재(현)

□세계기공연맹 총재(현)

□주.씨앤로봇.회장(현)

 

 

 

■저서

□청소년복지론(대학교재)

□어둠을물리치고(실화집)

□새벽이오리라(칼럼집)

□흙을먹는불사조(실화소설) 

 

■방송출연경력

□11시에 만납시다.KBS1.TV. 60분 단독 출연

□KBS 라디오 한국인의 협동정신 고정출연

□새마음새출발.MBC라디오.단막드라마

□진단 인간시대 KBS 1TV 사람과 사람

□인간공동체.KBSTV.농촌후계자.가연맺기. 

 

국회, 경기도, 충남을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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