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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안좌면 사치도를 마음에 품는다~

광활한 갯벌에 낙지와 개잡이 등 김 양식이 활발해

김일호 기자 | 기사입력 2023/03/16 [15:28]

신안 안좌면 사치도를 마음에 품는다~

광활한 갯벌에 낙지와 개잡이 등 김 양식이 활발해

김일호 기자 | 입력 : 2023/03/16 [15:28]

신안군 안좌면 사치도 전경



사치도는 안좌면에 딸린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모래가 많고 섬의 형태가 꿩을 닮아 ‘사치’로 불린다. 이웃한 비금 수치도의 지명 유래와 비슷하다.

예전엔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모여 있었다. 수차례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상사치도와 하사치도 두 개의 섬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노두길이 놓여 하나의 섬이 됐다. 밀물 때 바다 아래로 모습을 감추는 노두길은 물이 빠지는 몇 시간은 왕래가 가능하다.

노두길

상사치도의 산은 낮고 대신 숲이 울창하다. 하사치도 사람들은 상사치도로 땔감을 하거나 농사를 짓기 위해 노두길을 오갔다.

현재 상사치도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다. 대신 상록침엽수림인 곰솔군락이 전체적으로 우점하고,

낙엽활엽수림으로 소사나무군락, 졸참나무군락, 예덕나무군락 등이 출현한다. 주민들은 하사치도에 모여 산다.

농경지와 민가가 집중돼 있다. 특이하게 망초군락, 바랭이군락, 억새군락, 고사리군락, 칡 군락 등이 분포한다.

한운리 끝자락에 위치한 북지선착장에서 작은 도선 ‘사치호’가 하루 6차례 오간다.

차를 싣는 주민들은 암태면 남강과 비금면 가산을 오가는 농협페리호를 이용해 본섬인 읍동으로 향한다.

북지선착장에는 방금 바다에서 김을 채취해 온 어민들이 배에서 차로 분주하게 옮겨 싣는 중이다. 어촌 풍경은 늘 정겹다.

사치호는 바닷길을 5분여 가르고 사치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사치마을임을 알리는 표지석 뒤로는 대합실이다. 낡지만 제법 넓다.

벽에는 오래된 농약판매가격표가 붙었다. 이십여명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간이의자에 잠시 앉았다.

바다로 난 유리창 위에 제비가 둥지를 틀었다. 섬, 시골에서야 볼 수 있는 제비집이다. 대합실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마을로 들어간다.

왼편의 해양쓰레기 육상집하장 쪽은 방파제로 향하는 길이다. 길가에 놓인 강아지 집을 보니 웃음이 새어 나온다.

쓸모가 다 한 드럼 세탁기를 재활용했다. 두툼한 모포 위에 누운 강아지가 졸음에 겨운 듯 길게 하품한다.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마을풍경

약간 비탈진 골목길에 접어들면 사치치안센터와 사치교회가 앞, 뒤로 자리한다.

선착장에서 만난 유종호 이장(66)은 “사치도는 농업과 바다 일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며 “30여년전만 해도 상사치에는 염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3가구 정도 있었다”고 말했다.

섬에서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은 30가구, 50명 남짓이다.

김, 우럭양식 때문에 마을 앞 바다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닻줄에 매여 있다.

마을 잔등에는 바람을 쐬며 쉴 수 있는 정자가 기다린다. 작은 빈터 옆, 길과 담장이 맞닿은 집 한 채가 흥미롭다.

하늘로 뻗은 수세가 예사롭지 않은 소나무 두 그루의 위풍은 당당하다. 수고가 15m로 나무 둘레는 360㎝, 수령은 무려 400년이 넘었다. 지난 2013년 4월 보호수로 지정됐다.

주민들은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나무로 여기고 신성시한다. 실제로 정월 보름에 당제를 올린 장소였다.

보호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마을을 들여다 본다. 안좌면 사치경로당에는 어르신 10여명이 정담을 나누는 중이다.

경로당은 사랑방이자 마을회관이다. 때로는 외부의 방문객들을 위해 게스트하우스로 바뀌기도 한다.

사치리새마을회관이라 쓰여진 낡은 현판이 지나 온 세월을 짐작케 한다. 깃발을 꽂았던 국기봉은 밑동만 남았다.

경로당은 예전 사치분교 자리다. 섬 소년들이 바다를 보며 꿈을 키웠던 장소다.

사치도 경로당

안좌면 서쪽에 딸린 작은 섬 사치도는 ‘섬개구리 만세’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치분교 농구단의 돌풍 때문이었다.

섬개구리 만세는 지난 2000년 폐교된 사치분교의 농구단을 소재로 한 영화다.

1970년 전교생이 60여명 밖에 되지 않았던 사치분교의 농구단은 창단 2년만에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1972년 제1회 전국소년체전에서 남자부 준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거뒀다.

작은 섬에서 일어난 기적은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농구단을 지도했던 부부교사와 농구부 선수들이 청와대에 초청됐다.

박정희 대통령까지 나서 축하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은 섬에 선착장을 만들어줬고 전남도를 통해 디젤 엔진이 장착된 도선을 건조해 주기도 했다.

영화 섬개구리 만세는 실제 선수들이 출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경로당 앞에는 윗몸일으키기, 앉아당기기, 온몸허리 돌리기 등 각종 운동기구가 마련돼 있다. 어르신들의 건강을 챙기는 신안군의 배려다.

‘책을 벗 삼아’ 동상과 반공소년 이승복상은 색이 바랜 지 오래다. 운동장은 마을 농기계 보관 장소로 쓰이고 있다.

각종 농기계가 즐비하다. 농자재도 잔뜩 쌓였다. 눈여겨 볼 점은 죄다 이름이 없다. 애써 주인임을 드러내지 않아도 다 안다는 것이다.

집은 대나무를 울타리 삼아 길고 높게 위치한다. 지붕마다 가정용 태양광 시설이 얹혔다.

썰물 때라 마을 앞으로 넓은 갯벌이 펼쳐졌다. 들녘에는 봄이 오고 있었다. 겨울을 난 밭은 서둘러 고르게 개간을 마쳤다. 간척사업으로 얻은 밭은 계단식이다.

사치도 또한 고령화를 비껴갈 수 없나 보다. 휴경지가 흔해 못내 안타깝다. 주민들은 보리, 고구마, 마늘, 조, 고추, 콩 등의 밭농사를 해왔다.

1960년대 후반부터 김 양식도 시작됐다. 대부분 지주식 김 양식 방법이다. 주변 갯벌의 수심이 낮아서다.

갯벌에 말목을 박고 일정한 높이에 김발을 설치했다. 물이 빠지면 김 엽체가 햇볕과 공기에 노출되는 방식이다.

갯벌

아쉽게도 사치도의 김 양식은 한 가구 뿐이다. 생산량은 1000~1200책 정도다.

30여 년 전 부터 폐 염전이 속출해 염전은 사라졌으나 지난 1960~70년대 소금생산이 활발했다.

하사치도에서 상사치도로 넘어가는 길, 빈집이 듬성듬성하다.

상사치도 염전터와 하사치도 북단 끝을 이은 노두길은 갯벌에 돌을 깔아 만든 징검다리다.

노두길 옆으로 갯고랑이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섬의 주변에 펼쳐진 광활한 갯벌은 풍요를 준다. 남자들은 낙지를 잡고 여자들은 게를 잡아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웠다.

상사치도 해안 근처의 연안에는 독살 흔적이 남아있다.

상사치도 독살

현지인들은 ‘원장’이라 부른다. 돌로 담을 쌓고 안쪽으로는 개흙을 메워 만들었다. 물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어로방법이다. 주로 숭어, 가자미, 농어 등이 걸려들었다고 한다.

길은 심하게 울퉁불퉁하다. 나무가 빽빽하고 삼림이 우거졌다. 갈대와 억새가 한데 뒤엉켜 나부낀다.

상사치도 끝은 모래 천지다. 며칠 새 불어 닥친 강풍 탓인지 중국에서 떠밀려 온 쓰레기가 널브러졌다. 때 묻지 않은 해변에 쌓인 모래는 곱고 단단하다.

해수욕장

사치도를 밝히는 빨간 등대는 운치를 더한다. 바다 건너 비금면 노대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아름다운 섬 사치도




원본 기사 보기:전남뉴스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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