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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 - 해석 9

천산태백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01/19 [08:16]

[우리글]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 - 해석 9

천산태백 칼럼니스트 | 입력 : 2013/01/19 [08:16]
[우리글=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칼럼니스트=  癸亥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계해년(서기1443년)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독창적으로 만드시고, 간략하게 예를 들어 뜻을 들어 보이시며,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계해년은 서기1443년이며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3년전이 된다.

여기서 전하는 세종대왕을 가리키는데, 폐하라 하지 않은 것은 명(明)나라의 황제의 신하임을 자인하는 것이 된다. 이는 역사의 흐름으로 보아 대국과 소국의 질서로 인한 것이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된다.

명나라는 고려시대 말기인 서기1368년에 주원장(朱元章)이 몽고의 원(元)나라에 대적하여 세운 나라이다. 원나라는 단군조선의 후예가 되는 몽고족이 세운 나라로서 아시아는 물론 유럽까지 순식간에 정복한 대제국을 이룬 나라인데, 유독 고려를 정벌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서기1270년에 무신정권(武臣政權)이 끝난 뒤에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아 신하국으로 삼게 되었다.

원나라 말기에 승려 출신인 주원장이 홍건적을 이끌며 세력을 키워 원나라 군사와 전쟁을 벌이며 고려의 국경을 넘어 오기도 하였다가 패퇴되었으며, 서기1368년에 결국 명나라를 건국하게 되었는데, 주원장은 한족(漢族) 출신이 아니라 고려출신이라는 거의 확실하다. 즉, 주원장의 조상이 고려 땅에 살았으며, 조상의 묘를 잘 써서 그 은택으로 황제가 된 것으로 전해 온다. 주원장은 어릴 적에 고려 땅을 떠나 중원으로 가서 승려가 되었고 원나라 말기의 혼란한 틈에 홍건적에 투신하여 공을 세움으로써 점점 세력을 키워 군권을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 된다.

한편,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서기1392년 58세에 고려를 접수하였으므로, 서기1335년생이 되는데, 서기1368년에 명나라 황제가 된 주원장과 엇비슷한 연배가 된다.

주원장은 한반도의 남쪽이 되는 진해 출신이라고도 하는데, 주원장이 이성계보다 진해의 천황산에 조상의 묘를 먼저 썼다고 전해진다.

주원장은 배운 것이 모자랐는데, 중국 땅으로 건너가 군사권을 쥐고 세력을 키울 때 글과 말을 따로이 배웠다라고 전해지며, 특히 명나라 황제가 된 이후에도 유독 조선에서 사람을 많이 바치도록 하였는데, 이는 주원장이 자신의 신분을 최대한 비밀로 하기 위하여 최측근의 사람들을 조선인으로 채운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 주원장의 부인으로 고려 출신의 한씨(韓氏)임이 족보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주원장이 고려 출신임은 거의 확실하다 할 것이다.

원나라를 몰아내고 중국대륙을 차지한 주원장은 서기1368년에 명실상부한 황제가 되었는데, 이에 원나라와 명나라를 사이에 두고 결국 명나라를 택하여 위화도 회군을 주도하였던 이성계가 서기1392년에 즉위하여 조선과 화령이라는 국호를 명나라 주원장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절차를 행하였는데, 이때 주원장은 조선을 기자조선의 후예라고 인식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내렸던 것이 된다.

그런데, 명나라 학자들은 조선 이전에 존재하였던 단군조선의 역사를 인정하고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중국역사 기록에서는 한반도의 평양에 기자조선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날조되었기 때문에 주원장도 여러 학자들의 말을 듣고 그렇게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원장이 국호를 명(明)이라 한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이 되는데, 왜냐하면 명(明)이라는 글자는 단군조선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곧 명(明)은 박달의 밝이라는 말인데, 단군조선 시대에 해와 달의 나라로서 명(明)이라는 글자를 소위 명도전에 새기는 등 하여, 단군조선이 명(明)이라는 나라임을 강조하였던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주원장이 국호를 명(明)이라 한 것에 어떤 숨은 연유가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불명이나, 명나라의 많은 학자들이 단군조선의 역사를 명백히 인정하는 기록을 하고 있어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신교총화라는 책에서는 주원장을 고주몽의 후예로 기록하기도 하는데, 고주몽이 동부여의 말지기로 있다가 탈출하여 고구려를 세운 대역사의 과정에 견주어, 주원장이 노예 출신으로서 명나라 황제가 된 역사적 사실로써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 된다.

명나라 황제로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지정받았으므로 조선은 명나라를 사대하는 나라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 는 없는 것이며, 이에 왕호를 황제라 하지 못하고 왕이라 하며, 신하가 부를 때 폐하라 하지 못하고 전하라 하게 되는 것이다.

창제는 역사적으로 처음 만들었다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독창적으로 만들었다라고 풀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 훈민정음 해례본에서조차도 훈민정음의 자음과 모음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천지인 삼재의 도를 실은 소리글자가 존재하였다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옛 글자의 모양을 본따서 다시 체계적으로 발음기관과 발음형태 및 음양오행칠조(陰陽五行七調) 등의 이론으로 정립한 것으로서 이전에는 기록되지 아니한 이치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된다.

세종대왕이 바른소리 글자 28자를 독창적으로 만들면서, 예를 들어 보이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서 이름을 붙여서 훈민정음이라 한 것이다.

정음(正音)은 바른소리라는 뜻이며, 28가지를 보이는 글자로 나타냈으므로 바른소리글자가 되는 것이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 글자라는 뜻이 된다.

서기전2181년 단군조선 초기에 을보륵(乙普勒) 선인(仙人)이 정선한 가림토 38자가 정음(正音)으로서 바른소리 글자가 된다. 한편, 이미 존재하던 상형문자는 참글이라는 ㄸ스으로 진서(眞書)라고 하며 신령스런 옛글자라는 뜻으로 신전(神篆)이라고도 하였다.
후대에 주시경 선생이 훈민정음을 한글이라 이름을 붙였다.
한문화사업총단 대표/천산역사연구원장/천부역(天符易)과학원장/마고족보연구원 대표/세계무궁화축제문화사업회 이사/독도 대마도 동해 만주 수호회복단 이사/천웅도 문무원 이사/광개토황비문연구원 이사/천부어문연구원 이사/산삼문화사업단 이사/한국삼협회 고문/홍익정치연구원 이사/한문화컨텐츠개발원 이사/한문화유물문화재연구원 이사/한문화사업단 이사/행운천지인 역리풍수 대표/(주)한문화개발 고문/플러스코리아타임즈 이사/춘천고조선유적지보전협의회 총괄기획위원장/천부풍수연구원 이사/풍수지리신문 편집국장/현 법무사/저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 <생활사주> <생활기문> <천부풍수> <천웅도와 홍익인간><우리말글과 세계언문역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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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단기고사(檀奇古史), 규원사화(揆園史話)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3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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