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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에(22): 핵발전 - 파우스트의 선택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10/27 [23:40]

옛날옛적에(22): 핵발전 - 파우스트의 선택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20/10/27 [23:40]

 핵발전 - 파우스트의 선택

 

 

 

서기 21세기의 첫 10년이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온 세계가 시끌벅적거리는 가운데 지나간 후 맞이한 다음 10년의 벽두에 인류를 기다리고 있던 것도 희망찬 소식은 아니었다.

 

서기 2011311일 일본열도 동북부(토호쿠)지방 태평양연안에 진도9의 대지진과 함께 높이 20미터를 훨씬 넘는 엄청난 쓰나미가 덮쳐서, 무려 이만여 명의 해변 마을 사람들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가서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몇몇 마을은 사람과 건물들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고, 삽시간에 거대한 쓰레기더미가 되어 버린 피해현장의 모습은 즉시 전 세계의 전파를 타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악과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그 충격이 미처 진정되기도 전인 다음날 312일부터는, 같은 지역에 밀집해 있던 후쿠시마현의 핵발전소 원자로들이 차례차례 폭발하면서 버섯구름까지 내어 뿜는 현장이 알려져 전 인류를 더욱 큰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일본열도의 지역적 특성에 기인하는 지진피해와는 달리 핵물질의 대규모 방출은 기류를 타고 지구 전체를 건강에 해로운 각종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사고는 대지진에 의해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1호기부터 3호기까지의 전원이 멈추면서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원자로 냉각에 필요한 긴급노심냉각장치가 작동되지 않았고, 냉각 안 된 원자로가 과열된 끝에 수소폭발이라는 형태로 터져 버렸다.

 

그리고 다른 폭발을 막으려고 긴급히 주변 바닷물을 대량 끌어들여 냉각수로 사용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엄청난 냉각용 바닷물들이 대부분 다시 바다로 되돌아가면서 주변 해역이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된 것이다.

 

그 방사능 오염수들은 대지진 쓰레기더미들과 마찬가지로 빠른 해류를 타고 북태평양 전 지역으로 퍼졌고, 그에 따라서 북태평양의 어류들은 물론 북반구 지역의 전체 어류들이 방사능에 오염될 가능성이 커져서, 그렇지 않아도 각종 오염에 노출되어 온 먹을거리들에 대한 불안감에 결정적인 한 가지를 보태게 되었다.

 

후쿠시마현 전 지역을 포함해서 반경 300킬로미터 이내의 공기토양표층수 등에서 막대한 양의 방사능 물질들이 속속 검출되었는데, 이 범위 안에는 일본의 수도 도쿄도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얼마 후 여름부터 일본열도를 훑고 지나간 수차례의 대형 태풍들에 의해 열도 전체가 방사능 세례를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위험 농도를 넘어선 핫스팟(hot spot)들까지 열도 내 군데군데서 확인되었다.

애국주의적인 국산품 애용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이지만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만은 구매할 의향이 없어서 국산 대신 외국산 먹을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한 뉴스 앵커가 애국심과 애향심을 발휘하여 매일 후쿠시마산 식품들을 먹는 별난 프로그램을 진행한 지 불과 반년 정도 후에 원인불명(?)의 코피를 줄줄 흘리는 등 방사능 내부피폭 때 잘 나타나는 이상 증세를 나타내자 그런 경향은 더욱 커졌다.

 

하다 못해 어린 자식들에게만이라도 조금이나마 안전한 식량을 공급해 주려고 열도 내에서 가장 오염 피해가 적은 것으로 알려진 열도 서남부(, 큐슈 등지)의 친척집 등으로 긴급히 자식들을 피난시키는 가정도 늘어났다. 그러나 그런 곳도 핫스팟이 나타나는 등 대다수 일본인들은 일제히 방사능 공황에 빠져들었다.

 

사태가 이처럼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으나 원자로 폭발사고와 그로 인한 막대한 피해에 책임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일본정부와 해당 핵발전 전력회사 관계자 모두는 천재지변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기에 바빴다. 그러자 그에 반발하고 분노한 가정주부들을 비롯한 많은 일본 시민들이, 그들 특유의 평소 과묵하던 태도를 버리고 ,수천 명 또는 수만 명씩 토오쿄오를 비롯한 열도 각지에서 반핵시위을 벌이는 진기한(?) 일도 벌어졌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는 다량의 플루토늄 등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물질들이 저장되어 있던 걸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한 달 후쯤에 열도 서부(간사이)지방의 몬주(文殊) 고속증식로에서도 당시의 기술로서는 통제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던 사고가 일어나서 열도는 또 다시 공포분위기에 빠졌다. 몬주에서 핵폭발이 일어날 경우 그 피해범위는 직경 천 킬로미터까지 이르게 되어 전 혼슈 전체와 큐슈까지가 불모지가 될 수밖에 없고, 한국의 동남해안지방까지도 피해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그에 따라서 그동안 정부와 일부 대기업들의 일방적인 호의에 찬 선전 때문에 핵발전이라는 주제에 대해 신경이 무뎌졌던 대다수 한국인들까지도 전율을 느껴 핵발전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어쨌든 그 모든 사태의 책임은 누군가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이 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점차 명백해졌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인 열도가 세계에서도 가장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위험한 곳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로부터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저렴한 에너지를 얻는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추진해 온 핵발전소나 고속증식로 같은 위험한 시설물들에 대한 대규모 반대운동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도자들을 철석같이 믿고 따른 것까지는 그들의 체질화된 봉건적 복종심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불안한 지각운동이 매일 일어나는 열도의 체질까지 안전하리라고 마냥 믿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근거 없는 믿음과는 관계없이 결국 일은 벌어졌고 결과는 참담했으며 전 국토가 많건 적건 간에 각종 방사능에 오염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없었다.

 

일본 국민들이 그 때부터라도 그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각성하기 시작했을까? 그 뒤 이어진 이웃과의 해양분쟁 등 얽혀 가기만 한 국제관계로 볼 때, 일본 국민들은 몰라도 소위 지도층이라는 자들은 못했던 것 같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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