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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부채와 우리 민족의 풍습​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9/27 [15:50]

[조선력사] 부채와 우리 민족의 풍습​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9/27 [15:50]

 

▲ 장식부채. 사진=조선의 오늘  © 플러스코리아



부채와 우리 민족의 풍습​

 

우리 민족이 창조한 문화적재부가운데는 오늘도 전해져내려오고있는 여름철의 필수용품인 부채도 있다.

처음에는 《부치는 채》로 불리우던것이 점차 부채라는 말로 변화되였다.

고려 이전시기에는 대체로 버드나무껍질과 부들을 비롯한 나무껍질과 풀로 엮은것 또는 날짐승의 깃과 털로 만든 둥근 모양의 부채가 널리 리용되였다. 후백제왕 견훤이 고려왕 왕건의 즉위를 축하하여 보낸 부채 역시 공작새의 꼬리털로 만든 둥근 부채였다.

부채는 그후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천과 종이, 참대, 김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부채의 종류에는 크게 둥근 부채와 접이부채가 있었다.

둥근 부채는 부채면이 둥글고 거기에 손으로 쥘수 있는 자루가 달려있으며 접이부채는 여러대의 가는 살을 한데 묶어 접었다폈다 할수 있게 되여있다.

 

- 둥근부채 -

 

접이부채는 가늘게 쪼갠 참대오리로 만든 부채살을 펼치면 해살모양을 이루도록 밑부분을 한데 묶고 여기에 천, 종이, 김 등을 붙여 만들었는데 장식과 꾸밈이 매우 정교하였다. 접이부채의 면에는 아름다운 산천과 실실이 휘늘어진 수양버들, 소담한 꽃송이들과 나비 등을 채색그림으로 생동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고양나무를 비롯한 나무와 비취옥을 비롯한 보석으로 매미, 오리, 가지, 고추, 국화 등을 형상한 장식물을 매달아 부채의 공예적가치를 돋구기도 하였다.

 

- 접이부채 -

 

우리 나라의 부채는 고려시기에 예술적가치와 정교한 제작솜씨로 하여 다른 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지난날 사람들은 더위가 시작되는 음력 5월초가 되면 부채를 만들어 마을사람들과 친구들사이에 서로 주고받군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음력 11월이 되면 새해 달력도 이렇게 만들어 나누어주었는데 이것을 《하선동력》이라고 하였다.

이밖에 부채는 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의례용이나 장식용으로도 쓰이였다. 혼례때 신랑의 얼굴가리개로 쓰이는 부채, 보기 좋은 그림이나 멋진 시구절을 써넣은 집안장식품으로 보관해두는 부채 같은것이 그러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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