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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조선전쟁의 전주곡 - 38゜선 무장침습사건 (2)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8/29 [06:33]

[조선력사] 조선전쟁의 전주곡 - 38゜선 무장침습사건 (2)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8/29 [06:33]

 

▲ 미군의 38선 이북 침공계획. 사진=조선의 오늘 © 플러스코리아

 

조선전쟁의 전주곡 - 38゜선 무장침습사건 (2)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38゜선에서의 무장침습사건은 실지에 있어서 조선전쟁의 전주곡이였다.

위대한수령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동무들도 다 기억하고있는 일이지만 조선에서 전쟁이 시작된것은 1950 6 25일이 아니라 사실은 훨씬 그전입니다. 벌써 1947, 1948년부터 적들은 계속 침공해들어왔습니다.

미제는 벌써 1947년부터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38゜선일대에서의 무장침습사건을 빈번히 일으켰으며 그것을 계단식으로 확대하였다.

38゜선에서의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무장침습사건들은 《북벌계획》 실현단계에 옮긴 1949년에 와서 더욱 본격화되였다. 이해에 적들은 《옹진지구전투사령부》라는것을 조직하고 무장침습에 괴뢰1사와 8사, 수도사단의 대대와 련대를 비롯하여 《호림부대》, 《백골부대》 등 련대, 사단규모의 무력과 《특수부대》까지 동원하였으며 해군, 공군 등 모든 군종과 병종을 거의다 투입하였다.

괴뢰군보병1사단은 림진강으로부터 그 서쪽에 있는 장풍, 개성, 금천, 연안, 청단, 벽성, 옹진지역을 포괄하는 넓은 지역의 전선을 담당하고 공화국북반부지역에 대한 침습을 끊임없이 감행하였으며 괴뢰7보병사단은 련천과 철원지역, 괴뢰6보병사단은 화천, 양구, 린제지역, 괴뢰8보병사단은 태백산줄기의 동쪽 양양지역의 전선을 차지하고 무장침습을 하였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38゜선에서의 무력침공은 적들이 《조용하였다》고 하는 1950년 상반년에도 계속되였을뿐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였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1947년부터 감행한 무장침습사건들은 단순한 《경계선충돌사건》이 아니라 사실상의 전쟁이였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38゜선에서의 무장침습사건들은 무엇보다도 그 목적에 있어서 전쟁이였다.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는 1949년 7월 송악산에 대한 제2차 침습을 준비하면서 괴뢰륙군참모총장 채병덕과 1사단장 김석원에게 《금번 단행할 북침은 멀지 않아 일으킬 내전을 위한 좋은 시험대이며 … 적과 직접 조우함으로써 산지식을 얻을수 있는것이다.》 (괴뢰정부의 내무부 장관이였던 김효석의 증언자료)라고 떠벌이였다.

그러나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38゜선 북에 대한 무장공격을 통하여 노린 목적은 《북벌》 위한 괴뢰군의 《림전태세》검열, 《실전능력》 배양 또는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탐지하는 동시에 차후의 전면적무력침공에 유리한 전술적지탱점인 국사봉, 은파산지역과 송악산지역, 철원지역, 린제지역, 양양지 등 우리의 주권이 행사되는 일정한 지역을 강점하려는데 있었다. 따라서 그것은 그 어떤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전쟁이였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38゜선에서의 무장침습사건들은 다음으로 그 규모와 지속성, 반복성의 견지에서 보아도 전쟁이였다.

당시 개별적전투는 일정한 지역에서 벌어졌으나 이 시기 감행된 적들의 무장공격은 38゜선 전지역에서 괴뢰군의 거의 대부분 무력이 투입된가운데 감행되였다. 그리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3년반에 걸쳐 계속되였다. 1947년에 미제는 괴뢰전투정찰대, 괴뢰국방경비대들을 내몰아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454차에 달하는 각종 무장도발을 감행하였다. 적들의 공격은 주로 38゜선 북의 중요한 고지들에 대한 점령을 노리고 진행되였는데 공화국북반부에 침입한 인원은 4 400여명에 달하였다.

미제는 1948년에 들어와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무장도발행위를 더욱 적극화하였다. 이 시기 6 030명의 무장인원을 동원한 930여차의 무장도발이 감행되였다. 한 전투에 참가한 력량은 1개 대대규모였으며 개별적대상물에 대한 반복공격차수는 3~6차였다.

미제는 1 074명의 무장테로단을 38゜선 북지역에 침투시켜 이르는 곳마다에서 여러가지 암해책동을 감행하게 하였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은 1949년에 괴뢰군의 4개 사단과 1개 련대를 분계선지역에 진출배치하는 한편 전투경찰대들도 더 증강배치하였다.  (계속)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홍 종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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